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오웰의 신간이 얼마 전에 출간되었다. 조지오웰하면 <1984>나 <동물농장>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아직 난 둘 다 완독해보지는 못했다. ㅠ.ㅠ 

기사에도 나와있듯, 내가 이책에 관심이 가는 이유중에 하나는 오웰의 궁금증에 중첩되는 '내'가 왜 글을 쓰고 글을 쓰고 싶어하는가에 관심이 가기 때문일 것이다. 학교에서도 일상의 밖 풍경, 냄새에서도 어수선한 풍취가 느껴진다. 그 어수선함이 날 이 책에 끌리게 만드는 듯 하다. 하지만 그래도 다행인건 이런 어수선함에도 그 모든 걸 날려버릴수 있는 편안함을 줄 수 있는 나의 가족과 휴식처가 있다는 사실이다. 

조지 오웰의 책들을 정리해본다. <동물농장>은 여러 출판사에서 많은 종류가 나와있다. 그 수 많은 다양한 표지가 눈에 띈다. 표지만 봐도 재미있을 정도로...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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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01 한겨레21 제829호  “시절이 평화로웠다면 아름다운 글만 썼겠지”

버마 식민지 경찰부터 부랑자 생활, 스페인 내전 참전까지…

조지 오웰의 치열한 체험이 낳은 ‘정치적’ 에세이 29편 <나는 왜 쓰는가>

짐작하건대 이 책을 서가에서 집어드는 대부분의 사람은 조지 오웰이 왜 쓰는가를 궁금해한다기보다는 ‘내’가 왜 쓰는가를 더 궁금해할 것이다. 남이 글 쓰는 데 이유를 살피고 눈치를 보는 이라면 평소에 글을 쓰든 안 쓰든 잘 쓰고 싶다는 욕망을 품고 있을 것이란 추측이 그 이유다. 위대한 작가가 글을 쓰는 동기에 비춰 한 조각이라도 자신과 닮은 점을 찾는다면, 혹은 그 작가가 타고난 문학 천재는 아니었던 것 같다는 판단이 선다면, 읽는 이는 적어도 ‘조지 오웰만큼은 쓰겠다’는 환상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이 책을 읽는 이유는 그래서 어쩌면 마음속 깊이 간직한 욕망을 다독이는, 위로와 희망이 될 수도 있겠다.

<나는 왜 쓰는가>(한겨레출판 펴냄)는 조지 오웰의 에세이를 모은 책이다. 이미 너무 유명해 여러 장르로 변주되거나 후대의 작가들에게 영향을 줬던 소설 <동물농장>과 <1984> 외에도 오웰은 많은 작품을 썼다. 오로지 글을 써서 생계를 유지해야 했던 탓이다. 그래서 47살의 짧은 생을 살았던 작가는 소설 6권, 르포 3권, 에세이집 2권 외에도 서평과 칼럼을 포함한 수백 편의 에세이를 남길 수 있었다. <나는 왜 쓰는가>는 생전에 다 묶이지 못했던 그의 에세이를 모아 4권으로 엮은 저작집 중 옮긴이가 29편을 골라내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할 수 없다”

책의 중반이 한참 지나고야 나오는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를 읽지 않아도 독자는 그가 ‘왜’ 글을 쓰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부랑자 임시숙소에서의 며칠을 그린 ‘스파이크’, 스페인 내전 참전 경험을 쓴 ‘스페인 내전을 돌이켜본다’, 명문 이튼스쿨 졸업생 중 유일무이하게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버마에서 식민지 경찰 노릇을 한 경험을 살려 쓴 ‘코끼리를 쏘다’ 등은 오웰이 직접 몸으로 겪고 자신의 시선으로 옮긴 당시의 세상이다. 르포 성격을 띤 이 에세이들이 쓰인 동기는 겪은 이로 하여금 글을 쓰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시절의 혼란스러움’일 것이다.

이는 책의 여러 장을 넘겨 ‘나는 왜 쓰는가’에서 만나는 한 문장과도 연결된다. “내 작업들을 돌이켜보건대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 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 ‘정치’가 글을 쓰게 한 것이다. 그는 글을 쓰는 이유를 4가지로 요약해 말했는데(순전한 이기심,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 이 중 네 번째가 바로 그것이다.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인 것이다. …평화로운 시대 같았으면 나는 화려하거나 묘사에 치중하는 책을 썼을지 모르며, 내 정치적 성향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고서 지냈을지도 모른다.”

한편 일상에 관한 따뜻한 마음을 담은 에세이도 눈에 띈다. ‘물속의 달’은 오웰이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펍(선술집)에 대해 쓴 글이다. ‘물속의 달’에서는 맛있는 맥주가 손님들의 식감을 부드럽게 자극하는 분홍빛 머그잔에 담겨 나온다. 인자한 여자 바텐더들은 손님 대부분의 이름을 기억하고, 아무에게나 ‘오빠’ ‘언니’라 부르지 않는다. 꽤 큰 뜰이 있어 아이들을 데리고 올 수 있다. 아빠만 밖에 나가고 엄마 혼자 집에 남아 아이를 보살펴야 하는 서글픔 따위는 날릴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 현실에는 없는, 오웰의 상상 속 펍이다. 이 에세이를 쓴 동기는 그가 글을 쓰는 또 다른 이유와 연결지을 수 있겠다. “미학적 열정. 자신이 체감한 바를 나누고자 하는 욕구는 소중하여 차마 놓치고 싶지가 않다.” 그래서일까, 놓치기 싫은 아름다운 상상은 현실로 나타났다. 이 에세이의 영향으로 영국에는 ‘물속의 달’이란 이름의 펍이 많이 생겼고, 이 글의 내용에 착안해 만든 펍 ‘웨더스푼’은 현재 700여 개 체인을 거느리고 있단다.

이 시대에 곱씹어볼 만한 주제를 담은 작품들을 선별했다는 옮긴이의 말처럼, 대부분의 글은 현재의 여러 가지 정황과 연결된다. 약소국과 강대국의 불공정한 관계, 억압적인 교육, 부랑자나 빈민층의 문제가 연이어 떠오른다. 무거운 주제일 법하지만 대부분의 문장은 위트 있고 거기 담긴 감정은 솔직하다. 이를테면 이런 것. 글을 쓰는 이유 중 첫 번째로 꼽은 ‘순전한 이기심’을 두고 쓴 문장이다. “똑똑해 보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싶은, 사후에 기억되고 싶은, 어린 시절 자신을 푸대접한 어른들에게 앙갚음을 하고 싶은 등등의 욕구를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 서른 남짓이 되면 개인적인 야심을 버리고 주로 남을 위해 살거나 고역에 시달리며 겨우겨우 살 뿐이다. 그런가 하면 소수지만 끝까지 자기 삶을 살아보겠다는 재능 있고 고집 있는 사람들도 있으니, 작가는 이 부류에 속한다.” 굳이 쓰는 일에 목매는 이가 아니더라도 이 시대를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쉬이 공감을 줄 법한 솔직함이 문장과 단어 사이에서 문득문득 솟아오른다.

한국의 현재와 연결되는 20세기 중반의 세계

음악에서 뜻 없이 쓰이는 음표 하나 없듯 <나는 왜 쓰는가>에 실린 29편의 에세이는 개개의 의미를 품고 하나의 큰 울림을 만들어낸다. 여러 가지 방식으로 ‘편곡’해 읽어보자. 쓰인 순서대로 배열된 작품은 작가의 자전적 요소를 적잖이 띠고 있으니 오웰 생의 궤적을 더듬어가며 읽는 것도 의미가 있겠고, 여러 장을 건너뛰어 ‘나는 왜 쓰는가’를 먼저 읽은 뒤 각각의 에세이들이 어떤 동기로 쓰였는지를 짐작하며 읽어보는 것도 흥미롭겠다. 그러다 보면, 쓰고 읽는 통로가 많아진 이 시대에 우리는 왜 자꾸만 쓰려고 하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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