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끝나고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길. 서울역 버스 환승센터에서 서울대역가는 버스로 갈아타러 가는는 길 횡단보도. 다리 한쪽이 없고 손이 하나 없는 남자 한명이 앉아 있다. 자기 앞에 돈을 담을 수 있는 조그만 그릇 비슷한 것을 놓고. 자세히 보지는 않았지만 그의 얼굴은 그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차가움. 살기. 냉소. 어쩌면 나의 선입견과 오만에서 오는 오판일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얼굴에서 느껴지는 그 사람에 대한 느낌은 무시무시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특히, 눈은 더욱 그러하다. 내가 매일 보는 풍경. 매일 네모난 교실에 같은 차림의 교복에 비슷비슷한 머리스타일의 학생들. 이제는 얼굴마저 표정마저 서로 비슷해지는 듯 하다. 세상사에서 가장 무서운 것 하나는 아마도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얼굴, 표정, 옷 등)이 나와 모두 같은 획일화된 사회일 것 이다.
<얼굴이 말하다>와 함께 임철규씨의 ,<눈의 역사 눈의 미학>도 같이 읽으면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눈의 역사 눈의 미학>은 예전에 구입해 놓았는데, 언젠간 꼭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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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2010.9.4 얼굴이 비추는 ‘시대의 얼굴’
늦은 저녁, 서울역. 감지 못해 기름때가 앉은 머리칼의 노숙자가 컵라면 용기에 얼굴을 파묻고 있다. 머리 아래로 보이는 그의 눈빛은 무념무상. 입속으로 묵묵히 면발을 밀어넣는 그의 얼굴에는 생의 핍진함이 묻어 있다. 매일 아침 거울 위로는 전날의 고단함, 다가올 어떤 기대 등이 켜켜이 쌓인 얼굴이 부스스 떠오르고, 지하철에서 마주 앉은 아저씨는 휴대폰으로 뉴스 속 유명 정치인들의 얼굴을 본다.
<얼굴이 말하다>는 시시각각 스쳐 지나가기만 했던 이런 ‘얼굴들’과의 만남을 주선한다. 사회적 얼굴, 지워진 얼굴, 밥 먹는 얼굴, 우는 얼굴, 욕망의 얼굴, 죽음의 얼굴, 가면의 얼굴 등 모두 10개의 카테고리로 나눈 58개의 표정을 마주하면, “산다는 것은 어떤 얼굴들을 만나는 일”임을, 그리고 그 얼굴에는 ‘당대’가 아로새겨져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http://image.aladin.co.kr/product/762/60/cover150/8960900834_1.jpg)
김동유의 그림 <이승만>에는 김구 선생의 얼굴이 겹쳐 있다. 두 인물의 중첩된 얼굴에는 해방 전후 시기, 차이를 좁히지 못한 채 극렬해진 좌우 대립, 결국 분단과 김구 암살로 이어진 비극적 역사가 묻어난다. “이승만이면서 김구이고, 김구이면서 이승만인” 그림으로 달려드는 ‘배타적 시선’은 오늘날도 현재진행형인 아픈 분단 현실을 상기시킨다. 서도호의 <하이스쿨 유니 페이스>는 40대 작가 자신의 고등학교 시절 사진이다. 그러나 이 얼굴은 같은 반 친구들의 사진을 죄다 겹쳐놓은 것이다. ‘3학년 1반’의 얼굴인 셈이다. 똑같은 머리 길이, 똑같은 교복, 똑같은 얼굴 표정…. 수십여명의 얼굴 사진을 겹쳐놓았는데, 그저 형태만 어릿한 ‘한명의 얼굴’이 나온다는 건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던 한국 사회의 ‘획일적 교육 현실’을 담고 있다. 일제고사를 ‘일제히’ 치러야 하는, 지금의 교육 현실은 이때와 얼마나 다른가.
![](http://img.hani.co.kr/imgdb/resize/2010/0904/1283514414_00372217601_20100904.JPG)
» 핵폭탄이 터지는 장면을 ‘분노’처럼 눈에 담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표현한 박대조의 〈붐붐〉(boom-boom).
농부인 아버지의 얼굴을 쌀 부대자루에 그린 이종구의 <연혁-아버지>에는 스러져 가는 농촌의 한숨이, 핵폭탄이 터지는 장면을 ‘분노’처럼 눈에 담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표현한 박대조의 <붐붐>((boom-boom·사진)에는 전쟁과 폭력 앞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약자들을 일깨운다.
개인의 내밀한 감정을 표현한 얼굴들도 곧 ‘우리 모두’의 얼굴이다. 남자친구를 군대 보내고 울고 있는 귀없는 얼굴(김우임, <군 입소>)에 슬픔과 해방감이 교차해 있어 웃음이 나고, 피눈물을 흘리는 인형 같은 소녀의 얼굴(김정욱 <무제>)에선 어디에도 없지만, 결국 누구나 하나씩은 품고 있는 ‘밑바닥’이 드러난다.
지은이 박영택 경기대 교수는 모아놓고 보니 “어둡고 슬픈 얼굴”이 많았다고 말한다. 얼굴이 담고 있는 우리네 시대가 지은이의 말대로 “녹록지 않다는 방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