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으로서의 사랑 - 친밀성의 코드화
니클라스 루만 지음, 권기돈 외 옮김 / 새물결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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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열정 _ 과도함의 수사학과 불안정성의 경험 

 p.95 변덕은 이제 필연적인 것이 된다. 요즘도 그렇게들 말하듯이, 비록 언제나 동일한 대상을 사랑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언제나 사랑할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 개별적인 경우에도 연인들은 지속성이라는 허구를 상정하고 행위해야 한다. 그것이 허구임을 잘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사랑이 결코 끝나지 않을 것처럼 행위할 것. ... "사랑은 오직 사랑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약속 안에만 존재한다." 

p.96 '열정'이란 본래 능동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정신 상태가 아니라 수동적으로 겪고 있는 정신 상태를 뜻햇다. ... 열정이 일종의 제도로 인정받고 사회적 체계들의 형성을 위한 조건으로 기대되면 상황이 바뀌게 된다. 즉, 누구나 긴밀한 연애 관계에 들어서기 전에 어쩔 수 없이 열정에 빠지게 된다는 기대가 형성되고 심지어 요구되면 상황이 바뀌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열정의 의미론은 제도화된 자유를 숨겨두기 위해, 즉 그러한 자유를 가리는 동시에 덮어두기 위해 사용된다. 열정은 그 자체로도 또 그 결과에서도 정당화될 필요가 없는 행위의 자유가 된다. 능동성은 수동성으로, 자유는 강제로 위장된다.

 p.97 "사랑하는 남자와 사랑하는 여자는 능동자인 동시에 수동자이다."

p.98 사랑은 이제 다른 모든 것을 자신에게 복무하도록 만드는 일종의 초열정으로, 혹은 단적으로 말해 열정의 정수로 묘사될 수 있게 된다. 

p.99 열정에 대한 강조가 우선 말해주는 바는 사랑이 합리적 통제 영역의 외부에서 작용한다는 것이다. 두 인격이 서로에게 동시에 빠져드는 일을 비개연적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열정의 비합리성이기 때문이다. ... 자신의 열정에 대한 무방비 상태와 타인의 열정에 대한 정련된 태도는 서로를 상승시키는 관계로 나아간다. ... 이중의 우연성을 갖는 하나의 사회적 관계에 대한 투사는 대립적인 것들을 조합할 수 있게 해주며, 심지어 필요한 것으로 만든다. 사랑이라는 소통매체가 준거하는 체계는 심리적 체계가 아니라 사회적 체계이다. 그래서 사랑의 기술이라는 전통이 계속 이어진다.

p.101 사랑은 정체성 획득이 아니라 정체성 상실에서 정점에 이른다. 자기 자신을 포기하면서 사랑하는 자도 애인의 사랑을 요구하며, 심지어는 그것이 무슨 의무라도 되는 듯 몰아붙이는 일도 정당하다고 느낀다. 그런데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은 그의 삶을 '유지하는 것', 노빌리의 표현을 따르자면 "자기를 보존하기 위한 양식"이다. ... 그래서 17세기 후반에도 여전히 사랑은 자기소외로 정의될수 있었다. 따라서 사랑은 대립적으로 보이는 것, 즉 정복과 자발적 복종을 조합한다. 그런 조합은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는) 여성의 저항에는 복종하지 않는다는 추가 조건하에서만 가능하다.

p.102 사랑은 눈을 지배하고, 눈빛 언어를 이용하며, 심지어 부정적인 것을 지각할 수 있게 해주지만 이것을 별것 아닌 것으로 만든다고들 말한다. 이와 비슷한 역설적인 말들이 이어질 수 있으며, 이런 역설들은 모순을 이용해 사랑할 때가 아니면 불가능한 무엇인가를 강요하는 것이야말로 사랑에서 관건이 되는 것이라는 인상을 한층 강화할 수 있다. ...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든 선보다 고뇌를 더 좋아한다."  

p.104 '사랑받고 싶은 완전한 의지' 

p.106 이해관심을 추구하기 위해 사랑을 이용해 먹는 일은 가능하지만 이해관심을 사랑으로 옮겨놓는 일은 불가능하다. 

p.108 사랑은 사랑이라는 특수한 시야 속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평가한다. 애인의 모든 체험과 행위는 사랑/무관심 혹은 정직한 사랑/부정직한 사랑과 같은 도식 아래서 끊임없이 관찰되고 검증되어야 한다. 

p.110 과도함에 특히 들어맞는 일은 사랑에 대한 모든 정당화(근거지음)가 실패한다는 것이다. 정당화하기 위해 어떤 규정된 것을 말하는 것은 사랑하기라는 양식과 모순될 테니 말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점 자체가 정당화이다. 

p.111 "사랑에서는 지나칠 정도로 서로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것 말고는 더이상 서로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거의 없다." 

p.112 "열정적으로 자기 자신을 주고 신중하게 자신을 되찾을 것."

p.114 사랑받는 자가 처음 보여주는 호감 또는 각별한 주목을 받게 된다. 그런 호감의 표시가 요구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그런 일이 일어나면 이를 디딤돌로 삼아 더 기어오를 수 있다. 일단 진행이 되면, 과정은 그 특수한 코드의 통제 아래 놓이게 된다. 그 코드가 약화될 때에야 비로소 다시 정상적이고 신중한 행동방식이 시작된다.

 p.116-117 시간적 구조는 무엇보다 사랑과 결혼의 분리 - 이 문제는 오래전부터 논란의 대상이었다 - 를 강제한다. 사랑과 결혼의 대조가 어찌나 부각되어 이야기되어왔던지, 사회적 제도를 통해 가족으로 묶어내는 일인 결혼에 대해 열정이 갖는 이러한 차이가 다른 무엇보다 연애관계의 독립분화를 의식적인 것으로 만들었다고 추정해보지 않을 수 없다. ... 뷔시 라뷔탱은 결혼에 골인하는 것이 애인과 헤어지는 명예로운 방법이라고 말한다. 결혼의 온갖 장점들과는 무관하게 "더이상 사랑하지 않기 위해서는 결혼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말도 타당한 것이었다. 애인과 결혼하려고 하는 자는 그녀를 증오하려고 하는것이라는 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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