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2010.6.23 [김정운의 남자에게] “내년에 오십인데…”
나는 수첩을 아주 자주 바꾼다. 조금 쓰다가도 지겨우면 바로 바꿔 버린다. 한달에 서너개 이상은 바꾸는 것 같다. 지금도 내 책상에는 처음 몇 쪽만 쓰다 만 수첩이 수십 종류다. 시내 큰 서점에 붙어 있는 문구점에 정기적으로 들러 새로운 디자인의 수첩을 찾아보는 게 내 취미다. 어쩌다 외국여행을 나가면 문방구를 파는 곳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거의 강박증 수준이다. 좀 한가한 어느 날, 내가 도대체 왜 이러는가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내 인생에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어서 그렇다. 내 삶의 중요한 조건들 가운데 나 스스로 선택한 것이 별로 없다. 내가 스스로 선택한 듯 보이지만, 잘 들여다보면 어찌어찌하다 밀려 이렇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걸핏하면 학생들에게 화만 내는 교수는 아무리 생각해도 내 체질이 아니다. 소심한, 혹은 섬세한 성격의 나는 예술가(?)였어야 옳다.
집은? 집은 내 맘대로 바꿀 수 있나? 절대 아니다. 그것도 다 아내 마음대로다. 집값 상승 요인, 애들 교육환경 등등을 고려하여 결정할 뿐이다. 내 출퇴근 환경, 내 삶의 즐거움 등은 아예 안중에도 없다. 고작해야 자동차나 내 맘대로 바꿀까? 그러나 그것도 돈이 되는 한도 내에서, 많이 바꿔야 평생 서너번 정도다. 그래서 수첩이나 자주 바꾸는 거다. 일년에 아무리 많이 바꿔 봐야 돈 얼마 안 든다.
우리의 삶이 재미없는 이유는 ‘선택의 자유’(freedom of choice)를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자들은 모이면 군대 이야기다. 이 선택의 자유를 박탈당한 트라우마를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기 때문이다. 군인은 24시간을 정해진 규칙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입는 옷, 사용하는 물건이 모두 정해져 있다. 그래서 장교의 의무복무기간이 사병보다 더 긴 거다. 장교는 사병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선택의 자유를 부여받기 때문이다.
선택의 자유는 인간 존재의 근거다. 내 삶의 의미는 내가 선택했는가 아닌가에 의해 결정된다. 그래서 등산가들은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그 높은 산 정상에 오르는 거다. 내가 선택한 일이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 이 ‘선택의 자유’와 아주 비슷하게 쓰이는 개념이 있다. ‘내적 동기’다. ‘재미’나 ‘즐거움’과 같은 내면의 욕구를 의미한다. 요즘 이 ‘내적 동기’ 전성시대다. 자신이 진짜 원하는 일을 선택해서 하라고 곳곳에서 부추긴다.
유사해 보이는 ‘내적 동기’와 ‘선택의 자유’는 사실 서로 다른 개념이다. 이 두 개념이 상충하는 경우도 많다. 돈이나 성적 같은 ‘외적 동기’에 의해 움직이지만,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부여된 경우이다. 이렇게 ‘내적 동기’와 ‘선택의 자유’가 서로 충돌할 때 어느 요인이 더 강력할까?
심리학자들은 ‘선택의 자유’ 쪽 손을 들어준다. 비록 외적 동기에 의한 행동이지만, 스스로 선택했을 경우, 그 행동의 몰입도가 순수한 내적 동기에 의한 행동의 몰입도보다 더 높다는 것이다. 구태여 순서를 따지자면 ‘선택의 자유’가 먼저고 그다음이 ‘내적 동기’라는 이야기다.
재미있어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면 재미있어진다. 아무리 재미없는 행동도 내가 선택하면 재미있어진다. 요즘 유행하는 행동경제학의 ‘너지’(nudge) 같은 개념은 바로 이 ‘선택의 자유’에 관한 경영학적 변형이다. 방향만 은근슬쩍 제시하고, 최종 결정은 스스로 내리도록 해야 행복해한다는 것이다.
ps : 그러게...내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게 바꿀수 있는게 그 어디 많더냐... 고작 사람들이랑 술이나 마시고 이런저런 애기나 하거나 혹, 책이나 사고 클래식CD나 선택할 뿐... 그거마저도 자유롭지 못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