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읽은 숲의 서사시를 생각나게 하는 내용이다. 땅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그리고 단순한 나무심기만은 해결책은 아니라는 사실도 일깨워준다. 전지구적인 여러 운동을 진행하는 이들이 명심해야할 점 한가지, 비정부기구 같은 외부단체도 중요하고 자본금도 중요하지만, 그 지역에 터를 박고 있는 지역민이 중요해야 한다는 점이다. 

 

곡물과 나무의 ‘상생’ 배고픈 아프리카의 희망  

르몽드디플로마티크 [24호] 2010년 09월 03일 (금)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던 하루가 또 지나가고, 부르키나파소에 석양이 내려앉는다. 이곳 야쿠바 사와도고의 농장에서는 훨씬 시원한 바람이 느껴진다. 수염이 희끗희끗한 농부 사와도고는 자신의 나무와 밭을 살펴본다. 그에게서 나이보다 훨씬 젊은 사람의 여유가 느껴진다. 사와도고는 글을 쓸 줄도 읽을 줄도 모르지만, 농업 분야에 임업을 접목시킨 산림농업에서는 결코 뒤지지 않는 선구자이다. 최근 몇 년간 서부 사헬 지대를 변모시킨 이 새로운 농업 기술은 빈곤 인구가 기후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방식 가운데 가장 유망한 사례로 꼽힌다.

사와도고는 뿔닭 20여 마리를 가둔 울타리에 그늘을 드리우는 아카시아와 대추나무 부근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이 지역에서는 제법 규모가 큰 20ha의 농장은, 대부분 몇 세대 전부터 사와도고 집안이 소유한 땅이다. 1972~1984년의 극심한 가뭄 이후, 사와도고 일가는 이 땅을 포기했다. 연평균 강수량이 20% 감소하면서 사헬 지대의 식량 생산이 급격히 줄었고, 드넓은 대초원 지대는 사막으로 변모했으며, 기근으로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퇴비에서 싹튼 나무가 축복이 되다

사와도고는 “상황이 너무 심각해서 사고의 변화가 필요했다”고 한다. 그는 몇 세기 전부터 현지 농민이 사용해오던 ‘자이’라는 기술을 부활시켰다. 별로 깊지 않은 구멍을 파서 드문드문 오는 비를 작물 뿌리에 집중시키는 방식이었다. 그는 물을 더 많이 모으기 위해 자이의 크기를 더 늘렸다. 하지만 사와도고의 방식에서 획기적인 부분은 건기 동안 여기에 퇴비를 추가하는 것이었다. 주변에서는 쓸데없는 낭비라고 손가락질했다. 그런데 자이 구멍 속으로 물과 양분을 집중시키자 사와도고의 작물 수확량이 늘어났다. 예기치 못한 중요한 성과 중 하나는 퇴비에 섞여 있던 씨앗에서 나무가 자라나기 시작한 것이다. 조와 수수의 밭고랑에서는 나무의 싹이 올라왔고, 몇 차례 발아기가 지나자 몇 피트는 족히 되는 나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무는 땅을 비옥하게 만들면서 작물 수확량을 늘렸다. 사와도고는 “황폐화된 땅을 소생시키는 이 기술을 적용한 이후, 우리 가족은 기후가 좋은 해나 안 좋은 해나 식량 걱정에서 벗어나게 되었다”고 한다.

사와도고가 개발한 산림농업 기술은 이미 부르키나파소뿐 아니라 주변국인 니제르, 말리의 여러 지역으로 확대되어 수십만ha의 준사막 지대를 비옥한 땅으로 탈바꿈시켰다. 이 지역에서 30년간 연구하고 있는 네덜란드 지리학자 크리스 레이 박사는 “사헬 지대, 그리고 아프리카 전체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는 긍정적인 생태학적 이변”이라고 설명한다.

나무가 주는 수확 증대와 많은 혜택

이것은 기술적 용어로 ‘인공 천연 갱신’(Assisted Natural Regeneration)이라 부르는 방식이다. 나무를 작물 재배에 도입해 생기는 이점은 여러 학술 연구에서도 확인되었다. 나무는 바람으로부터 어린 새싹을 보호하고 토양의 수분을 지속시키며, 나무의 그늘은 뜨거운 태양 열기로부터 작물을 지켜준다. 낙엽은 땅 표면을 덮는 짚의 역할을 하여 토양의 비옥도를 높여주고, 가축 사료로 사용된다. 기근 때는 일부 나뭇잎이 식량으로 쓰일 수도 있다.
인공 천연 갱신 방식의 예찬자인 레이 박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예전에는 농부들이 네댓 번이고 밭에 씨를 뿌려야 했다. 씨앗이 바람에 날아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무가 바람막이 역할을 해 이제는 한 번만 씨를 뿌려도 된다.”

자이 기법을 비롯한 용수를 모으는 기법들은 지하수층을 되살리는 데도 기여했다. 레이 박사는 “1980년대에는 지하수층이 연간 약 1m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했다. “인공 천연 갱신 기술과 다른 용수 확보 기법이 도입된 이후 인구가 늘었는데도 지하수층이 5m 더 깊어졌다.” 일부 지역에서는 17m까지 늘어났다. 니제르에서도 유사한 효과가 나타났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와도고는 나무에 더 많은 애정을 갖게 되었다. 그의 농장은 이제 경작지라기보다는 숲에 가깝다. “나무가 더 좋아졌다. 다른 여러 가지 이점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나무가 많으면 많을수록, 수입은 더 늘어난다.” 나무는 가지를 다듬어 내다파는 등 또 다른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 토양에 이로운 작용을 하여 새로운 나무가 자라기 좋은 환경을 조성함은 말할 것도 없다. 사와도고는 산림의 비중을 높이면서 나무를 땔감이나 건축 자재를 비롯한 다양한 용도로 내다팔 수 있었다. 전통 약재로도 활용된다. 현대적 치료법이 드물고 값도 비싼 지역에서는 무시 못할 이점이다.

이 지역 농민이 나무를 심는 건 노벨상 수상자이자 활동가인 왕가리 마타이가 케냐에서 그린벨트 운동을 벌이며 주창한 방식과 다르다. 마타이의 방식은 훨씬 돈이 많이 들고 위험도 크다. 이곳 농부들이 하는 일은 오로지 자생적으로 올라오는 싹을 관리하고 보호해주는 것뿐이다. 서부 사헬 지대와 관련한 연구에서는 심은 나무의 80%가 1~2년 후 죽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자생적으로 올라온 나무는 그 지역 고유종이어서 생명력이 강하다. 돈이 전혀 들지 않는다.

말리의 농경지 곳곳에서도 나무들이 자란다. 소쿠라의 가난한 농가에서, 아이들은 영양실조로 뱃가죽이 늘어져 있다. 그러나 이곳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생활이 점차 나아지고 있으며 상당 부분은 나무 덕분이라고 한다.

6ha의 땅을 보유한 우마르 갱도는 조와 수수를 재배한다. 10년 전, 그는 영국과 말리가 산림농업을 장려하기 위해 만든 조직 ‘사헬 에코’(Sahel Eco)에 조언을 구했다. 오늘날 그의 땅에는 거의 5m 간격으로 나무가 심어져 있고, 물도 더 많아졌다. 그는 자신의 장방형 곳간을 보여주었다. 창고마다 식량이 비축되어 있었다. 다음 수확기 혹은 그 이상까지 식량이 확보된 상황이다. 한 농부는 이렇게 말했다. “전에는 대부분 곳간이 한 집에 하나씩밖에 없었다. 땅이 늘어나지 않았는데 지금은 곳간을 서너 개씩 갖고 있다. 가축도 더 많아졌다.”

말리의 엥데 지역에 사는 농부 살리프 갱도는 ‘바라호곤’이라 부르던 예전의 농민 단체를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부활시켰는지 이야기해준다. 이 단체는 여러 세대에 걸쳐 수목 관리를 독려해왔다. 그러다 식민지 시절(1898~1960) 프랑스 식민 정부가 모든 수목 자원을 국가 소유로 하고, 벌목업자들에게 채벌권을 매각했다. 이 규정은 해방 이후에도 계속되어, 가지치기를 하거나 벌목을 하는 농민은 처벌받았다. 게다가 차후의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농민들은 싹을 뿌리째 뽑아버렸고, 이런 행태가 지속되자 토양은 더  척박해졌다.

1990년대 초, 산림요원들의 고약한 행태에 화가 난 농민들이 이들을 살해하는 일이 발생하자, 말리 정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농민이 자기 땅에 있는 나무의 소유권을 갖게 하는 법을 표결에 부쳤다. 농민들은 ‘사헬 에코’가 홍보운동을 벌인 다음에야 이런 법의 존재를 알게 됐다. 이후 인공 천연 갱신 농법이 빠르게 확산된다. 인공 천연 갱신 기법을 옹호하는 호주의 농학자 토니 리나우도는 니제르에서 이런 방법이 실질적으로 적용된 건 정부가 벌목 금지 규제를 풀어준 뒤라고 말했다. 나무가 자라게 하려면 농민이 벌목할 권리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인공 천연 갱신 방식은 서부 사헬 지대 전체로 퍼지고 있다. 사람들이 눈으로 직접 성과를 확인함에 따라 농민에게서 농민으로, 마을에서 마을로 자연스레 확산된 것이다. 산림농업 덕분에 이제는 미국 지질조사소가 분석한 위성사진에서 니제르와 나이지리아의 경계 구분이 가능해졌다. 대대적인 나무심기 프로젝트를 진행한 나이지리아는 프로젝트가 실패로 돌아가 토양이 거의 헐벗은 상태가 돼버렸다.

2억 그루의 나무, 기적이 자란다

2008년 위성사진을 본 레이 박사와 리나우도 교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들은 농민들이 그렇게 많은 나무들을 자라게 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위성사진과 현지 조사 결과를 취합한 레이 박사는 니제르에서만 나무 2억 그루가 자라고 있고, 토질이 악화된 토양 약 3125㎢가  되살아난 것으로 추정한다. 최근 자료를 보면, 니제르 남부에서 산림농업을 실시한 지역이 지금의 가뭄을 가장 잘 이겨내는 지역과 일치한다. 레이 박사는 나무가 가뭄을 극복하는 데  경제적 무기가 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2005년 가뭄 때, 농민들은 벌목한 목재를 팔아 마련한 돈으로 곡물을 살 수 있었다.

일종의 무상 지식에 해당하는 인공 천연 갱신 방식은 외부 지원에 전혀 의지하지 않는 독립적 방식이다. 이런 방식은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학 지구연구소장이 주창하는 새천년 농촌 개발 모델과 두드러진 차이를 보인다. 삭스의 농촌 개발 계획은 종자, 비료, 깨끗한 물을 얻기 위한 시추 구멍, 임상 연구 등 농업 개발에 필요한 일련의 서비스를 농가에 제공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레이 박사는 이렇게 지적한다. “매력적이기는 하나,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이 문제다. 새천년 농촌 개발 계획은 농촌 각 지역에 엄청난 투자를 요구하며, 여러 해 동안 외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따라서 지속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아프리카에 새천년 농가 수십 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수십억 달러를 외부에서 지원해줄 거라고 생각하는 건 무리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해외 지원은 사실상 끊긴 상태다.

물론 외부 주체들도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건 사실이다. 정보 공유를 위해 무척 저렴하게 재정 지원을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 인공 천연 갱신 방식이 서부 사헬 지대에서 효율적으로 환산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정보 공유 덕분이었다. 농민이 앞장서서 뛰어들어 이 방식의 이점을 동료 농민에게 알렸지만, 이들에게 핵심적인 도움을 준 건 리나우도 교수, 레이 박사, 사헬 에코 등 소수 활동가 및 비정부기구들이었다. 레이 박사는 이들 모두 ‘자발적인 아프리카 녹화사업 참여’를 통해 인공 천연 갱신 방법이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로 확산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확신하며, 에티오피아 대통령에게 이런 뜻을 전했다.

한편 사헬 지대를 이렇듯 사람이 살기 힘든 곳으로 만든 지구온난화에 제동을 걸어줄 조치 또한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지금 같은 적응 방식은 그 어떤 형태라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대기에 방출되는 온실가스양을 줄이지 않는다면 제아무리 획기적인 조치라도 기온 상승 앞에 무너지고 말 것이다.

글•마크 허츠가드 Mark Hertsgaard
<더 네이션> 기자. 2009년 11월 19일 <더 네이션>에 게재된 기사.  

 

ps : 그리고 얼마전에 나온 데이비드 몽고메리의 <흙>도 관련 책으로 읽어보면 좋을 듯 하다.  

동아일보 2010.11.27  인류, 살고 싶으면 흙을 보호하라

흙이 줄면 식량이 줄고 문명 쇠퇴  

남태평양 이스터 섬의 거대한 석상은 흔히 미스터리로 불린다. 이런 유적을 만들 만큼 번성했던 문명의 흔적을 지금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 워싱턴대 지구우주과학부 교수인 저자는 미스터리를 풀 실마리를 흙에서 찾는다.

고대 폴리네시아인들은 토양이 비옥하고 산림이 우거진 이스터 섬으로 이주했다. 하지만 인구가 늘어 비탈에도 경작을 하면서 토양이 침식됐다. 퇴적물의 탄소 연대 측정 결과 1200∼1650년에 원시 겉흙의 대부분이 깎여나갔다. 경작지가 줄고 식량 생산이 감소하면서 문명은 급속히 쇠퇴했다. 흙의 소멸은 문명의 붕괴로 이어졌다.

한 줌 속에 미생물 수십억 마리가 사는 흙은 생명의 터전이다. 하지만 흙은 재생시간이 더딘 한정된 자원이다. 농사에 중요한 흙의 두께는 1m도 안된다. 이는 지구 반지름(6380km)의 1000만분의 1을 조금 넘을 뿐이다. 기반암이 풍화되고 유기물이 활발하게 움직여 겉흙 10cm가 만들어지려면 수백 년, 수천 년이 걸릴 수도 있다. 반면 오늘날 농지에서 흙 2.5cm가 사라지는 데는 평균 40년이 걸리지 않는다.

인류 문명의 역사는 흙의 역사였다. 성경의 ‘아담’은 히브리어로 땅을 뜻하는 ‘아다마’에서 온 말이다. ‘이브’는 생활을 뜻하는 ‘하바’에서 왔다. 흙과 삶의 결합이 성경에 나오는 천지창조 이야기의 뼈대다. 수메르, 이집트, 황허 등 고대 문명은 비옥한 토양에서 꽃폈다.

하지만 관개, 화학비료, 그리고 노동의 집중 투입에 기댄 현대 농법은 흙을 착취했다. 토착 언어로 ‘초록 섬’을 뜻하는 카리브해 섬나라 아이티는 토질 저하로 한 나라가 어떻게 쇠락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프랑스 식민지시대 아이티 고원에서는 커피와 인디고(천연염색 원료) 플랜테이션으로 대규모 침식이 일어났다. 1804년 세계 최초로 노예에서 해방된 시민들이 공화국을 세운 뒤에도 토양침식은 계속됐다. 인구가 늘고 토지를 잘게 쪼개서 배분하면서 묵히는 땅이 거의 없었다. 먹고살기 힘들어진 농민들은 더 가파른 산허리까지 경작을 했고 1986년엔 전 국토의 3분의 1이나 되는 흙이 사라진 불모의 땅이 됐다. 궁지에 몰린 소작농들은 도시의 빈민촌을 이뤘고, 이는 2004년 정부를 무너뜨린 폭동의 원인이 됐다.

반면 아이티에서 80km 떨어진 쿠바는 흙을 대하는 태도를 바꿔 성공한 사례다. 농기계와 비료, 살충제에 의존하던 쿠바 농업은 1980년대 말 옛 소련이 무너지고 사회주의 국가에서 수입하던 식량이 끊기면서 중대한 변화를 맞는다. 당시까지 쓰이던 투입물의 반입이 봉쇄되자 쿠바의 농업은 지식집약적 농업으로 바뀌었다. 화학비료와 농약을 버리고 응용생물학과 농업생태학을 토대로 무경운농법(땅을 갈지 않고 작물 잔재를 표면에 남기는 방법)과 생물학적 해충 방지법을 널리 보급했다. 새로운 농법을 도입한 지 10년도 안돼 쿠바의 식량 생산량은 이전으로 돌아갔다. 
 
저자는 “오늘날 문명의 영속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농업 수확량을 유지해야 한다”며 새로운 농업의 철학적 기초를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흙을 산업적 체계가 아닌 생물학적, 생태학적 체계로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흙, 물, 식물, 그리고 미생물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에 뿌리를 두고 지역의 토지 조건과 환경을 고려하는 농업생태학을 저자는 대안으로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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