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에서 8월1일 부터 서평 코너가 생겼다. 항상 서평글들은 챙겨보는 나에게 아주 유용할 듯하다. 그중에서 서해문집에서 출판한 전지모 선생님들이 쓰신 '지리, 세상을 날다' 편집자의 글이 있어 스크랩해 놓는다. 생각보다 아주 내용이 길다는 느낌이 우선 들었다. 편집자분이 책에 대한 애착이 있는 듯 하다. 학교 도서관에서 책 주문하고 대충 읽어는 보았는데 구입은 안한 듯하다. ㅋㅋ 얼른 구입해야지. 글 중에서 "'지리'의 시장성이 낮다고 판단해서인지 근래 나온 지리 관련 책은 '세계사' 등의 이름으로 포장되어 출간되고"라는 부분을 읽고 현재의 교육과정 및 수능 선택 과목 축소 논란과 관련하여 참으로 씁쓸한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물론 좀 전에 먹은 '필스너 우르켈'때문일수도) '지리'란 이름을 달고 나오면 팔리지 않는 더러운 세상. 솔직히 얼마전에 나온 '르몽드 세계사'같은 경우도 전에 나온 1권도 원래 제목은 '르몽드 아틀라스'였다. 원래 르몽드에 실렸던 책의 기사들도 내용은 세계사적인 것보다는 '아틀라스'적인 '지리'적인 내용들이 훨씬 많고 그게 주였다. 근데 제목은 세계사이다. XX...세상 인심이 흉흉하다. 비록 8월10일 있을 공청회는 수능 선택과목 관련 공청회는 가지 못하지만(물론 답사때문이라는 핑계) 우리 전국의 모든 지리인들이 모여서 지리인들의 깡따구를 보여줘야 할 때일듯하다. 남들이 과목이기주의다 뭐다 해도 그거 다 X소리이다. 이건 이기주의고 뭐고 다 필요없다. '상식'이다. 이정도 대우에 일어나지 않는 사람들이 웃긴거지. 우리가 정당히 받아야 할 처우와 대가를 주지 않을때, 가만히 있느냐, 일어나느냐 그런 선택이 아니라 역사의 필연이었다고 생각한다. '지리'과목도 예전의 프랑스어, 독일어교육과나 최근의 가정교육과와 같은 처지가 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올 12월에 교육부 고시가 되기 전에 바꿔야 할 것이다. 어렵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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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유세윤을 수식할 때 '뼛속까지 개그맨'이란 뜻의 '뼈그맨'이란 말을 쓰고는 한다. 다른 이들도 그렇겠지만 나 역시 그처럼 '뼛속까지 편집자(혹은 에디터)'가 되는 날을 꿈꾼다. 내 일을 사랑하고, 즐기고, 잘할 수 있는 날을 준비한다. 그리고 그때까지, 아니 그 이후에도 이 책 <지리, 세상을 날다>(전국지리교사모임 지음, 서해문집 펴냄)를 만들 때의 각오와 결심을 늘 간직할 것이다.
마케터로 1년을 일하다가, 책을 직접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편집자로 자리를 옮긴 지 1년 정도 됐을 때였다. (고작 1년 해 본) '마케팅 경험을 더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책을 내겠다'는 거창한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리는) 꿈을 갖고 편집 일을 시작했지만, 생각만큼 일이 쉽지는 않았다. 스스로 책 좀 읽는다 생각했지만, 출판 편집자는 책 좀 읽는다고 해서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맡겨진 원고들을 아무리 읽어도 어떻게 책으로 내야 할지 쉽게 감을 잡기 힘들었고, 하루하루 실무를 하면서 실수와 오류를 반복했다. '처음이라 그렇다'는 이유가 통할 시기도 지나가고 있었다. 나 때문에 일이 많아진 선배들 보기가 민망했고, 애써 부서를 옮겨준 회사에게 미안했다. 그렇게 답답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돌파구를 찾기 위한 이런저런 시도들을 해보고 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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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 세상을 날다>(전국지리교사모임 지음, 서해문집 펴냄). ⓒ서해문집
지리 교양서가 내게 맡겨졌다. 청소년부터 읽을 수 있는 쉬운 내용에 우리나라와 세계의 뜨끈뜨끈한 이슈들을 다룬 원고였다. 전국지리교사모임의 현직 지리 선생님이 모여 쓴 이 원고는 회사에 들어온 지 1년도 넘은 상태였다. 저자가 여럿이었던 탓에 각 원고가 개성은 있었지만, 그만큼 스타일과 주제를 다루는 정도에 편차가 있었다. 관련 시장은 이미 중견 출판사가 오래 전에 낸 책이 장기간 스테디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지속적으로 지리 관련 책을 내온 출판사가 탄탄한 자기 리스트를 갖고 있었다.
또 '지리'의 시장성이 낮다고 판단해서인지 근래 나온 지리 관련 책은 '세계사' 등의 이름으로 포장되어 출간되고 있었다. 만만치 않은 상황이었지만, 회사에서는 그래도 원고의 가능성이 있다고 봤고, 내게서 어떤 가능성을 봤는지 '구원 투수'라는 막중한 임무를 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회사가 고맙기도 하지만, '그때는 뭘 믿고 그런 무모한 결정을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출간 일정을 어느 정도 세운 뒤, 당시 새로 부임한 편집장과 함께 대표 저자를 만나러 갔다. 저자를 만나는 데 익숙지 않은 초보 편집자는 선배 편집자와 저자의 입만 바라볼 수밖에…. 예상했던 대로 저자들은 출간이 지연되는 것에 대해 답답해하고 있었고, 처음에 가졌던 기대감이 많이 사라진 것 같았다. 어찌 보면 출판사 측이 한껏 고개를 수그리거나 양쪽의 팽팽한 기 싸움이 있을 것만 같은 자리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그 자리에서 하나의 원고가 한 권의 훌륭한 책으로 만들어지는 원동력이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편집장은 과거의 오류를 인정하면서 제대로 된 책이 나올 것이란 확신을 저자에게 심어주었다. 그리고 원고가 책이 되기까지 생길 수 있는 어려움과 앞으로 저자와 편집자 사이에 필요한 것들을 얘기하며, 오해의 싹을 자르고 실질적인 논의의 틀을 마련했다.
저자는 원고의 의미와 장단점에 대한 의견을 편집장과 나누며, '지리'라는 학문의 가치와 의의를 얘기했다. 특히 학생을 가르치면서 느꼈던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 사람의 모든 생활이 '공간'과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이야기할 때는 열정이 넘쳐 눈에서 빛이 나는 듯했다. 일상과 세계,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저자의 '지리' 이야기 속에서, 지도와 기호 속에만 갇혀 있던 우리 마음속의 '지리'가 편견의 벽을 깨고 나오는 것만 같았다.
저자에게 신뢰를 주고 그가 가진 능력을 더 발휘하도록 해주는 편집장, 원고에 대한 확신과 함께 자신이 갖고 있는 고민과 비전을 보여주는 저자를 보며, 적어도 이 둘을 믿으면 나도 조금은 잘할 수 있을 거란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지리는 우리 각자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위치한 공간, 환경, 세계와의 얽힘 속에 공존한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지리는 단순한 '물산의 지리'나 '지명의 지리'를 넘어 우리 삶에 새로운 시각과 시선을 던져주는 하나의 패러다임입니다."
저자와의 신나고 알찬 만남을 하고 온 다음날, 편집 작업을 하면서 관련 파일을 모아놓는 작업 폴더를 나는 그렇게 이름 붙였다. '지리' 하면 떠오르는 학창 시절의 무시무시한 암기-각종 도시와 나라 이름, 기후와 특산품, 지도와 도표 등을 벗어나, 그날 저자가 우리에게 보여준, 지리가 가진 무한한 재미와 가치를 독자들에게 보여주어야겠다는 작은 결심 때문이었다.
그러나 희망과 결심만으로 사고뭉치 초보 편집자의 능력이 하루아침에 일취월장할 수는 없는 일. 작업 시작부터 끝까지 조용한 날이 없을 정도로 사건의 연속이었다. 특히 아홉 명의 저자와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원고를 수정·보완하는 과정에서 저자들과 크고 작은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고, 의욕이 너무 넘친 나머지 저자의 원고에 너무 많은 수정을 가해 저자들의 기분을 상하게 한 일도 있었다.
지리를 다루고 있는 원고의 특성상 책에 많은 이미지가 들어가게 되었는데, 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지 못해 담당 디자이너의 일이 두 배 세 배 늘어났고, 이 때문에 다른 책들의 출간까지 미루어지는 일까지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 처음으로 책을 만드는 일이 '재미있다'고 느꼈다. 다양한 사람들의 손길 속에서 하나의 원고가 책의 모양을 갖춰 가는 모습은 재미를 넘어 감동까지 느끼게 해주었다.
특히 스물 한 편이나 되는 원고들을 주위 선배들의 도움을 받아 네 개의 장으로 정리를 하고 저마다 특색 있게 제목을 붙인 뒤, 책의 제목을 "지리, 세상을 날다"로, 부제를 "Cool 한 신세대 지리 선생님들의 Hot한 21세기 이슈 읽기"로 확정했을 때는 짜릿한 기분마저 들었다. 물론 그러고도 책을 더 잘 만들 수 있는 방법만 있다면 내 영혼까지 몽땅 팔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일이 재미있으면 약간의 뻔뻔함도 생기나 보다. 책의 전체적인 완성도를 위해 저자들에게 추가 원고를 부탁하기도 하고, 필요한 이미지를 구하기 위해 생전 연락 안 하던 군 시절 간부와 옛 여자 친구에게까지 연락을 했다. 다른 책 출간 일정까지 잡아먹는 이 뻔뻔한 책을 위해 회사에 추가 비용을 청구하기도 하고, 이미 확정된 디자인을 바꿔 달라고 디자이너를 조르고 또 졸랐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힘과 지혜가 모였고 장장 8개월을 작업한 끝에 책은 세상에 나왔다.
책의 출간 뒷얘기를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했지만, <지리, 세상을 날다>를 고작 한 초보 편집자의 성장기 속에 가두어 둘 수는 없다. 우리나라의 입시 교육은 지리 과목을 교과서와 교실 안에 가두어 버렸다. 그러나 그런 답답한 구조를 그저 지켜만 보기에는 지리가 가진 중요성이 너무 크다. 최근 각 나라가 세계화, 환경문제, 다문화주의 등 21세기 주요 이슈를 가르치고자 지리 교육을 강화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지리 과목이 사회 과목에 통합되어 있으며, 일부 교육 현장에서는 지리를 전공하지 않은 교사가 지리를 가르치는 경우도 있다.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은 지리를 독립된 과목으로 가르치고 있고, 일본도 1989년부터 지리와 사회를 분리시켰다. 우리가 교과 과정 개편의 모델로 삼은 미국도 초등학교 5학년부터 지리를 독립된 과목으로 가르친다.
<지리, 세상을 날다>는 이렇게 중요한 지리의 참모습과 가능성을 폭넓게 보여준다. 유럽의 통합 과정을 통해 한국의 분단 상황을 돌아보고, 평양의 도시 구조를 보며 사회주의 사회를 이해하려고 한다. 전통 마을의 환경 친화적 구조를 통해 자연과 함께하는 삶의 중요성을 확인하고, 서울 방배동 서래 마을과 안산 원곡동을 비교하며 우리가 가진, 외국인에 대한 이중적 시선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단순히 일상생활과 지리 지식을 연결하는 것을 넘어서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저자들의 목소리를 숨기려 하지 않는다.
지리는 공간과 공간의 차이를 규명해 사회 구성원 간의 이해와 소통의 폭을 넓히는 학문이다. 이 책은 그러한 이해와 소통을 가로막아온 개발 지상주의와 제국주의, 편견과 이기심을 예리하게 비판하면서, 지속 가능한 개발과 민주주의가 중심이 되고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사라지며 각 개인과 사회의 차이가 존중받는 세상을 이야기한다.
<지리, 세상을 날다>는 편집자 본인에게는 편집자로서의 정체성을 확인시켜 주면서 지리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과 가치를 널리 알려 준 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리와 <지리, 세상을 날다>는 더 높이 더 멀리 세상을 날아야 한다.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이 '4대강 삽질'과 '천안함'과 '아파트값'의 망령이 지배하는 곳이기에 더 그렇다.
/임경훈 서해문집 편집자
ps : "지리는 우리 각자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위치한 공간, 환경, 세계와의 얽힘 속에 공존한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지리는 단순한 '물산의 지리'나 '지명의 지리'를 넘어 우리 삶에 새로운 시각과 시선을 던져주는 하나의 패러다임입니다." 감명 깊은 말이다. 아이들에게 지리란 이런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아니, 이해시킬수 있는 교사가 되고 싶다. 공부 좀 많이 해야겠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