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보고도 끌렸다. '부끄럽지 않은 밥상'이라니.
흙냄새 나는 동시를 쓰는 시인으로 알고 있고, 그의 시 몇편은 여기에도 올린 기억이 있는 서정홍 시인의 에세이인데, 오늘 오후 손에 들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손에서 놓지를 못하고 읽고 있다.
포스트잇을 가장 처음 붙친 곳은 38쪽. 이 시가 나와있는 쪽이다.
이른 아침에
감자밭 일구느라
괭이질을 하는데
땅속에서 개구리 한 마리
툭 튀어나왔습니다.
날카로운 괭이 날에
한쪽 다리가 끊어진 채
나를 쳐다봅니다.
하던 일 멈추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하루 내내
밥도 먹히지 않았습니다.
물도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 시집 <내가 가장 착해질 때> 중에서
무릎 수술을 받느라 농사 짓던 것 뒤로 하고 병원에 입원해있으려니 마음이 오죽 어지러웠으랴. 마음이 잔뜩 약해져 있다가, '그래도 살아야지요, 이 악물고 살아야 합니다.' 라고 마음을 추스린다. 그 이유란,
얼른 돌아가서 감자밭도 일구어야 하고, 감나무 가지치기도 해야 하고, 옮겨 심은 매실나무랑 무화과나무도 잘 자라도록 돌보아야 하니까요. (94쪽)
이 악물고 살아야 하는 이 이유가 거창하지 않다는 것 역시 너무 맘에 들어, 설거지도 미루고 지금 이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