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2010.5.28 근현대사 거목이 몸으로 쓴 ‘당대사’

‘군국소년 세대’와 다른 길…한평생 평화통일문제 고민
현실 외면 역사학에 ‘쓴소리’…‘체제평가’ 다양한 기준 강조 

 

 

강만길(77) 교수의 자서전 <역사가의 시간>(창비)을 읽고 한홍구 교수가 한 얘기가 인상적이다. 하나는 우리나라에서는 정작 역사학자들이 자서전을 쓰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군국소년’ 세대인 강 교수가 이 땅의 대다수 군국소년들과는 판이한 길을 걸어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역사가의 시간>은 역사학자로서 자서전을 썼다는 사실 그 자체와 군국소년 세대이면서 그것을 거부한 삶의 궤적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주목의 대상이 될 만한 것이다. 

강 교수 얘기에 따르더라도 “국내 역사학자가 남긴 것(자서전)은 어느 특정 시기만을 다룬 것 외에는 없지 않나 생각”될 정도다. 왜 한국 역사학자들은 자서전을 쓰지 않는 걸까? 다른 이유들도 있겠지만, 이는 군국소년 세대론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인다. 자서전 목차에 올라온 강 교수 삶의 궤적을 약간만 훑어보면 짐작이 간다. 1933년에 태어난 그는 1940년에 마산의 ‘심상소학교’에 입학해 창씨개명과 우리말 금지 수난 속에 소년기를 보내다가 ‘국민학교’ 6학년 때 나라가 해방을 맞았다. 그러곤 바로 사생결단의 신탁통치 찬반 탁류에 휩쓸렸다. 중학교 5학년 때 6·25전쟁이 터지고 학도의용군이 됐다. 대학에서 4·19혁명과 5·16쿠데타를 겪었고 고려대 전임교원이 된 뒤 박정희의 유신독재가 시작됐다. 더불어 중앙정보부 남산분실 지하 취조실에서 그 자신의 수난도 시작됐다. 전두환 군사정권 때 두 차례나 해직당했다. 서대문 교도소까지 갔다. 자서전을 쓰겠다고 마음먹는 것 자체가 어렵고 위험한 세대였다.

한 교수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그 (군국)소년들이 어려서 입은 마음속의 일본 군복을 벗지 못한 채, 반공청년이 되어 병영국가를 만들고, 이제는 군국노인이 되어 전쟁불사를 외치는 그런 나라”다. 광기에 가까운 그 기이한 행태는 최근 천안함 사태를 계기로 다시 한번 유감없이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강 교수는 군국소년 대다수가 간 그 길을 왜 거부했나? 그리고 어떻게 철저한 평화주의자, 남북 대등통일론자, 민주주의자가 됐을까? 바로 그런 얘기를 매우 솔직하게 토로하고 있는 게 <역사가의 시간>이다.

‘분단시대’라는 말을 재창조했고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 통일고문에다 남북 역사학자 교류를 이끌었으며 잡지 <민족21> 발행인을 지낸 그에게 ‘역사학계의 이단아’ ‘좌파 민족주의자’라 손가락질한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노라면 그가 아니라 오히려 고대·중세에 시선을 고정한 채 ‘순수 실증주의’에 파묻혀 당대 민족의 현실을 외면한 한국 역사학계야말로 이단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울러 그가 좌파인 것이 아니라 실은 그를 좌파라 한 사람들이 터무니없이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게 문제라는 사실도 여실히 드러날 것이다. 

강 교수가 “한 사람의 역사학도 및 역사선생이 평생을 통해 겪은 민족분단시대로서의 우리 현대사 경험담” 정도라고 한 자서전 형식의 이 책은 그런 중대한 사실들을 개인적 체험을 토대로 전혀 딱딱하지 않게 부드럽고 흥미진진하게, 그리고 “격식을 갖춘 시대사류보다 오히려 더 심층적으로” 풀어가는 대단한 장점을 갖고 있다. 이는 그가 끊임없이 강조해온, 우리 역사학계에는 결핍된 대중성과 현재성을 획득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학부 졸업논문으로 조선시대 상업기관인 시전(市廛), 석사논문으로 조선시대 수공업자들인 장인(匠人), 박사논문으로 조선후기 상업자본의 발달에 대해 쓰는 등 자본주의 맹아론에 그가 주목한 것은 일본 식민사학자들이 주장한 조선사의 정체후진성론과 타율성론을 논박하려는 그의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일제시대 토지조사사업과 빈민생활사 등 사회경제사 연구에 몰두한 것도 마찬가지. 그는 실증주의를 신봉하면서 탈식민 민족해방이라는, 가장 절박했던 당대사적 현실과제를 외면했던 주류 조선역사학계를 비판한다. 식민사학에 대항했던 민족주의사학과 사회경제사학 중 민족주의사학의 일부는 광복 뒤 남쪽에선 반공주의와 결합하면서, 일제시대 실증주의가 결과적으로 식민사학과 식민통치에 기여했듯이 군사독재정권 추수라는 기회주의로 전락한다. 강 교수는 6·25전쟁과 4·19, 5·16을 거치면서 그런 모순을 감지했고 박정희의 유신체제 이후 바로 그 자신이 수난을 당하면서 다수 대중이 겪어내야 했던 자기 시대의 고통스런 현실과 그 근원이라고 할 분단문제·통일문제에 무관심하고 무기력한 역사학에 회의를 품었다. 그가 연구분야를 점점 현대사와 민족통일문제 쪽으로 옮기고 현실문제에 대해 발언하며 ‘논객’으로서의 활동을 강화해간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강 교수는 박정희 시대 평가는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사회·문화에 대한 평가도 골고루 포함된 “종합적·역사적” 평가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볼 때 그 시대의 정치적 민주주의는 오히려 퇴보했고, 생산성만이 아니라 분배정의까지 고려한 경제적 민주주의도 바닥이었다. 경제성장도 박정희 체제만이 아니라 다른 사회에서도 진행됐던 일반적 전후복구 과정의 하나라는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며 또한 희생당한 노동자·농민의 역할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정치·경제력을 특정 세력이 독점한 상태하의 사회적 민주주의, 사상과 문화의 다양성을 허용하지 않은 문화적 민주주의 모두 낙제점이었다. 게다가 그가 제시하는 또 하나의 평가기준인 평화통일 진척도 또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없다. 이런 종합적 잣대를 들이댈 경우 박정희 시대 평가는 과도하고 또 잘못된 것이다. 그는 역사학 연구자는 모름지기 “현실적 상황에만 얽매이고 싶지 않은 미래지향주의자, 어떤 이념적 조건에도 구애되지 않으려는 철저한 평화주의자, 분단된 민족의 다른 한쪽을 세상 사람 모두가 적으로 간주해도 홀로나마 기어이 동족으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평화통일론자”가 돼야 한다며 그런 사람을 좌경 또는 좌파 민족주의자라 부른다면 자신은 주저없이 그런 평가를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이 책 내용을 한층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게 지은이와 개인적 인연을 맺은 다양한 등장인물들인데, 한때 유명한 민주투사였다가 뉴라이트의 핵심이 된 사람, 말년이 씁쓸했던 천관우씨, <사슬이 풀린 뒤>란 책을 남기고 월북한, 좌도 우도 아니었던 오기영, 교토제국대 교수였던 비날론을 만든 화학자 이승기와 이태규의 대조적인 삶, 일본인 학자들과 20여 차례 방북하면서 만난 북쪽 인사들과의 기연과 인물평이 흥미롭다. 

■ 지은이와 함께 강만길 명예교수

“역사는 결국 제 갈길을 간다”
전공자로서 해야 할 일 …정년퇴임 때부터 구상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는 요즘 강원도 동해 하조대 인근의 “거실에서 바다 해돋이가 보이는” 아파트에 머물고 있다. 2005년까지 4년간 상지대 총장으로 있을 때 쉬면서 글을 쓰려고 사 둔 20평 정도의 아파트인데,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을 2년간 맡는 바람에 2007년 하반기에야 소원을 풀었다. 요즘 “사 둔 책들 읽는 재미”에 빠져 있다며, “식구들이 오가지만 나는 주로 이곳에서 혼자 지내고 있다”고 했다. 매일 한 시간 반 정도 걸어서 하조대까지 갔다가 온다며 건강에도 전혀 문제가 없단다.

<역사가의 시간>은 1999년 고려대 사학과 교수직을 32년 만에 정년퇴임할 때부터 구상했고, 동해로 온 뒤 2년여에 걸쳐 썼다. “친일반민족행위 진상 규명이라는 중대한 역사적 사업의 책임을 중도에 벗으면서까지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던 일”이 “역사학 전공자, 그것도 고대사나 중세사가 아닌 우리 근현대사 전공자로서 살아온 지난 한평생을 되돌아보고자 하는 일”이었단다. 그만큼 쓰고 싶은 사연도 많았던지 부록인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 일지(약 160쪽)까지 포함해 총 700쪽에 가까운 분량이다. 이번 책이 그가 쓴 책으로는 “스물네댓 권째쯤” 된단다.

요즘 어수선한 시국과 관련해선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완전히 과거로 되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역사는 직행만 하진 않는다. 막힐 때도 있고 해서 지그재그로 간다. 중요한 건 좌든 우든 지그재그로 틀 때 될수록 그 각이 넓어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 각이 지면 극좌나 극우로 흘러가고 그러면 전진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역사는 “길게 보면 기어이 가야 할 방향으로 가야 할 만큼 가고야 만다”는 게 강 교수의 한결같은 신념이다. 그는 이를 “역사진행의 정직성”이라고도 했다.

역사에 평면적인 순환은 있을 수 없다. 비슷한 지점으로 되돌아가는 듯 보여도 그곳은 출발지점이 아니라 나선형적으로 나아간 지점이다. 만약 이를 원점회귀시키려 한다면 훨씬 더 큰 저항에 직면하게 된다. 예컨대 5·16 쿠데타 뒤의 저항에 비해 12·12 쿠데타 뒤의 저항(광주항쟁)은 차원이 다르지 않았나. 비관적으로 볼 것 없다.”

강 교수가 하려 했으나 하지 못한 두 가지는 개설서와 ‘역사란 무엇인가?’ 같은 본격적 역사론을 쓰는 것. “희망은 여전히 갖고 있으나, 아마 어렵지 않겠나. 이번 책 쓰는 데도 자료 처리도 어려웠고 기억도 예전만 못했다.” 조수들도 없이 혈혈단신이 된 지금 원시시대부터 다 포괄해야 하는 개설서는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단다. ‘역사는 인류사회가 추구해 마지않는 그 이상의 현실화 과정이다’라는 명제를 설정해 놓고 있는 역사론은 “아직도 좀 욕심이 나지만, 낼모레가 팔십인 터에 그것도 장담은 못하겠다”고 했다.

지금 예전에 읽었던 일본 소설 <인간의 조건> 문고본이 얼마 전에 새로 나와 다시 보고 있다. <전후 책임론>이라는 책도 읽고 있는데, 일본에선 태평양전쟁 관련 책들이 많다며 특히 그런 책들이 일반시민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씌어 있는 점을 부러워했다.

“우리도 6·25전쟁에 관한 책이 한 20~30권 나와 있으나 일반인들이 읽기가 쉽지 않다”며 역사학계가 책임져야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ps : 나에게 강만길 교수는 잘 와닿지 않는 지식인이다. 솔직히 읽어본 책도 없고...하지만 이 책만큼은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글 중에서 한홍구 교수의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은 자서전을 쓰지 않는다는 내용을 보니 불현듯, 에릭 홉스봄의 자서전 '미완의 시대'도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미완의 시대'도 예전에 헌책방에서 보이길래 구입은 미리 해놓았다. 그러고 보니 급하지도 않은 읽지도 않은 책들을 참 많이도 구입했다. ㅋㅋ 그래도 절대 그 습관(?)은 바꾸지 않을 것이다. 내 아들에게까지 전해줄 좋은 습관. 하하~~ 시대의 역사가들인 이 둘의 자선전 같이 읽오봄직하다.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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