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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무늬
오정희 지음 / 황금부엉이 / 2006년 1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오 정희의 소설이 아닌 산문집이다. 그동안 작가는 소설도 그렇지만 산문집도 많이 낸 편이 아니다. 그래서 더 반갑게 집어든 책.

오 정희의 글은 쉽게 읽혀지지가 않는다.
어려운 문장을 써서가 아니다.
한 문장 한 문장 쓰기까지 기울였을 그녀의 진지함과 어려움이 느껴져서이다.
중년을 훌쩍 넘어선 나이이지만, 다작의 작가는 아니라는 것은 그녀에게 단점이 아닌 장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겠다. 그만큼 그녀 내부에 충분히 고인 후에야 어렵게 글 한편을 길어올리는 우물 같다고 할까. 행여나 설익은 글이 함부로 만들어질까, 충분히 고뇌하지 않고 쓰여진 글이 문학이라는 이름에 누를 끼치지 않을까 하는 극단의 조심스러움은 그녀의 글쓰기에 대한 자존심이고 문학에 대한 외경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가 많은 후배 소설가들에게 얼마만한 영향을 끼쳤을지는 표지의 글을 읽어보지 않더라도 짐작이 간다. 지금도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교과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오 정희의 글.
그녀가 피와 땀으로 길어올린 우물물을 나는 참으로 쉽게 받아 마시는구나. 본문 중 40대의 딜레마에 대해 쓴 부분은 요즘 나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고민의 본질을 제대로 표현해주고 있으니, 어째 내 고민의 핵심을 다른 사람의 글에서 발견하고 쾌재를 부른단 말이냐. 작가란 바로 그런 존재인지도 모른다.

한 사람에게,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무늬는 사람마다 다르리라.
문학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일에 이만한 소명 의식과 애정을 가지고 임해야 할 것 같다. 그런 삶이 되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비슷하게라도 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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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인생. 2008-07-09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가끔 오정희 선생의 글을 읽을때 무릎이라도 끓고 읽어야 하는 생각이 들어요. 말씀하신것처럼 한문장한문장에 그녀가 기울였을 진지함과 어려움 그리고 망설임이 느껴져서 그저 눈으로 훓기에는 너무나 죄송스러운 마음이 드는 까닭인것같아요. 나인님의 리뷰를 읽으면서 사십대가 되면 꼭한번 다시 읽어야 하겠다 라는 생각을 해보게되요. 오정희 선생님의 마음의 무늬는 어떨까요? 조금은 낡았지만 만지면 보드라울것 같은 느낌일것같아요 그오랜시간동안 고뇌했던 선생의 삶의 연륜이 그마음의 무늬를 부드럽게 감싸안을것같은 예감이거든요.
좋은 리뷰 읽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나이님^^

hnine 2009-10-21 20:22   좋아요 0 | URL
저 사실은 대학교 1학년 때인가, 오 정희 님의 소설을 처음 읽어보고는 무슨 초현실 작품인줄 알았지 뭐예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고, 상상과 현실이 뒤얽혀서는 느낌이 이상하더라구요. 지금 생각하니 웃음이~ ^^
어쨌건 저도 얼룩이 아닌 '무늬'를 그리며 나이들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약지의 표본
오가와 요코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수첩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박사가 사랑한 수식>, <슈거 타임> 다음으로 내가 읽은 세번째 오가와 요코의 책이다.
이 책에는 두 편의 이야기가 실려있는데, 표본실에서 일하는 젊은 아가씨가 화자인 '약지의 표본'과, 평범하기 짝이 없는 중년의 부인을 따라가다 알게 된 작은 이야기 방에 관한 '육각형의 작은 방' 이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에서도 그랬듯이, 오가와 요코는 우리 사회의 특별한 계층의 인물 보다는,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어디서나 있을 것 같은 평범하고 눈에 뜨이지 않는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택하길 좋아하는 것 같다. 표본실의 아가씨는 이전에 청량음료를 만드는 회사에서 일하다가 기계의 실수로 약지 살점이 약간 떨어져 나가는 사고를 당하고 새로운 일거리를 찾던 중 낡고 오래된 표본실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것을 시내를 지나던 길에 우연히 보고는 그곳에서 일하게 된다. 거기서 만나게 된 표본제작사 데시마루와 형성되는 미묘한 감정. 그가 주인공에게 벗지 말고 꼭 신고 있기를 당부한 그 구두의 의미는 무엇일까. 정신적으로 그에게서 벗어나지 말고 꼭 붙어 있으라는 암묵의 표현이 아닐지. 한번 신은 구두에 길들여지면 다른 구두가 낯설어진다. 그것은 그 구두를 오래 신고 있을수록 더하다. 이 표본실에서 제작하는 표본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생물 표본만이 아니다. 악보에 담긴 소리, 예전에 겪었던 일에 대한 추억, 아픔, 슬픔 등을 의뢰자의 요구에 따라 표본 기술사는 나름의 방법으로 그것들을 표본으로 제작하고 일련 번호를 붙여 표본실에 차곡차곡 정리하여 보관해 나간다.
여기서 우리는 표본으로 만든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잃고 싶지 않거나 잊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방편, 소멸시키지 않으면서 동시에 마음에서 몰아내기 위한 방편이 아닐까. 주인공의 약지의 표본이 제작 되면서, 살점이 떨어져 나간 자리가 사라졌듯이. 글에서 표본 제작을 의뢰한 사람들은 좀처럼 그 표본을 다시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봐도 그렇다.
뒤에 실린 '육각형의 작은 방' 또한 오가와 요코의 개성을 보여주는 글이라 하겠다. 아픈 등을 치료하기 위한 목적으로 다니기 시작한 스포츠 클럽에서 우연히 만난 한 중년 여인, 역시 평범하기 짝이 없는 그녀에게 알수 없이 끌리는 주인공. 특별한 이유없이 그녀를 따라가다가 뜻밖의 장소를 알게 되고, 다른 사람들이 하듯이 어느 덧 자기도 그 기묘한 공간에 들어가 마음에 담긴 말을 쏟아 낸다. 아무도 듣지 않는다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엄연히 이용료까지 지불하면서  육각형의 작은 공간 속에 들어가서이다. 이 특이한 행위가 의미하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생리적인 배설이 있듯이, 정신적인 배설도 있다. 표현되지 못하고 오랜 세월 사람들의 의식 속에 쌓여만 있던 것들은 어느 새 자신도 깨닫지 못할 정도로 우리의 모든 의식 세계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잠식하게 되는 단계까지 올 수 있다는 것. 그러므로  어떤 방식으로든지 밖으로 표출되어야 하는, 일종의 배설행위같은 것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주인공이 이제 그 육각형의 공간 속에서 편안함을 찾게 된 어느 날 홀연히 그곳은 눈 앞에서 사라지고. 주인공은 이제 스스로 자신만의 육각형의 방을 만들 수 있으리라. 그곳이 필요한 한계에 이르렀을때 그녀는 스스로 이야기방을 만들고 그곳에 들어가 그녀의 모든 어두움의 뭉텅이를 쏟아내리라.
우리의 어두운 의식의 세계를 털어놓아야 하는 대상은 이렇게 혼잣말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인가보다.

'약지의 표본'이 프랑스에서 영화로도 만들어졌다는 것이 의외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할리우드 영화로 만들어졌다면 아마 화들짝 놀랐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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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무늬
오정희 지음 / 황금부엉이 / 2006년 1월
품절


팔십 세를 훨씬 넘기신 어머니는 간혹 한숨을 쉬시며 살아온 날들이 한바탕 꿈 같다거나 사는 일이 어린아이들의 소꿉놀이와 다를 바 없다고 말씀하신다. 옹기종기 모여앉아 엄마 노릇, 아빠 노릇, 아기 노릇을 하고 밥 먹고 잠자고 일하는 시늉을 하다가 해 저물고 어두워져 '아무개야, 그만 놀고 들어와라'라고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소꿉놀이 살림살이를 놀던 그대로 두고 각자 뿔뿔이 흩어져 집으로 돌아가듯이, 이 세상에서 사는 일도 마찬가지로 한바탕 펼쳐놓고 살다가 어느 날 누군가의 부름에 놀던 것, 지녔던 것들을 그대로 놓아 두고 황황히 떠나가게 되는 것이라는 뜻일게다.-31쪽

마흔 살이란 앞만 보고 달려온 걸음 앞의 걸림돌이다. 설혹 잘못 들어선 길이라는 것을 깨달아도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 있다는 것, 인생의 성패는 이미 판가름 난 것이 아닌가라는 성급한 판단에 초조해지기도 하고 잘못 끼워진 첫 단추가 이제야 확연히 보이는가 하면 여념 없이 살아온 날들에의 반성과 검토, 게다가 한 인간으로서의 내가 무엇이며 어디에 서 있는가라는 실존적인 물음 앞에 피할 도리 없이 맞서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앞에 복병처럼 기다리고 있는 질병과 외로움의 종내 어느 날엔가 틀림없이 맞게 될 죽음-낯익고 친근한 모든 것과의 이별-역시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40대가 되면 찾아올 거라고 기대했던 평화도 안도감도 앎도 없이 막다른 골목에 맞닥뜨린 듯 어리둥절하고 당황스럽다.-39쪽

결국 소설 쓰기가 힘들다는 것은 삶이 힘들고 섣부르게 말하기에는 너무 복잡 미묘하다는 깨달음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63쪽

밤길을 혼자 걸어본 사람은 안다. 꽃피는 봄과 잎 무성한 여름, 스산한 가을과 얼어붙은 겨울, 달과 별과 바람이, 서로에게서 '저만치' 떨어져 서 있는 나무들이 저마다의 시간을 살고 있음을.
어둠 속에 조용히 서 있는 나무들은 우리에게 살아가라고, 세상은 아름답고 충분히 견딜 만하다고 나직이 말하며 사시사철 마파람에 문풍지 떨듯 펄럭이는 마음을 위무하며 잠재우는 듯하였다.-68쪽

통찰력이 없는 상상이란 잡념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통찰력을 갖기 위해서는 삶에 대한 성숙한 의식이 있어야 하고 성숙한 의식이란 또한 깊이 살아내기, 상식과 통념, 상투성을 깨고 뒤집어보는 물음과 시선, 본질에 대한 궁구가 따라야 하겠지요.-174쪽

죄 없는 아이들의 고통은 세상의 업이다. 그들이 누구라 해도, 어른이 되고 늙어간다 해도 어린아이 시절 입은 영혼의 깊은 상처는 세상 뭇 어미의 가슴에 슬픔의 형상으로 각인된다.-2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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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
공선옥 지음 / 창비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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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에도 싱싱한 오이와 상추와 딸기가 올라 있는 음식상을 바라보며 나는 불쾌감과 아울러 공포감을 느낀다. 한여름 먹을 거리인 오이가 한겨울에 생산되는 것은 모두 돈 때문이다. 한여름에 나는 먹을 거리를 한겨울에도 먹고자 하는 사람들 때문이다.(중략) 사람들은 이제 절대로 기다리지 않는다. 기다리는 대신 돈으로 사버리면 되는 것이다. 더위가 오기 전에 미리 더위를 돈으로 사서 즐기다가 막상 더위가 오면 또 추위를 돈 주고 사는 것이다.
사람들은 기다리지 않고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계절을 기다리지 않고, 사랑을 기다리지 않고, 세월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어떡하든 나이보다 젊은 모습을 지니고자 애쓴다. 늙었다는 말을 듣기 싫어한다.
-70쪽

'나도 알고 보면 차암 예쁘고 괜찮고 아름다운 여잔데....'
내가 나에게 아름다움을 느낄 때 남도 아름답게 보이지 않겠는가. 어쨌거나, 베푸는 아름다움이든 이기적인 아름다움이든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는 여자는 아름답다. -171쪽

나는 그와 어떤 특별한 말을 주고받은 적도 없습니다. 그래도 그는 나에게 커다란 위로가 됩니다. 그는 내 속의 부처가 되었습니다. 그는 아마 그것도 모를 테지요. 자신이 누군가의 마음속에 들어가 커다란 위로가 되고 부처가 되었다는 사실을. 나 또한 누군가의 가슴속에 들어가 위로가 되고 부처가 될 수는 없을까요. 좀더 가난해지고 좀더 외로워지면 그럴 수 있을는지요. 하기사 태안사의 그는 가난과 외로움조차도 스스로 느끼지 않는 그저 '그'일 따름이었습니다. 가난과 외로움조차도 때로는 거추장스런 장신구일 수도 있겠습니다.-15쪽

생애의 어느 한때 한순간, 누구에게나 그 '한순간'이 있다. 가장 좋고 눈부신 한때. 그것은 자두나무의 유월처럼 짧을 수도 있고, 감나무의 가을처럼 조금 길 수도 있다. 짧든 길든, 그것은 그래도 누구에게나 한 때, 한순간이 된다. 좋은 시절은 아무리 길어도 짧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짧기 때문에 좋은 것이다.-57쪽

세상은 참 많이, 그리고 늘 '나쁜 것'들의 연속이었다. 나쁜 것들의 행렬 속에서 좋은 것의 도래를 열망하여 어느 한때, 좋은 한 시절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간절한 열망 끝에 오는 좋은 한 시절은 그 기다림과 그 열망의 시간들에 비해 너무나 짧다. 오죽하면 메뚜기도 한철이란 말이 생겨났겠는가.
그러나 좋은 한순간, 한때, 혹은 한 시절이 누구에게나, 기다리고 열망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오는 것만은 아닌가보다. 그야말로 그 인생의 어느 한순간에도 '좋은 한때' 한번 못보고 생을 마감하게 되는 지난한 생애들을 종종 보게 되니 말이다.
어느 죽음인들 안타깝지 않은 죽음이 있겠는가마는 평탄한 삶만을 살다 간 사람보다 산산하기만 한 생을 살았던 사람의 죽음 앞에서 가슴이 메어오는 것을 경험하곤 한다. 그 생애에서 뭔가를 이우려 하다가 끝끝내 이루지 못한 이의 죽음 앞에서는 울음조차도 사치스럽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울음이란, 슬픔이란 때로 얼마나 감정의 허영인 것이냐.-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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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
공선옥 지음 / 창비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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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서재 지인 어느 분께서 곡성에 가신다는 댓글에 얼른 '공 선옥'부터 떠올릴만큼 나는 요즘 이 작가에 관심이 많은가보다.
제목도 고와라 '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
실제 오랜만에 책을 읽으면서 한줄 한줄 따라서 써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장황스럽거나 화려한 미사여구를 멋지게 사용한 것도 아니면서, 그저 소박하고 솔직한 문장들로 읽는 사람의 마음을 이토록 사로잡나. 내가 공선옥 작가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동안의 그녀의 평탄치 않은 인생 여정과 경륜에서 말미암은 내공을, 이렇게 찬찬히 걸러내어, 소박하고 솔직하고 깨끗한 문장만 남길 수 있는 능력 때문일 것이다.
획기적이고, 참신하며, 한 눈에 들어오는 표현, 재치가 번뜩이는 문장, 감성과 지성의 조화가 유감없이 발휘되어 독자를 사로잡는 글 솜씨. 누가 이런 작가를 훌륭하지 않다 했는가? 다만 나는 감탄할 뿐, 그 이상으로 끌리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가난을 빼고 말할 수 없는 그녀의 어린 시절, 고향의 추억, 이미 돌아가신 부모를 생각하며 쓸어내리는 가슴, 이제 그녀 뒤에 따라 붙는 올망졸망 세 아이들을 배불리 먹이고 싶은 어미의 마음 등, 그녀의 한 문장 한 문장이 마침내 큰 파도를 이루어 밀려와 내 가슴 역시 한바탕 쓸어내리고 가곤 했다. 자기도 모르게 남을 가르치려고 하는 듯한 글, 나를 알아달라고, 나의 뛰어남을 은연중에 내세우려는 듯한 글과는 거리가 먼 그녀의 글이 난 참 좋다.

그동안 그녀의 여행기나 소설, 수필 등에서 간간히 얘기가 나오긴 했었지만, 이 책에는 어린 시절 뿐 아니라, 중 고교 시절, 대학 시절, 85년 광주와 관련된 결혼, 그리고 세 아이를 거느린 엄마 가장이 되어 어려움을 헤쳐나가던 시절 얘기들이 역시 잠깐 잠깐씩 나온다. 질펀히 앉아 다 풀어놓지 못하는 까닭은 그녀가 아직도 그 모든 추억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아직도 그것때문에 마음 아림 때문이리라.

훼손되어 가는 자연, 제철 음식이랄 것 없이 아무 때나 밥상에 오르는 음식들을 보며 두려움 마저 느낀다면서, 하지만 두려움, 걱정과 함께 그럼에도 품어야 하는 희망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는 글의 제목을 이 리뷰의 제목으로 붙여보았다 '마른 풀더미에 촉을 틔운 마늘꽃을 보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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