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차원의 좋은 시민 되기야말로 전체 차원의 공공성 제고에 핵심적인 요소"라는 박명림 교수의 애기는 현실 사회 문제의 많은 부분의 실마리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현재의 우리들은 너무나도 '공과 사'를 구분하는 건 아닐까?     

생각난 김에 박명림 교수의 저서를 찾아보니 생각보다 많지는 않다. <역사와 지식과 사회>는 얼마전에 나온 책이다. 기억나는 책은 김상봉 교수와 공동으로 지은 <다음 국가를 말하다>가 있다. 예전부터 찜해 놓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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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2011.6.1   공공성, 사회적 영성, 시민성

모든 구성원들이 좀더 인간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공동체를 만들어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짧지 않은 시간 ‘세상읽기’를 써오면서 다룬 문제는 결국 이것 하나가 아니었나 싶다. 그동안 부족한 글을 읽어준 독자들에게 감사드리며 지금 공동체의 모습을 다시 상념해 본다.
지금 우리는 정치와 경제, 교육과 복지, 안보와 평화 문제를 둘러싸고 많은 말들을 목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점은 위의 영역들은, 소크라테스의 말을 빌리면, ‘인간에 관계된 문제’이지 인간문제 자체는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인간에 관계된 문제’ 때문에 인간과 인간문제를 놓쳐서는 안 된다. 우리가 인간에 관계된 문제를 개선하려 논의하는 궁극적 이유는 바로 인간을 위해서이다. 우리의 모든 선택과 언설의 궁극적 목적은 인간을 위하려는 그것 하나면 충분하다. 모든 이념과 권력은 다만 인간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사회주의 붕괴와 신자유주의 20년을 경과하며 오늘날 인간과 사회문제의 핵심가치로 공공성의 원리가 분출하고 있다. 사회주의의 국가전체주의와 폭력성, 신자유주의의 시장전체주의와 사사성을 모두 넘으려는 시도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이 나라는 지금 공공성의 해일 같은 붕괴에 직면했다. 철저히 무너진 공공성을 누가 언제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

대한민국 초유의 가공할 최고경영자(CEO) 대통령 담론이 공화국을 장악하고, 최소 시민자격조차 결여된 사람들이 국가 고위공직에 대표시민으로 계속 임명되더니, 끝내는 국가 공공성 수호의 보루인 감독·감사·검찰·공정·사정 기구 자체가 전면적으로 부패·도괴하고 있다. 검찰·금융감독·시장감시·감사·민정·공정거래 관련 기구들의 공적 윤리의 붕괴와 사사화는 우리가 과연 최저 공공성이라도 갖춘 민주공화국에서 살고 있는지 묻게 한다. 필자가 오랫동안 공공 감독기구들을, 삼권분립을 넘은 제4부로서, 감독부로 독립시켜 의회와 국민의 통제 아래 두자고 주장한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국가 고위공직 선출과 임명에서 공적 시민자격의 붕괴와 국가 공공기구들의 공공성 해체가 지진과도 같은데, 시민자격조차 결여된 장관들 밑에서 누가 공공성을 지키고, 누가 공직을 공적 헌신으로 삼겠는가? 여기서 우리는 개인 차원의 시민성이 공동체 차원에서는 공공성의 필수요소임을 알게 된다. 아버지로서 직장인으로서 좋은 인간은, 가공할 부패와 비리 사례들에서 보듯, 얼마든지 나쁜 시민일 수 있다. 즉 개인 차원의 좋은 시민 되기야말로 전체 차원의 공공성 제고에 핵심적인 요소인 것이다.

반면 공공성 제고는 개인성의 보장 수단이기도 하다. 우리가 육아·복지·의료·교육 부문에서 예산배분을 포함한 사회적 공공성의 제고를 주장하는 이유는, 그를 통해 높아질 개별 삶의 안정성, 평안성, 복지성, 예측가능성 때문이다. 공공성은 개인 삶의 질 문제인 것이다. 즉 공공성의 목적은 개인성인 것이다. 결국 개별적 시민성이 전체 공동체의 공공성으로 연결되고, 공동체 공공성의 제고는 개인 삶의 질을 높여준다. 때문에 공공성과 개인성, 공공과 사사는 분리 불가능하며, 모든 인간에게 그것들은 시민성을 고리로 통합되어 있는 것이다.

공적 삶과 사적 삶에 대한 인류 최초의 고민을 열었던 소크라테스로부터 20세기 세계와 한국의 최대 사상가인 한나 아렌트와 함석헌이 한목소리로 한 개인에게 공사는 분리 불가능하며, 그것이 통합된 삶이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삶이라고 강조한 연유는 여기에 있다. 우리들 삶의 본원적 가치의 회복을 위해 공동체를 바르게 사랑하는 사회적 영성, 즉 깨어있는 시민성을 갖춘 영혼이 되자. 

박명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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