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있는 기사를 보고 알게된 소설이다. 사실 기사의 시작은 딕의 <높은 성의 사내>를 애기하고자 한 듯 하나 내용의 대부분을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에 더 많이 할애하고 있다. 관심가지고 있었는데 며칠전 신촌의 숨어있는 책에 갔다 책이 있어 얼른 구입했다.(한권에 2000원에 구입했다.ㅋㅋ 90년대 나온 책이라 표지는 현재의 멋없는 허연 표지가 아닌 복거일씨 사진 옆에 있는 그림표지의 책이다. 화가가 누군지는 까먹었다.)

    

 

한겨레신문 2011.9.17  미국이 2차대전서 패한 뒤 일본의 식민지가 됐다면… 

승·패전국이 뒤바뀐 가정법
‘대체된 역사’에 맞서는 주인공
‘소설속의 소설이 된 현실’ 구성
복거일 ‘비명을 찾아서’의 원형

미국의 에스에프 작가 필립 케이 딕(1928~1982·사진)은 <블레이드 러너> <토탈 리콜> <마이너리티 리포트> 같은 할리우드 영화의 원작자로 명성이 높다. 2013년까지 그의 대표 장편 열두 권을 완간한다는 목표로 출범한 폴라북스의 ‘필립 케이 딕 걸작선’이 그 네 번째 주자로 1963년 휴고상 수상작 <높은 성의 사내>를 내놓았다. 국내에서는 2001년에 한 차례 번역 출간된 적이 있다.

<높은 성의 사내>는 2차대전에서 미국과 영국, 소련 등 연합국이 아니라 독일·일본·이탈리아 추축국이 승리했다는 가정 아래 전개된다. 소설 속 현재인 1962년의 미국은 독일이 지배하는 동부 로키산맥연방과 일본이 지배하는 서부 태평양연안연방으로 양분되어 있다. 이른바 ‘대체역사소설’이다. 미래와 외계를 주된 영토로 삼던 에스에프 장르가 상상력의 물꼬를 반대 방향으로 튼 것이 대체역사소설이다. 한국에서는 복거일의 등단작 <비명을 찾아서>(1987)가 이 장르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비명을 찾아서>의 앞부분에서 작가가 <높은 성의 사내>를 다른 몇 편의 대체역사소설과 함께 언급하고는 있지만, 실제로 이 작품을 읽어 보면 두 소설 사이의 유사성은 예상을 뛰어넘는다. 우선, 2차대전에서 일본이 패전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각각 미국과 조선을 식민 지배하고 있다는 설정부터가 동일하다. <높은 성의 사내>의 주인공인 미국인 로버트 칠던은 <비명을 찾아서>의 조선인 주인공 박영세(기노시다 히데요)에 해당한다. 두 사람은 처음에는 제 나라를 일본이 지배하는 현실에 적응하는 듯 보이지만, 소설이 진행되면서 그런 상황이 부당하다는 자각에 이르고 어떤 식으로든 그 현실에 맞서는 쪽으로 나아간다.

“나는 앞으로는 조선인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조선인을 대변하는 시를 쓰려고 해.”

“이걸 만든 사람들은 미국의 자랑스러운 예술가들입니다. 나도 포함해서 말입니다. 그러니 싸구려 부적에 관한 제안은 우리에 대한 모욕입니다. 사과해 주시기 바랍니다.”

앞의 인용문은 기업체 과장이자 시인이기도 한 박영세가 직장 동료인 일본인 여성 시마즈 도키에한테 하는 말이고, 뒤엣것은 칠던이 일본인 가소우라에게 하는 말이다. 주로 일본인 고객을 상대로 미국의 골동품과 공예품을 파는 것이 칠던의 직업인바, 미국의 예술적 수공예품을 기계를 이용해 대규모로 찍어내 팔라는 가소우라의 제안이 그에게는 모욕으로 다가온 것이다. 박영세가 일본인 장교를 살해하고 조선 임시정부가 있는 상하이로 망명을 떠나는 데 비해 칠던은 이렇다 할 적극 행동에 나서지는 않지만, 적어도 식민 현실에 대한 회의와 저항이라는 점에서 두 주인공은 비슷한 움직임을 보인다.  

두 소설의 더 크고 근본적인 유사성은 따로 있다. 복거일의 작품에서 박영세가 조선인으로서의 각성에 이르는 계기는 한 권의 책이 제공한다. 지은이가 밝혀지지 않은 <도우꾜우, 쇼우와 61년의 겨울>이라는 소설이 그것이다. 일본이 2차대전에서 패배하고 조선은 그 지배에서 벗어난다는 등 우리가 아는 실제의 역사가 이 책의 기둥 줄거리를 이룬다. <높은 성의 사내>에도 한 권의 소설이 등장한다. 호손 아벤젠이라는 작가가 쓴 <메뚜기는 무겁게 짓누른다>라는 작품이다(아벤젠이 높은 성채와 같은 요새에 숨어 산다는 데에서 소설 제목이 비롯됐다). 이 소설 속 소설 역시 2차대전에서 추축국이 아닌 연합국이 승리했다는 ‘가정’을 담고 있다.

“라이스가 화나는 건 이 부분이었다. 아벤젠이 쓴 책에 묘사된 아돌프 히틀러의 죽음, 히틀러와 나치당, 독일의 패배와 파멸. 그 모든 것이 왠지 더 웅장한데다 현존하는 실제 세계, 그러니까 독일이 패권을 차지한 지금 상황보다 옛 정신과 더 맞아떨어지는 것 같았다.”

샌프란시스코 주재 독일 영사 후로 라이스의 독후감이 잘 보여주듯이, 이 소설 속 소설의 역할은 ‘가능할 수도 있었던 현실’을 상기시키는 데에 있다. 복거일의 소설에서 <도우꾜우, 쇼우와 61년의 겨울>이 박영세에게 그랬듯이, 딕의 소설에서 <메뚜기는 무겁게 짓누른다>는 칠던과 라이스를 비롯한 주요 등장인물들에게 지금과는 다른 현실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또 다른 주요 등장인물 줄리아나가 ‘그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 관해 말한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에 놓인다.

<높은 성의 사내>는 딕의 소설을 원작 삼은 영화들만큼 충격을 주거나 흥미를 유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복거일의 소설 <비명을 찾아서>의 ‘원형’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는 한번쯤 읽어 볼 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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