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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 - '수유+너머'에 대한 인류학적 보고서
고미숙 지음 / 휴머니스트 / 2004년 1월
평점 :
절판
아무도 미리 기획된 자유를 손에 쥐어주지 않는다. 자유는 스스로 창출해 내는 것. 창출해내고 누리는 방법은 각자의 능력, 마음 수양에 따라 달라지는 것. 자유란 각자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떤 길이든 자기가 원하는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을 뜻하는 말이라는 책 속의 구절을 받아들인다면, 이 책의 저자는 그 '자유'라는 것을 충분히 창출해내며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수유 + 너머'라는 인문학 연구 공간이 생겨 나기 까지, 그리고 지금까지의 연구 활동, 지향하는 바를 박학 다식, 거침없는 필치로 써나간, 인문학 보고서라고나 할까. 단순한 인문학 연구가 목적이 아니라, 저자가 꿈꾸는 공동체, 즉 지식을 위한 지식이 아닌, '앎'과 '삶'이 서로 통하는, 살아있는 '코뮌'을 이루어나가는 것, 어느 한 경계 속에 정체되지 않는 지식의 유목민 ('노마드')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의 깨어있는 모임을 이루는 것이다.
고등학교 1학년때 우리는 '문과' 아니면 '이과' 를 선택해야 했고, 그 경계로 묶인 이후로 입시 위주의 교육을 받은 세대, 세계사 라는 과목조차 제대로 학교에서 배워 본 적이 없는 세대에게, 다소 생소하면서도 그러기에 참신하고 경쾌한, 또 분명히 어떤 자극을 주는 책이다. 알고자 하는 욕구, 누가 시켜서 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순수한 동기가 모티브로 작용하기에 충분히 차고 넘치는 사람들은, 대학이나, 기존의 연구 공간으로 '발탁'되어 '소속'되는 '특혜'가 주어지지 않더라도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며 생존해나가는 방법을 아는가보다. 저자의 말대로 길은 이미 어딘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길은 바로 우리가 만드는 것.
다음은 '조로증이라는 질병'이라는 글 중 일부이다.
'...내가 조교 생활을 할 때만 해도 대학교수는 강의하고 연구하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회의와 프로젝트가 주 업무가 되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는 학자들의 경우조차 40대 중반만 넘으면 더 이상의 문제제기를 그쳐버린다는 점이다. 앞의 현상들이 지금 대학이 당면하고 있는 시스템의 문제라면, 뒤의 것은 좀더 심층의 습속이 작동한다는 점에서 더욱 치명적이다. 말하자면 우리 시대 지식인들은 40대만 넘으면 '원로'로 자처하면서 문제를 설정하고 그것과 치열하게 대결하는 열정을 쉽사리 접어버린다는 것이다...'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