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특정 종교를 가지고 있지는 않은데,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가 기독교 학교이다보니 가끔 그에 관련된 질문을 할 때가 있다.

다린: "엄마, 하느님은 왜 인간에게 나쁜 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 같은 것을 만드신거예요? 인간을 사랑하신다면서"

다린아빠: "나쁜 것도 있어야 좋은 것을 알것 아니겠니?"

다린엄마: "다린아, 우리 생각엔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나쁜 병을 일으키니까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느님이 보실땐 바이러스도 사랑스러운거야. 우리에게 해롭다고 그것이 원래부터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돼지."

다린이가 다니고 싶어해서 요즘 교회 주일학교에 보내고 있다. 시부모님 제사, 차례를 모시는 우리 집은 절 할일이 많은데 지난 설, 차례 음식 준비하고 있는데 옆에 와서 그런다.

다린: "엄마, 교회 선생님께서요, 설날에 어른들께 하는 세배 말고는 절 하면 안된대요."

다린엄마: "맞아, 기독교에서는 그러기로 약속이 되어있어서 그래. 그런데 내 약속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기독교말고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과 부딪힐수가 있어. 엄마는 그래서 가끔 내 약속을 양보하는 것도 약속을 지키는 것만큼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 교회 선생님 말씀이 틀린거 아냐."

오늘 Turnleft님 페이퍼를 읽고 문득 생각이 나서 써보았다.
아이에게 뭐라고 대답했어야 더 좋았을까 생각하다가, 한가지 빠뜨린걸 깨달았다. 엄마나 아빠의 생각을 얘기하기 전에, 우선 아이의 생각을 물어볼걸. 정리안된 상태라 할지라도 아이가 그런 질문을 할 때에는 자기 나름의 대답이 머리 속에 있었을텐데. 그것을 말할 기회를 지나쳐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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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8-02-22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린어머님, 존경스럽습니다.

hnine 2008-02-22 16:48   좋아요 0 | URL
아이구~ 조선인님, 존경스럽긴요. 가끔 아이랑 저랑 나눈 얘기중 기억에 남는 것을 적어보았어요. 질문에 답해주기, 모르는게 많은 이 엄마한테는 늘 어렵지요. 좀 크면 안할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네요 ^^

Mephistopheles 2008-02-22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상자 안에 있는 말은 두고두고 곱씹어 읽어야겠어요.. 나중에 써먹을라면요.^^

hnine 2008-02-22 14:32   좋아요 0 | URL
더 현명한 답을 해주시겠지요.
저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은 입장에서, 어느 종교에게도 중립적으로 답해주려니, 머리를 좀 써야되더라구요 ^^

전호인 2008-02-22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깔끔하고 현명한 답변을 하셨군요.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답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질문에는 상대방의 잘못을 짚어내고 자기 주장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데 아이가 상대방의 인격을 의심하지 않도록 하신 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hnine 2008-02-22 14:35   좋아요 0 | URL
전호인님 댓글 읽으며 다시 한번 스스로 일깨웁니다. '자기 주장부터 내세우지 않기'.부모가 아이에게 저지르기 쉬운 것 중의 하나인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꾸벅~

세실 2008-02-22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화법을 배우신 것처럼 잘하셨어요. 훌륭하십니다.
제사는 조상에 대한 아름다운 미풍양속이라고 생각하면 좋을듯.
전 뭐 절하면서 간절히 기도도 하는걸요~~

hnine 2008-02-22 16:39   좋아요 0 | URL
아! 세실님. 저는 왜 조상에 대한 미풍양속이라는 설명보다 복잡하게스리 다른 종교니, 양보니 하는 장황한 설명이 먼저 입에서 튀어나왔을까요 ㅋㅋ

qualia 2008-02-22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 님, 안녕하세요? 늘 hnine 님 서재에 와보면, 알콩달콩 웃음 꽃가루가 퐁퐁 터지고, 아기자기한 행복이 봄나비처럼 나폴나폴거리는 것 같습니다. 마음이 따스해집니다. 찾아와 읽는 이 모두 흐뭇한 미소를 짓는 모습이 선하네요.

설날(추석)과 차례와 절과 기독교와 종교에 대한 다린 엄마 님의 훌륭하신 말씀, 저도 적극 찬동합니다. 고맙습니다.

hnine 2008-02-22 16:47   좋아요 0 | URL
qualia님 댓글이 마치 한편의 동시 같아요. '알콩달콩, 퐁퐁, 아기자기, 나폴나폴...' ^^
qualia님 서재에 읽을거리가 정말 많네요~ (번역하시나요?)

qualia 2008-02-23 12:45   좋아요 0 | URL
hnine 님 서재에 읽을거리가 더 많은 것 같아요. hnine 님께서도 번역해서 올리시더군요. 지난번에 hnine 님께서 번역하신 프랭크 애쉬(Frank Ash)의 「해조각들 Sunflakes」을 재미있게 읽어더랬습니다. 동화들도 직접 번역하신 것들이 많으신가봐요?

bookJourney 2008-02-22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멋지게 답해주셨네요. 한 수 배우고 갑니다. ^^

hnine 2008-02-22 23:40   좋아요 0 | URL
멋진 답이었나요? ^^
감사합니다.

춤추는인생. 2008-02-22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가 저절로 관용이 무엇인지를 배우겠어요^^

hnine 2008-02-22 23:40   좋아요 0 | URL
저도 잘 못하는 '관용'을... ^^
그래서 아이 키우며 제가 큰다고 하나봅니다.

L.SHIN 2008-02-22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e님의 마지막 말도 인상 깊었지만, 위의 답변들은 참으로 현명했다고 생각합니다.^^
훌륭해요. 모든 부모가 저러했으면 좋겠습니다. (웃음)

hnine 2008-02-22 23:42   좋아요 0 | URL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수준 미달의 답변을 할 때도 많답니다. 아니, 더 많답니다 ^^

turnleft 2008-02-23 0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외워뒀다가 저도 나중에 애기가 물어보면 답해줘야겠어요.(어느 세월에?)

hnine 2008-02-23 06:58   좋아요 0 | URL
하하...애기들은 항상 준비된 질문은 하지 않고, 예상문제에 없는 질문들을 잘 하지요. 애기 생기면 애기 사진도 많이 찍어주시겠지요? ^^

향기로운 2008-02-23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 오랜만에 뵙네요^^ 저도 아이와의 대화내용을 보면서 뜨끔했어요^^ 좋은 엄마,아빠세요^^

hnine 2008-02-23 13:19   좋아요 0 | URL
향기로운님, 반가와요.
속삭이듯 써주시는 댓글들이 그리웠더랬어요 ^^

웽스북스 2008-02-23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정말멋진 답변입니다
다린이가 어떤 아이로 자라게 될지 갑자기 기대가 되는데요? ^^

hnine 2008-02-23 20:55   좋아요 0 | URL
웬디양님,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꾸벅~) ^^

프레이야 2008-02-24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문현답이네요.
다린이.. 이름도 참 예뻐요.
언젠가, 병만 옮기는 바퀴벌레랑 모기 같은 건 세상에 왜 있게 했을까,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어요. 아이들에게요. 그거랑 비슷한가요.^^

hnine 2008-02-24 20:16   좋아요 0 | URL
아이들 생각은 어떻던가요?
대답해주느라 끙끙댈 것 아니라, 가끔 질문을 던져주는 것도 필요할것 같네요.
다린이란 이름은 남편이랑 정말 고심고심해서 지었답니다. 예쁘다고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nemuko 2008-02-25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사하세요 역시나^^

hnine 2008-02-25 22:25   좋아요 0 | URL
에궁~ 제가 이 페이퍼 쓰고서 마구마구 과대평가 받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