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리커버 에디션) - 전세계가 주목한 코넬대학교의 ‘인류 유산 프로젝트’
칼 필레머 지음, 박여진 옮김 / 토네이도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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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제목들의 책이 많다. 

점묘파 화가로 알려져있는 시냑의 그림을 표지로 하고 있는 이 책의 원제는 30 lessons for living. 

전 세계가 주목한 코넬대학교의 인류 유산 프로젝트 (click-->The Legacy Project | Lessons for Living from the Wisest Americans (cornell.edu) 라는 거창한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의 저자는 실제로 코넬대학교의 사회학자이자 인간생태학인 칼 킬레머 교수이다. 


2006년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5년에 걸쳐 70세 이상 1000명이 넘는 각계각층 사람들을 대상으로 선별된 질문과 인터뷰를 통해 진행되었고, 그 결과를 담아 2011년에 발표한 것이 이 책이다. 


인터뷰 대상자들의 동영상을 보고 싶으면 --> https://www.youtube.com/user/CornellLegacyProject


우리는 100년 못되는 시간을 살지만 이 책엔 8만년의 삶, 5만년의 직작생활, 3만년의 결혼 생활이 담겨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위대한 업적을 남기고 간 현자의 말이 아니라서 더 주목을 하게 되는 경우가 바로 이런 경우가 아닐까 한다.

이들은 과연 어떤 말을 이 세상에 남기고 싶어했을까.

그 중엔 이런 것도 있다.

결혼은 반반씩 내놓는 것이 아니다.

동의하지 않을 사람도 있을지 몰라도 겪어본 사람은 무슨 뜻인지 직감적으로 알 것이라 생각된다. 모든 관계가 그렇듯이 결혼 생활도 50대 50으로 공평하게 주고 받는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자녀와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은 무엇일까. 사랑? 신뢰? 자산? 교육? 한두가지가 아니겠지만 이것들은 모두 시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이다. 즉 자녀와 평생 친구처럼 가깝게 지내도록 해주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오직 '시간'이라고 했다. 돈 주고 살 수 없는 것. 돈으로 대신 할 수 없는 것.

자식이 여럿 있을때 편애는 자연스런 현상임을 인정했는데 다만 편애하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가 그것을 알게 하지 않도록 하라고 했다. 이것만은 정직이 최선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평생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관계의 균열만은 피하라

이것은 나도 지인으로부터 들은 말 중 하나이다. 아무리 자식과의 관계가 험악해져도 관계가 깨지는 단계까지는 가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불공평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불화가 생겼을때 화해가 필요한 쪽은 부모인 경우가 많다고.

나이 드는 것이 꼭 슬픈 일일까? 

행복한 노후를 보내는 사람이 꼭 행복한 상황이나 조건을 갖추고 있어서는 아니었다.

젊어서는 그토록 중요했던 일들이 이젠 그리 대단치 않아졌고, 늘 지고 살아온 책임감도 더 이상 느낄 필요가 없어져서 아마 내가 지금 행복한가보다 라고 대답한 사람이 있고 아직 겪어 보지 않은 시간이기 때문에 나이 드는 것도 하나의 탐험이 아니겠느냐고 대답한 사람도 있다. '만약 내가 아침에 못 일어난다면 더 좋은 곳에 가 있겠지' 라고 한 최강의 긍정적 사고의 소유자도 있었다. 아직 오지도 않은 죽음을 미리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다. 대신 삶의 마지막 순간에 대비해 계획을 잘 세워두라는 조언은 남겼다. 


여행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

여행을 하면 나이가 들어서도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는 특별한 힘이 생기기때문이고 여행은 인생을 잘 살았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데도 한몫 한다고 한다. 할 수 있는 한, 필요하다면 다른 일을 포기하더라도 여행을 많이 다니라고. 대부분의 인생현자들이 더 많이 여행하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고 한다.


행복, 내가 고른 선물

이것은 이 리뷰의 제목으로 고른 조언이기도 하다. 행복은 선택이라는 말. 그 누구도 아닌 내가 한 선택이다.

내 삶에서 일어나는 내 행복은 내가 책임지라는 것인데 내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자 책임지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어떤 태도를 취할지, 어떻게 반응할지는 스스로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행복은 선택이고 태도이다. '짜증, 두려움, 실망' 대신 '행복'을 고르자.

비가 올 때 필요한 것은 걱정이 아니라 우산이라는 말은 명심할만 하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종교와 기도를 추천했다. 그것은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만큼 종교에서 얻는 위로와 힘이 크다는 것이다. 어떤 특정 종교를 추천하지 않았다. 모든 종교의 근본은 같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우리에게 추천한다. 좋아하는 연장자를 만나거든 질문의 리스트를 만들어놓고 물어보라고. 그리고 참고로 하라면서 열가지 질문은 마지막으로 덧붙여놓았다. 부모가 될수도 있을 것이고 선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지혜롭게 살고 있다고 보이는 어떤 노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본문 중에 노인들의 임무를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으로 본다는 것에 여운이 남는다. 

잘 늙는다는 것은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고 그것은 시간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함께 노력과 자각이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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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티나무 2023-04-07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 그림도 그렇고, 읽다가 여행,에 콕 눈길 오래 머물게 되네요. 후회없이 여행!! 하고 싶어요…. 웅웅

hnine 2023-04-08 06:52   좋아요 0 | URL
떠나세요! 지금 갈수 있는 곳으로.
 
여행의 시간 - 도시 건축가 김진애의 인생 여행법
김진애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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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여행한 곳에 대한 감상문이 아니라 여행에 대한 생각을 쓴 글이다. 여행은 왜 해야하고, 언제 해야하고 어떻게 하는지.

물론 사람마다 성향이 다를 것이고 현재 상황이 다를 것이며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다를 것이다. 그래서 읽는 사람에 따라 이 책 속 저자의 생각과 의견에 꼭 동의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만 나는 평소에 내가 하던 생각과 거의 비슷하여 단숨에 읽으며 속이 시원했다. 나는 왜 내 생각을 이렇게 설득력있게 표현 못했을까 하는 생각도 잠깐.


1. 여행을 하는 동안 최고의 예술 작품, 최고의 예술 작품을 남긴 사람들을 보면서 또 다른 나의 모습을 찾고 또다른 가능성을 찾게 만들어준다. 또다른 나를 찾는 것은 여행 최고의 만남이자 최고의 축복이다.

2. 아이들과의 여행은 부모로서 내가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주는 시간이 아니라 아이들이 나에게 특별한 순간을 선물해주는 시간이다.

3. 나의 아이들은 내가 했던 여행보다 훨씬 더 근사한 여행을 하기를, 내가 감히 가지못했던 지구 곳곳에 가기를, 흥미로운 여행 이야기를 들고 와서 우리를 즐겁게 해주기를, 나보다 훨씬 더 멋진 시행착오를 하고 나보다 훨씬 더 신나는 모험을 펼치기를, 두근두근한 여행의 시간을 풍성한 인생의 시간으로 만들기를, 너의 이야기를 세상에 나눠주기를.

4. 홀로 선택하고 홀로 감행한다. 왜 가는지 짚어보며 갈 곳을 정하고 동행할 사람을 유혹하고 돈을 모으고 아낄 수 있는 모든 방법을 검색하고, 드디어 내 발을 내딛는다.

5. 돈과 시간 사이의 줄타기를 하느라 떠나지 못할 이유를 잔뜩 대면서 버킷 리스트를 쌓지는 말자

6. SNS로 수다 떨 때는 그나마 아직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 드라마, 게임, 영화, 유튜브에 흠뻑 빠진 사람들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조차 잊은 듯하다. 아날로그 방구석이 나가고 싶은 갈망을 키운다면 디지털 방구석은 나가고 싶지 않게 만든다. 아날로그 방구석이 절절하게 외로움을 느끼게 만든다면, 디지털 방구석은 풍성한 도취감마저 준다. 그러다가 신호가 온다. 그러면 빨리 나가서 걷는다. 지금이 떠날 시점이다. 

7. 여행의 시간에서 느낀 체험의 밀도는 높아서 나중에 되돌아봤을때 기억속의 시간이 무척 길게 느껴진다. 기억속에서 더욱 빛나는 여행의 시간이다. 

8. 집에 있었더라면 밥 먹고 차 한잔 마시고 스마트폰을 검색하거나 TV채널을 돌리면서 소파 근처에서 빈둥대며 시간을 흘려보냈을 텐데 떠나니까 이렇게 다른 세상이 있구나, 귀중한 시간을 제대로 붙들었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읽으면서 되새기고 싶은 곳들을 요약한 것이다.


이 책의 시작과 끝은 모두 동일한 한 마디로 일관되어 있다. '홀로 여행'

홀로 여행이란 결단의 행위이자 용기의 행위이고 모험의 행위이자 자신을 대면하는 행위라고 했다. 홀로여행은 저자 정도의 배짱이 있고 타고난 사람만에게 주어진 특권이라고 생각하고 싶지않다. 저자도 말했지 않은가. 그만큼 두렵고 주저하는 시간이지만 그만큼 완벽한 시간이 되더라고. 

여행은 단지 외지에서 보낸 그 시간만큼의 행위가 아니다. 가기 전엔 설레임과 기대의 시간들이 있고, 다녀온 후엔 본격적으로 다녀온 곳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어 찾아보고 정리하는 시간이 있다. 기록의 시간, 정리의 시간이다. 그리고 시간이 훨씬 지난 후, 기억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시간이 있다.

어차피 삶은 여행이라고, 남들처럼 경지에 오른 말을 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여행이라는 것을 집을 떠나 잠시 나갔다 오는 것으로, 가보지 못한 곳을 구경하고 오는 여흥의 일종으로 국한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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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동물대탐험 1 : 비글호의 푸른 유령 - 동물들의 숨바꼭질 '의태' 최재천의 동물대탐험 1
최재천 기획, 박현미 그림, 황혜영 글, 안선영 해설 / 다산어린이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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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교수라는 이름이 먼저 들어왔을 수 있지만 이 책의 저자는 황혜영이라는 분이다. 최재천 교수가 기획을 했고, 박현미 그림, 안선영 해설. 2022년에 나와 보름만에 2쇄를 찍었고 내 눈에 뜨인 것은 몇주 전이었다. 잘 만들어졌던 아니던, 내 손으로 구입해서 읽어봐야 했다. 

우선 이 책의 등장인물을 보자면 최재천 박사 자신을 대신하는 개미박사가 나온다. 그리고 또 한명의 박사가 나오는데 이것은 사람이라기보다 인공 지능체인 다윈박사이다. 200년 전에 살았던, 진화론의 그 찰스 다윈의 인격과 지식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 세상 어떤 에너지보다 강한 추진력에 해당하는 힘. 바로 "호기심". 호기심 천국인 어린이들 네 명이 나온다. 호야, 와니, 미리, 아라. 

만화책은 아니고, 그림이 충분히 많이 들어가 있는 생물학 모험 동화이다. 

자연과학은, 특히 생물학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자신이 생물이며 다른 생물과 알게 모르게 얽히고 설켜 살고 있으며 이렇게 읽고 먹고 잠자고 숨쉬는 모든 행위가 생물학적 현상이기 때문에, 당연하게 일어나는 일들이 어느 순간엔가 궁금해지고 의문을 가지게 되는 것은 어른이든 아이든 자연스럽게 일어날만한 현상이다. 그런데 생물학을 지식으로서, 상식으로서 읽고 이해하고 암기하려고 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그렇다고 자연 속으로 뛰어들어 그 속에서 호기심을 가지도록 하거나 매번 직접 실험을 통해서 생물학적 이해를 돕도록 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라도 생물학이 얼마나 재미있고 놀라웁고 정교한지, 동화책 처럼 읽으면서 마음에 스며들수 있도록 하자는게 기획자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십분 이해가 되는 책이다.

이런 의도를 전달하기에 가장 좋은 주제로 '의태'라는 현상을 1권의 주제로 뽑았다.

의태란 한마디로 흉내내는 것이다. 이유는 한가지, 살아남기 위해서이다. 살아남는데 유리한 방법으로서 택한 전략중 한가지 의태는 자연 현상에서도 볼 수 있지만 이 책의 도입부에서 아이들이 괴물체로 오해하고 놀라는 장면 역시 의태에 대해 암시하는 역할을 한다.












나뭇가지 흉내를 내는 자벌레






리돕스는 다른 생물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무생물인 돌을 흉내내고 있다.



인공 지능 인격체로 찰스 다윈을 등장시킨 것, 비글호의 모양을 굳이 단풍나무 씨앗 형태를 흉내내어 만든 것 (단풍나무 씨앗이 괜히 날개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 비글호를 타고 탐사 여행을 하는 동안의 기발한 식단 등은 기존의 상투적 학습동화의 틀을 넘는 재미를 주고 책의 말미에 그것들이 재미를 위해서만 도입된 것이 아니라는 팩트 체크까지 덧붙인 것은 정말 마음에 들었다. 특히 제로 웨이스트 시스템을 어떻게, 왜 적용시키는지 바로 실생활에서 실천해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읽는 아이들은 우리도 바로 할 수 있겠다는 것을 은근히 느끼게 될 것이다. 







책 속에는 이런 카드가 삽입되어 있었다. 멸종 위기 동물들이 그려져있는 카드인데 오른쪽 위에 보면 주사위와 가위 바위 보 표시가 있어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오락 요소까지, 다 갖추느라 애 쓴 흔적이 역력하다.







책 속 어디에도 의태에 대해 배워보자 라고 말하는 대목 없고, 생물학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는 부분 없다. 책 속에서 아이들은 궁금한 것을 찾아 나설뿐이고 개미박사, 그리고 인공 지능 다윈 박사가 동원되어 함께 탐사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일 뿐이다. 궁금한 걸 알아야겠으니까.



2권은 이미 사놓았고, 앞으로 계속 나올 시리즈도 기대 잔뜩 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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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5-18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엇. 저 이 책 읽어볼래요. 읽고 초등학생 조카에게 줘야겠어요!!

hnine 2023-05-18 19:10   좋아요 0 | URL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도 없고 조카도 없는 제가 너무나 재미있게 읽었답니다. ^^
 
진품 고미술 명품 이야기
양의숙 지음 / 까치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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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전에 KBS에서 방영하는 'TV진품명품'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1995년에 시작했다고 하니 거의 30년이 되어 가는 프로그램이다. 

영국에는 이런 TV프로그램이 참 많았던 기억이 난다. 우리 나라에는 유일한 고미술품, 민속품 감정 프로그램 TV진품명품에 고미술품 감정의원으로 자주 출연하던 한 분이 책을 내셨다고 해서 읽어보게 되었다. 분야별로 전문 감정 위원이 다른데 이 책의 저자 양의숙 감정위원은 주로 고미술품 감정을 담당해왔다. 

1946년생. 제주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어릴 때부터 민예품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사범대학에 들어갔지만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어 대학원에 진학하여 미술공예를 전공했다. 이후 여러 대학을 돌아다니며 강의해오다가 대학에서 자리를 잡을 비전은 없다고 생각, 직접 화랑을 열었다. 아현동에서 시작하여, 인사동을 거쳐 지금은 제주에서 예나르 제주공예박물관장을 지내고 있으며 한국고미술협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서는 나이와 무관하게 생기가 느껴지고, 좋아하는 그 일을 오래 해온 사람에게는 깊이와 함께, 그 사람만의 세계가 보인다. 

새것이 쏟아져 나오고 유행이 자주 바뀌는 시대에, 굳이 옛것에 관심을 갖고 그것의 가치를 알기 위해 공부하고 노력하는 일을 사십년 해온 저자는 고미술 명품이라면 꼭 백자, 청자만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며 안타까워한다. 그녀가 처음 구입한 민속품이 쌀 뒤주였다고 한다. 이 책에 실린 민속품들은 아름답고 화려한것도 있지만 소박하고 서민적인 것들이 많다. 명품이란, 양반이나 궁궐에서 쓰던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정이 느껴지고 시간이 느껴지는 것들 아닐까. 화려한 단청을 새로 입힌 웅장한 사찰보다 낡고 오래된 나무 기둥, 칠의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아도 시간의 축적이 느껴지는 절집에서 한 걸음 더 다가가 만져보고 싶은 느낌을 갖게 되는 것 같이 말이다. 

둥글고 푸근한 멋 달항아리, 풍요의 상징 뒤주, 어둠을 밝히는 별 목등잔, 담백하고 화려하게 조선철, 경이로운 이름표 경패, 격조 높은 미감 주칠삼층탁자장, 원광의 미학 염주함, 승려의 애달픈 염원 저승효행상, 선비의 기백 화약통과 화살통, 고급스러운 사치품 담배합, 꿈길마저 아름답게 목침, 한 폭의 진경산수화 흉배, 선비의 머리 정장 탕건과 망건, 불멸의 꽃 어사화, 안비낙도의 삶 서안, 일탈과 파격의 미 제주문자도, 오색영롱한 세계 화각, 가체를 단정하게 다래함, 집안의 상징과 전통 약과판, 당당한 위용 머리꽂이, 세계 유일의 혼수품 열쇠패, 여인들만의 격식 노리개, 축하와 축복의 옷 원삼과 활옷, 신기루 같은 빛의 덩어리 백자개함, 살림의 기본 반닫이, 당당하고 섬세한 품새 채화칠기 삼층장.


책 읽는 사람에겐 아마도 자그마한 앉은뱅이 책상 '서안'엥 눈길이 머무를 수 있을 것이고, 활옷을 보고는 내가 결혼식날 폐백 드릴때 입었던 옷이 활옷이었구나 빙그레 웃음질수도 있을 것이다. 큰 달항아리 살 여유는 없어서 몇년 전 사다놓은 내 미니어쳐 달항아리는 둥글고 푸근하기보다 귀엽기 그지 없다. 단색으로도 멋을 충분히 내는, 절대 크지 않은 반닫이는 지금도 있으면 쓸모가 많을 듯 하다.


문화는 전해준 곳에서는 쇠퇴해도 그 문화를 전달받은 곳에서는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 조선의 당대를 지배하던 청빈사상과 온돌 문화가 조선철을 망각하게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조선철이 일본에 남아 있는 것과 비슷한 사례일 것이다.

(*조선철: 털실과 면실을 엮어서 짠 조선의 카펫)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조선철과 같이 귀하고 소중한 문화재 속에서 화려하고 당당했던 한국미의 진정한 유전자를 되찾는 일이다. 일본인 민예운동가 야나기 무네요시는 한국의 미를 일컬어 "애상적 소박미"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우리 것의 아름다움과 문화의 가치를 어찌 이 하나의 틀 안에 가둘 수 있겠는가. (47쪽)


전문적인 내용으로 채우기 보다 일반인들을 위해 쉽고 길지 않게 설명이 되어 있어 읽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내용 중에 건축을 전공한 남편 얘기가 종종 나와 알아보았더니 명지대학교 건축과 교수를 지낸 김홍식 교수. 한옥 건축의 권위자이며 민중건축론을 주창하신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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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투어
앤디 왓슨 지음, 김모 옮김 / 이숲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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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만화가이자 작가인 앤디 왓슨의 그래픽 노블이다.

읽기 시작하여 어느 정도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바로 카프카의 작품 '소송'이 떠올랐다.









어느 날 갑자기 영문도 모른채 내가 계획한 것과 전혀 다르게, 전혀 이해되지 않는 방식으로 일이 진행되어 간다. 주인공도 모르고 읽는 독자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며 페이지를 넘겨간다. 

앤디 왓슨의 이 책에서 주인공은 별로 유명하지 않은 인디 소설 작가 프렛웰. 새 소설이 출간되고 이 책을 홍보하기 위해 다른 지역으로 북 투어를 떠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범죄와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그가 만났던 사람들이 다음 날 죽어서 발견되는 일이 일어나고 이런 이유로 주인공은 영문도 모른채 경찰의 조사를 받기도 하고 추적을 받기도 하며 이야기는 점점 오리무중으로 빠진다. 우연의 일치인가?이 책에서 앤디 왓슨이 새로 낸 소설의 제목이 <사라진 K>인데, 카프카의 소설 <소송>의 주인공 이름도 K이다.


이하는 책을 읽고난 나의 순전히 주관적인 느낌과 해석이다.

이 책의 주인공 프렛웰의 모습에서 작가로서 사는 삶이 늘 계획만큼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경험하고 있는 이 책의 저자 앤디 왓슨 자신의 모습을 어느 정도 투영했다고 보여지는 것이다. 작가는 열과 성을 다해 책을 만들어 이 세상에 내어놓지만 항상 대중들로부터 그만큼의 인정을 받고 인기를 얻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자기를 작가로 알아주지 않는 사람들이 많고 책 사인회에 참석하지만 독자가 한 사람도 안나타나기도 한다. 세상은 작가로 발돋움할때 상상하던 그런 세상이 아니다. 내가 하는 말을 다른 사람들은 못 알아듣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과 행동을 나도 금방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어나가게 된다. 이 세상 자체가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돌아간다.

어쩌면 작가라는 직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좀 과장해서 말한다면 이 세상과 이 세상 사람들과의 소통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인생은 계획한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다. 책 속에서 주인공은 약속된 북투어를 가느라 가족과 잠시 떨어져 있게 되면서 밤마다 가족과 전화 통화를 시도하지만 한번도 제대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각자의 관심사가 다르고 하고 싶은 말과 듣고 싶은 말이 다르다. 세상은 나를 그들이 보고 싶은 방식으로 본다. 내가 나를 규정짓는 타이틀은 작가이지만 세상 사람들은 때로 나를 도둑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살인자로 보기도 한다. 내가 모르는 일을 했다고 하고 내가 모르는 의도를 가졌다고 단정하기도 한다 (카프카의 불합리?)


또 이런 식으로도 생각해보았다. 작가들의 직업이란 상상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직업이기 때문에 늘 무언가 있을 수 있는 상황들을 머리 속에서 그려보며 살지 않을까? 북투어란 것은 요즘 흔하게 있는 행사이고 작가들이라면 한번씩은 다 해봤을 것 같은 일정이다. 그렇지만 의외로 북투어와 작가 사인회를 앞두고서 긴장과 불안의 시간을 경험할지도 모른다. 내 책이 그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다면? 사인회에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다면? 서점에서 내 책이 한권도 팔리지 않는다면? 그런 생각에서만 그치면 작가의 자격이 없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이 세상은 나의 계획대로, 예상한대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상황을 극대화 시켜 갑자기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의심받기도 하고, 분명이 내가 아님에도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는, 그런 상황 (바로 카프카의 소송에서 K가 그랬던 것처럼)을 만들어보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이 책의 이야기가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독특한 내용과 메시지로 오랜만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 책이다. 이 책을 다 읽고서 나도 이런 저런 해석을 븥여보느라 작가의 세계를 잠시 흉내내보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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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emy 2023-03-21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마워요. h9 님 글 읽고 아마존에서 이 책,
<The Book Tour> 찾아보니
지금 Kindle Unlimited 로 읽을 수 있는 책이어서
기쁜 마음으로 download 받았습니다.

다들 Cartooning Kafka,
comic version of <The Trial> and <The Castle> 이라고 하네요.

이렇게 알라딘에서 전혀 생각지도 못 했던 책,
알게되면 괜히 뿌듯해집니다.

hnine 2023-03-21 13:57   좋아요 1 | URL
엇! 그런가요? 제가 워낙 카프카의 <The trial>을 인상깊게 읽었기 때문에 저 혼자 넘겨짚은건 아닌가 조심스러워했는데 다행이다 싶고 기쁘기도 하네요.
저도 알라딘 서재에서 다른 분 리뷰 보고 어딘지 끌리는데가 있어 바로 주문해서 읽었어요. 금방 읽혀지더라고요.
읽다보니 저는 이 책의 내용과 더불어 이 책의 작가에 대해서도 궁금해지던데요. 어떤 계기로 이 책을 구성하게 되었을까? 영국 작가면서 왜 처음에 프랑스어로 출판하게 되었을까? 하는 것 까지요.

근래에 Jeremy님 서재에서 단어 정리해놓으신 것 훑어 읽는 재미가 쏠쏠해요. 왜 제가 공부하는 것보다 다른 분이 애써서 정리해놓은 것 읽는 것이 훨씬 더 재미있고 머리에 잘 들어오는 것일까요.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