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알라딘 블로그이신 나비님의 글을 통해 알게된 책이었다. 재미있겠다 했는데, 관련된 신문 글이 있어 스크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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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 2011.2.21 개인과 사회에 새겨진 음식 유전자
[함께하는 교육] 우리말 논술 /
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난이도 수준-고2~고3]
17. 대가의 식탁을 탐하다-무상급식은 ‘공짜 점심’ 문제가 아니다!
“당신이 먹은 음식을 말해보라. 당신이 누구인지 알려주겠다.” 브리야 사바랭이 쓴 <미식예찬>에 나오는 말이다. 유명인들의 식사 습관을 보면 이 말이 거짓은 아닌 듯싶다. 나폴레옹만 해도 그렇다. 나폴레옹이 식탁에 머무는 시간은 12분을 넘지 않았다고 한다. 황제 나폴레옹은 매너나 격식하고도 거리가 멀었다. 포크나 스푼 대신 맨손으로 음식을 먹는 일도 잦았다. 심지어 남의 잔을 들이켜기도 했단다.
나폴레옹은 ‘군인은 위장으로 진군한다’는 말을 남길 만큼 부하들의 먹거리에 신경을 썼다. 그러나 그는 미식가는 아니었다. 나폴레옹이 좋아하던 음식은 콩, 양가슴살구이 등 간단히 요리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는 값싼 닭고기 요리인 ‘치킨 마렝고’를 즐겼다. 이는 우리의 닭볶음탕 정도 되는 음식이라 한다. 평생 전쟁터에서 살았던 ‘전투형 인간’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프랑스의 대문호인 발자크의 커피 사랑은 유명하다. 학자들에 따르면, 그는 하루에 무려 50잔씩 커피를 마셨단다. 심지어 하루 100잔을 마셔댔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발자크는 커피 자체를 즐긴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글 쓰기 위해 커피를 ‘복용’했다.
발자크가 쏟아낸 작품 수는 엄청나다. 장편소설만 100여편에 이를 정도다. 1830년부터 1848년 사이에는 소설만 100편을 남겼고, 1830~31년 두해 동안은 신문칼럼, 에세이 등 145편에 이르는 각종 글을 써댔다.
그는 ‘글 공장’처럼 작품을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늘 엄청난 빚을 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피로한 정신을 깨우는 데는 커피만한 것이 없다. 커피를 마시면 “비유법의 기갑부대가 어마어마한 화약을 배달하고, 전차와 탄약으로 무장한 논리의 포병이 뛰기 시작하며, 위트의 축이 명사수의 자세로 꼿꼿이 일어서며 (중략) 종이는 잉크로 뒤덮이기 시작한다.” 커피 마시는 습관만으로도 발자크의 절박한 상황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음식은 사회의 성격까지도 짐작하게 한다. 유럽의 노동자들은 술을 즐겨 마셨다. 힘든 일상을 견디기 위해서다. 일이 힘들수록 알코올 소비도 늘어났다. 커피는 이런 분위기를 뒤집어 놓았다. 커피와 함께 ‘술 취한 유럽’은 ‘각성된 유럽’으로 거듭났다.
커피는 늘어나는 일을 견디도록 노동자들을 몰아붙였다. 원래 시계에는 시간을 나타내는 바늘만 있었단다. 세세하게 몇 분인지까지 따질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분을 나타내는 바늘은 공장에 기계가 많아지면서부터 생겼다. 거침없이 돌아가는 기계는 허덕이는 사람들을 다독이지 않는다. 지친 노동자들을 기계 속도에 맞추게 하는 데 있어 커피는 더없이 좋은 음료였다. 커피는 공장이 늘어나는 추세에 맞추어 세상으로 퍼져 나갔다. 이쯤 되면 일상에 널린 커피 자판기들이 슬프게 다가온다. 느긋하게 차를 즐기던 옛날의 풍경과 ‘뛰면서 즐기는 한 잔의 여유’를 앞세우는 현대인의 삶을 견주게 되는 탓이다.
음식은 한 사람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나타내는 잣대가 되곤 한다. 한번 길들여진 입맛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팝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는 ‘정크푸드’를 즐겼다. 그가 사랑한 피넛버터 바나나 샌드위치의 모습은 어마어마하다. 한쪽에는 땅콩버터와 썬 바나나 조각을 얹고, 다른 쪽에는 버터, 꿀, 베이컨을 올린다. 이런 음식은 당연히 몸에 좋을 리 없다.
그럼에도 이런 정크푸드는 엘비스 프레슬리에게는 ‘솔 푸드'(soul food)였다. 누구나 어린 시절은 푸근하고 그립게 다가오는 법이다. 가난했던 청소년기에 프레슬리가 꿈꾸었던 음식은, 그가 어른이 되어서도 헛헛한 마음을 채워주는 솔 푸드로 자리잡았다.
고흐도 마찬가지다. 그는 감자에 유독 매달렸다. 고흐는 그림에 필요한 도구를 사느라 가진 돈을 다 써버리기 일쑤였다. 그럴 때면 몇 주일을 커피와 빵만으로 끼니를 때워야 했다. 고흐는 꼭 주머니 사정이 나빠서만 고단한 삶을 살았던 것이 아니다. 젊은 시절, 그는 목사의 길을 걷기도 했다. 그만큼 고흐는 욕구를 억누르는 생활이 옳은 삶이라고 믿던 사람이었다. 고흐는 편지에도 ‘오직 땀을 흘린 자만이 빵을 먹을 권리가 있다’는 말을 곧잘 쓰곤 했단다. 농부들이 감자만으로 식사를 해결하듯, 자신도 검소하고 소박한 먹거리에 만족해야 한다는 자세로 살았다.
한편 음식은 세상을 바꾸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호찌민은 베트남에서 프랑스를 몰아낸 혁명가이다. 하지만 호찌민의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독립을 찾으면 뭐하나, 사람들이 굶어 죽고 있는데.” 호찌민의 걱정은 끝이 없었다. 그는 마침내 ‘스파르타식 식량 계획’을 펼친다. 정부 지도자들은 하루에 밥 두 공기, 얇은 생선 조각, 그리고 가지절임과 맑은국만을 먹어야 했다.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일주일에 한 끼를 더 굶었다. 더 가난한 이들과 식량을 나누기 위해서다. 모두 함께 모여 공동식사를 했기에 빈약한 식탁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었다. 음식을 통해 온 나라가 하나라는 믿음을 강하게 심어준 셈이다.
이렇게 보면 음식에는 개인과 사회의 삶과 가치관이 오롯하게 담겨 있다. ‘친환경 무상급식’을 둘러싼 논란이 여전히 교육계를 뒤흔드는 요즘이다. 급식은 ‘점심 식사 해결’ 수준을 넘어서는 논쟁거리이다. 음식을 단지 ‘일을 하기 위한 연료’로 받아들이는 학생들은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음식을 먹으면서 농부의 땀방울과 환경의 소중함을 느끼는 아이들이 얼마나 될까? 이런 물음이 가슴 아프게 다가오더라도, 급식비를 국가가 대주어야 한다는 주장은 또다른 문제다. 먹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다. 삶의 핵심 문제는 가장 일상적인 부분에서 나오기 마련이다. 재미있는 책인 <대가의 식탁을 탐하다>가 심각한 읽을거리로 다가오는 이유다.
철학박사, 중동고 철학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