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보지 못했던 르디에 실려있는 기사를 스크랩한다. 도시화와 재개발과 관련된 참고할 수 있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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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디플로마티크 19호(2010.4)  분리와 배제, 지구화된 도시의 삽질  

[Spécial] 세계의 거대 도시화  

2007년 무렵, 인류의 반 이상이 도시에 살게 되는 조용한 대변혁이 일어났다. 6천 년 전 메소포타미아 도시에서부터 수천만 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현대의 거대 도시까지, 도시화 과정은 연속이 아니라 간헐적이었다. 그러나 도시화 과정은 항상 일자리 배분, 계급 형성, 권력과 지식의 집중과 연관돼 있었다. 현대의 도시문명은 산업혁명과 더불어 생겨난다. 도시문명은 산업혁명의 이중적 측면을 물려받고 있다. 도시에서는 사회적 격리에 의해 가난한 사람들이 도시 주변부로 밀려난다. 빈민촌의 수평적 확장이 미래 기술도시의 수직적 발전과 짝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익의 집적지라 할 대도시는 자본, 상품, 돈 많은 주민들의 유출을 막기 위해 전력투구한다. 결국 부동산 거품과 대중의 분노를 키우게 되는 것이다.

 ‘창조적 파괴’라는 명목으로 도시 재개발이 전 지구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뭄바이에서 런던·뉴욕·파리를 거쳐 베이징까지 투자자, 부동산 개발업자, 기업체 사장, 고급 간부와 부유한 여행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호화 주택, 기업 본사, 매혹적인 문화시설을 건설하기 위해 좋은 구역에 자리잡은 서민 구역이 재정비되고, 예전 거주자들은 저급 주택이 모여 있는 외곽으로 쫓겨났다.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는 “전세계 빈민촌이 저마다 건설 공사장으로 변해 서로 충돌하고 있는데, 우리는 명백한 계층 대립의 형태로밖에 해석될 수 없는 잔인한 불균형을 목격하고 있다”(1)고 지적한다.
 이같은 도시 재개발은 공간의 정복(혹은 재정복)을 놓고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에 오랫동안 전개돼온 투쟁의 연장선으로 이해해야 하는가? 하지만 이런 시각은 특히 3차 서비스 산업국가로 진입한 국가에서 진행되는 사회그룹의 재구성에 대한 이데올로기적·정치적 효과를 도외시하는 측면이 있다.

 빈민촌서 격돌하는 힘의 비대칭성

 서비스 산업이라 불리는 분야는 신중산계층의 확장과 더불어 성장했다. 이는 20세기 후반부, 전세계적 차원 혹은 적어도 국가적 차원에서 대도시의 일부로 조성된 도시공간 내부에 재정적·사법적·문화적 기능이 집중된 것과 연관이 있다. 우리는 이런 변화의 두 가지 주요 특성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한편으로 교육중심지(고등교육기관과 졸업증서 수여기관)에 잘 갖춰진 지적 노동력이 엄청나게 증가했고, 무엇보다 지적 노동의 열매를 따먹으려 애쓰는 이들은 자신의 운명을 부르주아의 운명과 동일시했다는 점이다. 또 한편으로 전통적 산업조직의 쇠퇴, 노동운동의 약화와 해체로 사회의 근본적 변화 계획과 이 계획의 기반이 되는 공동체 해방의 이상(理想)이 붕괴됐다는 점이다.  

 하비의 표현을 빌리면 ‘대립’(Confrontation)을 말하는 사람들이 꼭 ‘대결’(Affrontement)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오늘날 도시공간에서 계층 분열이 일어나는 방식은 차라리 분리주의 방식에 의거하고 있다고 하겠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정면 충돌은 드물어졌다. 도시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은 전투원이 없어서 멈춘 것이 아니라, 항상 공격적 부르주아에 대해 프롤레타리아가 대결할 힘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부르주아는 “노동계를 약화하는 행동을 전개할 뿐만 아니라, 운명 공동체, 귀속감을 위한 다양한 전략 등 모든 계층적 특성을 공유하고 있다.”(2) 반면에 프롤레타리아는 사회주의 이론가들이 그들에게 가르쳐준, 기존 질서를 전복해야 하는 혁명 주체의 ‘역사적 역할’과 공동체적 존재에 대한 인식을 상실해버렸다.  

 서민층의 영토를 빼앗기 위한 지배계급의 술책은 당연히 서민층의 저항을 끊임없이 불러일으켰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청소년 범죄나 체제전복 반대투쟁이란 명목으로 도시 재정비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칠레의 캄파멘토스, 시우다데스 카얌파스 같은 빈민가 거주민, 다른 호화 지역의 거주민, 경찰 혹은 군대 사이의 대결이 끝없이 계속되고 있다. 마그레브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는 빈민촌 ‘퇴거’ 군사작전이 전개됐다. 시장세계화 시대에 대형 도시의 건물과 인프라를 설치하는 데 필요한 토지를 마련하기 위해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옛날 거주자들을 강제 퇴거하고 그들의 집을 철거했다. 독일에서는 재통일 뒤 자금을 투자한 신부르주아가 재정비를 명분으로 베를린의 예전 낙후 지역에 대형 방화차를 동원해 불을 질렀다. 1960년대 미국 게토 지역의 흑인 폭동과, 1980년 초 마거릿 대처 정부가 ‘정비’한다고 약속한 영국 교외의 빈민 지역에서 아프리카와 카리브 연안 출신 젊은 이민자들이 일으킨 폭동도 있다.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에서 1970년대 발생한 시위, 점령, 수많은 무단 거주, 임대료 자진 삭감운동, 거주민 연합과 구역 위원회의 활성화 같은 여러 사건은 비평사회학이 ‘도시투쟁’으로 명명한 새로운 유형의 사회운동 출현을 믿게 만들었다. 이런 사건은 모두가 ‘도시에 살 권리’를 요구하는 신호로 여겨졌다. 그러나 반자본주의 투쟁의 새로운 전선을 개척했다고 믿던 극좌파 이론가들과 사회운동가들은 곧바로 환상을 버려야 했다.  

 계급투쟁에서 거주지 투쟁으로 영역을 확장한 노동자와 서민의 결합은,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 성공하지 못했다. 공장에서의 노동자 착취 반대투쟁과 부동산 업자와 토지 소유자, 이들의 정치지원 세력에 대한 시민의 반대투쟁을 결합하는 시도가 칠레, 아르헨티나 혹은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몇몇 도시(투렌, 볼로냐, 바르셀로나)에서 있었지만, 그 저항은 억압의 바람에 순식간에 꺼져버리는 기약 없는 촛불과 같았다. 게다가 결합투쟁은 회유로 무력화되었다. 권좌에 앉은 권력과의 협상은 폭동을 일으킨 주민들의 투쟁성과 급진성을 감퇴시키는 결과로 나타났다. 한때 ‘반체제 인사’ 출신의 다니엘 콘벤디트(Daniel Chon-Bendit)가 1989년 프랑크푸르트-쉬르멩에서 다문화 업무를 담당하는 사회민주당(SPD) 소속 부시장으로 등극한 사실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투쟁 지도자들이 기득권 세력에 영입됐기 때문일 것이다.  

 노동운동 대체 못한 도시투쟁  

 반자본주의 투쟁에서 다른 사회계층을 프롤레타리아 계층에 합류시킬 것으로 본 ‘도시투쟁’은, 훨씬 더 이론적으로 무장한 대학 출신의 ‘반체제’ 투사들(교사, 연구자, 건축가, 사회운동가…)이 이끌게 되었다. 그런데 그들의 눈에는 ‘삶의 환경’을 얻기 위한 투쟁이, 단순히 무지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면 ‘노동계’에서 벌어지는 투쟁과 큰 차이가 없는 것이었다. 사실상 사회적 자유주의의 선구자인 프랑수아 뒤베, 디디에 라페이로니 등과 같은 ‘제2의 좌파 대학 지식인’의 지휘 아래 프랑스에서 전개된 도시투쟁은 고갈된 노동운동을 대신해줄 ‘새로운 사회운동’ 중 하나였다. 이 운동은 이제는 넘을 수 없다고 생각되는 자본주의와 결별하지 않고도 ‘삶을 바꿀 수’ 있는 것으로 기대됐다. ‘도시를 바꾸는 것’은 사회를 바꾼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회에 더 ‘도시적’인 얼굴을 부여함으로써 사회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자본주의식 도시화를 극렬하게 비판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이 일에 전력투구했다. 사회학자, 도시 지리학자, 건축가, 도시계획가, 도시 정비기술자와 지역 의원들은 ‘후기’ 자본주의의 필요조건에 도시공간을 조화롭게 맞추기 위해 지금 공동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그들은 마르크스 사회학자 앙리 르페브르(3)가 이론화한 몇몇 주제에서 모든 혁명적 함의를 제거하고 나서, 그것들을 주저 없이 채택했다. 양보다 질을 우선시하고, 한 구역의 역사성, 진정성과 개성을 보존·복원하기 위해 틀의 표준화를 거부하고, 특히 자발적 사회성을 상징하는 공공 공간의 가치를 강조하는 것이 이런 주제에 해당한다.  

 이것은 ‘불도저식 재개발’ 시대처럼 도시의 과거를 송두리째 뽑아버리는 것이 아니다. 그 시대에는 ‘호화’ 건물, 주택 혹은 사무실에 사용될 ‘토지’를 얻기 위해, 오랫동안 방치된 ‘비위생적’ 지역을 완전히 헐어버렸다. 또한 수세기 전부터 물려받은 구불구불하고 혼잡한 도로를 ‘자동차에 적합한 도시로 만들기’ 위해 ‘우회 도로’와 ‘방사선 도로’로 교체했다. 이제는 도저히 재생 불가능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더 이상 그것을 파괴하지 않고 ‘재개발’, ‘쇄신’, ‘재활성화’, ‘재생’한다. “‘재(re)’라는 접두어로 시작되는 이런 용어들은 우선적으로 도시에 긍정적 이미지를 부과하지만 내재하는 사회문제를 완전히 은폐하는 용어다. 하나의 구역이 재개발될 때, 그것은 당연히 상당수 거주민이 거기에서 쫓겨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구역은 당연히 ‘더 나아지겠지만’ 똑같은 사람들을 위한 것은 아니다”(4)라고 벨기에 지리학자 마티우 반 크리킹겐은 지적한다. 프랑스 좌파연합 정부의 ‘도시정책’ 안에서 실시된 또 다른 유사 개념인 ‘도시 정비’라는 개념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거대도시의 중심지역 인구 수를 역동적이고 매력적인 ‘메트로폴리스들’처럼 조정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기존 인구를 재정비한다는 의미다.  

 예전 노동자 구역에 봉급생활자의 중간층이나 상위층, ‘정보통신’ 사회의 발전에 따른 자유전문직 계층에 속하는 사회그룹이 유입되면 원주민은 그것을 침입으로 느꼈다. 대다수 원주민은 토지와 부동산 투기를 연상했고, 이런 투기 때문에 원주민이 쫓겨나고, 사회적 정체성에 걸맞은 주거 정체성을 만들어내려는 유복하고 교양 있는 시민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고 생각했다. ‘귀족계급화’는 만들어진 공간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정치 공간, 특히 대중 기반이 끊임없이 축소되는 좌파의 본질에도 영향을 끼친다. “이것은 유럽 차원의 현상이다. 즉, 곳곳에서 우리가 사회민주주의의 ‘귀족계급화’를 목격하는 것이다”(5)라고 지리학자 크리스토프 기이이는 지적한다. 사람들은 좌파 성향의 시와 읍이 도시계획을 세울 때, 주택과 문화 소비의 새로운 사회기반 시설을 열정적으로 건설하려 한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것이다.  

 21세기 파리의 바람직한 미래와 그것을 이루기 위한 정비계획을 설명한 호화 소책자에서 도시계획 건축 담당 수석보좌관인 안 이달고는 대도시 지역 의원에게 부과된 문제를 요약했다. 즉 ‘세계적 차원의 도시’ 중에서 자기 도시의 서열과 정체성을 확립하는 문제, 다시 말해 “세계의 수많은 중심도시와 경쟁하는 프랑스 수도의 지위 문제”(6)를 지적했다. ‘대도시 중심부와 그 주변 지역을 연결해야 하고’, ‘광역 지역 내에서 그 주변 지역의 지위를 새롭게 조명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멋진 서정적 담화가 일으키는 환상에 속아서는 안 된다. 가상의 ‘대(大)파리’ 계획에 들어 있는 자동화된 순환 RER(지역 간 고속전철)는 앙베르의 구시가를 에워싸는 렌 구역 주민이 이동수단에 접근하는 것을 오히려 봉쇄한다. 그 목적은 수도의 교통순환에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지점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파리를 유럽의 경쟁도시에 비해 손색이 없게 만드는 것일 뿐이다.  

 광역도시 지역의 중심부와 주변부를 연결해 ‘공동의 운명’에 처하게 한다는 ‘공유 프로젝트’는 전 지구의 사회생활을 지배하는 중요 원칙인 ‘거칠 것 없는 자유경쟁’을 공간 속에 적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각주>
(1) 데이비드 하비, ‘도시에 대한 권리’, <뉴 레프트 리뷰>, 53호, 런던, 2008년 9~10월.
(2) 폴 부파르티그, <사회계층의 부활: 불평등, 지배, 분쟁>, 라디스퓌트, 파리, 2004.
(3) 앙리 르페브르, <도시에 살 권리>, 앙트로포스, 파리, 1968.
(4) 마티우 반 크리킹겐, <라 트리뷴 드 브뤼셀>, 2007년 12월 6일자.
(5) 크리스토프 기이이, <선거 공략을 위한 새로운 사회 지리학>, 프랑스 정치생활 연구센터(Cevifop), 파리, 2002.
(6) 안 이달고, ‘파리는 전세계의 급속한 변화에 대처할 줄 알아야 한다’, <21세기 파리>, 파리도시계획 연구회-르 파사주, 파리, 2008.

글•장피에르 가르니에 Jean-Pierre Garnier
<현대의 극렬한 폭력: 도시, 지적 소시민, 서민계층의 소멸에 대한 소론>(아곤· 마르세유·2010)의 저자. 이 기사는 이 책의 서문에서 발췌한 것이다.

번역•고광식 kokos27@ilemonde.com
파리8대학 언어학 박사. 역서로 <카인>, <성의 역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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