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2010.7.7 “아이폰에 ‘민주콩고의 눈물’을 담았나요?”
텅스텐·주석·탄탈룸 등 원료
대량학살 분쟁지서 주로 채굴
국제시민단체 사용금지 촉구
스마트폰 ‘부품 원산지’ 논란
미국 애플사 경영진은 요즘 여러가지로 머리가 아프다. 지난달 출시한 아이폰4가 특정 부위를 손으로 쥘 경우 수신율이 떨어지는 문제가 드러난 것 때문만은 아니다. 일부 소비자와 시민사회단체들이 아이폰에 들어간 재료의 원산지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면서 수백만명의 학살이 벌어지고 있는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생산된 원재료를 쓰지 않느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애플 최고경영자인 스티브 잡스는 최근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이메일을 보낸 데릭 로도스는 애플이 민주콩고에서 생산된 광물을 사용하는지 궁금하다고 잡스에게 물었다. 이에 잡스는 “부품 공급자들에게 분쟁지역이 아닌 지역에서 생산된 광물을 사용하라고 요구는 하고 있다”면서도 “솔직히 그들이 그렇게 하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매우 어려운 문제다”라고 답변했다. 잡스의 이런 답변은 미국 언론은 물론, 개인 블로그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킹서비스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애플이 지난달 20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디시에 새로 연 매장 앞에는 아이폰4를 사려는 줄이 길게 늘어섰는데, 한쪽에서는 민주콩고산 광물을 사용하지 말 것을 애플에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또 애플이 민주콩고산 광물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내용이 담긴 동영상이 유튜브(www.youtube.com/enoughproject)에 올라오자 1주일 만에 조회수가 40만건을 넘어서는 등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사실 애플 외에도 인텔이나 모토롤라, 노키아, 림 등 세계적인 전자회사들은 수년 전부터 민주콩고에서 생산된 광물질을 사용하지 말라는 사회적 압박을 받아왔다. 이런 압박을 주도하고 있는 ‘이너프’(Enough) 등 시민단체들은 휴대전화나 컴퓨터 등에 들어가는 주석·텅스텐·탄탈룸·금 등 4가지 광물의 상당량이 오랜 기간 대량학살이 벌어지고 있는 민주콩고에서 채굴된 것이며, 이를 애플 등에 부품을 공급하는 세계 각지의 전자부품회사들이 사용하고 있다고 의심한다. 또 민주콩고 광산지역의 토호세력들은 광물 밀수출에서 번 돈으로 더 많은 무기를 사고 민병을 거느릴 수 있게 된다. 결국 아이폰 한대를 살 때마다 민주콩고에선 학살이 벌어질 위험이 높아지는 셈이다. 시민사회단체들이 애플을 압박하는 이유다.
이런 사회적 압박에 전자회사들도 나름대로 적극 대응하고 있기는 하다. 노키아는 지난해 발간한 ‘사회책임 보고서’에서 좀더 엄격한 공급망 관리를 약속했고, 모토롤라와 인텔 등도 자신들에게 공급되는 부품의 원재료 산지 등을 철저하게 점검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들의 약속에도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제3세계 인권문제를 집중 보도해 두번이나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 언론인 니컬러스 크리스토프는 지난달 26일 <뉴욕 타임스>에 낸 칼럼에서 “전자회사들은 소비자들이 전자제품을 볼 때 ‘피’보다는 ‘맵시가 있다’고 느끼길 더 원한다”며 “그들은 (부품의 원재료 관련 논란이) 잦아들도록 노력할 뿐”이라고 꼬집었다.
세계 휴대전화 시장 점유율 2위와 3위를 달리고 있는 삼성전자와 엘지전자는 어떨까. 삼성전자가 올해 낸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보면, 노키아 등과 마찬가지로 민주콩고산 주석이나 탄탈룸 사용 금지를 부품공급회사들에 요구한다. 이광윤 삼성전자 차장은 “연 1회 부품회사 진단을 통해 공급망 관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엘지전자도 올해 들어 기업윤리를 강조하는 유엔글로벌콤팩트에 가입해 부품공급회사에 윤리경영을 요구하는 ‘글로벌 구매 방침서’ 등을 만드는 등 공급망 관리에 부쩍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이종민 엘지전자 대리는 “밀수입 등 불공정하거나 문제 소지가 있는 광물 사용을 하지 않고 있다는 확인서를 올해 들어 부품업체로부터 받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