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국가. 범법자. '법대로 하자' 등등 우리들의 일상에서 법과 관련된 일련의 용어 사용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정작 국민들이 알고 있는 '법'이란 어떤 것일까? 우리가 왜 '법'의 지배를 받아야 하며 그것에 대해 애기하며 판결하는 법관들의 말에 왜 수긍해야만 하는걸까?

왜? 생계를 위해 불법주차한, 한달에 200여 만원 버는 노점상들에게는 과감하게 과대료를 부과하면서 몇 천억원이나 되는 재산을 불법, 탈법으로 증여한 대기업과 그 총수는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지 않는 걸까? 과연 이게 합당한 '법치국가'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받아들여도 좋은 걸까?  

이런 고민에 도움이 될 만한 기사이며 책인듯 하다. 9월달 기사이지만 책상에 쳐박혀 있는 것을 지금에서야 읽고 스크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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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2010.9.10  법의 지배는 민주주의 강화의 필요조건  

사회적 맥락에서 본 법치주의
위정자 권력 남용 막으려 도입
‘좋은 법관’이 사법독재 막을 것  
 

 

돌베개 출판사의 ‘석학 인문 강좌’의 하나로 나온 <왜 법의 지배인가>는 법철학자 박은정 서울대 교수의 ‘법치에 대한 성찰’이 담긴 책이다. 지은이는 법 자체를 고립적으로 다루지 않고, 민주주의라는 사회적 맥락에서 ‘법의 지배’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라는 문제를 파고든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의 내적 관계를 살피는 것이 이 책의 핵심 과제다. 결론을 먼저 말하면, ‘법의 지배’와 민주주의는 서로가 서로를 강화해주는 관계에 있으며, 민주주의가 꽃피려면 법의 지배가 꼭 필요하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지은이는 ‘왜 법의 지배인가’라는 이 책의 물음에 답하기에 앞서 ‘법의 지배’라는 말에 대해 먼저 성찰한다. 지은이가 이야기의 실마리로 끌어들이는 것이 법철학자 로널드 드워킨의 대표작 <법의 제국>이다. 드워킨은 머리말에서 우리 모두가 “법의 제국의 신하”이자 “법의 방법과 이념의 신하”로서 “정신적으로 법에 얽매여 있다”고 주장한다. 지은이는 드워킨의 이 말을 법이 모든 것 위에 군림한다는 법지상주의로 오해해서는 안 되며, ‘법의 지배’가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하는 ‘수사적 표현’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드워킨의 수사에서 엿볼 수 있듯이 ‘법의 지배’는 자칫 오해하면 법지상주의나 법물신주의로 떨어질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상당수의 사람들이 법의 지배와 민주주의가 서로 대립한다고 생각한다. 법의 지배가 강화되면 민주주의가 오히려 훼손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법치와 민주의 관계를 대립적으로 이해하는 데는 사법부에 대한 불신도 한몫을 하고 있다. 지은이는 우리 사회가 법의 지배와 민주주의의 관계에 대해 숙고하게 된 것은 민주화 이후, 특히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의 일이라고 말한다. 민주화 이전 50년 동안 우리는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모두 한꺼번에 이루어야 할 목표로 생각했으며, “민주주의 씨를 뿌리면 저절로 꽃이 피어 민주법치 사회가 되는 줄로 생각했다.” 그런데 사법부가 대통령 탄핵이라든가 행정수도 이전 같은 정치 문제의 최종 해석권을 행사하면서 ‘법의 지배’에 대한 의구심이 솟아나게 된 것이다. 지은이는 우리 사회의 경우 사법부가 “과거 권위주의 시절 통치체제의 하부구조였던 제도나 관행을 완전히 청산하지 못한 채, 민주화 이후 급격한 자율환경에 노출되면서 그 역량을 시험받고 있다”고 말한다. 법의 지배에 대한 사람들의 의구심에 사법부도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법의 지배’가 민주주의와 대립관계에 있다고 보아서는 안 된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원론적으로 나는 법치주의가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를 제한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문제제기에 찬성하지 않는다. 강한 사법은 민주주의를 부흥시키고 약한 사법은 민주주의를 파괴한다고 말해야 옳다.” 지은이가 보기에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는 서로 다리를 묶고 함께 달리는 ‘2인3각’ 경기의 두 사람과 같은 관계여서 어느 한쪽이 넘어져선 다른 한쪽도 달릴 수 없다. 지은이는 법의 지배라는 이념이 권력자의 자의적인 권력 행사를 막기 위해 도입되고 발전한 것임도 강조한다. “법치주의는 위정자들이 시민에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위정자에게 요구하는 사항”이며 “시민의 준법의식을 강요하기 위한 위정자의 구호가 아니라, 권력의 일탈을 경고하기 위한 시민들의 구호”인 것이다. ‘법치’의 내용도 법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심화와 연관됨을 보여준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법치는 권력남용을 제어하기 위해 도입돼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데로 나아갔고, 마침내 자유의 실질적 내용인 사회권을 보호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법의 지배야말로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수단인 셈이다.

지은이는 한국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정치의 사법화’에 대해서도 걱정만 하지 않는다. 정치 문제를 사법적 판단에 맡기는 ‘정치의 사법화’는 사회의 민주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일종의 보편적 현상이다. 헌법규범이 생활규범으로 정착하는 과정의 부수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정치의 사법화는 민주주의의 필요조건이기도 하다. 또 입법권력과 행정권력을 사법권력이 제어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균형 원리에도 맞다. 다만 사법화 경향이 과도해져서 사법부의 권력이 남용에 이르면 ‘사법독재’로 빠질 수도 있다. 요컨대 ‘법의 지배’가 ‘법관의 지배’로 타락하고 마는 것인데,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막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좋은 법관’을 양성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법관이 좋은 법관인가. 지은이는 여러 자질을 거론하는데, 요약하면 “법만 아는 게 아니라 사회문제와 사회의 여망을 아는 법관”이 좋은 법관이다. 또 법관은 소통의 자질이 있는 사람이어야 하며, 그 소통 능력으로 법정을 ‘정의의 극장’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소송 당사자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을 넓게 받아들여 “법정을 합리적 소통이 가능한 구조로 만드는 것은 더없이 중요하다.” 이렇게 좋은 법관이 ‘법의 지배’의 이념에 충실할 때 민주주의가 더 확고해질 것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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