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 (벚꽃 에디션) - 인생이라는 장거리 레이스를 완주하기 위한 매일매일의 기록
심혜경 지음 / 더퀘스트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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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세. 요즘엔 할머니라고 하기엔 좀 이른 나이. 대학 졸업후 27년 동안 도서관 사서로 근무하였고 이후엔 지금까지 12년째 번역가의 직함을 달고 있다.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고,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따로 사서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여 사서가 된 것도 도서관에서 일하면 책 읽는 시간이 많을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번역가가 된 것도 읽고 싶은 책이 아직 우리말로 번역되어 나오지 않은 것들이 있어서였다고 하니 저자의 행로는 모두 책읽기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하고 싶은 것이 있을때 우리는 시작을 위한 작업에 들어가기 보다는 일단 못한다는 전제하에 아쉬워하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 "~ 하면 참 좋겠다, ~에 가면 참 좋겠다, ~할 줄 알면 참 좋겠다" 등등. 하라고 등떠미는 사람도 없지만 하지 말라고 말리는 사람도 없는데 말이다. 물론 정말 형편과 상황이 안되어 못하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도하는 용기와 결단보다 입으로 한탄하며 흘려보내는데 에너지를 다 써버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나부터 말이다.

저자는 필요하다 싶으면 그 기회가 떨어지길 기다리기 보다 '시작하는' 사람이었고, 시간 없다는 구실을 대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다보니 방송대학 졸업장을 몇개째 손에 쥐게 되었고, 생각에도 없던 번역가의 직함을 달게 되었다. 이렇게 성공적으로 마친 경우도 있지만 중도에 그만둔 종목이 더 많을거라고 고백한다.

노년은 정해놓은 나이부터 갑자기 시작이 되는 것이 아니다. 개인에 따라 다를 뿐 아니라 나도 모르게 슬며시 노인의 대열로 점차 가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 사실이 즐거울리 있겠는가. 하지만 팩트는 팩트. 이 때 필요한 것은 '받아들임'과 '융통성' 아닐까 생각한다. 나이듦을 받아들이고, 거기서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융통성 있게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계획하고 추진해 가는 것.

이제 공부는 어떤 자격증이나 직업을 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어도 좋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이 생기면 배워보는 것이다. 이것을 공부라고 부른다면 공부라고 해도 좋다. 

사람은 나이와 관계없이, 직업으로서의 일을 하지 않더라도 사회와 연결되기 위해 뭔가 할일이 필요하다. 나는 해야할 일, 하고 싶은 일에 따르는 모든 행위를 '공부'로 치환하기로 했다. 현재의 삶에 갇혀 더는 생각이 자라지 않을 때는 새로운 생각이 필요하다. 그 새로운 생각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내겐 뭔가를 배우는 일이다. (10)

집에서만 있기 답답할때 저자는 주저 없이 가방을 챙겨 카페로 향했고 그렇게 '카공 (카페에서 공부하는)족' 이 되었다. 

외국어를 공부하기 위해 방송대학에 등록을 했던 것이고, 뜨개질을 하기 위해 성북동 공방에 다닌다. 혼자 읽기 어려운 책을 끝까지 읽기 위해 윤독 (돌아가며 읽기) 모임을 만들어 참여하고 있다.

이렇게 자잘함 배움, 별로 중요한 것 없어 보이는 공부도 계속 쌓이다 보면 신기하게 한 줄로 꿸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한 줄에 안 꿰이면 '삽질'의 전리품으로 남겨두자. '공부'라는 요소가 인생에 추가되면 즐길 수 있는 일들의 선택지가 늘어난다. (13)

나의 경우 스페인어공부를 하고 있다고 하면 그거 뭐하러 하냐고 묻는 대신 응원을 해주는 사람이 더 많다. 나의 전공이나 과거 직업과 전혀 무관한 것들을 배우러 장거리를 마다하며 신나서 다니는 것을 보고 유난 떤다거나 특이한 사람 보듯이 하기 보다는 격려해주고 긍정적으로 말해주는 사람들이 더 많다. 소심한 나는 그것에도 용기 백배이다. 혹시 이런 용기가 필요한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는 것도 도움이 많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다만 정말 어떤 구체적인 목적을 가지고 도전해나가는 중에 있거나 직업의 책임감, 성취해야 하는 도전을 앞두고 있는 사람보다는, 나처럼 이제 그런 의무에서 벗어나 스스로, 알아서 하루 24시간 자기 시간을 채워나가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더 도움이 많이 되지 않을까 한다. 어떤 공부도, 어떤 시험도, 누구도 말리지 않지만 누구도 시키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좋을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내 손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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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4-19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카페나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것도 좋았어요.
소음이 있어도 괜찮더라구요.
hnine님 스페인어 공부하시나요.
전공과 상관없이 외국어 공부는 좋은 것 같아요.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은 좋다고 해요.
시험이나 강제성이 있는 것이 아니면 이전보다 마음이 급하지 않고 좋은 점이 있어요.
잘 읽었습니다. hnine님, 좋은 하루 되세요.^^


hnine 2022-04-19 21:43   좋아요 1 | URL
백색소음이라고 하지요. 적당한 정도의 소음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환경이 공부를 지속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인데, 저도 카페 종종 이용한답니다.
스페인어는 얼떨결에 시작하게 되었는데 영어와는 또다른 재미가 있어서 의외로 아직 때려치지 않고 (^^) 계속 하고 있네요.

페크pek0501 2022-04-30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자도 카공족이군요. 딸이랑 카페에서 아이스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카공족들이 보이더군요.
딸에게, 저렇게 공부하는 사람들이 부럽네. 좋아 보여, 라고 말했어요. 며칠 전에요.
저도 코로나가 계속 안정세를 보이면 카페에 갈 생각을 하고 있어요. 특히 여름엔 에어컨이 빵빵한 곳이 좋죠.
코로나 이전에 책 들고, 또는 노트북 들고 몇 번 가 봤어요.

이건 들은 얘기 - 김중혁 작가가 카페에 글 쓰기 위해 갔는데 타자기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래요. 알고 보니 은희경 작가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른 카페로 옮겼대요. 한 카페에는 한 작가만 있어야 한다고 하면서... 티브이 나와 한 얘기를 친구가 들려 줘서 웃었어요.ㅋ
 
[eBook]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황보름 지음 / 클레이하우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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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이런 꿈을 가지지 않을까.

큰 서점 말고 동네 작은 서점을 하나 내고 나도 책을 읽고 팔기도 하면서 살고 싶다는 꿈.

저자 역시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여 에세이스트로 데뷔하였고 이후 소설까지 써서 내게 되었는게 그것이 바로 이 책이다. (에세이 쓰는 것보다 소설 쓰기가 훨씬 쉬웠다고).

소설이라고 했지만 대단한 스토리를 가지고 전개되는 것은 아니고 작가 또래의 30대 여자가 혼자 동네에 서점겸 카페를 차렸고, 바리스타 점원인 민준, 그리고 서점에 들르는 손님들 얘기, 가끔 서점에서 열리는 작은 행사에 초대되어 오는 연사 등의 얘기가 복잡하지 않는 기법의 수가 놓아진 면보처럼 담백하고 가볍게 펼쳐나간다.



(39) 좋은 책의 기준은? 삶을 이해한 작가가 쓴 책. 삶을 이해한 작가가 엄마와 딸에 관해 쓴 책. 엄마와 아들에 관해 쓴 책. 자기 자신에 관해 쓴 책. 세상에 관해 쓴 책. 인간에 관해 쓴 책. 작가의 깊은 이해가 독자의 마음을 건드린다면, 그 건드림이 독자가 삶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면, 그게 좋은 책 아닐까.


좋은 책이란 독자가 삶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책이라는데 동의한다.


(53) 책을 읽으면 세상을 보는 눈이 밝아진다고 하잖아요. 밝아진 눈으로 세상을 더 잘 이해하게 되고요. 세상을 이해하게 되면 강해져요. 바로 이 강해지는 면과 성공을 연결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강해질 뿐만 아니라 고통스러워지기도 하거든요. 책 속에는 내 좁은 경험으론 결코 보지 못하던 세상의 고통이 가득해요. 예전엔 못 보던 고통이 이제는 보이는 거죠. 누군가의 고통이 너무 크게 느껴지는데 내 성공, 내 행복만을 추구하기가 쉽지 않아지는 거예요. 그래서 책을 읽으면 오히려 흔히 말하는 성공에서는 멀어지게 된다고 생각해요. 책이 우리를 다른 사람들 앞이나 위에 서게 해주지 않는 거죠. 대신, 곁에 서게 도와주는 것 같아요.


무엇이 성공인가. 그 기준에 따라 책과 성공은 연결될 수도, 연결되지 않은 수도 있지 않을까. 물질적 성공을 말하자면 굳이 연결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맞는 것 같다.


(96) 누가 저 아이를 새장에 집어넣었을까. 아이는 알까. 새장 문을 안에서도 열 수 있다는 걸. 영주는 지금 영주가 하려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섬세함을 필요로 하는 일이라고 느꼈다. 아이가 직접 새장 문을 열도록 도와주는 것. 아이를 움직이게 하는 것.


아무것에도 의욕과 흥미를 보이지 않는 고등학생에 대해 서점 주인인 영주가 하는 생각이다. 그런데 꼭 사춘기 방황하는 소년의 얘기로만 볼것인가. 우리는 여전히 어른이 되어서도 새장의 존재를 모를 수도 있고 (이게 제일 행복할지도), 그 새장 자체가 우리가 만든 것일 수도 있다.


(133) 꿈이 다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어요. 꿈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꿈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것도 아니지만, 꿈을 이뤘다고 마냥 행복해지기엔 삶이 좀 복잡하다는 느낌? 뭐 그런 느낌이에요.


단순한데 진리가 있고 정답이 있다고들 하지만 삶은, 생명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만 안다. 


(282) 좋아하는 일을 하면 행복해진다... 그럴 수는 있겠지. 그런 사람도 분명 있을거야.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잘하는 일을 하면 행복할텐데.


(283) 삶은 일 하나만을 두고 평가하기엔 복잡하고 총체적인 무엇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불행할 수 있고,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도 그 일이 아닌 다른 무엇 때문에 불행하지 않을 수 있다. 삶은 미묘하며 복합적이다. 삶의 중심에서 일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렇다고 삶의 행불행을 책임지진 않는다.


(284) 대충 아무일이나 해봤는데 의외로 그 일에서 재미를 느낄 수도 있어. 우연히 해본 일인데 문득 그 일이 평생 하고 싶어질지 누가 알아. 해보기 전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데. 그러니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미리부터 고민하기보다 이렇게 먼저 생각해봐. 그게 무슨 일이든 시작했으면 우선 정성을 다해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작은 경험들을 계속 정성스럽게 쌓아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288) 민준은 커피를 내리면서 목표를 세우지 않았다. 말 그대로, 정말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거다. 할 수 있는 만큼 해도 실력이 늘었다. 커피 맛이 좋아졌다. 그러면 된 것 아닌가. 이런 속도로, 이런 마음으로 성장해도 충분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세계 최고 바리스타가 돼서 뭘 하겠는가. 삶을 갈아 넣은 후에 최고라는 찬사를 받아서 뭘 하겠는가.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서 민준은 지금 자기가 신 포도의 여우가 된 건가 싶었지만, 아니라고 결론을 냈다. 목표점을 낮추면 도니다. 아니, 아예 목표점을 없애면된다. 그 대신 오늘 내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거다. 최선의 커피 맛. 민준은 최선만을 생각하기로 했다.

민준은 더 이상 먼 미래를 상상하지 않는다. 민준에게 현재에서 미래까지의 거리란 드리퍼에 몇 번 물을 붓는 정도의 시간일 뿐이다. 민준이 통제할 수 있는 미래는 이 정도 뿐이다. 물을 붓고 커피를 내리면서 이 커피가 어떤 맛이 될지 헤아리는 정도. 이어서 또 비슷한 길이의 미래가 펼쳐지길 반복한다.


미래에 대해 어떤 미사여구나 어떤 철학적 정의보다 때로는 이렇게 구체적인 비유로 설명하는 것이 좋다. 이해하기 쉬워서일수도 있고, 허공에 대고 얘기하는 것 같지 않아서,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얘기하는 걸 듣는 것 같아서이다. 지식이 아니라 경험으로, 남의 생각이 아니라 내 생각의 결과를 얘기하는 것 같아서이다.



소설로서의 재미를 기대하고 읽는다면 밍밍하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적지 않은 곳에 밑줄을 치며 읽게 될 줄은 나도 몰랐다. 친구가 이 책을 소개해주면서 읽으며 내 생각이 났다고 했는데 왜 그랬는지 알 것 같다. 내게는 과분하지만.


(참고로, 저자는 이 책을 낸 후 계속 작가의 길을 가는 대신 다시 회사로 복귀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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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14 19: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22-04-15 05:34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제가 생각해도 정작 서점을 운영하는 사람 자신은 책 읽는 시간이 생각만큼 충분하지 않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애저녁에 그 꿈은 접었답니다.
소설 속의 주인공 여자는 계속 서점을 알차게 꾸려나가요. 그런데 글을 쓴 작가 자신은 서점도, 글쓰는 일도 아닌, 자기 전공 찾아 복귀하더라고요. 인터뷰한 사회자는 그런 배신이 어딨냐고 농담처럼 던지기도 했어요.
 
어떻게 나이 들 것인가? - 품격 있는 삶을 살고 싶은 현대인을 위한 고대의 지혜 아날로그 아르고스 3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지음, 필립 프리먼 엮음, 안규남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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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초월해서 나이를 잘 들며 늙어가는데는 지식이 아닌 지혜가 필요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려 기원전, 로마의 카이사르와 동시대를 살았던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는 로마의 유명한 웅변가이자 정치가였다. 카이사르의 독재에 반대하다가 로마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로 물러나 많은 글을 쓰며 살았는데 기원전 44년에 이 <노년에 관하여>라는 책을 쓰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노년에 관한 큰 그림을 그리고자 한 이 작은 책에서 그는 노년의 한계를 인정하며서도 여전히 성장과 완성을 위한 기회의 시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려 하였다.

이것이 2016년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출판부에서 영어로 <How to grow old: Ancient wisdom for the second half life>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고 ("second half life"라는 문구에 눈길이 잠시 멈춤. second half 라) 2021년 이것을 우리말로 번역해서 나온 것이 이책 <어떻게 나이 들 것인가> 이다.


다음은 키케로가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노년의 지혜 열가지이다. 개인적인 나의 의견은 괄호 표시하여 덧붙여 놓았다.

1. 훌륭한 노년은 젊을 때 시작된다

2. 노년은 인생에서 매우 즐거운 시간일 수 있다.

내면을 잘 갈고 닦으면 노년은 아주 즐거울 수 있다. 그들이 불행한 이유는 늙어서가 아니라 내면이 빈곤해서이다.

(내면이 빈곤한 것은 돈으로 충전되는 것도 아니고 방법도 뚜렷하지 않다. 그것은 시간과 경험과 의지에 의해 충전될 수 있는 것 같고, 그래서 더 가치있어 보인다.)

3. 인생에는 다 때가 있다.

젊어서 즐길 수 있는 것들이 있고 나이 들어서 즐길 수 있는 것들이 있다.

4. 노인과 젊은이는 지혜와 시간을 나눌 수 있다.

경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참된 지혜가 있다. 젊은이들에게 이 지혜를 전해주는 것은 노인의 즐거움이자 의무다.

(동의하지만, 경험의 방식이 요즘 많이 다양해졌음도 알고 있어야 할 것 같다. 노인의 지혜를 전해주는 것이 노인의 즐거움이 될수는 있어도 의무라고 까지 생각하다가 봉변을 당할 수도 있다.)

5. 한계는 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6. 정신은 단련이 필요한 근육이다.

(이건 노년이 아니라도 적용될 수 있는 말.)

7. 노인들은 자기 힘으로 서야 한다

자기 영역을 지배할 경우에만 존중받는다. 노년은 수동적인 시기가 아니다.

8. 사람들은 성을 과대평가한다

관능적 욕구가 줄어드는 대신에 그만큼 인생에서 훨씬 더 만족스럽고 지속적인 것들을 즐길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9. 자신만의 정원을 가꿔보라.

행복하려면 반드시 진정한 즐거움을 안겨주는 가치 있는 활동을 찾아내야 한다.

10.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다.

훌륭한 배우는 무대를 떠날 때를 안다. 지금까지 잘 살아왔고 종막이 다가오고 있는데 죽지 않으려고 기를 쓰는 것은 헛되고 어리석은 일이다.


사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나이들어간다. 노년이 정확하게 몇살부터를 말하는지 그 정의는 분야에 따라, 사회에 따라,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한 개인 차원에서도 스스로 중년층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어떤 날은 노인이 된 기분이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아직도 청춘인 것 같은 느낌일 때가 있다. 그러니 이 책의 주제가 어떤 시기에 있는 특정 계층에 적용된다고 보진 않는 것이 좋겠다. 단, 삶의 주기에 따른 특성이 있을 뿐이고, 기원전 그 옛날부터 사람들은 잘 늙어가는 문제에 대해 고심했다고 하는 것이 새로울 뿐이다. 

인생의 단계마다 그에 따른 특성들이 있네. 아이 때는 약함이, 청년일 때는 대담함이, 중년에는 진지함이, 노년에는 원숙함이 있네. 이것들은 제철에 수확해야 하는 과일 같은 것이네 (79쪽)


늙어서 얻는 선물 같은 것도 있다.

대화의 즐거움은 늘려주고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한 욕구는 줄여준 노년에 매우 감사하네. (104쪽)


인생을 연극에 비유하는 대목이 여러번 나온다. 그리고 강조하는 것은 인생이라는 연극의 종막에서 무너져버리는 서투른 배우가 아니라 자신이 맡은 역할을 끝까지 잘해내는 배우 (136쪽) 가 되도록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맡은 역할을 '잘' 해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최소한 연극을 망쳐버리거나 연극 무대를 뛰쳐나오지 않고 끝까지 잘 진행될 수 있도록 그런 마음으로 오늘을 살고자 한다. 그래서 내 서재 제목도 "내 인생은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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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주름들 - 감각을 일깨우는 시인의 예술 읽기
나희덕 지음 / 마음산책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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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처음 보는 순간 '예술의 주름들'이라는 제목이 얼른 와닿지 않았다. 요즘 같이 제목이 중요한 시대에, 책에 난해한 제목을 붙였다는 것이 읽기를 망설이게 했지만 저자는 알다시피 이미 어느 대열에 이른 시인 중 한 사람 아닌가. 이런 시인이 다른 분야의 예술을 어떻게 볼까, 보통 사람들과 어떤 다른 눈을 가지고 해석을 할까 궁금해져서 읽어보아야 겠다로 생각이 바뀌었다.

겉으로 단번에 드러나는 평면과 달리 주름은 만들어지는데도 시간이 걸리고, 주목하는 자에게만 중요하다. 주름이 만들어지기까지 사연과 경험이 들어가있을 것 같다.

예술이란 얼마나 많은 주름을 거느리고 있는가.

우리 몸과 영혼에도 얼마나 많은 주름과 상처가 있는가

"세계와 영혼의 주름을 구성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비틀림이다."

질 들뢰즈의 이 말처럼

세계와 영혼의 주름들을 해독하려 애를 쓰며 몇 개의 겹눈이 생겨난 것 같기도 하다.

(8쪽, 책머리에)


5부로 나누어 1부에는 자연, 2부에는 여성주의적 정체성 찾기, 3부에는 예술가적 자의식, 4부에는 장르를 넘나드는 실험, 5부에는 시와 다른 예쑬의 만남을 주제로 하고 있다. 예술 장르로는 영화, 설치 미술, 설치 음악, 행위 예술, 사진, 회화, 조각 등, 저자가 정말 다양한 분야의 예술에 관심이 많구나 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많이 알려져 있는 작품들보다는 처음 보는 실험적, 선진적 작품들이 주로 소개되어있으니, 단순한 예술작품 소개서 처럼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지 않을 수도 있다.

전기에너지가 위치에너지, 운동에너지로 변환을 할수 있듯이 소리가 시로, 영상으로 변환되어 재탄성하여 전혀 새로운 예술 작품을 탄생시키시도 한다. 있는 소리들을 배열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새로 발견하거나 만들어낸 소리로 기존의 예술 장르를 표현하기도 한다. (류이치 사카모토) 에릭 사티는 '가구 음악'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피아노 건반 위에 내리는 햇빛까지도 어떤 소리를 내는 것 같다고 접수가 되려면 예술가는 거의 신과 접신이라도 해야하는 경지가 필요한 것은 아닐지. 

로드킬로 죽어가는 동물들을 표현하기 위해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데서 나아가 그 야생동물들의 눈에 비친 인간들을 보여주려고 시도한 황윤. 그는 야생동물의 입을 빌려 영화를 만들었다.

한 사람의 모습만 캔버스에 담고 있는 정영창, 여기 실린 예술가들중 그나마 익숙한 이름 마리 로랑생은 시인 아뽈리네르의 연인이었고 그녀 역시 시를 쓰기도 하여 시집을 발간하기도 했다는 것은 예전에 마리 로랑생 전시회에서 도슨트로부터 들었던 것 같다. 

순간이 멈춘 것 같은 사진 한장은 또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그 속에 얼마나 깊은 주름을 지니고 있는가. 사진의 '전시적 가치'만 알고 있다가 사진이 가지고 있는 '제의적 가치'에 대해서는 이 책에서 저자의 설명에 의해 처음 생각해보게 되었다. 아쉽게도 현대 사회로 오면서 사진의 제의적 가치는 점차 전시적 가치에 의해 밀려나고 있다는 말도 요즘 처럼 보여줌으로써 존재를 증명하려 하는 사회를 생각하자 쉽게 이해가 되었다. 이 제의 가치가 최후의 보루로 물러서서 마지막 저항을 시도하고 있는데 이 마지막 보루가 바로 인간의 얼굴이라면서 한설희 작가의 사진집 <엄마, 사라지지 마>,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를 소개하였다.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의 고독은 그의 음악에 얼마나 깊은 주름을 만들어 들려주고 있는가.

이따금 우울하거나 외롭다고 느낄 때 내가 혼자 찾아가던 뮤직바가 있었다. 밤 9시에 문을 여는 그곳에는 거의 벽면 전체를 채울 정도의 커다란 스크린이 있고, 좋아하는 영화의 OST나 콘서트 영상을 신청해서 감상할 수 있었다. 나는 매번 무슨 의례를 치르듯 글렌 굴드의 연주 영상을 주인에게 부탁했다. 어두운 바에 혼자 앉아 글렌 굴드의 <골트베르크 변주곡>을 들으면 내 고독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160쪽)

글렌 굴드의 웅얼거림의 배경엔 그만의 고독, 자기만의 세계에서 나오고 싶지 않은 깊은 고독이 있었다. 그것을 읽어낸 저자, 우울하거나 외롭다고 느낄때 그녀가 교감하는 글렌 굴드의 피아노로 그녀가 고독을 위로받는 방식이 왜 이렇게 멋있어 보이는지. 

고작해야 <샘>이라는 변기 설치 작품밖에 모르던 마르셀 뒤샹은 정말 기인이었다. 체스 선수로 20년동안 활동하기도 하였고 오늘날 아바타 처럼 '에로즈 셀라비'라는 여성 자아를 만들어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과학기술에 대한 호기심도 지대하여 새로운 기계를 발명하고 조립하는데 열을 올리기도 한 그를 두고 시인 앙드레 브트통은 '위대한 교란자'라고 불렀다고 한다. 교란을 통해 새로 탄생하는 세계. 현대 미술의 한 특징이라고 해도 될까. 음악을 가장 비물질적 예술이라고 하면서 음악의 음색처럼 색채도 말로 표현된 것보다 더 미묘한 영혼의 진동을 깨우쳐줄수 있었다고 믿고 회화의 화성학적 미래를 구축한 칸딘스키의 추상에서도 보여지듯이 말이다.

영화 <패터슨>은 여기까지 읽어오면서 자칫 예술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느끼기 쉬운 마음을 다시 일상으로 돌려놓아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은 계속된다. 일상이라는 시간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태반이라고 할 수 있다. (233쪽)

폴 클레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장민숙 화가의, 네모난 집과 창문이 캔버스를 빈 공간 없이 꽉 채우고 있는 <산책>이라는 이름의 그림. 거기서 느껴지는 따뜻함과 친숙함을 발견했을 때도 그렇다. 시인은 이 작품들중 하나를 사다가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두었다고 했다. 

숨겨진 주름을 찾는 행위. 그것이 우리가 시를 읽는 방법이고 그림을 감상하는 방법이었다라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그 주름이 모든 사람에게 같은 방식으로 주목되고 발견되진 않는다. 나에게 그와 같은 위상을 가진 비슷한 주름이 이미 내재되어 있을 경우라고 말할 수 있을지,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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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만드는 법 - 더 많은 독자를 상상하는 편집자의 모험 땅콩문고
이연실 지음 / 유유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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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 가는대로 쓰는 글, 무형식의 형식이라는 에세이의 특성때문에 사람들은 에세이를 친근하게 느끼기도 하고 홀대하기도 한다. 알고보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치더라도 붓 가는대로 쓴다는 것은 보통의 사람들에게도 얼마나 친근한 손길이 되어 잡아끌어주는지. 매력적인 분야가 아닐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에세이의 정의가 어떻든간에 좋은 에세이와 평범한 에세이, 잘 쓴 에세이와 그렇지 않은 에세이의 구분은 지어진다는 것이다.

15년차 출판사 에세이 편집자가 쓴 이 책의 제목은 에세이 쓰는 법이 아니라 만드는 법. 에세이 쓰는 사람보다 만드는 사람이 읽으면 더 유용할 내용이 많고, 에세이 한편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에세이집이라는 단행본을 출판할 때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읽어야 한다. 

쓰는 사람 입장에서도 참고가 될만한 내용들을 몇가지 뽑아서 정리하고 넘어간다.


첫째, 책의 제목을 짓는데 고심해야한다.

본문 중에서 좋은 단어와 구절을 순서 없이 옮겨 적고, 마구 흩어놓아 보고, 이리 저리 조합을 하다보면 좋은 제목이 매직아이처럼 튀어나올때가 있다. (33쪽)

제목은 어느 날 번뜩이는 영감을 받아 짓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삽질 끝에 겨우 찾아내고 발견하는 것이다. (43쪽)


둘째, '네 일기 너나 재밌지' (124쪽)

이런 저런 에피소드를 마구 끌어모아 되는대로 분량 맞춰 엮는게 아니라, 한 사람의 삶과 일의 핵심을 꿰뚫는 강력한 콘셉트, 쓰는 사람의 오늘을 한 타래로 꿰는 키워드가 있어야 한다. 

예. 하정우의 <걷는 사람, 하정우>, 김이나의 <김이나의 작사법>


세째, 논픽션도 에세이가 될 수 있다. (148쪽)

에세이와 논픽션이 고등학교 문제집에서 분류하는 것처럼 '비문학'이 아니라 문학 이상의 문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렉시예비치라는 노벨문학상 작가가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라는 작품으로 증명해주었다.


몇가지 안되는 위의 내용보다 사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문장으로 남을 대목은 들어가는 말에 있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었다.

한 사람이 살아온 대로, 경험한 만큼 쓰이는 글이 에세이다. 삶이 불러 주는 이야기를 기억 속에서 숙성시켰다가 작가의 손이 자연스레 받아쓰는 글이 에세이다. (13쪽)


에세이에 대한 정의로 이보다 더 공감가는 표현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좀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다 싶을땐 나의 경험이 축적되고 있구나, 나의 컨텐츠가 깊어지고 넓어지고 있겠구나 생각하면 위로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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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2-02-25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략한 리뷰, 좋습니다.
나인 님이 마지막 문단에 쓰신 것은 더 좋습니다.
기억해 두겠습니다. 어려울 상황일 땐 나의 경험이 축적되고 있는 시간이고, 생각이 깊어질 수 있는 시간임을...

hnine 2022-02-26 06:49   좋아요 0 | URL
책이 워낙 간략해요 ^^
‘나의 컨텐츠가 풍부해지고 있어~‘ 사실 평소 제가 잘 하는 혼잣말이랍니다. 꼭 힘든 상황 아니더라도 뭔가 예상하지 않던대로 일이 진행되어 갈때요. 더 오래 살다 보면 이런 컨텐츠가 글로 빵 터질지도 모를까요? 그땐 어떤 글을 써내겠다고 머리 쥐어짜지 않아도 그냥 술술 나오게 될까요? ㅋㅋ 오래 오래 살아야겠어요.
늘 관심과 따뜻한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