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안 말랐네!"
어제도 그제도 남편이 하는 말이다. 

비에 젖고 땀에 젖고, 한창 뛰어놀기 좋아하는 아이의 운동화는 그냥 외양만 더러운 것이 아니라 지독한 냄새까지 풍기고 있다는 것을, 며칠 전 냄새의 근원을 찾다가 알아냈다.
그리고서 내가 한 일은 겨우 베란다 벽, 햇볕 들고 바람이 통하는 곳에 운동화를 쓰러지지 않게 세워둔 일.
그런데 그렇게 며칠을 세워두어도 냄새는 가시지 않았다. 

지난 주말, 욕실에서 남편이 쭈그리고 앉아 뭘 하고 있다. 딱 내가 걸레 빨 때의 자세인데 남편이 절대 걸레를 빨 사람은 아니고 뭘 하고 있나 봤더니 아이의 운동화를 빨고 있었다. 잠시 후 얼굴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서는 흐뭇한 표정으로 깨끗해진 아이의 운동화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 다시 베란다 창 앞으로 가져가서는 잘 마르도록 세워놓는다. 

운동화를 빨아본 사람은 안다. 그것이 얼마나 더디 마르는지를.
빨리 보송보송하게 말라서 아이가 신고 다니는 것을 보고 싶은 남편은 매일 저녁 집에 들어오면 아이 운동화를 만져보고는 실망한다.
"아직도 안 말랐네..... 왜 이렇게 안 마르지?"
"운동화가 원래 좀 더디 말라."
내가 말했다.
"낮에 해가 잘 드는 곳에 좀 갖다 놓지."
남편이 내게 하는 소리이다.
"거기가 그나마 제일 볕이 잘 드는 곳이야. 그런데 요즘 비가 자주 오니 습해서 더 안마르는 것 같아." 

아이는 지금 엄마 아빠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안중에도 없다.
이제는 아이를 위해서보다도 남편을 위해서 해가 좀 쨍 하고 나주었으면 좋겠다. 매일 해가 나기는 하는데 딱 그날 널은 빨래가 마를 정도일 뿐, 운동화가 마르기에는 좀 모자라는 날씨가 계속 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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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0-09-07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렇게 가정을 이루고 살아야 알 수 있는,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 오늘따라 눈부시게 예뻐 보여요. 아, 감동 뭉클!

hnine 2010-09-07 14:21   좋아요 0 | URL
어느 집에서나 다 있는 일을 제가 새삼스럽게 쓰진 않았나 싶네요.
늘 예쁜 눈으로 봐주시고, 감동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으신 마노아님이 더 눈부시다는 것을 알고 계신지...^^

상미 2010-09-10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들 사랑은 아빠지...
발도 쑥쑥 자라고, 신을 너무 험하게 신어서, 빨기 전에 새로 사줘야 했던 때가 있었어.
신문지를 펴고, 운동화 안에도 신문지 구겨서 안에 넣고 말리면 잘말라.
몇 시간 후 신문지 바꿔주면 더 빨리 마르고.

hnine 2010-09-07 18:01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구나. 나는 운동화 빠는게 왜 그리 귀찮은지. 봐서 다린이에게 직접 빨아 신어라 그럴 참이었어.

루체오페르 2010-09-07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따뜻하고 흐뭇하네요.
저도 그런 아버지가 되고 싶습니다.^^

hnine 2010-09-07 23:12   좋아요 0 | URL
루체오페르님의 댓글도 늘 따뜻합니다.
분명히 그런 아버지가 되실거예요.

해리포터7 2010-09-08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
그런아버지가 있는줄 첨 알았습니다.ㅎㅎㅎ
아빠들은 원래 자신이 하고픈걸 해놓고 은근 자식에게 할건 다했다고 하잖아요.
평소에는 바닥과 TV와 한몸이되어 있으면서 말이에요.
나중에 아이가 본 그대로 할텐데...
실제로 중2인 울아들이 그대로 하고 있답니다.
집에 들어오면 런닝에 팬티에 한손에 모콘이를 들고 기다란쿠션 겨드랑이에 끼고 눕는다지요.헐....
아마 hnine님댁은 좀 다르겠지요. 아이도 다 안답니다.정말로...

hnine 2010-09-08 21:21   좋아요 0 | URL
해리포터님 댁과 똑같지는 않아도 저희집에서도 제가 보기에 민망하고 못마땅한 풍경이 왜 없겠어요. 제일 일찍 자고 제일 늦게 일어나는 사람이 저희 집에서는 아이가 아니라 바로 남편이랍니다 ㅋㅋ 잠이 많아요. 그래도 아이에게는 좋은 아빠 노릇하느라 애 쓰는 모습이 보여요. 남편이 보기에 저에게도 못마땅한 모습이 분명히 있겠지요? ^^

하양물감 2010-09-08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집은 애 아빠가 휴일만 되면 이불이고 발매트고 인형이고 모두 다 햇볕에 말립니다. 때로는 그걸 해가 지고 나서도 안걷어들어와서 더 축축해질 때도 있지만요^^

hnine 2010-09-08 21:23   좋아요 0 | URL
햇볕만큼 강력한 소독제가 없으니까요. 저희 집은 아파트 1층이라 그런지 특히 더 습하네요. 빨래 잘 안마르는 것을 물론이고 지금 곰팡이와의 전쟁 중이랍니다. 저희는 이불 한번 널어놓고 나갔다가 비가 들이쳐서 결국 그 이불 버린 적도 있어요 ㅋㅋ

비로그인 2010-09-08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 ^^ 잼있습니다.
인제 바람 솔솔 불어서 빨래 잘 마를까요? 아님 기온이 좀 낮아져서 덜 마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바람 솔솔.. 그나저나 뭔가가 붉고, 갈색으로 물드는 계절이 오면 꼭 낯선 어딘가로 가고 싶어지는 저는 좀 큰일이예욥!

hnine 2010-09-10 07:13   좋아요 0 | URL
큰일인가요? 무덤덤한 감성으로 메말라가는 것보다 훨씬 좋은 것 같은데요. 다만 마음이 너무 멀리 날라가지 않게 다스리는 것이 좀 어렵긴 하지만요 ^^

같은하늘 2010-09-09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날씨가 그랬나요? 너무 정신이 없어서...
운동화를 빨면 세탁기에 탈수를 살짝만 돌려주면 훨씬 빨리 말라요.
물론 운동화가 상하지 않게 위치선정(?)을 잘해서 넣어야하지요.ㅎㅎ
아들을 위한 아빠의 따뜻한 마음에 행복이 묻어나네요.

hnine 2010-09-10 07:20   좋아요 0 | URL
아이가 아프면 다른 것은 눈에 안들어오지요.
이제 다 나았나요?
저는 독한 엄마가 되어서 그런지, 아니면 아이가 한번 장염으로 입원을 했던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비슷한 증세가 보이면 나을 때까지 금식시키거든요.
먹고 싶어하는 아이보며 같은하늘님도 많이 마음 아프셨지요...

하늘바람 2010-09-09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신발을 빨이주는 아빠
근사하네요.
우리 아빠도 그랬죠
하지만 모든 아빠가 그런 건 아닐거예요.
다린이는 멋진 아빠를 두었군요

hnine 2010-09-10 07:22   좋아요 0 | URL
남편으로서의 점수보다는 아빠로서의 점수가 월등 높지요 ^^
저도 그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해요. 어차피 둘 다 높은 점수 받기가 어렵다면 말이지요.

하늘바람님, 오늘도 화이팅입니다. 금요일이어요 ^^

yamoo 2010-09-09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발 빨기는 넘 싫어요~~ 그래서 전 3천원짜리 신발 빠는데 그냥 맡깁니다만..
그러고 보니 신발 빨아본 적도 오래됐군요..

hnine 2010-09-10 07:22   좋아요 0 | URL
아, 신발 빠는데 3천원이군요...(음~ 괜찮은데요? ^^)

순오기 2010-09-09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글을 보면 정말 사람 사는 모습이 제일 아름답죠!^^
광주는 여름내내 빗방울이 안 떨어진 날이 없어요.
반짝 해가 났다고 건조대 내놓으면 어느새 빗방울이 떨어지고, 부랴부랴 들여놓으면 금세 또 해가 나고... 출근하면서 절대 건조대를 내놓을 수 없어서 선풍기로 말렸어요.
...님 말씀처럼 운동화는 드라이기나 선풍기로 빨리 말려야 냄새가 안나요.
우리 학창시절엔 연탄아궁이에 말리면 잘 말랐는데~ ^^

hnine 2010-09-10 14:11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여기도 그래요. 빗방울 안 본 날이 근래들어 며칠 없었던 것 같아요. 빨래 잘 안마르는 것보다 더한 문제가 바로 곰팡이요. 1층이라서 그런지 집이 무척 습하네요 으~~~

덕분에 연탄 아궁이 옆에 실내화 빨아서 마르게 세워놓았다가 태워먹은 생각이 나서 웃었습니다. 그렇다고 버릴 수는 없고,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실내화 한동안 잘 신고 지냈지요 ^^

치유 2010-09-11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아빠 보면요..너무 사랑스러워요..^^_

hnine 2010-09-11 19:28   좋아요 0 | URL
사랑스럽다고 말씀해주시니 제가 괜히 오글거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