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몽드디플로마티크가 좋은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이런 기사들이다. 국내 언론사 기사에서는 볼 수 없는 세계 각 지역의 심층적인 분석 기사들. 살짝 어렵기는 하지만, 세계 국가, 도시들의 심층적인 이해를 도와주는 기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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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디플로마티크 2010.8월호  총질 난무하는 카라카스, 차베스는 과연 가해자인가?  

스페인 일간지 <엘 파이스>는 ‘볼리바리안’ 베네수엘라에 적대감을 표명해 왔다. 미묘한 뉘앙스가 담긴 기사보다는 직설적 방식을 선호해왔다. 그러나 이번 기사는 좀 다르다. “카라카스는 피로 물든 도시다. 건물에서 피가 넘쳐 강이 된다. 산에서도 집에서도 피의 강이 흘러내린다.”(1)

“카라카스는 피로 물든 도시”

이 기사를 접한 카라카스 주민은 손으로 이마를 치며 폭소를 터뜨린다. 물론 정도 차이는 있지만 ‘문제가 심각하다’(국회 내무위원회 위원장 툴리오 지메네스)는 데는 모두 동의한다. “저 다리 아래서 제 아내가 2년 사이 두 번이나 공격받았습니다.”(베네수엘라에 파견돼온 ‘토지 없는 농민 노동자 운동’(MST) 소속 브라질인) “바리오스(Barrios·빈민가)에 사는 사람에게 폭력은 이제 일상이 되었습니다.”(광범위한 도시화가 진행 중인 페타레시) “방탄조끼를 입은 경찰도 총에 맞아 숨지는 마당에 우리 같은 사람은 어떻겠어요? 디오스 미오!(오, 신이시여)”(카라카스에서 멀리 떨어진 교외 지역 오쿠마레 델 투이의 한 여성 노동자) “우리 지역 가톨릭 신자는 대부분 주변에 살해된 사람이 한 명 이상 있습니다. 매주 미사를 드릴 때마다 그런 얘기를 듣습니다. 이번 주에도 누군지 잘 모르지만 죽은 사람이 또 있다고 들었습니다.”(페타레의 디디에르 에이라우드 신부)

2008년 인구 10만 명당 살해된 사람이 48명을 헤아리는 베네수엘라가 위험한 나라 명단에서 선두를 달리는 건 부인할 수 없다. 가령 2009년 1월에서 9월까지 인구 315만 명인 카라카스에서만 살해된 사람이 1976명을 헤아린다. 10만 명 기준으로 127명이 살해된 셈이다.(2)

반정부 성향의 사람이 보기에 이 사태의 책임은 모두 차베스에게 있다. 언론도 책임 전가에 앞장서고 있다. “우고 차베스의 볼리바르 혁명 덕분에 베네수엘라의 수도는 세계에서 가장 폭력적인 도시가 되었다.”(3) 미구엘 앙헬 페레스 고등학술원(IDEA) 부원장은 불쾌한 표정을 숨기지 않는다. “그들은 지금의 치안 불안이 ‘차베스주의’의 작품이라고 믿게 하려는 것 같다. 그러나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치안 상황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잊은 모양이다. 당시에는 아예 집 밖으로 나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차베스가 집권하기 2년 전이던 1996년 12월, 한 전문 잡지에 실린 기사를 보자. “매주 평균 80명에 가까운 사람이 총에 맞아 숨지고, 대중교통에서 폭력이 일상화되고, 엄청난 속도로 가난이 확산되고, 15년이 넘게 경제 위기- 연간 인플레이션이 1천%를 넘는다- 가 나라 전체를 갉아먹는 상황에서 카라카스는 세계에서 위험한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아니, 가장 위험한 도시가 되었다.”(4) 그러나 이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정치 투쟁에서 망각보다 더 효과적인 무기는 없다. 페레스가 지적한다. “올해 선거가 있을 예정이다. 최근 치안 불안을 나타내는 지표가 상승하고 있다. 언론은 이 사실을 끝도 없이 부풀린다. 치안 문제는 항상 반대파가 즐겨 찾는 메뉴다.”(5) 매주 월요일 아침 벨로 몬테 시체 공시소에 가보면, 마이크와 카메라로 무장한 기자들이 희생자 가족에게 몰려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인터뷰 상대로는 울먹이는 노파가 안성맞춤이다. “세뇨라!(부인) 지금 기분이 어떠세요?”

‘비공식’ 소식통에서 흘러나온 정보가 멋대로 부풀려진다. 가령 일간지 <엘 우니베르살> 지난 6월 3일자는 다음과 같은 거짓 기사를 내보냈다. “오늘날 베네수엘라의 살인발생률은 인구 10만 명당 70명을 넘어섰다.” 베네수엘라인은 이런 기사를 읽으며 공포감에 사로잡힌다. 알타미라, 팔로 그란데, 라 카스텔라나 같은 부유한 지역에 사는 사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사태의 책임은 정부에도 있다. 정부가 과학사법범죄수사단(CICPC) 기자실을 폐쇄한 뒤로 전국 차원에서 공식 기준에 의해 수집된 정보를 구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가 ‘살인발생률이 최고치를 경신했다’고 주장해도 반박할 근거가 없다. 결과에 대해서만 떠들 뿐 아무도 현 상황의 원인을 분석하려고 하지 않는다.

차베스 이전엔 훨씬 심했다

20세기 초, 베네수엘라에서 석유가 발견되자 안데스와 야노스(남미의 광활한 대초원)의 가난한 농민들이 마라카이, 발렌시아, 마라카이보, 카라카스 같은 도시로 몰려들었다. 그곳에는 일자리가 있어 일하면 봉급을 받을 수 있었다. 한마디로 ‘석유의 기적’ 덕분이었다. 카라카스를 둘러싼 언덕과 산은 이주민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그들은 여기저기서 자재를 긁어모아 통로나 골목을 막거나 가파른 계단 밑에 집을 지었다. 물도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카라카스 변두리에 가난의 긴 띠가 형성된 것이다. 지금의 치안 불안은 바로 이 사회적으로 배제된 지역에서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그때의 치안 문제가 빈민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범죄에 국한되었다고 회고한다. “단지 돈이 없어서, 굶어 죽지 않으려고 혹은 자신이 사용하려고 구두 한 켤레, 손목시계, 금목걸이 따위를 훔치는 식이었다. 지금 우리가 겪는 폭력 문제와는 차원이 달랐다.”

5월 25일 페타레에서 일어난 전형적인 사건을 예로 들어보자. 한 젊은이가 칼에 찔리고 총에 맞아 숨졌다. 그는 말다툼을 벌이던 친구를 도와주려다 변을 당한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느냐고? 복잡할 것도 없다. 불량배 간 충돌은 대부분 처음엔 사소한 말다툼에서 시작한다. 한쪽이 따귀를 올려붙이면 다른 쪽에서 욕설을 내뱉고, 그러다 금세 전쟁이 되는 것이다. 총알이 날아다니고 누군가 쓰러진다. 쓰러진 사람은 엘 사포다. 범인은 엘 푸필로다. 엘 사포의 친구들이 엘 푸필로를 찾아다닌다. 엘 푸필로의 동생이 붙잡힌다. “형이 어디 있는지 사실대로 불어!” 동생이 잘 모르겠다고 우물쭈물 대답한다. 총 한 방으로 동생은 처단된다. 무지에 대한 대가 혹은 형을 비호한 죄다. 얼결에 근처에서 놀던 네 살배기 꼬마 가비클리까지 총에 맞아 숨진다.

빈민가에서 살해당하는 사람은 주로 누구일까? 얼굴이 햇볕에 그을린 15~25살 가난한 젊은이들이다. 길에서 총격전이 벌어질 때 우연히 지나가다 재수없이 총에 맞는 사람도 있다. 싸움이 벌어졌을 때 반항하는 것은 저승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휴대전화 하나 때문에 총에 맞아 숨진 사람도 있다.

10년 만에 빈곤율이 60%에서 23%로 떨어지고 극빈율이 25%에서 5%까지 낮아진 나라에서 범죄율이 급증하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베네수엘라 볼리바리안 정부는 그동안 폭력의 원인이 오직 ‘빈곤’이라는 식의 단순논리에 사로잡혀 있었는지도 모른다. 정부는 보건·교육·식량과 관련된 사회 프로그램을 급속히 추진함으로써 성공을 거두었는지 모르지만, 이 분야에서의 진보가 자연스럽게 폭력을 해소할 것이라고 기대한 나머지 치안을 소홀히 했다.

그렇다면 경찰은 그 사이 뭘 하고 있었는가. 다른 중남미 국가에서처럼 이곳도 경찰은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의 원인이다. 소라야 엘 샤코르 경찰이사회(Cogepol) 사무총장은 “베네수엘라 경찰이 하나로 통일되지 않고 135개로 분산되어 있는 것이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오래전부터 지방분권이 발달한 연방국가 베네수엘라에는 각각의 주와 시가 별도의 경찰 병력을 거느리고 있다. 전국적 차원의 통일된 규범이 없다 보니 군 출신이 경찰관 교육을 담당하는 경우도 많다. 경찰관은 전문적 교육보다는 군사훈련을 받는 셈이다.

    
▲ <에네로 23번지 거리>, 2005-조나스 벤디크센
 
빈곤율 급감, 범죄는 되레 급증

카라카스에만 5개 시 경찰과 메트로폴리탄 경찰이 있지만 공조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을뿐더러 정치적 이해관계로 충돌할 때도 있다. 가령 반정부파 시장의 손아귀에 넘어간 메트로폴리탄 경찰과 차카오시 경찰, 바루타시 경찰이 2002년 4월 반차베스 쿠데타에 협조했다.

친차베스 성향의 안소아테기 주지사는 지난 5월 25일 일간지 <울티마스 노티시아스>의 한 면을 통째로 빌려 안소아테기 주에서 추방될 공무원 명단을 세 번째로 공개했다. 이 중에는 경찰관 25명이 포함되었는데 죄목은 직무유기(15명), 성폭력(2명), 절도(5명), 살인(1명) 등이었다. 내무부 장관 타렉 엘 아사이미는 최근 “베네수엘라에서 벌어지는 범죄의 20%가 경찰에 의한 것”이라고 밝혔다. 엘 샤코르 사무총장은 “경찰이 사회에서 분리되어 관리·감독을 받지 않으면 폭력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며, 현재 추진 중인 근본적 개혁만이 치안을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지적한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차베스 대통령은 서둘러 대책을 마련했다. 5월 13일 볼리바르국립경찰(PNB) 창설을 목적으로 한 국립치안실험대학(UNES) 경찰양성센터(Cefopol)가 설립됐다. 이곳에서는 새로운 접근법과 방법론, 철학이 실험되고 있다. 기술적 훈련뿐 아니라 경찰과 시민의 관계에 필수인 인권의식 함양에도 주력한다. 메트로폴리탄 경찰에서 선발된 ‘청렴한’ 경찰관이 이미 교육을 이수하고 카티아 지역 빈민가에서 활동 중이다. 아직 판단하긴 이르지만 실질적인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현재 1천 명이 추가로 교육 이수를 앞두고 있으며, 새로 창설되는 경찰은 고졸 이상의 지원자를 기다리고 있다. 앞으로 3년 동안 3만1천 명을 모집할 예정이다.

오쿠마레 델 투이 지역위원회 소속 소니아 만리크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플라스틱 간이의자에 앉아 입을 연다. “요즘은 젊은이들이 마약 때문에 살인을 합니다.” 옆에 앉아 있던 안드레아스 베탄쿠르가 분노에 찬 목소리를 억누르며 거든다. “청소년이 자기 몸집만 한 무기를 어디서 구하는지 아세요? 마피아 조직이 뒤를 봐주기 때문이죠!”

경찰은 해법이 아닌 원인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2007년 통계자료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에 거주하는 콜롬비아인은 420만 명에 달한다. 이들은 믿거나 말거나 최근 치안 관리의 모범 사례로 꼽히는 콜롬비아를 떠나왔다. 이들은 대부분 정직하고 평범한 사람으로 베네수엘라 사회에 잘 적응하고 있다.(6) 따라서 외국인 혐오 문제와는 다른 관점에서 분석해야 한다. 카라카스의 폭력 문제는 성격이나 정도에서 예전과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콜롬비아의 마약 거래 조직은 베네수엘라 경찰과 국가수비대를 매수해 카라카스와 주변 빈민가에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미국과 아프리카로 마약을 운반하기 위한 경유지 구실을 한다.(7) 지역 마피아 보스(Capo)를 중심으로 대규모 마약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들은 사회에서 소외된 젊은이에게 선심 쓰듯 싼 가격에 코카인을 제공한다. 국회의원 텔레스는 “마약 소비가 크게 늘었다. 무엇보다 마약에 손대는 청소년 수가 크게 늘었다”고 지적한다.

청소년은 한번 마약에 빠지면 악순환의 늪에서 헤어나올 수 없게 된다. 중독자는 마약 살 돈을 마련하려고 강도와 절도, 폭행뿐만 아니라 살인을 저지르기도 한다. 결국 이들은 마약 거래원으로 전락해 판매, 운송 등을 담당하게 된다. 때로는 자금을 제때 회수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목숨을 잃는다. 이들이 속한 조직은 거래 지역을 장악하기 위해 서로 충돌하는 일이 잦다. 우리가 인터뷰한 사람 중 한 명은 상황을 이렇게 분석한다. “외부에서 조직망이 침투하면서 폭력의 악순환이 끊이지 않는다. 게다가 ‘영역다툼’까지 벌어지면서 끊임없이 희생자가 생긴다. 언론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다.”

초국적 범죄 집단은 새로운 정세 속에서 개방과 그 결과로 드러난 허점을 이용해 브라질(‘파벨라’로 불리는 리우데자네이루의 빈민가)뿐 아니라 멕시코를 포함한 중미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상황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미국과 콜롬비아가 얼굴과 이름조차 공개되지 않은 게릴라 출신의 의심스러운 증언을 토대로 “콜롬비아의 ‘나르코 게릴라’ 두목들이 베네수엘라에 은신하고 있다”는 식으로 베네수엘라를 비난할 때마다 반정부 세력과 언론은 기쁜 속내를 감추지 않는다.(8) 반면 콜롬비아 비밀경찰, 보안행정국(DAS) 전산 책임자던 라파엘 가르시아가 얼굴까지 공개하면서 증언한 내용에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현재 감옥에 수감 중인 그는 DAS와 극우파 군사조직(마약 거래의 주범) 간의 밀월관계를 폭로했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2004년 DAS 책임자 호르헤 노구에라는 무장조직 리더들과 베네수엘라 반정부 세력 지도자들을 만나 베네수엘라 국내 치안을 교란시키고 차베스를 암살할 계획을 세웠다.

콜롬비아 마피아, 마약·무기 유입

베네수엘라 국경 부근 타치라 지역의 아푸레와 줄리아를 장악한 ‘파라코’(무장조직)의 존재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다. 범죄예방정보국(Disip) 국장을 역임한 엘리에제르 오타이자는 2008년 “그들 중 2만 명 정도가 국내로 침투해 납치, 청부 살인, 마약 거래 등의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9)고 주장했다. 이들은 국내에서 점점 세력을 확장하는 중이다. 베네수엘라 언론이 침묵하는 사이 콜롬비아 일간지 <엘 에스펙타도르>는 2009년 1월 31일 “조직 ‘아귈라스 네그라스’(10), 베네수엘라로 근거지를 옮기다”라는 제하의 기사를 내보냈다. 이 기사를 쓴 엔리크 비바스 기자는 타치라 지역에 들어가 이 조직들이 “불법 조직을 구축하고 주민의 생활을 완전히 장악하면서, 심지어 의료보험제도까지 운영하게 된 과정”을 추적했다. 물론 베네수엘라 통합사회당(PSUV) 당원은 이런 ‘혜택’에서 제외되었다. 지난 2월과 3월 당원 상당수가 암살을 당했다.

파라코는 줄리아 지역 경찰과 반정부 성향의 주정부 비호 아래 폭력을 사용하거나 자금을 대출해주는 방식으로 마라카이보의 몇몇 지역과 라스 플라이타스의 상업지역을 장악했다. 한 증언에 따르면, “줄리아 정부가 이런저런 명분을 내세워 농민 모임을 조직한다. 상당수 콜롬비아인이 이곳으로 건너와 본국에 돌아가지 않고 남는다”.

그들은 차베스의 목숨을 노린다

    
▲ <카라카스>, 2010-모리스 르무안
 
베네수엘라 바리나스주의 한 주민이 말한다. “콜롬비아인이 이렇게 많이 몰려온 건 처음이다. 그들은 집을 사들여 세를 놓는다. 문제가 있을 땐 돈을 꿔주기도 한다. 브라질의 ‘나크로’(마약 범죄조직)가 쓰는 수법이다. 그들 때문에 폭력 범죄가 급증해서 지금은 거의 카라카스 수준을 넘보고 있다.” 결국 같은 말의 반복이다. 베네수엘라인은 이 사태에 아무 책임이 없는가? 일반 범죄자와 무장조직은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그 기준이 출신 국가가 아니라는 건 자명하다. “예전에는 콜롬비아인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주로 카라카스로 갔다. 그때는 지금처럼 청부살인이나 유혈 충돌, 납치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2007년 4월 23일, 코헤데스주 경찰은 경영인 니콜라 알베르토 시드 수토를 납치한 죄로 전 콜롬비아연합자위군(AUC) 지도자 게르손 알바레스를 체포했다. AUC는 공식적으로 이미 해체된 조직이지만 여전히 조직 ‘아귈라스 네그라스’에 자금을 대고 있다. 2008년 3월에는 줄리아 지역에서 나르코 무장조직 지도자 에르마고라스 곤살레스가 체포되었다. 당시 그는 베네수엘라 범죄예방정보국과 국가수비대 소속을 증명하는 서류를 지니고 있었다. 2009년 11월 19일에는 마라카이보에서 ‘라 페를라’(‘진주’라는 뜻)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마갈리 모레노가 붙잡혔다. AUC에서 활동한 모레노는 콜롬비아 정보국 DAS와 군대, 정계 고위층과 끈이 닿아 있었다.

경고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차베스주의’의 아성인 에네로 23지구의 시몬 볼리바르 연합 소속 구아달루프 로드리게스는 미간을 찌푸린다. “치안이 급격하게 불안해지는 순간이 있다. 정세를 불안하게 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이 문제를 깊이 연구해온 페레스 고등학술원 부원장은 “카라카스의 현 상황은 1980년대 콜롬비아의 메데인(한때 마약 도시로 악명을 떨쳤다 - 역자)과 비슷하다. 불법적 이해관계를 가진 무리가 치안을 악화시켜 이중 국가 상황을 만들려 한다.”

베네수엘라의 한 외교관은 “제5열(第五列)이 개입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은 지나친 추측일까? 외부 개입설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일까?”라고 묻는다. 그는 이게 얼마나 미묘한 문제인지 안다. 이런 식의 추측은 곧바로 차베스에 대한 비난을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테러단체로 규정된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과의 유착 관계가 폭로되자 차베스가 곤경을 모면하기 위해 역으로 ‘외부 음모론’을 제기한다는 식의 비난 말이다. 자신을 몰아붙이는 이들에게 복수하고 치안 악화의 책임을 회피하는 게 목적이라는 것이다.

2004년 카라카스 근교 닥타리 농원(Finca)에서 국내 치안 불안을 조장하고 차베스를 암살할 준비를 하던 콜롬비아 무장조직원 116명이 체포됐다. 국민투표를 며칠 앞둔 2007년 12월 2일에는 라 베가 지역에서 다수의 조직원이 체포되었다.(11) 수집한 증언에 따르면 라 베가, 로스 테크, 페타레 등의 서민 지구에서 콜롬비아인이 주택을 사들이고 식당과 바를 개업한다고 한다. 그곳에서 불법 마약 거래가 이루어진다. 그들은 도박장, 경마, 성매매, 택시 운수회사와 협동조합 등을 장악하고 있다. 또한 월 7% 이율로 담보 없이 돈을 대출해주고, 안전을 담보(물론 강요된 것이다)로 돈을 갈취한다.

이런 일들이 어떻게 가능한지 이해하려면 국경 지방인 아푸레와 타치라의 상황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무장조직은 이곳에서 폭력과 살인, 납치 등을 일삼으며 혼란을 조장해왔다. 그런데 최근에는 ‘우리와 함께하면 마약, 범죄, 매춘이 사라질 것’이라는 내용의 전단지를 뿌리고 다닌다. 공포심을 조장한 당사자가 ‘구원자’로 나서는 식이다.

혼란할수록 반차베스 세력 유리

한 고위 관리는 익명을 요구한 후에야 입을 열었다. “정부 관리는 사태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그들은 ‘무장조직’의 위협보다 범죄집단에 대해서만 말하려 든다.”

그의 경고는 과장됐을까?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의 베네수엘라 ‘전복 기도’에 맞선 경험만으로 현재의 복잡한 상황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특별한 정치적 지향점이 없고, 정세 불안 음모와 무관한 폭력집단이 출현한 것일까?

현재로서는 에네로 23지구나 구아레나, 구아티레 등 수십 년간 정치적으로 조직화되어 자치적 통제가 되는 지역을 제외하면 대부분 사회활동가들은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한다. “지역 위원회는 아직 충분히 발전하지 못했다. 새로운 상황에 대한 대안을 찾기엔 역부족이다.” 바리나스주 농민과 함께 활동하는 한 브라질인의 지적이다. 아니발 에스페호는 ‘로호스-로히토스’(붉은 너무도 붉은) 지역들을 예로 들며 “주민들도 상황은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유의 문제를 해결할 만큼 정치적으로 성숙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2002년 4월 13일, 반차베스 쿠데타가 발발하고 이틀 후 서민 지역에서 거리로 쏟아져나온 대규모 군중이 반군세력의 철수와 차베스의 복권을 외쳤다. 페레스 학술원 부원장인 루이스 브리토 가르시아는 “만약 바리오스(빈민가)를 중심으로 조직된 무장조직이 쿠데타를 일으킨다면 4월 13일과 같은 저항은 더 이상 불가능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는 그보다 시급한 문제를 지적한다. “범죄집단이 조장하는 혼란은 우파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언론도 과장된 보도를 통해 혼란을 부추긴다. 사람이 죽어 나갈수록 반차베스 세력이 더 많은 표를 얻게 될 것이다.”

*차베스는 1999년 대통령 취임 뒤 헌법을 개정하면서 국명을 ‘베네수엘라 공화국’에서 ‘베네수엘라 볼리바리안 공화국’으로 바꿨다. 볼리바리안은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에콰도르의 독립혁명가인 ‘볼리바르’의 형용사다.-편집자

글•모리스 르무안 Maurice Lemoine

번역•정기헌 guyheony@gmail.com

<각주>
(1) ‘Caracas, Una guerra sin nombre’, <El Pais semanal>, 2010년 4월 18일자.
(2) ‘Situation de los Derechos Humanos en Venezuela’, <Informe Anual>, 2009년 9~10월. Programa venezuolano de Educacion-Acction en Derechos humanos(Provea), 카라카스, 2009년 12월.
(3) ‘공포의 도시 카라카스’, <L’Express>, 파리, 2010년 5월 26일자.
(4) <Raids>, n°127, 파리, 1996년 12월.
(5) 오는 9월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된다.
(6) 콜롬비아인 중 52만 명이 베네수엘라 국적을 취득했으며, 난민 자격으로 머무는 사람은 20만 명에 달한다. 100만 명 정도는 ‘장기 체류’ 자격을 취득했다. 나머지는 ‘불법체류’ 신분이고 그 수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7) 미국의 주장과는 달리, 이 사실 때문에 베네수엘라를 ‘마약 국가’로 볼 수 없다. 국경 통제에 실패해 600억 달러(최종 가격 기준)에 달하는 국내 불법 마약 시장을 갖게 된 미국이야말로 ‘불량 국가’의 선두를 달리고 있다.
(8) 모리스 르무안, ‘콜롬비아, 인터폴, 사이버게릴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8년 7월.
(9) <Ultimas Noticias>, 카라카스, 2008년 3월 6일.
(10) ‘검은 독수리’라는 뜻. 논란이 많던 ‘정의와 평화법’에 따라 2005년 해체된 후 다시 조직을 결성했다.
(11) <Vea>, 카라카스, 2008년 4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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