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구미가 확~~땡기는 책을 발견했다.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 당장이라도 허름한 횟집에 가서 책에 나오는 생선회 한점에 소주 한잔 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책이다. 단순히 음식에 관한 책이라면 전혀 읽어보고 싶지 않을텐데, 신문에 나오는 저자 사진에서 느껴지는 포스가 책에서도 느껴지리라 생각된다. 저자의 다른 저서들의 제목을 봐서도 알겠지만, 대부분이 섬, 바다에 관한 제목, 내용이다. 바다에 대한 저자의 애정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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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2010.9.4 바다, 본능에 충실한 ‘날것’의 유혹
사람은 누구나 어울리는 배경과 상황이 따로 있다. 소설가 한창훈(47)에게는 바다와 섬이 그런 곳이다. 바다는 뵈지 않고 섬은 멀기만 한 육지 한가운데에서 그는 어쩐지 어색하고 풀죽어 보인다. 반대로 섬이나 바다 근처에 데려다 놓으면 아연 생기가 돈다. 섬에서 태어나 바닷가에서 성장한 뒤 20, 30대를 뭍에서 보냈으나 4년 전 고향 거문도로 돌아간 그에게 섬과 바다는 숨쉴 공기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소설이 줄곧 고향 섬과 바닷가 사람들 둘레를 맴도는 것은 그러므로 자연스러운 노릇이다. 장편 <홍합>과 <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 소설집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와 <나는 여기가 좋다>, 산문집 <한창훈의 향연> 등에 이어 그가 또 하나의 바다 책을 내놓았다.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가 그것인데, 이번에는 다산의 형인 손암 정약전의 도움을 받았다.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손암의 해양생물 박물지 <자산어보>에 나오는 30종의 해산물에 대한 짧은 설명을 앞세운 다음 해당 해산물을 잡는 과정과 조리법, 그리고 맛을 소개한다. 잡기에서 요리까지 작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삼되, 다른 이들의 애틋하거나 재미난 사연을 곁들여 객관성과 다양성을 확보했다.


갈치, 문어, 볼락, 노래미, 붕장어, 참돔, 학꽁치, 성게, 가자미, 해삼… 목차에 등장하는 해산물들은 그 이름만으로도 꿀꺽, 침을 삼키게 만든다. 게다가 ‘생계형 낚시꾼’을 자처하는 작가는 이 모든 것들을 제 손으로 잡아, 그러니까 자연산 활어 및 생물로 맛보았다는 것 아닌가!

» 소설가 한창훈(47)
부러움을 애써 누르고 책의 내용을 들여다보자. 방파제나 갯바위에서 남녀노소 누구나 손쉽게 잡을 수 있다는 학꽁치를 두고 작가는 “변방의 외로움과 거친 환경을 잘 견뎌낸 이들에게 주는 바다의 선물”이라고 표현했다. <자산어보>는 이렇게 설명한다. “뱀처럼 몸이 가늘고 길다. 아랫부리는 침 같고 윗부리는 제비부리 같다. 흰 빛깔에 푸른 기운이 있다. 맛이 달고 산뜻하다.” 어떻게 잡는가? 작가가 소개하는 방법은 이렇다. “가볍고 긴 낚싯대에 학꽁치용 바늘을 묶고 새우 살을 아주 조금 단다. 녀석들이 돌아다니는 깊이 정도로 찌를 조절하고 던지면 달려와서 물고 달아난다. 손목 스냅을 한번 줘서 후킹을 시키고 올리면 된다.” 다음은 먹는 요령. “(회는) 첫째가 묵은 김치이고 둘째가 쌈장(참기름과 양파를 넣고 비벼놓으면 더 좋다), 셋째가 고추냉이 간장이다. 야채와 버무려 회덮밥 만들어 먹기도 한다. 부침가루와 계란으로 옷을 입혀 전을 붙이면 12첩 반상이 안 부럽고 김칫국 끓여도 개운하다. 넓게 펴서 가미한 다음 말려 포를 만들기도 한다. 이거 하나로 별의별 조화가 가능하다.”
잡는 과정을 간접적으로나마 지켜보았기 때문일까, 학꽁치의 달고 산뜻한 맛이 입 안에 감도는 것만 같다. 어디 학꽁치뿐이겠는가. “회는 달고 찰지며 살짝 데친 껍질은 고소하고 쫄깃쫄깃하다. 내장 중에 절구통같이 생긴 게 위인데 잘라내어 반으로 가른 다음 씻으면 오돌오돌 씹히는 맛이 별미이다.”(숭어) “뜨거운 밥에 계란 노른자랑 비벼먹으면 일품이다. 국을 끓여먹기도 한다.”(성게) “오래 끓이면 살이 풀어져 수프처럼 된다. 이빨이 쩍쩍 달라붙을 정도이다. 한 숟갈만 먹어도 곧바로 기운도 뻗친다.”(붕장어) 작가의 맛 묘사는 독자를 거의 고문하는 수준이다.
따지고 보면 이 책은 남의 목숨 빼앗아 내 배 채우는, 잔인하다면 잔인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삶이란 게 본디 다른 생명의 착취 위에서만 성립 가능한 것 아니냐고 작가는 반문할 테다. 살생의 윤리를 따지지 말고, 먹고 먹히는 삶의 슬픈 진실을 직시하자고, 노동의 숭고함과 혀와 내장의 쾌락에 충실하자고.

<…바다로 가라>는 읽는 이를 약 올리는 책이다. 술맛 나게 만드는 책이다. 읽고 나면 아쉬운 대로 동네 허름한 횟집으로라도 달려가도록 부추기는 책이다. 좀더 적극적인 이라면 간단한 낚시 채비를 차려서, 거문도가 아니라면 가까운 바닷가나 섬으로라도 당장 달려가도록 충동질하는 책이다. 한마디로, 위험할 정도로 유혹적인 책이다.
ps : 기사에서는 정약전의 저서를 <자산어보>라 하지만, 원래 정확한 명칭은 <현산어보>라 하는 주장도 있는 듯 하다. 예전에 헌책방에서 현직 생물교사(세화고)가 쓴 5권짜리 현산어보가 있어 얼른 구입해 놓았는데, 지금은 이사를 해서 서재 정리가 안되 책을 볼 수가 없다. 기억으로는 상당히 잘 나온 책이라는 생각과 저자의 말그대로 '노고'가 느껴지는 책이었다. 그리고 각각의 물고기에 대한 그림도 글의 설명을 도와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기사를 스크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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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2007.12.31 玆山魚譜는 자산어보? 현산어보?
무척이나 잘난 동생이 그런 대로 잘난 형을 우습게 하기도 하고, 더욱 빛나게 하기도 한다.
정약전(丁若銓 .1758-1816)은 어쩌면 이 두 경우에 모두 해당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의 동생이 그 유명한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니 말이다. 사실 동생 약용이 아니라면 약전이 지금과 같은 유명세를 얻게 되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
반면, 그런 동생이 없었다면 지금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약전을 논할 때면 언제나 우리나라 최초의 해양생물학 서적으로 알려져 있는 '玆山魚譜 '가 거론된다. 강진에서 18년 동안이나 유배 생활을 한 동생 약용과 비슷하게 약전 또한 순조 원년(1801) 신유박해 때 약용과 함께 유배 조치되어 흑산도(黑山島)에서 생을 마치고 말았다.
이 흑산도 유배생활에서 남긴 저서 중 하나가 바로 '玆山魚譜'. 글자 그대로는 '玆山 '의 물고기 계보라는 뜻이다. 여기서 玆山은 중의적이다. 약전의 호일때는 자산,흑산도의 별칭일 때는 현산으로 읽힐 수 있다.
한데 문제는 이 玆山魚譜를 어떻게 읽어야 하느냐를 두고 벌이는 논쟁이 예사롭지 않다. 가장 익숙한 표기는 물론 '자산어보'지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현산어보'로 읽어야 한다는 주장 또한 만만치 않다.
최근 발간된 계간 역사비평 2007년 겨울호(통권 81호)에 '다산은 '현산어보'가 아니라 '자산어보'라고 불렀다'는 한국과학사 전공 신동원 KAIST 교수의 역사논설은제목이 시사하듯이 근자에 그 세력을 급속도로 확장하기 시작한 '현산어보'를 논박한다.
그의 주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玆山魚譜를 자산어보라고 읽어야지 왜 현산어보로 읽느냐"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신 교수가 동원한 인물은 그 저자인 약전이 아니라 그의 동생 약용이다. 약용이 남긴 어떤 글에서도 '玆'를 '현'으로 읽은 흔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신 교수는 왜 玆山魚譜 당사자인 정약전을 동원하지 않고 정약용을 이용해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신 교수도 이 글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玆山魚譜가 자산어보가 아니라 현산어보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계기는 2003년 전 5권의 방대한 전서(全書 )로 발간된 '현산어보를 찾아서'였다. 이 책은 서울 세화고 생물교사인 이태원 씨의 역작이다.
이 교사는 이 전서를 통해 玆山魚譜 에 수록된 수산동식물 200여 종을 찾고자 했다. 이를 위해 정약전의 숨결이 묻은 곳을 샅샅이 뒤졌다. '현산어보를 찾아서'는 그 고된 결과물이었다.
한데 이 교사는 자기 저서에서 玆山魚譜 는 '현산어보'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신 교수가 이번 글에서 지적했듯이 그 이전에도 이미 임형택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가 '정약용의 강진 유배시의 교육활동과 성과'(1998)라는 논문을 통해 이를 가장 먼저 주장했고, 김언종 고려대 교수 또한 2001년 출간한 '한자의 뿌리'에서 이에 동조하기도 했다. (김언종 교수는 나중에 종전 주장을 철회하고 '자산어보'로 돌아섰다.)
신 교수는 玆山魚譜 를 '자산어보'로 읽어야 함에도 '현산어보'라는 읽기가 "그렇게 널리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이태원 씨 저서를 "신문, 방송에서 대대적으로 다뤘기 때문"이라면서, "한국의 출판상업주의와 무관치 않다고 본다"라는 해석도 덧붙였다.
신 교수는 더 나아가 玆山魚譜의 '현산어보' 읽기가 "그간 무지 때문에 오독한 것을 바로잡았다는 학계의 성숙함에 대한 자부심이 깔려 있고, 아직까지도 무지함을 깨우치지 못한 대중에 대한 자부심 또한 내재되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산어보' 확산에 기폭제 역할을 한 이태원 씨의 전서는 당시 그에 대한 각종 언론사 서평을 보면, 玆山魚譜 에 등장하는 수산동식물 200여 종을 직접 찾아 헤맨 저자의 열정이 높은 평가를 받았지, 언론과 결합한 출판상업주의 때문에 각광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실제 이태원 씨는 玆山魚譜의 흔적을 추적해 나가는 과정에서 당시 산림정책의 폐해를 논한 정약전의 송정사의(松政私議)라는 고문서를 찾아내는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