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운동연합에서 나오는 월간지 <함께사는길> 10월호에 나온 글이다. 예전 수업할때 문득 든 생각이, 우리 인간들이 갯벌에 가서 조개를 캐고 아이들과 갯벌에 빠져서 뛰어노는 동안, 그 보이지 않는 무수히 많은 작은 존재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기분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얼마전에 개봉한 <마루 밑 아리에티>가 바로 그런 이름 모를 존재들에 관한 내용인 듯 하다. 인간만이 사는 세상은 아니다. 돌도 있고 나무도 있고 무당벌레도 있고 벌도 있고 이름모를 잡초도 존재하는 세상이다. 가면 갈수록 아이들의 '감수성'이 무디어지는 듯 하다. 그 작은 존재들에 대해 아예 없는 듯 생각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다."
강(江)의 아리에티
환경운동연합 <함께사는길> 2010년 10월호 박현철 편집 주간
숲 가까운, 江 가까운 오래된 집 마루 밑에 작은 사람들이 산다. 오래된 집 마루 밑의 오래된 작은 집에 사는 작은 사람들, 그들 종족의 보석같은 딸이 ‘아리에티’다. 낡은 집의 세계는 아리에티에게는 완전한 생태계다. 인간을 포함한 그들의 생태계에서 작은 사람들은 금기를 범하지 않고 욕망을 자제하는 절제의 미덕으로 평화롭다. 뜰에서 주운 월계수 한 잎, 선물 받은 각설탕 하나에도 깊이 감사할 줄 아는 마음으로 오래된 집 작은 생태계의 일원으로 공존한다.
- 미야자키 하야오 <마루밑 아리에티>에서 -
우리에게 江에도 아리에티들이 산다. 우리가 그들을 단양쑥부쟁이나 흰수마자, 꾸구리나 수달 또는 백로, 그 어떤 이름으로 부른다 하여도 그들은 우리 江의 아리에티, 작은 사람들이다. 江은 강의 아리에티들이 다른 수많은 작은 종족들과 함께 살아가는 생태계다. 그들의 생존의 터를 짓밟는 폭력을 행사하는 일은 우리 인간이 ‘자연의 이자를 빌려쓰는 대신 자연을 제 것처럼 남김없이 소유하여 탕진하려는 욕망’에 굴복했기 때문이다.
江의 생태계에서 함께 사는 저 많은 생태계의 보석들, 공존의 동반자들을 해치면서 우리만은 잘 먹고 잘 살 거라 믿는 어리석음이 욕망으로 녹슬어버린 우리 심장에 박혀 있다. 욕망에 녹슨 삽차를 몰아가 江을 시해하고 전리품을 챙기려는, 저 토건자본과 권력의 야합을 해체하지 않고서는 우리 손으로 멸종의 길을 가게 한 수많은 작은 사람들의 운명을 우리도 뒤따라갈 뿐이다.
.....(중략)
강의 아리에티들과 우리는 공존할 것인가, 그들을 보내고 우리도 그 뒤를 따르고 말 것인가? 강물을 먹고 사는 우리는 ‘江-자연’이 보기에 ‘빌려쓰기를 포기하고 약탈에 나선 작은 사람들’일 뿐이다. 자연 앞에 겸손할 줄 모른다면 우리는 공존의 대열에서 가장 먼저 제외되는 존재가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