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중 내가 제일 나 자신과 가까이 있는 느낌이 드는 때, 그래서 놓치고 싶지 않은 때가 새벽이라면, 감성이 제일 풍부해지는 때, 그래서 가끔은 피하고 싶어 지는 때는 해가 질 무렵인 것 같다. 보고 싶은 사람도 하나 둘 머리 속에 떠오르고, 가고 싶은, 하지만 실제 갈 확률은 별로 없는 그런 곳들이 머리 속에 줄줄이 떠오르는가 하면, 아주 오래 전 일들이 뜬금없이 생각나기도 한다. 내 머리 속의 주파수가 이상해지는 때.

 

오후 6시. 사진기를 가지고 나가고 싶어서 해 지기 전에 한바퀴 돌기로 했다.

 

 

 

 

 

 

 

오후 6시 20분의 햇빛이 이렇게 짱짱했다. 개나리를 보면 3월, 진달래와 철쭉을 보면 4월, 라일락을 보면 5월, 장미를 보면 6월, 배롱나무를 보면 한여름을 느끼고, 시퍼렇지만 감 열매가 커지고 있는 것을 보면 가을이 멀지 않았구나 짐작한다.

 

아파트 뒷쪽 담에 서서 장미가 햇빛 세례를 받고 있었다.

 

 

 

 

 

"나도 꽃이야."- 사철나무 꽃

 

 

 

 

마치 햇빛에 색이 바랜 것 같았던 꽃. 우리 아파트 건너편 아파트까지 진출하여 찍어왔다.

 

 

 

 

 

 

학교에서 교실 창문 틈으로 고개 내밀고 밖을 내다보는 소녀들 같다. 이제 이런 분홍색 좋다고 하면 나이들어가는 징조란 소리 들을까? 원래 좋아했는데.

 

 

 

 

 

 

 

우리 아파트 바로 앞 마당에서 발견한 딸기. 빨강의 보색은 파랑이 아니라 녹색 계열이라는 것을 다시 일깨워 주는 색의 대비.

 

도깨비방망이 같이 생긴 측백나무 꽃도 찍었는데, 촛점이 흐려서 올리지 않기로 한다. 이것 역시, 언뜻 보면 꽃인지 모르고 지나기 쉬운 모양인데, 다음에 더 잘 찍어봐야지.

 

 

 

7시 22분인데 아직도 밖은 훤하다.

 

 

 

 

 

 


댓글(18)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무스탕 2013-06-10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들이 점점 작품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맨 아래 사진은 '보물찾기' 같아요 :)

hnine 2013-06-11 04:51   좋아요 0 | URL
아이쿠, 작품은요 뭘.
말씀하신대로 어릴때 '보물찾기'하던 마음과 비슷해요. 혼자서 눈 크게 뜨고, 천천히 걸으면서 어디 찍을거 없나...^^

프레이야 2013-06-10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빨간딸기! 심봤다!
나인님 저도 하루중 가장 센티멘털해지는 때가 해 넘어가는 시간이에요.
왠지 반갑네요. 사람들 대체로 그럴까요? ㅎ히
핑크색 저도 좋아하는걸요. 나이들어가는 증거라구요? ㅎㅎ
인정해야할 것도같고요.
눈이 곱다시해지는 사진들이에요.

hnine 2013-06-11 04:56   좋아요 0 | URL
제가 만약 창작 활동을 하는 예술가였다면, 바로 그 해질 무렵 일을 집중적으로 해야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은 현실이다보니 오히려 하던 일에서 마음을 풀어뜨려놓게 하는, 훼방꾼 시간대가 되기도 한답니다 ^^
프레이야님도 핑크색 좋아하시는구나. 저는 옷구경하다가도 저 색의 블라우스나 원피스 같은거 보면 그냥 못 지나치고 이리 보고 저리 보고 합니다. 막상 사는 적은 거의 없어도 그냥 보고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색이라서요.

카스피 2013-06-10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멋진 사진이시네요^^

hnine 2013-06-11 04:57   좋아요 0 | URL
멋진 꽃들이지요.
사철나무 잎은 꼭 밥숟가락 같지 않나요? ^^

파란놀 2013-06-10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뱀딸기 말고 들딸기도 돋으면 좋을 텐데.
다음해 봄에는 딸기꽃도 만나 보셔요~

hnine 2013-06-11 05:00   좋아요 0 | URL
딸기꽃이랑 딸기는 사실 함께살기님 서재에서 눈으로 많이 봤지요.
아파트 벗어나서 좀 더 산길 올라가보면 더 많은 꽃, 나무들 만나볼수 있을텐데, 낮에 혼자 가기가 망설여져서요.

qualia 2013-06-11 0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 사진들 너무 좋아요.
정말 선명하네요.
‘폰카’인지 ‘디카’인지 궁금하네요.
중간중간 간결한 글에서는 뭔가 ‘카리스마’가 느껴집니다.
hnine 님이 은근히 좋아지는데, 이래도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몇 년 전 대전 인근의 둔산에 재판 증인 참석차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둔산 시가지가 너무 깨끗하고 아름다워서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거리에 ‘고급 수종’이랄 수 있는 멋진 나무들과 예쁜 꽃들이 많더군요.
사람들도 그곳 사람들은 거의 모두 귀티나게 보였고 깔끔하고 단정해 보였습니다.
시내버스를 탈 때도 서두르지 않고 줄을 쫙 서더군요.
제가 사는 청주는 줄 서는 문화가 거의 없습니다.
대전/둔산과 청주는 역시 다르더군요.

그리고 저 위 hnine 님 서재 사진~
바다 수평선 바로 위, 중간에서 왼쪽으로 조금 치우친 지점에 ’미확인비행물체’ UFO가 떠 있어요!!!^^

hnine 2013-06-11 16:20   좋아요 0 | URL
제가 꽃 사진으로 qualia님을 불렀군요, 아니, 꽃이 부른거네요 ^^
사진은 2003년도에 구입한 '명품' 디카 (요즘 이거 쓰는 사람 찾기 힘드니까요 ㅋㅋ)로 찍었습니다.
대전에서 둔산은 1990년대초 쯤에 개발되기 시작한 곳이고 정부청사등과 가까운 곳이라서 깨끗한 편이지요. 대전에서도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 들을 기회가 생각보다 많지 않더라고요. 저는 청주도 참 인상적이었는데...급개발된 분위기가 아니라 뭔가 시간의 무게가 느껴진달까, 화려하지 않은 기품이 있다고 할까, 그런 느낌이요. qualia님 청주 사시는지 몰랐네요.

제 서재 사진은 제가 몇년 전 겨울, 천리포 수목원 갔다가 만리포 바닷가 가서 찍은 사진이어요. UFO인지 어떻게 아셨지요? 비밀인데... (쉬잇~)

세실 2013-06-11 0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실 창문으로 고개 내밀고 밖을 쳐다보는 소녀들....
아 예뻐라~~~ 사진도 글도요^^
분홍 티셔츠, 분홍 점퍼, 분홍 모자! 제 등산복 차림. 꽃자가 들어가서 꽃분홍이네요. ㅋ

hnine 2013-06-11 16:23   좋아요 0 | URL
저 기억나요. 세실님 꽃분홍색 등산복. 언젠가 사진으로 올려주셨어요 ^^
멀리 나간것도 아니고 집 주위 한 바퀴 돌았는데, 예쁜 꽃들을 여기 저기서 많이 볼 수 있어서 저도 기분 전환이 되었답니다. 일부러 나가지 않으면 요즘은 하루 종일 집에만 있는 날도 있거든요.
같이 느껴주셔서 고맙습니다.

순오기 2013-06-14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도 좋고 감상도 좋아요~~
오랜만에 마실와서 아래 사진도 줄줄이 보고 갑니다.^^

hnine 2013-06-15 19:03   좋아요 0 | URL
많이 바쁘시지요? 이른 새벽, 알라딘 들어와서 순오기님 글 올라온거 읽는 재미를 누리던 때가 있었지요. 언젠가 또 그럴 수 있을 날이 있겠지요.
바쁘신데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Nussbaum 2013-06-14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 님 서울은 여름이 너무 일찍 찾아온 느낌입니다.

잘 지내시지요? 더위에 정신 못차리다가 며칠 전 비가 와서 좀 괜찮아졌네요.

정신 좀 차리고 오랜만에 인사 드리러 왔습니다. 새벽과 해가 질 무렵이 그런 느낌이셨군요 ! 아 저도 저랑 가까이 있는 느낌을 받고 싶은데 거의 새벽에 못일어나니 왠지 좀 힘들것 같습니다. ^^

뭐 저는 늦은 밤 세 시 경에 그런 느낌을 받으니 괜찮겠지요. ㅎ

예전부터 올리신 사진을 보면 자연물, 식물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올리신 주인공들을 보니, 남들에게 주목받지 못해도 늘 조용히 제 할일을 하는 그런 식물들이 좀 자랑스러워 보이려고 하네요.


hnine 2013-06-15 19:41   좋아요 0 | URL
저도 원래 심야형이었는데요, 아이 낳고 나서 바뀌었어요. 아이 재우면서 같이 잠드는 날이 많다보니 일찍 잠들어 일찍 일어나게 되었고, 그렇게 일찍 깬 새벽시간만이 온전한 저의 시간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요. 혹이 Nussbaum님도 나중에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시게 되면 저처럼 바뀔지도 모릅니다.^^
자연물에 대한 관심도 많지만 사람에 대한 관심만 하겠어요 ^^ 좋게 해석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알고보면 사람도 자연의 일부일텐데, 조용히 제 할 일을 묵묵히 하며 살아가기엔 욕심이 있고 계산이 있고, 그런가봐요.

서니데이 2013-06-15 0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철나무와 이어진 분홍색 꽃 사진이 예뻐요.
그새 장미 필 때가 되었나봐요. 하긴 벌써 6월이니까요. 저희집 근처 길가에도 장미가 조금씩 피더라구요. 연한 주홍색에 가까운 큰 장미를 지나가다 봤는데, 사진 찍었으면 좋았을 걸 했어요.
즐거운 주말 되세요.

hnine 2013-06-15 19:40   좋아요 0 | URL
이제 한창 장미가 여기 저기 흐드러지게 많이 필 때가 되었어요. 길가에 심어놓은 장미도 예쁘고, 담장에 철조망 대신 죽 둘러서 피어있는 장미를 보면 어떤 사람이 사는 집인지 궁금해지기도 하고 그래요. 장미처럼 눈에 확 들어오는 꽃도 있고, 소나무나 사철나무 처럼 드러나지 않게 피는 꽃도 있으니, 사람처럼 식물들도 참 다양하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