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구경 민족사에서 펴낸 선물용 경전
석지현 옮김 / 민족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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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통도사에 꽃구경 다녀 왔다.

기념품 파는 곳에서 두 권의 책을 사가지고 왔는데 법구경은 동생 주려고 샀고, 다른 한 권 '선가귀감' 은 남편이 읽어보라고 권해서 샀다.

그중 동생 주려고 샀던 책을 집으로 돌아오는 세시간 여 동안 다 읽었다.

오래 전에 법정 스님께서 풀어쓰신 법구경을 읽은 적이 있다.

이십년도 더 지난 일이다.


법구경은 워낙 많이 알려진 책이어서 인용되는 구절도 많고 그중 어느 구절은 예전에 가요의 가사로 만들어진 적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다시 읽었다. 

금방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쉬운 말로 쓰였다는 뜻이고, 새삼스런 내용 대신 모두가 다 아는 내용이라는 뜻일 것이다.


미움은 미움으로 정복되지 않나니

미움은 오직 사랑으로써만 정복되나니

이것은 영원한 진리이다.


-제1장 오늘 (쌍서품 雙敍品) 중-


사랑은 종교를 막론하고 진리가 맞나 보다.


명상의 실습과 굳은 의지력,

그리고 강력한 정신력이 있는 그들은

마침내 저 진리의 절정인

'니르바나(열반)'에 이르게 된다.


-제2장 깨어있음 (방일품 放逸品) 중-


아마 법구경에서 빈도수 가장 높은 단어 중 하나가 '니르바나'가 아닐까.

니르바나. '열반'이라고 번역되어, 곧바로 죽음을 연상하게 만드는 이 말은 정확하게는 깨달은 상태, 번뇌의 불길이 꺼진 상태를 의미한다. 


잠 못 드는 사람에겐 기나긴 밤이여,

지친 나그네에겐 머나먼 이 길이여,

불멸의 길을 찾지 못한 

저 어리석은 이에겐

너무나 길고 지겨운 이 삶이여.


이 삶의 기나긴 여행길에서

나보다 나은 이나 

나와 동등한 이를 만나지 못했다면

외롭지만 차라리 홀로 가라.

저 어리석은 자는 결코

그대의 여행길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이것은 내 아들이다.

이것은 내 재산이다.

어리석은 이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대 자신조차도

그대의 것이 아닐진대

여기 누구의 아들이며

누구의 재산이란 말인가.


- 제5장 어리석은 이 (우암품 愚闇品) 중 -



법구경은 1965년에 처음 우리말로 번역되어 소개된 이후 여러 번 다른 이의 번역과 해설로 재출판 되어 왔다. 

법구경의 원래 이름은 <담마파다>, 진리의 언어라는 뜻.

전 26장 423편의 시구로 되어 있다.

서양의 언어로 가장 많이 번역된 불교 경전, 

이번에 다시 읽으며 가장 마음에 들어온 시편은 다음 두 편이었다.


이 모든 것은 

결과적으로 고뇌다.

이 이치를 깨달은 이는

고뇌와 슬픔으로부터

점점 멀어져 가리니

이는 영혼의 순결에 이르는 길이다.


이 모든 사물에는

불변의 실체가 없다

이 이치를 깨달은 이는

고뇌와 슬픔으로부터

점점 멀어져 가리니

이는 영혼의 순결에 이르는 길이다.


-제20장 진리의 길 (도행품 道行品) 중-


'모든 것은 고뇌다, 모든 사물에는 실체가 없다.'

언뜻 생각하면 부정적이고 회의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근본으로써 인정하고 나면 대부분의 다른 현상들을 받아들이는데 훨씬 수월해짐을 느낀다.


언제 무슨 계기로 나는 이 법구경을 다시 읽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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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3-04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은 읽을 때마다 마음에 들어오는 구절이 다를거 같아요. 지금 나의 상황에 따라서 읽기가 달라진달까?
hnine님 덕분에 법구경의 구절들을 오늘 되새겨보게 되네요. ^^

hnine 2023-03-04 16:50   좋아요 1 | URL
다 아는 것도 잘 못 지키고 살면서 새로운 것을 알겠다고 아둥바둥 하고 있구나, 이런 가르침도 덤으로 깨닫게 해주네요. 이날 함께 사온 책 <선가귀감>도 같은 맥락이 책이더군요.
 
말테의 수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2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문현미 옮김 / 민음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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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테의 수기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에세이가 아니라 소설로 분류되고 있는 작품이다, 고독과 방랑의 시인이라고 일컬어지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시만 쓰지는 않았다는 얘기를 할 수 있게 하는데에 이 말테의 수기가 있다. 작가의 분신이면서 이 작품의 1인칭 화자인 말테는 몰락한 덴마크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시인으로 나온다. 조용한 고향을 떠나 대도시 파리로 이주해온 스물 여덟살 말테는 고향과 너무 다른 파리 생활을 하면서 화려해보이는 도시의 뒷면에 어둡고 비정하고 가난하고 위협적인 면이 있음을 발견해갈뿐 정을 붙이지 못한다. 그를 도시에서 버티게 해주는 유일한 방법은 눈에 보이고 피부로 느껴지는 것들을 기록하는 일이었고 그 기록이 바로 이 '말테의 수기'가 되는 것이다. 

'말테는 나의 정신적 위기에서 태어난 인물이다'라는 릴케의 말이 아니더라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주인공 말테와 작가 릴케 사이의 구분이 모호한채 읽어가게 되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릴케 본인이 아닌 말테라는 인물을 내세우고 있으므로 일기체 소설이라고 분류하긴 하지만 소설보다는 일기에 가깝다고 봐도 무관하다고 여겨진다. 소설이라고 보기에 특별한 서사가 없다. 대신 그때 그때 느낀 점을 메모 혹은 단상의 형식으로 서술해나갔다. 시인으로서 시에 대한 생각, 죽음, 신에 대한 얘기가 불연속적으로 펼쳐져 있어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읽으면 오히려 읽어나가는데 어려울 수 있다. 일기나 단상이라고 생각하고 읽으니 훨씬 읽는데 편안해짐을 느꼈다.


파리에서 고독과 절망의 삶을 살아가면서 말테가 아니 릴케가 시에 대해, 흘러가버리는 시간에 대해, 인간과 신에 대해, 죽음에 대해, 어떤 생각들을 가지게 되는지 나타나는 곳을 찾아보았다.


시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감정이 아니고 (사실 감정은 일찍부터 가질 수 있는거다), 경험이기 때문이다. 한 줄의 시를 쓰기 위해서는 수많은 도시들, 사람들, 그리고 사물들을 보아야만 한다. 동물에 대해서 알아야 하고, 새들이 어떻게 나는지 느껴야 하며, 작은 꽃들이 아침에 피어날 때의 몸짓을 알아야 한다. 시인은 돌이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

그러나 추억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추억이 많으면 그것을 잊을 수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추억이 다시 살아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큰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그 추억이 우리들의 몸속에서 피가 되고 시선과 몸짓이 되고 이름도 없이 우리들 자신과 구별되니 않을 때에야 비로소 몹시 드문 시간에 시의 첫마디가 그 추억 가운데에서 머리를 들고 일어서 나오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 (26-28쪽)

시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시는 감정이 아닌 경험이니까, 그당시 그의 고독과 절망의 경험이 모두 시의 자산이 될 것이라 믿었을 것이다.


우습다. 나 브리게는 스물여덟살이나 되었는데, 아무도 나에 대해 아는 사람도 없이 여기 내 작은 방 구석에 앉아 있다. 여기에 앉아 있는데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아닌 이 존재가 생각하기 시작한다. 회색빛 파리의 오후에 6층 방에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사람이 현실적이고 중요한 것을 한번도 보지 못하고 인식하지도 그리고 말해 보지도 못한 일이 가능할까라고.

인간이 보고 생각하고 글로 쓰기에 수천 년의 시간 여유를 갖고 있었으나 이 수천 년을 마치 학생이 버터를 바른 빵과 사과를 먹는 학교의 휴식 시간처럼 흘려보내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 (30쪽)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환경이라는 것은 방문지에서라면 자유로움을 줄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이 거주지나 생존지일때는 나의 존재에 대한 회의감을 주게 될 것이다. 내가 대단히 사랑하고 아끼는 시간이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매일 흘러가버리는 것이 두려웠을 것이다. 그는 '학생이 버터를 바른 빵과 사과를 먹는 학교의 휴식 시간처럼'이라고 비유했다. 나라면 어떻게 표현했을까. 매일 밥을 하고 설겆이를 하듯이 시간을 흘려보낸다고 했을까? 


아무런 변화가 없는 하루는 마치 시곗바늘 없는 시계판 같다. (74쪽)


변화 없는 시간들에 대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들이 주는 불안에 대한 릴케식 표현은 다음 구절에서도 두드러진다.

이불 가장자리에 비어져 나와 있는 작은 털실 하나가 강철로 된 비늘처럼 딱딱하고 뾰족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 잠옷의 작은 단추가 내 머리보다 더 크지나 않을까, 크고 무섭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 지금 침대에서 떨어진 빵 부스러기가 바닥에 닿자 유리처럼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 그렇게 되면 실제로 모든 것이 다 깨어져 영원히 돌이킬 나위 없이 되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걱정... (75쪽)

이렇게 구체적이다. 추상적이 아니라.


내가 파리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뻐하고 부러워해. 일리가 있지. 파리는 대도시로서 크고 또한 온갖 야릇한 유혹들로 가득 차 있으니까. 나는 어떤 의미에서 그런 유혹들에 빠져버렸다고 말할 수 있어. 그렇다고 밖에 달리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 내 세계관의 변화랄까, 어쨌든 내 생활에 변화를 가져오게 했어. 이로 인해 모든 사물을 보는 관점은 나의 내부에서 완전히 다르게 형성되었지. 어떤 차이가 있는가 하면 지금까지의 어떤 것보다 더 많이 인간으로부터 나를 격리시키게 되었다는 거지. 하나의 달라진 세계. 온통 새로운 의미를 지니는 하나의 새로운 삶. 모든 것이 너무나 달라져서,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이 너무나 새로워서 나를 다소 힘들게 하고 있어. (83쪽)

외딴 환경, 혼자 버티는 시간을 겪어내는 인간은 내면에서는 변화가 진행된다. 매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실로 내면에서는 천천히, 돌이킬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릴케만 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겠지만 릴케는 이렇게 구체적인 언어로 보통의 인간들이 하지 못하는 표현을 해냈을 뿐이다.

그가 아니면 누가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싶은, 절대적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구절이 거침없이 마음으로 들어온다.

행여 네가 앉아 있는 뒤쪽에 생긴 그림자가 너의 주인처럼 일어서지나 않을까 하고 뒤를 돌아다보지 마라. 어쩌면 어둠 속에 그냥 남아 있어서 너의 무한정한 마음이 모든 구별할 수 없는 것들의 무거운 마음이 되려고 시도하는 것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너의 내부에는 공간이 거의 없어지고 이런 좁은 데서는 네 안에 아주 커다란 것이 머무를 수 없게 된다는 게 너를 매우 안심시킨다. 어떤 엄청난 것도 네 속에 들어 있어야 한다는 것과 그런 환경에 맞추어 작아져야 한다는 것이 또한 너를 안심시킨다. 그러나 너의 밖은 끝이 없다. (84쪽)


목사님이 하는 아가미 호흡은 힘들게 이어져 입가에 거품이 북적거렸으며 그 모든 것이 불안하였다. 대화의 화제는 정확히 말하면, 전혀 없었다. 먹다 남은 찌꺼기 같은 화제가 비싼 값이 매겨져 팔렸고 그것은 하나의 재고품 정리장 같았다. (122쪽)

관심없는 화제가 억지로 오가는 상황에 대한 이런 구절을 읽을 때에는 그 상황이 머리 속에 그려지면서 나도 모르는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아가미 호흡, 먹다 남은 찌꺼기 같은 화제, 재고품 정리장.


성서의 <탕아의 이야기>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책 말미에 그가 <탕아의 이야기>를 인용하며 사랑에 대한 생각을 풀어놓은 부분은 이해하기 어렵기도 했다. 사랑을 받기를 거부하는 청년, 그는 사랑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받을 때가 아니라 줄 때 그 본질이 확인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는 자신에게 주어지는 모든 사랑을 받기를 불편해하고 회피한다. 그가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은 신 (神)이다. 

신과 삶과 죽음에 관해 생각하게 되는 것이 중요한 문제라면 그것은 일상과 다른 상황에 놓였을때 비로소 찾아온다. 많은 문학들이 그렇게 탄생하였다. 정답이 없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으로 서 우리는 일상을 살면서도 다른 이의 문학 작품을 파고 드는지도 모르겠다. 


파리에서의 고독과 절망이 릴케를 통과하면서 나온 결과물이라고 리뷰 제목에 썼지만, 이 작품의 의미는 더 깊고 복잡하다. 삶과 죽음,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인 탐색 작업물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모든 페이지와 행을 다 이해하려는 욕심을 버리고 읽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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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3-02-27 19: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저는 정말 이 책이 끝날 때까지 릴케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아무나 장미 가시에 찔려 죽는 게 아니구나, 이게 제가 느낀 이 작품의 진정한 독후감이었는데요.
여러가지로 제가 생각이 짧습니다. 흑흑흑....

hnine 2023-02-27 22:28   좋아요 1 | URL
위에도 썼지만 소설로 읽기를 포기하고 (자꾸 이야기의 흐름을 찾게 되기때문에) 남의 일기장을 읽는다 생각하고 읽으니 페이지가 좀 잘 넘어가더라고요. 남의 일기, 다 이해안되는게 당연하잖아요? ㅋㅋ
‘시인은 뭘 써도 달라...‘ 이전에 김소연 시인의 여행산문집 읽으면서도 같은 생각을 했었는데, 이 책도 역시 그랬어요. 아무나 시인이 될수는 없는 것 같아요. 장미 가시에 찔려죽는것도 그런것처럼 말이지요.
그동안 돌아다니는데 정신 팔려서 (ㅋㅋ) 책은 한동안 안중에도 없었어요. 이제 다시 책으로 눈길 좀 돌리려고 합니다.

서니데이 2023-03-13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hnine 2023-03-14 13:0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그 좋았던 시간에 - 김소연 여행산문집
김소연 지음 / 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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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김소연의 '여행기'가 아니라 '여행산문집'이라고 한 이유가 있었다. 

여행을 기록할 때 우리는 보통 시간순으로 혹은 지역별로, 다녀온 곳을 쭉 나열하여 보고 듣고 느낀 것, 여행지에 대한 정보 등을 기술하는 방식을 취한다. 김소연 시인의 이 책은 분명 여행 때문에 만들어진 책이긴 하지만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주 내용으로 하고 있지도 않고 그곳에 가면 무엇을 볼 수 있고 어떤 체험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지도 않다. 그런 여행책을 읽고 싶어 찾고 있던 참이었다. 

'역시 시인이 쓰면 뭘 써도 달라.'

하루 만에 단숨에 다 읽으며 아쉬워했다. 좀 더 페이지가 남아있었으면.

'찻물을 끓이는 데에 한나절을 보냈다' 같은 글의 소제목에 비하면 '그 좋았던 시간에' 라는 책 제목은 너무 평범하다. 


나에게 여행은 낯선 사람이 되는 시간이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구별 짓고,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로 기꺼이 나아간다. 낯설어져서 비로소 새로워지는 나를 자랑하고 싶을 때, 엽서를 사러 나간다. (35쪽, '낯선 사람이 되는 시간' 중에서)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와 한치도 다름없이 똑같을 때, 그래서 내일의 나도 역시 그대로 재현될 것이 뻔할 때 우리는 그것을 안정이라 부르는 대신 무료함, 지루함, 공허함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그럴땐 나를 낯선 환경에 놓아보는 적극적인 방식을 택할 필요가 있다. 안정을 깨어보는 댓가, 낯설어져 보는 용기를 택한 댓가로 우리는 비로소 새로워지는 나를 발견하고 그것을 누군가에게 알려서 확인까지 받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여행의 진짜 목적은 그런데 있다고 생각한다. 


일행이 있었기 때문에 불상사가 저절로 차단될 수 있었던 것은 불필요한 우연들이 곳곳에 포진된 혼자만의 여행보다 분명 나은 점이었다. (173쪽, '잠든 친구의 얼굴' 중에서)

같은 곳을 가더라도 혼자 하는 여행과 동행이 있는 여행은 각각 다른 여행으로 카운트해야 한다고, 그만큼 다른 경험이고 다른 느낌을 준다고 나는 말해오곤 했다. 그리고 솔직히 혼자 하는 여행을 조금 더 선호하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히 동행이 있는 여행이 주는 미덕도 있음을 얼마전 그룹 여행을 다녀오면서 체험했는데 그것을 시인은 위와 같이 표현했다. 친구와 여행을 하면서 어딘가 편하지 않은 느낌을 받아오던 어느 날 문득 잠들어있는 친구의 얼굴을 보며 든 느낌을 적은 글이다. 


즐거웠지만, 나는 이상했다. 마음이 없는 사람처럼 건조해져갔다. 거울을 보면 슬픔도 근심도 말끔히 사라져, 태평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바라던 것이었으나, 바라던 게 아닌 것만 같았다. 안온하되 허전한 상태. 그 허전이 난감한 상태. 나는 소파에 심드렁하게 누워 바다를 바라보다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토록 바라던 한가함을 얻었고 이토록 태평한데, 왜 헛헛해하는지에 골똘하다가 그만 불안해져버렸다. 한 톨의 슬픔조차 남지 않아 공허했고 그게 불편했다. (216쪽, '바캉스적 인간' 중에서)

한 톨의 슬픔마저 없을 때 우리는 더 행복한 것이 아니라 허전하고 공허하다는 것.


시인은 여행 그 자체의 의미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어디를 가서 무엇을 보느냐에서 나아가 위에 인용했듯이 낯설게 하여 새로와지기, 살아있음을 확인하기에 여행의 궁극적 목적을 두는 사람으로 보여진다. 다음 인용한 시에서도 시인의 그런 마음이 전달되는 것 같다.


목적지보다는

목적지에 가다가 만난

시골 마을이 더 좋았다.


시골 마을 보다는 

시골 마을의 사람 없는 골목이 더 좋았다.


(...)


목적보다는

목적한 적 없는 것들이 언제나 좋았다. (120쪽, '시골 마을' 중에서)


분명 자연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배경이 더 이상 배경이 아닌 듯 보이는, 시인이 직접 찍어올린 사진들은, 글에 더하여 덤으로 좋았다고 하면 미안할 정도로 매우 좋았다.


이런 여행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이런 여행기를 쓸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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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이 숲이 된다면 - 미세먼지 걱정 없는 에코 플랜테리어 북
정재경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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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에는 계기가 있기 마련. 

저자가 온실처럼 집 안에 식물을 가득하게 만들기 시작한 것은 호흡기가 유독 예민하던 아들때문이었다.

잔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자란 아들이 새빨간 코피를 흘리는 날은 뿌연 공기 속에서 운동했던 날이었어요. 그런 날 열심히 일하고 집에 돌아온 저 역시 초저녁부터 쓰러지듯 잠이 들었습니다.(6쪽)

미세먼지 문제는 단기전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숨을 맘껏 쉬기 위한 산소 탱크를 갖고 싶다는 심정으로 식물이 가득한 숲 같은 집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크고 작은 식물 몇가지로 시작, 1년이 좀 지나고 나자 식물 화분이 200여개가 되었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온실처럼 집안에 식물이 가득해지니, 외부의 초미세먼지 농도가 50 microgram/m3 일때도 실내공기는 5 microgram/m3 정도에 불과하여 신선한 공기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고 수치로 증명해보인다. 안그래도 플랜트테라피니 뭐니 하면서 식물 키우기가 새로운 의미에서 관심을 끌고 있는 요즘 고질적인 미세먼지 문제, 호흡기 교란 문제에 도움이 된다는 말은 솔깃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에는 저자가 몇개의 화분으로 시작해서 온 집을 숲 처럼 꾸미는 동안 경험한 것들,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도움말 등을 담고 있다. 

식물을 키우기 위해서는 그만한 공간이 필요할테고 집도 커야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독자를 위해서 저자는 말한다.

식물을 키우고 싶은데 화분 놓을 데가 없어 키우지 못한다고요? 집이 작으면 작은 식물로 가득 채우면 됩니다. 오히려 사이즈가 작은 방일수록 식물의 긍정적 효과를 빨리 느낄 수 있어요. (9쪽)

어떤 식물로 시작하면 좋은지, 우리 집에 어울리는 식물은 어떤 것일지, 공간에 화분은 어떻게 배치하는 것이 좋은지, 초보들이 범하기 쉬운 실수들, 분갈이, 영양보충, 물주기 방법 같은 기본적인 사항과 함께 조목조목 얘기하듯이 어렵지 않게 써놓았다.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의 식물들이 자주 언급되어있어, 어려운 이름의 식물들을 활자로 읽으며 생소해하지 않아도 되는 것도 좋다. 사진도 풍부하다.

다만, 내용이 연계성있게 배열되기 보다는 토막토막 끊어진 느낌이 있고 그러다보니 중첩, 반복되는 부분들이 꽤 있어 좀더 세심한 편집이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식물이 주는 긍정적인 효과 3종 세트, 공기 정화, 마음 치유, 심미적 만족감을 널리 공유하고 싶었다는 저자의 마음은 충분히 전달되었다고 본다. 아마 반려동물을 키우는 마음도 비슷하지 않을까. 나 역시 살아있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살아있는 생명체를 돌보는 일은 그들의 돌봄을 역으로 나 자신도 받게 된다는 것.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모두 느끼는 점일 것이다.


"뭐라도 키워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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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역사 - '공무도하가'에서 '사랑의 발명'까지
신형철 지음 / 난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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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나오면 무조건 사서 보는 작가가 몇 된다. 시인중엔 최영미가 그렇고 비평가 중에 신형철이 그렇다. 

신형철 시화집 <인생의 역사>. 

시화집이란 보통 시와 그림이 곁들여있는 책을 말하는데 이 책 에서 시화란 시 , 말할 (그림 화가 아니라)이다.

그가 선별한 시에 그의 해석을 곁들인 책이다.


시는 삶의 방식입니다. 그것은 빈 바구니예요.

당신의 인생을 거기 집어넣고 그로부터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죠.


이건 신형철이 인용한 메리 올리버의 말이다. 문학 작품으로서의 시에서 확장하여, 삶의 방식으로서의 시. 삶의 방식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의미가 마음으로 읽혀지는 시를 만나게 되면 특별한 감정으로 특별히 반갑다. 삶의 방식이 통하는 사람을 만난 듯, 나도 그 정체를 잘 모르던 내 삶의 방식을 누군가 써 놓은 시에서 찾아내는 기분이다. 늘 그런 기대를 가지고 시를 읽는다.

이 책을 배송 받고 겨우 프롤로그 읽었을 뿐인데 프롤로그에서부터 그런 시를 만났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

책을 다 읽을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며칠 전 페이퍼에 적어 놓기도 했다. 

(--> https://blog.aladin.co.kr/hnine/14082384) 


그가 시로 소개한 것 중에는 <욥기>도 들어가 있다. 구약성경의 그 욥기 말이다. 

욥이 신을 향하여 고통에 차서 울부짖는다.


힘이 세신 주님께서, 힘이 없는 나를 핍박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나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어찌하여

망할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이 몸을 치십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보잘것 없는 이 몸을

어찌하여 그렇게 세게 치십니까?


<욥의 마지막 말> 중 일부






(유영교 작가의 조각 "욥" (대리석), 지난 주말 대전시립미술관 열린수장고 전시에서)



신형철 자신은 신학자가 아니라고 했고 나 역시 신학을 모르지만, 욥의 저 마지막 한탄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 할 수 있는 말이기에 눈물로 공감한다. 

"욥기는 시다." 라고 저자 신형철은 말한다.

인간은 자신의 불행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견디느니 차라리 어떻게든 의미를 찾으려 헤매는 길을 택하기도 한다.

숨막히는 허무를 감당하기보다는, 차라리 이 모든 일에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거대한 섭리가 존재한다고 믿는 편이 살아 있는 자를 겨우 숨쉬게 할 수 있다면? (43쪽)

신은 그때 비로소 탄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력히 입증하는 증거 앞에서 오히려 신이 발명되고야 마는 역설이라고 (44쪽). 

그렇다. 신에 대한 나의 어리숙한 생각을 그가 이렇게 말로 표현해주니 나의 그 어리숙함이 더 이상 어리숙함이 아닌 것만 같아 안심하는 일이 겨우 나의 몫이다.

아무리 시에서 그런 공감을 기대하고 이해하고자 덤벼든다지만 그게 잘 안되는 경우가 있다. 바로 외국시이다. 외국시를 우리말로 번역해놓은 경우, 물론 내가 읽은 메리 올리버나 에밀리 디킨슨의 시 처럼 번역된 시라는 느낌 없이 읽을 수 있었던 시들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그냥 활자로만 읽고 말 경우가 많다. 신형철은 <두이노의 비가>에 대해 말하면서 번역시들의 많은 경우 '성실한 실패작'이 될 때가 많다고 했다. 번역되자마자 시로서 작동하기를 멈춘다고. 그래도 포기하기보다는 평생을 두고 읽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는 시로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를 들었다. 

이성복을 닮고 싶어한다는 고백을 하면서 시인 이성복이 카프카에게 품었었다는 물음, 

카프카의 문학은 비관적인데 어째서 우리는 위로를 받는가 (210쪽)

를 인용하면서 문학이 있어야 하는 이유를 말한다. 인생이라는 불에 대해 문학은 맞불임을, 인생이라는 화마를 잡기 위한 맞불이라고 이성복이 그의 시<극지의 시>에서 한 말로서 말이다.

그가 이성복 시인을 스승으로 우러르고 있다면 최승자 시인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애정을 나타내며 책 속에 여러 번 시인의 시를 불러들여 말하고 또 말하고 있었다. 90년대 들어 최승자의 그 끔찍하도록 아슬아슬한 생을 저주한 시들에 믿기기 어려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간파했는데, 나는 그게 최승자 시인이 피흘리며 살아낸 최소한의 보상이고 최대한의 변화로 보여 반가왔는데 저자 신형철은 다소 아쉬워하는 듯 했다. 

메리 올리버의 시에 붙여 그는 슬며시 그의 문학의 원칙 같은 것을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내가 기억하기론 그의 다른 책에서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는 가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어떤 시와 만난다.

나에게 절실히 필요한 문장이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모른다.

어느 날 어떤 문장을 읽고 내가 기다려온 문장이 바로 이것임을 깨닫는다 (112쪽)

이런 문장을 찾기 위해 때로 밤을 지새운다고 했었다. 그리고 이 책에 그런 문장이 하나라도 있다면 저는 얼마나 좋을까요 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런 이유로 그의 책을 찾아 읽는다는 것을 설마 모른단 말인가?


이 책에 실린 시인들의 시, 그에게 각별한 시들을 그는 평생 읽고 또 읽을 것이다.

그 시인들이 부럽기도 하고, 그런 시인들을 품고 있는 저자가 부럽기도 하고,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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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1-22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론은 잘 안보게 되던데 hnine님은 최애작가 중 한분이군요. 좋아하는 작가의 책에 대한 리뷰는 더 정성스럽게 쓰게 되서인지 이 책에 관심없던 저도 방금 보관함에 넣었어요. 읽어보고 싶어지는 리뷰입니다. ^^

hnine 2022-11-23 00:16   좋아요 0 | URL
평론 저도 어려워서 잘 안읽어요. 저는 평론을 읽는다기보다 신형철을 읽는다고 봐야겠죠 ^^ 저 같은 사람 꽤 있을거예요.
떄론 시인 이상으로 시적이고, 영화와 소설 감상글도 많이 발표했답니다.
바람돌이님은 어떻게 읽으실지 궁금합니다.

Falstaff 2022-11-22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최영미의 책은 무조건 사서 보신다고요? 음. 그렇군요.
저도 최승자의 90년대 시는 신형절과 비슷한 생각이라서, 내 무덤 푸르고 이후에 그의 시는 읽지 않고 있습니다.

hnine 2022-11-23 00:53   좋아요 0 | URL
최영미의 시집뿐 아니라 에세이, 미술서등 저는 어느 권 하나 좋지 않은 것이 없더라고요.
제가 읽은 최승자 시인의 시집은 90년대보다 이전에 발표한 것인데 이 책에 소개된 이후의 시들을 읽으니 다른 분위기가 확실히 느껴지더라고요.

서니데이 2022-12-08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hnine 2022-12-08 23:17   좋아요 1 | URL
제가 요즘 알라딘에 자주 글을 못 올리고 있는데도 이렇게 당선작으로 뽑아주셨네요,
서니데이님은 이렇게 축하까지 해주시고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