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에 올라 상을 타고 있는 모범생 느낌의 소년.
그리고 그를 못마땅하게 지켜보고 있는 장난꾸러기 느낌의 다른 소년.
바로 주인공 '최고' 와 그의 형 '최제일' 의 모습입니다.
최고는 형 최제일과 다르게 공부에 관심이 없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놀지도 못하고 학원 갈 준비부터 하는 형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천진한 개구쟁이일 뿐이죠.
공부를 잘 하고 늘 상을 타며 타의모범이 되는 형에 비교해보면 말썽꾸러기로 취급되는 주인공.
형은 늘 엄마가 대신 해주는 숙제 덕분에 상을 탔을 뿐인데 말은 못하고 속만 끓습니다.
공교롭게도 형의 담임을 맡았던 선생님이 올해 주인공의 담임선생님이 되었기에
'최제일의 동생' 이라는 꼬리표마저 달려버렸네요.
그러기에 주인공은 늘 소리높여 외칩니다.
『나는 '최고' 지 '최제일의 동생' 이 아니라구요!』
오늘은 최고의 날
박주혜 글/강은옥 그림
128쪽 | 172*217mm
현북스
형제자매가 있는 아이들의 첫번째 경쟁상대는
( 무의식 속의 부모와의 경쟁을 제외하면 ) 자신들의 형제자매 일겁니다.
형제자매의 타고난 숙명은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나누어 가져야 하며,
장난감 하나도 서로 양보하며 사이좋게 나눠쓰고, 서로를 돌봐줘야 한다는 것.
즉 무엇이든 '공유'해야 하는 사이라는 것이겠죠.
누구의 몫인지 딱 정해지지 않은 것을 차지하려는 사람이 둘 이상이니
어찌해도 갈등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주인공도 마찬가지입니다.
엄마는 늘 형만 챙기고 자신은 등한시하는 것 같아 속이 상합니다.
이번에 학교에서 열리는 "과학의 날 기념 표어 그리기" 숙제도 엄마는 형의 것만 그려주네요.
늦게까지 학원에 다니며 공부하는 형이 숙제할 시간이 없으니 대신 해준다는 엄마.
엄마도, 형도 다 밉습니다.
혼자 힘으로 멋지게 완성해보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주인공은 골머리를 앓다가 겨우 문구를 생각해 내지만 문제는 표어 그리기와 색칠이랍니다.
색을 칠할수록 지저분해져만 가는 도화지를 보면서 억울한 기분마저 드는 주인공은
점점 울 것 같은 기분이 되어버립니다.
그나저나, 책에서 잠시 보여주는 현실이 눈에 밟힙니다.
요즈음은 자녀가 방과 후 늦은 시간까지 사교육에 집중할 수 있도록
부모가 숙제를 대신해 주는 일이 드물지 않다고 합니다.
아이가 숙제 때문에 갖는 부담을 덜어 주어
공부할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해 주기 위해서라는 것이죠.
사교육 핑계를 대지 않고도 학교에서 내주는 숙제가 너무 어려워
아이의 숙제를 도와준다기도 해요.
그래서 '아이들 숙제가 곧 엄마들 숙제' 라는 말이 나오는가 봅니다.
아이가 사교육에서 배우는 것만이 '공부'의 전부인걸까요.
숙제가 반드시 완벽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숙제도 분명 '교육'의 하나일텐데...
이제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는 예비학부모로서 씁쓸한 기분이 듭니다.
다시 동화책 속으로 가볼까요.
학원에서 돌아온 형은 엄마가 그려놓은 표어는 보지도 않은채 침대에 누워버립니다.
졸린데 왜 그렇게 열심히 학원에 다니냐고 주인공이 묻자
형은 피곤한 목소리로 계속 일등을 하려고 그런다고 대답하죠.
" 치, 일등이 뭐가 좋아. 놀지도 못하는데... " 라는 주인공의 대답에 형은 아무런 말도 못하죠.
주인공은 형이 잠든 사이 형의 표어와 자신이 그린 표어를 바꿔치기해 버리죠.
최고네 반에서는 바꿔치기한 표어는 금세 들통이 납니다.
그런데 주인공이 그린 표어는 과학의 날 표어그리기의 상을 타게 되어버리죠!
이번에도 형이 상을 타버리는군요.
조회시간에 대성통곡을 해버리는 최고.
그리고 비뚤어졌던 것들이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는 주인공의 가족.

형은 자신의 표어가 아니었음을 학교에 사실대로 고백하고,
학교는 교무실에서나마 주인공에게 상장을 수여하고,
드디어 상장을 받은 주인공은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할 수 있게 되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큰 변화는... '다 너를 위한 거야' 라고 하는 엄마의 말에
그동안 묵묵히 있던 형 제일이가
"나도 이제 내 일은 스스로 해 볼게요." 라고 처음으로 진심을 털어놓은 일이죠.
엄마는 아이의 성장을 깨닫습니다.
작가는 이렇게 모두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며 비판하기보다는
바뀔 수 있다는 무언의 응원을 보내고 있는 듯 합니다.
무엇보다도 책을 읽는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게 되련지요.
얼마전 서울시내 2개 초등학교의 2학년 4개 학급 학생 121명과 그 부모 86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아이들의 놀이시간이 이같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기사가 있더군요.
마음껏 놀지 못한다고 밝힌 아이들이 꼽은 이유는
'학원 가느라 시간이 없어서'(41.3%), '같이 놀 사람이 없어서'(20.6%),
'부모님이 못 놀게 해서'(18.9%) 순이었죠.
초등학교 저학년인데도 아이들의 놀이시간이 급감한 가장 큰 이유가 학원과 숙제였던 것입니다.
그림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2252204255&code=210100

[놀이의 반란] / 지식너머 중의 한페이지
언제부터인가 아이들은 경쟁력과 스펙을 위해 놀이터 대신 학원으로 내몰리고 있고,
뛰어놀기 위해 유아 스포츠 센터나 축구클럽에 가입하고,
방문교사와 함께 게임을 하며 창의력을 교육받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부모세대에서는 밥먹고 뛰어나가 언제든지 친구들과 뛰놀았던 반면
우리 아이들은 뛰어놀 시간도 줄어들었을 뿐더러,
부모가 용기를 내어 아이를 놀게 해주려고 해도 텅빈 놀이터를 만나게 되니
친구들과 놀기 위해서 친구들이 있는 학원으로 가야한다는
아이들의 서글픈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아이뿐만 아니라 이런 아이들을 챙겨야하는 엄마들의 현실 역시 고달프긴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이 현실에도 지금 뒤처지면 영원히 낙오자가 되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등 떠밀리듯 엄마도 아이도 성공(?)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경쟁열차에 몸을 실을 수 밖에 없게 됩니다.
동화책 속 최고와 최제일 형제는 이런 경쟁열차에서 용기있게 내려왔을까요?
곧 입학하는 밤톨군과 저는 두려움을 떨치고 용기를 보일 수 있을까요.
이웃님들께서는 어떠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