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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 ㅣ 청소년 현대 문학선 10
이순원 지음, 이정선 그림 / 문이당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들은 19세라는 단어에서 무엇을 떠올릴까?
내가 이제 열 살된 내 아이에게 종종 하는 말이 있다. '열 여덟살 넘으면 네가 알아서 해. 하지만 그 전에는 엄마가 널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간섭할거야. 열 여덟살 까지만이야.' 라고. 열 여덟 넘어서까지 아이 일에 이래라 저래라 하고 싶지 않다는 나의 바램이자 다짐이기도 하다.
열 여덟, 열 아홉. 지금의 아이들은 입시라는 거대한 관문을 눈 앞에 두고 어쩌면 그 외의 다른 모든 문제들은 그저 자잘한 걱정 정도로, 고민할 가치조차 없는 소소한 문제 거리로 가볍게 여길지 모르겠고, 어쩌면 그래서 더 혼자서 끙끙거릴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지금 되돌아 보아도 나의 열 아홉이 특별한 시기로 기억되지 않는 것은, 난 그 이전에도 고민이 많고, 그 이후에도 고민이 많은, 그 나이에 누릴 수 있는 재미와 흥을 즐기지 못하고 거의 항상 침울하게 고민거리를 담고 사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이 순원. 1957년생. 우리 나라의 중견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이런 저런 중편들을 읽었던 기억이 있어 눈에 익은 이름인데 비슷한 다른 책을 읽었던 것인지 이 책은 읽은 줄 알았다가 다시 보니 읽은 적이 없길래 이번에 읽어보게 되었다. 해설을 보니 작가 자신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해도 무방할 이야기였다. 시대적 배경이 그렇고 주인공의 행보가 그렇다. 지금 말하는 공부의 신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공부에 탁월한 능력을 가진 형을 둔 주인공 정수는 아무리 공부를 해도 형만큼은 될 수 없을 것이란 생각에 학교를 그만 두고 농사로 성공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일부러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상고에 들어가지만 상고에서 중점적으로 배우는 주산에서 왼손잡이인 자신은 치명적인 결점을 안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나마 들어간 상고도 그만두고 대관령에서 고랭지 농사를 직접 하기에 이르른다. 요즘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 당시에도 펄펄 뛰는 부모님과 동생의 행동을 한심하게 여기는 형과의 대립전도 불사하며 열 여섯살 정수는 자기 뜻대로 밀고 나간 것이다. 주인공 정수가 그토록 밀고 나가고 싶어했던 목표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단순히 농사를 짓는 일? 정수는 어른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어른이란 자기 힘으로 벌어서 먹고 살 수 있는 것. 그런 어른의 대열에 어서 올라서 당당하게 자기 몫을 해가며 주체가 되어 살고 싶었던 것이다. 나이가 한참 들어서까지 부모에게 의존하고 싶어하고 진정한 어른의 대열에 끼기를 두려워하는 현대의 젊은이에 비해 그 생각 만큼은 오히려 용기있고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의 주 흐름은 주인공의 그런 과정을 그리고 있지만 그러면서 사춘기 남학생의 성적인 호기심, 그것을 알아가는 과정들이 아주 리얼하게 묘사되어 있다. 새삼 남자 아이의 사춘기는 여자 아이들과 참 다르구나 하는 것을 알고 놀라기도 했다. 들어서, 혹은 읽어서 알게 된 것을 그냥 알게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직접 해보고 싶어한다는 것, 그것이 남자와 여자 아이들의 차이점 중 하나인가보다.
혼자 마음에 두고서 성적인 상상을 할때 늘 그 상대로 떠올리던 친구의 누나에게 어느 날 자기의 감정을 고백하며 앞으로의 미래를 함께 하고 싶다는 포부까지 털어놓는 주인공에게 그 누나가 조근조근 들려주는 말이 인상적이다.
"감격스럽다. 내가 정수 그 말 가슴 속에 간직할게. 정수도 오늘 내게 했던 말 영원히 잊지 말고. 우리는 거기까지야. 지금 정수가 한 말이 아름다운 건 정수가 지금 내게 한 말도 아름답지만, 그 말을 하는 정수의 나이가 아름답기 때문인 거야. 아마 스무 살만 지나가도 그 말이 스스로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을지도 몰라. 내 열 여덟 살도 그랬거든...(209쪽)"
화들짝 놀라며 내쳐서 상대방의 자존심을 건드리지도 않으면서 정리를 잘 하고 있지 않은가? 저런 고백이 아름다울 수 있는 나이가 있는 것이다.
평범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늘어지지 않게, 무리 없이 결말까지 이끌어가는 작가의 내공이 엿보이는 작품이었다.
어제 찌는 듯한 더위에 무엇이 들었는지 무거워보이는 배낭을 메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표정 하나 찡그리지 않고 씩씩하게 걷고 있는, 대학생 쯤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를 버스 창 너머로 보면서,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당사자는 혹시 지금 더워죽겠다고요, 아름답다니요! 라고 속으로 외칠지 몰라도 나의 눈에 그는 분명 믿음직스럽고 아름다와 보였다. 어떤 멋진 차림새를 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만약 연로한 노인이 무거워 보이는 배낭을 메고 땀을 흘려가면서 그 더위 속을 걷고 있는 것을 보았다면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오히려 측은해보였으리라.
본인은 더위에 지치고 그 순간이 힘들어도 남들은 아름다운 눈으로, 그리고 부러운 눈으로 보아주는, 그런 나이가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그 이후로 어떻게 되었을까? 계속 농사를 지었을까?
그는 이렇게 소설가가 되어있다.
인생은 이래서 힘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봐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