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10.4.11 (1부)뿌리 없는 삶…⑤주거와 계급사회 

ㆍ어느 동네, 어느 아파트, 몇평… 차별 낳는 ‘현대판 호패’

우리 사회에서 “어디 사세요?”라는 질문은 대학 배치표에서 ‘어느 대학’ ‘어느 과’를 가늠하듯, 우리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함축하는 질문이다. 거주공간과 형태가 ‘계급지표’로 자리를 잡고 있다. 어느 지역, 어떤 도시의 어떤 형태의 주택에서 자가 또는 임대로 사는지 여부가 삶의 질을 가르고 바꿔놓는다. “강남에선 중학생부터 회사원들까지 자기 사는 동네를 엄청 내세워요. 자식이 자꾸 그러니 부모가 빚을 내서 오는 경우도 있고, 강남에 산다는 과시욕구와 교육문제로 이사오는 사람들이 10명 중 6~7명쯤 되는 듯합니다.” 서울 서초구 방배1동의 한 공인중개사의 말이다.

‘간판’을 중요시하는 사회풍토에서 ‘집’은 어쩌면 돈으로 얻을 수 있는 간판이다. 학원강사 한모씨(27)는 서울 강남의 원룸에서 보증금 1000만원에 매달 100만원씩 월세를 지불하며 살고 있다.

한달 소득의 절반을 집세로 낸다. 그래도 ‘강남 여자’라는 정체성을 얻기 위해 지불하는 비용인 만큼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명문대 음대에 재학하던 당시 그는 부잣집 친구들 속에서 기죽은 적이 많았다.

양천구 신월동의 단독주택에 살면서도 그는 “친구가 집까지 데려다줄 때는 목동 아파트 단지를 가리키며 여기가 우리집이라고 둘러대곤 했다”고 말한다. 달동네 인상을 줄 수 있다며 관악구가 2008년 신림4동을 신사동, 신림6·10동을 삼성동으로 변경한 일이나, 양천구 신월·신정동을 ‘신목동’으로 바꾸려다 기존 목동 주민들의 반발로 무산된 일 등은 이미 ‘사는 동네’가 계급지표가 됐음을 반영한다.

아파트인지 주택인지, 몇 평짜리인지도 ‘현대판 호패’로 기능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조사한 ‘2008년 한국인의 의식, 가치관 조사’에서도 “집의 크기나 형태가 사회적 지위를 상징한다는 말에 얼마나 공감하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라는 응답은 74.6%에 달했다. 2001년 69.4%에서 더 늘어난 것이다.

왜일까. 서울의 집값은 뉴욕, 도쿄 수준에 맞먹는 세계적인 고가다. 임대료는 소득대비 세계 최고수준이다. 집은 곧 자신의 ‘벌이’, 경제력을 증명한다. 부동산 가격상승은 재산증가인 동시에 은행에서 담보로 빌릴 수 있는 돈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비싼 주택이 많은 지자체일수록 세수가 많아 쾌적한 환경조성이 가능해지고, 교육예산도 많이 배정해 ‘좋은 동네’로 매김할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자본사회에서 소득의 차이에 따른 주거 차이는 일정수준 불가피하다. 학계는 그러나 여타 선진국가가 ‘주택계층’에 관한 연구를 통해 주거가 사회에 미칠 영향을 감안해온 반면, 한국처럼 ‘소유’에만 집중해온 경우는 드물다고 지적한다. 그러다보니 부동산 가격폭등에 따른 경제 불평등의 심화 등 부작용이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 LH토지주택연구원 진미윤 선임연구원은 “당대의 주택자산 격차는 후대까지 연결돼 빈부격차의 대물림 현상이 나타난다”며 “아무리 열심히 일해 저축을 해도 주택보유자의 자본이득을 따라잡을 수 없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주택보유자의 반열에 끼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는 한편 성실한 노동가치는 평가절하되고 냉소적, 비관적 사회관이 생겨나면서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정부정책을 불신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특히 2001년부터 계속돼온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주택보유자와 비보유자 간의 재산수준과 삶의 질은 크게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이 같은 차이는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로 나타났는가.

첫째, 주택가격에 따른 빈부격차는 학력격차로 나타난다. 경제적 여력이 있는 계급이 추가적인 사교육비용을 투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 권영길의원실이 분석한 2009년 수능자료에서도 집값과 성적의 긴밀한 상관관계가 확인된다.

서울 자치구 가운데 평당가격이 평균 1370만원으로 가장 비싼 강남구의 경우 영어 1~2등급 비율이 27.9%로 가장 높았고, 평당 450만원대인 중랑구는 6.5%로 낮은 수준을 보였다. 또 집값이 비싼 지역일수록 부모의 학력수준도 높아서 전문대졸 이상의 비율이 강남구와 서초구가 약 67%로 나타났다. 학력수준이 높으면 고소득의 전문직 종사자도 많아진다.

반면 집값이 저렴한 지역은 20~30% 수준에 그쳤다. ‘부모의 고학력-높은 집값-자녀의 고학력’으로 이어지는 계급대물림을 확인하는 셈이다.

반대로 빈곤층의 열악한 주거상태는 아동의 발달에 악영향을 미친다. 서울대 이봉주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2008년 연구에서 “빈곤주거 아동은 그렇지 않은 아동에 비해 학업성취가 유의미하게 낮았다”고 분석했다.

둘째, 치안의 양극화다. 범죄발생과 관련한 가설 에 따르면 임대주택보다 자가소유 주택에서 범죄율이 낮게 나타난다고 한다. 고준호(한국교원대)는 <범죄와 두려움의 공간적 특성>(2009)이란 박사논문에서 서울 10개동을 경찰청 범죄정보관리시스템(CIMS) 자료를 통해 살펴본 결과 ㅁ동·ㄱ동·ㄷ동의 경우 “주민 소득수준이 높고 거주환경이 쾌적하고 아파트 비율이 높은”데다 “범죄에 대비한 보안시설이 잘 돼있고 이동시 주로 자가용을 이용함으로써 범죄에 대한 노출이 적다”고 분석했다.

반면 ㅅ동·ㅁ동 등의 경우 “전체 범죄율은 낮지만 살인비율이 2~3배 정도 높아 두려움이 높게 나타”났고 ㄷ동과 ㅅ동은 인근에 공단이 조성돼 있거나 시장 등 유동성이 높은 지역을 끼고 있어서 범죄율과 두려움 모두 높은 것으로 지적했다.

특히 중하위계층인 전세·월세·임대주택 거주자들은 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더 많이 느낀다. 국토해양부의 2008년 ‘주거실태조사’를 보면 소득이 감소하거나, 집세가 비싸거나, 집주인이 나가라고 해서 현재의 거주지로 밀려난 가구의 경우 치안 불만족도가 30~35%에 달한 반면 평수를 늘려 이사한 경우에는 22%에 그쳤다.

특히 재개발 예정지역은 치안의 사각지대다. 서울 관악구의 한 주민은 “최근 옆 동네에 밝은 대낮에 2곳이나 좀도둑이 들어서 낮에도 문단속을 철저히 한다”고 말했고, 유모씨는 “직장에 다니는 딸이 밤에 퇴근하고 올 때마다 무서워한다”고 말했다.

셋째, 건강의 차등화다. 일단 병원이 부유한 동네에 더 많다. 대한의사협회의 2007년 전국회원실태조사에 따르면 강남구에 의사가 가장 많아 서울 1만8482명 중 15%인 2500명이 강남에 분포돼 있다. 2008년 자료를 보면 회원 대부분(92.9%)이 도시지역에 분포하고 있으며, 서울을 비롯한 6대 광역시 등 대도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회원이 전체 회원의 58.7%다. 고소득층에 비해 돈을 못버는 저소득층의 사망위험이 2.4배 높다는 재산과 수명과의 연관관계에 대한 연구도 있다.

반면 열악한 주거환경에 사는 이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환경질환에 더 잘 걸린다. 천식·재채기·알레르기·아토피 등의 질환은 지하거주자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적게는 1.3%에서 많게는 11.6%가 더 많이 나타난다. 습기에 의한 곰팡이 등이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주택거주형태와 별개로 낮은 소득수준은 이미 저소득층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펴낸 2007년 ‘한국복지패널 보고서’에 따르면 가구원의 건강상태는 소득이 낮을수록 나쁘다. 우울증에서도 1분위는 우울증 판별기준에 가까운 상태로, 5분위에 비해 약 3배 가까이 우울도가 높았다. 또 손미아 교수(강원대)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전반적으로 영아사망률의 사회계급적 차이가 증가, 어머니의 교육수준이 대졸 이상인 경우에 비해 초등학교 이하인 집단의 자녀에서 신생아~소아의 사망률이 3.2~5.0배 더 높게 집계됐다.

서구사회에서 ‘복지’라는 개념이 ‘주거’의 문제까지 포함하고 있음에도, 우리 사회는 지금껏 그 ‘복지’를 개인의 힘으로 풀어야 할 숙제 정도로만 여겨온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폭등한 집값은 이제 사회라는 공동체에 균열음을 내기 시작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심리학자 김태형은 “부자와 가난한 이가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분리현상이 심화된다면 사회적인 반목이 더 깊어질 수 있고, 안정적인 주거를 확보하지 못하는 사회는 개개인의 잠재력을 십분 발휘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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