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장 안타까운 소식, 아니 충격적인 소식 중 하나가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에 관한 뉴스이다. 나 또한 학교에서 근무하고 여하튼 현재의 교육감에 대한 신뢰와 지지를 표하는 상황에서 나타난 문제이기에 더욱 충격이 컸다. 보수 언론의 태도는 역시나 '물 만난 물고기'마냥 똥물에서 똥물 튀기면 좋다고 놀아대고 있다. 하지만 이중적인 잣대 또한 문제일 것이다. 뇌물이라면 모두가 그렇다고 판단하고 문제가 있다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과도한 정치 몰이로 인한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낭비할 필요 또한 없을 것이다.  

이번 사건에 대한 진보, 보수 언론 모두 약간은 혼란된 논점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만큼 이번 사건의 복잡성과 사안의 민감성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최근에 읽은 곽노현 교육감 관련 칼럼 중에 맘에 드는 글을 하난 스크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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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2011.8.6   버핏과 곽노현이 칸트를 만났을 때

칸트는 이타적 행위가 의무감이
아니라 동정심에서 나왔다면
도덕적 가치가 떨어진다고 봤다

“미국인 대다수가 아등바등 사는 동안 나 같은 ‘슈퍼부자’들은 비정상적인 감세 혜택을 받고 있다. 나는 지난해 세금으로 소득의 17.4%를 냈으나 내 직원들은 33~41%를 냈다. 부자들에게서 세금을 더 걷어 재정적자를 줄여야 한다.” 미국의 백만장자 워런 버핏이 최근 ‘부자증세’를 촉구하면서 한 말이다. 참으로 ‘착한 고백’이다. 부자들이란 게 본디 타고난 욕심꾸러기라는 세간의 생각을 뒤집는다. 감세를 비정상적인 혜택이라고 표현한 대목에선 공동체를 걱정하는 ‘금융계의 현인’다운 성찰이 느껴진다. 버핏은 지난해 6월엔 “살아 있을 때 재산의 절반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버핏의 고백에 대중은 환호했다. <엠에스엔비시>(MSNBC) 방송이 5만5000명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95%가 버핏의 증세론에 지지를 보냈다. “재산을 기부하면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벌이는 쇼”라거나 “부자로 계속 살아가기 위해 시장을 살리려는 속셈”이라는 따위의 지적은 묻혔다. 버핏은 여느 부자와 달리 도덕적이라는 칭찬을 들었다.

“거지가 빵가게에 들어가 손을 벌렸다. 주인은 거지에게 갓 구운 빵 한 덩이를 건넸다. 행여 인정머리 없는 사람이라는 소문이 나면 동네에서 장사하기가 힘들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스쳤기 때문이다. 주인의 행위는 도덕적인 것인가?”

독일의 철학자 칸트라면 버핏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그리고 버핏에게 조금도 환호하지 않았을 것이다. 버핏은 도덕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칸트가 보기에 어떤 행위의 도덕적 가치는 결과가 아니라 동기에 있다. 또한 그 동기는 어떤 계산이나 의도가 아니라 ‘순수한 의무’에서 비롯해야 한다. 버핏의 고백은 재정적자를 줄여야 한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니 도덕적이지 않다. 빵집 주인의 선행 역시 평판이 나빠지는 것을 우려한 장삿속에서 비롯한 것이니 부도덕하다.

“박 교수가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고 다닌다는 소식을 들었다. 선거 과정에서 많은 빚을 져 자살까지 생각한다는 얘기였다. 박 교수의 성품상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처지를 모른 척할 수만은 없어 2억원을 지원했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에게 2억원을 줬다고 시인하면서 설명한 전후사정이다. 박 교수에 대한 동정이 지원으로 이어지는 사연이 절절하다. 금품이 오가는 게 문제가 됐을 때 흔히 나오는 “몰랐다”거나 “기억나지 않는다”는 따위의 변명과는 차원이 다르다. 자신의 행위를 이타적 선행으로 규정하는 곽 교육감의 해명은 2억원을 ‘선의에 입각한 돈’이라고 명명한 데서 더욱 선명해진다.

하지만 칸트는 곽 교육감에게도 결코 환호하지 않았을 것이다. 칸트는 이타적 행위가 의무감이 아니라 동정심에서 나왔다면 “그것이 아무리 옳고, 아무리 다정해도” 도덕적 가치가 떨어진다고 봤다. 동정심은 “격려를 받을 자격이 있지만 존중받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선행의 동기는 그것이 옳기 때문이라야지, 자신에게 만족감이나 기쁨을 주기 때문이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 동기가 진실을 숨기거나 잇속을 챙기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위선이다.

버핏과 달리 곽 교육감에게는 비난이 쏟아졌다.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도덕적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칸트가 보기에 둘 다 도덕적으로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인데, 사람들은 곽 교육감에게만 가장 부도덕한 사람에게나 할 손가락질을 했다. 대중은 버핏의 고백에 속아 넘어갈 만큼 어리석은 것일까, 아니면 곽 교육감의 해명에 속지 않을 만큼 현명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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