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손을 놓지 마라> 서평단 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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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손을 놓지 마라
고든 뉴펠드 외 지음, 이승희 옮김 / 북섬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이를 키우는 것은 배워야 되는 '기술'이 아니다. 타고난 '본능'이다.
태어나서 성숙된 인간으로 성장하기 까지 필요한 부모와의 자연스런 '애착 (attachment)'단계가 요즘은 또래지향성 (peer orientation)으로 대체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꼭 필요한 시기에 충족되지 않은 부모와의 애착관계는 다른 어느 것으로도 대치될 수 없다고 이 책은 강조하고 있다.
칼 융은 부모-자녀 관계에서 일어나는 무언가가 아이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부모-자녀 관계에서 '결핍'된 부분이 아이의 인격에 크나큰 상처를 남긴다고 했다 (28쪽). 아이에게 무언가 더 해주기 위해, 더 큰 혜택을 누리게 해주기 위해 쏟는 관심과 노력을, 혹시나 하나라도 꼭 필요한 시기를 놓치고 지나는 것이 없지 않나 되돌아보는 관심으로 돌려야 할 것 같다.
아이를 보살피는 일이 과소평가 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엄마는 아이를 직접 보살피는 일에 전념하도록 기대되기 보다는, 전문가에게 양육을 맡기고, 그 전문가로부터 하나라도 더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기 위한 경제 기반을 구축하는데 일조하는 쪽을 차라리 선택하도록 무언의 지시를 받고 있다. 아이와 관계없는 사람이 아이의 애착과 지향 욕구를 충분히 충족시켜주는 것은 힘들다고 저자는 말한다. 모르던 바 아니지만, 알아도 무어라 답이 안 나오는 문제이구나. 엄마 혼자 그렇게 맘 먹는다고 될 일이나 싶기도 하고, 이런 본연의 부모 역할을 수행하기에 우리 사회는 너무나 멀리 방향이 틀어져 있지 않은지에 대한 회의감이 밀려왔다.
부모와 애착 관계 형성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불완전한 애착관계를 형성하고, 이것은 아이들에게 어떠한 안정적 기반도 되어주지 못하고 그저 서로 따라하기를 통해 결속을 다지며 당장의 불안감을 해소할 뿐이다.
애착보다 경제적 측면이 더 중요시되는 사회. 이렇게 애착 결핍이 급증하게 된 원인으로서 저자는 확대가족이 사라지게 된 것을 들고 있다. 다세대 가족이 서로 감싸주는 포옹은 이제 극소수의 아이들만이 누릴수 있는 특권이 되었다면서 (59쪽). 애착형성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아이는 부모대신 또래그룹에 의존하게 되고, 부모는 부모대로 아이와의 관계에 자신이 없어져 전문가의 가르침에 의존하려고 한다.
또래지향성이 주는 폐해를 이 책에서는 여러 가지를 들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공격성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188쪽). 사람을 공격하게 만드는 것은 좌절감이고, 좌절감은 공격성의 원료가 된다면서, 왕따를 당하는 아이뿐 아니라, 왕따가해자 아이를 선도하는 유일한 방법은 다름아닌 애착 허기를 채워주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기댈 수 있고, 고민거리에 대처할 수 있고, 눈물흘리며 털어놓을 수 있는 한, 아무리 불행한 일을 겪는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는 위험한 상황에까지 이르지는 않음을 알려준다 (220쪽).
독립심을 키워준다는 명분 아래, 준비안된 아이들을 내몰고 있지는 않는가 라는 대목에서도 역시 잠시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어른들에게도 감당키 어려운 독립, 분리의 문제를, 아이들에게 강요하며 억지로 우리의 품으로부터 떼어놓으려고 하면, 아이들은 급작스런 공포를 보이며 부모의 자리에 결국은 대체물-또래그룹-을 앉히게 된다고 한다. 진정한 독립에 이르려면 의존적인 상태를 거쳐야하며, 그 의존의 대상은 또래 그룹이 아닌, 부모가 되어야 바람직하다는 말이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이 책에 일관적으로 흐르는 단어 '애착'.
누가 우리 아이들을 기를 것인가?
바로 우리, 부모이다. 아이들을 소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들이 마음껏 발전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아이들을 부모 마음대로 제지하게 위해서가 아니라, 필연적인 발달을 성취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우리는 아이들의 손을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