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2011.1.10  “동해 표기 많이 찾아내면, 독도 자연스레 우리땅”
[한겨레가 만난 사람] 국제지도수집가협 한국대표 김태진씨 


» 일년에 절반은 유럽의 고지도 경매시장에서, 나머지 절반은 뉴욕과 서울을 오가며 인터넷 도서유통 사업가와 ‘동해·독도 지킴이’로 살고 있는 김태진씨가 연초 <한겨레>를 찾아 그동안 수집해온 한국 고지도를 설명하고 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애국자냐고요? 외국서 오래 살면 누구나 애국자가 되지요. 저 역시 1988년 미국 땅을 밟은 순간부터 한번도 ‘한국’을 잊은 적이 없으니까요.”
뉴욕과 한국을 오가며 영어 원서 전문 인터넷서점 티메카(TMECCA)를 운영하고 있는 재미동포 김태진(47)씨의 대답은 지극히 모범적이다.

물론 그의 말처럼, 나라 밖으로 나가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고들 한다. 이런저런 꿈이나 말 못할 사연을 안고 이 땅을 떠나 사는 동포들에게 ‘조국’의 의미는 한층 절실해진다. 한국산 라면 한가닥에 눈물나게 감동하기도 하고, 이국의 도시에서 풍기는 김치찌개 냄새를 쫓아 하루종일 뒷골목을 헤매기도 하고, 소박한 향수에서부터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국가 대항 경기를 보며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외치며 일희일비하고…, 이런 정서들을 애국심의 발로라고 친다면 700만명을 헤아리는 재외 한인 누구나 예외없이 애국자들일 것이다.

하지만 그의 또다른 명함인 고지도 전문 사이트 ‘파인드 코리아’(www.findcorea.com) 운영자로서는 100% 정답은 아니다. 그에게 ‘애국’은 일상의 업이자 삶의 주요한 목적이다. 국제지도수집가협회 한국 대표인 그는 동북아역사재단 중심으로 추진중인 서양 고지도 확보 ‘전쟁’의 최전선에서 뛰고 있다. 바로 일본의 야욕으로부터 ‘동해’와 ‘독도’를 지키는 싸움이다. 한-일뿐만 아니라 중-일, 중-러 사이의 영토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신묘년 새해 그는 어떤 ‘영토 수호 전략’을 구상하고 있을까?

-우선 ‘파인드 코리아’가 궁금하다.

“세계 지도, 엄격하게 얘기하자면, 16세기 서유럽인들이 신세계 신대륙을 찾아 동양으로 탐험에 나서면서 작성되기 시작한 서양 고지도 가운데 한국, 동해, 독도가 표기된 지도들을 수집해 공개해 놓은 사이트다. 2005년부터 최근까지 확보한 세계 20여개 대형박물관의 고지도 4000여개의 목록과 한국 관련 고지도 원본 이미지를 찾아볼 수 있다. 2009년 8월15일, 광복절을 기념해 사이트를 열었는데 1주일 만에 일본인 해커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그래서 학술연구용으로 회원에게만 무료로 공개하고 있다. 국제지도수집가협회 회원인 한 대학교수로부터 제자들을 비롯해 국내 연구자들이 고지도의 원본을 실제로 본 적이 거의 없다는 얘기를 듣고 100여장(5억원어치)을 제공하기도 했다. 성신여대 지리학과 대학원 과정에서 이 사이트를 활용한 석사 논문 2편과 박사 논문 1편이 나왔다. 개인적으로 큰 보람이다.”

-애초부터 고지도 연구나 수집에 관심이 많았나?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고려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88년 미국으로 유학와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학을 걸쳐 노스럽대학에서 컴퓨터사이언스를 전공했다. 99년 한국-미국-유럽을 잇는 인터넷서점 티메카를 창업했다. 처음엔 모든 종류의 책을 취급하기도 했지만 점차 한국 쪽 수요가 많은 영어나 외국어 원서 유통에 집중해 지금까지 국내 공공기관에 납품하고 있다. 그러다 2005년 국립중앙도서관을 통해 한국 관련 고서나 고지도를 구입해 달라는 의뢰를 받으면서 조사에 나섰다. 이전까지 한국은 일본을 통해 간접구매를 해왔는데 그때부터 옥션·크리스티·소더비 등 국제 경매시장에 직접 참여하게 된 것이다. 서양문물 개방은 그렇다 치고, 한-일 강제병합 시기부터만 잡아도 무려 1세기나 일본에 뒤진 셈이다.”

‘동해·독도 표기’ 서양 고지도 공개사이트 운영
정부기관 의뢰로 수집의 길…4천여 목록 모아
“한국해·독도 모두 나온 ‘아틀라스’ 낙찰 기뻐”

-그러고 보니 창업 초기 아마존닷컴에 도전하는 유망 벤처기업가로 소개된(<한겨레> 2000년 7월24일치) 적도 있는데?

“그때는 정말 야심만만했다. 이스트우드북스에서 5년간 국제 도서시장을 섭렵하면서 50만여권의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갖췄고, 1만5000여개의 전세계 학술세미나 정보, 전문학술포럼 네트워크도 서비스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자신 있었다. 그런데 시기적으로 아마존에 뒤진데다 자금력도 달려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고지도 경매에 뛰어들면서 로스앤젤레스 사무실을 접고 2006년 뉴욕으로 옮겨 제2 창업을 했다. 그날이 바로 8월15일이어서, 앞으로 해마다 기념할 만한 일을 하자고 결심했다. ‘파인드 코리아’가 그 시작인 셈이다.”

-고지도에 대한 전문지식이나 경험이 별로 없었다면 쉽지 않았겠다.

“그래서 우선 한국 관련 고지도의 목록과 소재 조사에 몰두했다. 1년 만에 1000개의 목록과 이미지를 파악해서 제시했더니 모두들 놀라워했다. 첫출발이 좋았다. 2007년 소더비에서 1735년판 프랑스 지도 제작자 당빌(D’Anville)의 지도첩 <아틀라스>(신중국지도첩)를 낙찰받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 전도(Royaume de Coree)와 함께 한국해(Mer de Corea·동해)·울등도·독도가 모두 표기된 가장 오래된 서양 고지도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보다 115년 앞선다. 청나라 강희제 때 프랑스 예수회 선교사들에게 주문해 최초의 실측지도인 <황여전각도>를 제작했는데, 선교사들이 이 정보를 몰래 본국에 보내 당빌이 옮겨 그린 것이다. 이 지도첩에는 일본만 나온 지도에 ‘한국해’로 표기한 것도 들어 있다. 이를 계기로 국내 주요 기관들의 구매 대행도 맡게 됐다.”

-서양 고지도에서 우리나라와 ‘동해’는 언제부터 등장하나?

“16세기 식민지 개척에 나서면서 항해용 ‘해도’를 작성하는 연대와 일치한다고 보면 된다. 마젤란과 바스쿠 다가마의 포르투갈에서 시작해 스페인, 콜럼버스의 이탈리아,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독일 순이다. 특히 인쇄술이 발달한 18세기 프랑스 제작본에서 많이 등장하는데 한국해·동방해·동해 등 여러가지로 나타난다. 인쇄본으로는 1595년 이탈리아에서 제작된 세계전도에 ‘조선해’(Mer de Corai)가 처음 등장한다. 원본은 이탈리아의 한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어 구할 수 없다. 이 원본을 보고 필사한 1615년 고딩호 제작본이 있다. 우리나라가 등장하는 필사본으로는 1568년 포르투갈에서 제작된 것으로, 스페인 마드리드도서관에 있다. 더 오래된 것은 페르시아에서 제작한 것으로 ‘신라’가 등장하는 기록이 있는데 현재 원본은 남아 있지 않다. 내가 경매에서 구입한 가장 오래된 지도는 1594년 제작된 인쇄본으로 2009년 초 옥션에 나왔다. 2000만원쯤. 우리나라를 여러개의 섬으로 그려놓았는데, 쓰시마도 포함돼 있다. 일본 역시 여러개의 섬을 ‘새우머리 모양’으로 나열해놓았다. 최근엔 1646년 제작된 더들리(Dudley)의 ‘조선해’ 표기 원본도 구했다.”

-지금까지 우리 쪽에서 공개한 고지도에는 ‘한국해’와 ‘독도’ 표기가 많은데 전체적으로 보면 어떤가?

“‘파인드 코리아’의 지도 목록을 분석한 김민희(성신여대 석사 논문)씨의 내용을 보면, 16세기까지 중국해·동양해로 나오다 1615년 고딩호 제작본부터 한국해가 등장해 18세기 후반까지 한국해 160개, 일본해 21개로 압도적이었다. 그러다 19세기 들어서 역전당한다. 특히 19세기 초 나가사키에 살았던 네덜란드 학자 시볼트가 서양 지도의 전범으로 꼽히는 <항해도첩>(라 페루즈·1797년)을 근거로 제작한 일본 지도를 서구에 소개할 때 원본의 ‘한국해’를 ‘일본해’로 고친 영향이 크다. 19세기 전반에는 ‘일본해 66개, 한국해 34개, 병기 4개’로, 후반에는 ‘일본해 71개, 한국해 4개, 병기 1개’가 된 상태다. 같은 대학의 최미선씨는 석사 논문에서 ‘세계 주요 100대 지도 사이트’를 분석했는데, 일본해 41, 병기 3, 복합 10, 무표시 46개였다. 지금 현상적으로는 우리 쪽이 불리하게 보이지만 역사적 연원과 배경을 차근차근 따져서 합리적이고 냉철하게 접근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

18C 한국해 ‘압도적’ 19C 일본해로 ‘역전’
세계지도 ‘동해 병기’로 바꾸는게 1차 목표
“미 의회 미분류 고지도, 한국 주도적 참여를”

-다른 인터뷰에서 ‘한국의 아킬레스건’도 있다고 했던데.

“서울대 규장각에서 소장하고 있는 <곤여만국전도>(보물 제849호)의 필사본이다. 16세기 말 중국에 천주교를 최초로 전래한 이탈리아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가 만든 목판 인쇄본을 선조 때 베이징에서 파견됐던 사신 또는 소현세자 일행이 가지고 왔고, 1708년 숙종 때 관상감에서 모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바로 ‘일본해’로 적혀 있어 현재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에서 첫번째 증거로 제시해 놓고 있다. 물론 우리 학자들은 ‘단지 한-일 두 나라 사이의 일본 쪽 바다를 일본해로 부른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실제로 ‘동해-창해-일본해’처럼 두 나라 연안과 그 사이 공해를 구분해 적어놓은 사례도 있고, 19세기 초 일본인이 제작한 <신정만국전도>처럼 ‘한국해’로만 표기한 사례도 얼마든지 있다.”

-그동안 고지도 찾기 활동을 하면서 가장 힘들거나 곤란한 경험이 있다면?

“우선 ‘곤여만국전도’를 놓쳐서 아쉽다. 전세계에 원본이 7개쯤 있는데, 일본은 3개나 갖고 있고 나머지도 박물관이나 도서관에 소장된 상태여서 구하기가 어렵다. 최근에 드물게 경매에 나와 한국 기관들에 구매 제의를 했으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값(100만달러)이 비싸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당장 우리 쪽에 유리한 사례만 찾으려는 경향은 문제다. 또 유럽의 경매시장이나 책박람회, 고서점 등을 샅샅이 뒤지고 다니기 때문에, 단순히 동해나 독도 지도만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아주 가치있는 물건들도 종종 발견하는데 한국이 아닌 일본이나 다른 나라에 팔릴 때가 많아 안타깝다. 예를 들어 한국전쟁 60돌을 넘어 참전 미군 세대가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소장품들이 경매시장에 쏟아져나오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든든한 후원자가 없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끼리 과열 경쟁하는 것도 문제다.”

-한국 정부나 학계 등에 제안하고픈 얘기가 있다면?

“감히 바람이 있다면 고지도 찾기를 비롯해서 동해·독도 관련 조사와 연구작업이 꾸준히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뤄졌으면 한다. 정부 쪽에서는 정책과 물적 지원이 중요하다. 국가 예산만으로 한계가 있으니 일본이나 미국처럼 민간기업 쪽에서도 후원자로 나서줬으면 좋겠다. 기관이나 개인마다 별개로 진행하다 보니 연구가 진전되지 못하고 반복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학계에서는 연구 성과의 공유와 연대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고지도에는 대부분 고어가 쓰여 있어서, 지리학자들만으로는 해독이 어렵다. 언어학이나 문화인류학 같은 연관 분야 전문가들의 참여도 절실하다.”

-그동안 경험에 비춰 동해·독도 지키기 전략의 방향을 제시한다면?

“사실상 국제 경매시장에서 홀로 뛰다 보니 벅찰 때가 많다. 일본은 알려진 경매 전문가만 4명이다. 프랑스 국립박물관의 사서가 지난해 들려준 일화다. 회원 1명이 1회 4개씩 고지도 열람이 가능한데, 어느날 한국 외교관 10명이 왔다 가더니 1주일 뒤에 일본에서 20명이 몰려오더란다.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고, 일본의 전략을 파악하는 일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출발은 100년 뒤졌지만 지금이라도 정보의 기선을 제압하면 재역전할 수 있다. 미 의회 도서관만 해도 대부분 아시아 지도인 고지도 7000여개 가운데 1000개만 분류된 상태인데, 한국 정부가 후원을 제공해 분류작업을 주도한다면 엄청난 부가가치를 얻을 수 있다. 세계지도협회 총회 같은 국제행사 때 한국 연구자들을 인턴으로 파견해 전문인력을 키우고 정보망을 만들어내는 방법도 유용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세워놓은 실천전략이 있다면?

“비전문가로 출발한 까닭에 해야 할 공부가 너무 많고 전문가들의 조언이 아쉬울 때가 많았는데 2009년 일본 관련 강연회에서 처음 뵌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님의 조언과 감수가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특히 ‘지도는 보는 것이 아니라 읽어내는 것’이라는 말씀을 지침으로 새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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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om www.evernote.com 2014-04-19 05:28 
    전지연-지리관련소식 - “동해 표기 많이 찾아내면, 독도 자연스레 우리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