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욕심', '욕망'이 있다. 좋은 집에, 좋은 차를 소유하고 싶은...그러나 어찌 보면 이 모든 것들이 나 자신의 만족이 아닌 주변 상황에 따라 바뀌는 '상대적'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이들이 꿈꾸는 s대학에 들어가도 그 대학 내에서 과에 따라 서열이 나뉘어 하위 서열과에 다니는 학생은 또 그 그룹내에서 소외감 아닌 소외감과 열등의식에 빠지고, 강남에 집을 가진 이라 하더라도 그 그룹내에서는 어느 아파트, 자가용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나뉘며 나 보다 더 나은 이들을 '욕망'하고 있다.  

지금도 나이가 많지 않지만 지금보다 조금 더 어렸을 적에는 집에 대한 생각이 크지 않았다. 집으로 재테크 잘해서 자산을 불린 사람들을 보면 시쳇말로 '속물'이라는 생각에 혀를 찼던 적도 많았다. 인간들이 왜 이럴까? 왜 그러고 사나? 집이야 가족이 편안히 살 수만 있으면 될텐데...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단순하며 순진한 생각이라는 것을 알았다. 사람을 끊임없이 '욕망'하게 만드는 사회 분위기 예를들면, TV에서 나오는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아파트, 고급스러운 자동차, 암암리에 고착화시키는 '강남'='고급'이라는 등식 등 어떻게 보면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자신의 '욕망'을 누르고 탈물질적, 탈소유적 삶을 사는 이들은 현대 사회의 성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동산으로 재테크를 하던, 탈소유적인 삶을 살든, 모두 개인의 선택이다. 어떤 선택이 좀 더 올바른 아니 '행복한 삶'인지는 모르겠다. 좀 더 살아봐야겠다. 좀 더 책을 읽어야 겠다. 

   

   

 번뜻 이와 관련해서 읽었던 읽고 싶었던 책들이다. 내 필생의 '욕망' 중 하나 내가 읽고 싶은 모든 책들을 자유롭게 모두다 읽는것, 이루어지지는 않겠지만... 

 

경향신문 2010.4.7 [주거의 사회학](1부)뿌리없는 삶-④같은 사람, 다른 삶  

ㆍ40대 자가 보유자 vs 40대 전세 거주자

삶의 터전이자 보금자리여야 할 ‘집’이 사회 구성원 대부분에게 무거운 짐이 되고 있다. ‘사는 곳’이 아닌 ‘재산’으로서의 집에 대한 욕망과 정부 정책 실패로 인한 주택 및 전세가 폭등 탓에 서민들은 물론 중산층까지 집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 집을 보유한 이는 앉은 자리에서 재산이 불어났고, 집을 못가진 이는 가처분소득이 ‘블랙홀’처럼 집으로 빨려들어감을 경험한다. 주택보유 여부는 삶의 질까지 갈라놓고 있다. 이러한 사회를 살고 있는 보통의 한국인 가운데 결혼 당시 집을 갖고 시작한 40대 부부와 전세에서 출발한 40대 가장, 대출금에 허덕이는 30대 부부들과 고가 아파트에 사는 중산층 가족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들의 삶을 통해 본 한국 사회에서의 ‘집’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 40대 자가 보유자
- 남들이 부러워하는 강남 집 13년 살다보니 더 큰 집 욕심 -
 

이진규씨(44·가명)와 장선희씨(40·가명)는 집 문제로 걱정해본 일이 없다. 13년 전 결혼 당시 부모가 서초구 서초동에 82.645㎡(25평)짜리 아파트를 장만해준 덕분이다. 1998년 이씨가 결혼할 당시 그의 부친은 ‘자식들은 나처럼 집 때문에 고생시키고 싶지 않다’며 지금의 집을 사줬다. 당시 금융위기 여파로 강남 부동산 가격이 30%가량 하락해 1억2000만원이면 집장만이 가능했다. 불과 12년 만인 현재 집값은 7억원으로 대략 여섯 배 뛴 상태다. 하지만 미끈하게 닦인 강남대로를 지나 서울 어디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10년 묵은 ‘성냥갑’ 아파트 단지에 들어설 때 가끔 이씨는 생각한다. 이 집 한 칸이 그렇게 비쌀 이유가 있는 걸까.

친구들은 그에게 “강남에 집 가진 운 좋은 놈”이라며 부럽다는 소리를 한다. 게다가 이씨는 공기업 정규직으로 일하고 아내는 구청 공무원이니 불경기에 언제 구조조정 당할지, 임금이 깎일지 불안하지도 않다. 이들 부부의 월 평균 소득은 약 550만원. 올해 초등학교 2학년이 된 귀여운 아들을 월 44만원짜리 영어학원에 보낸다. 이들 맞벌이 부부를 대신해 낮에 아이를 돌보는 베이비시터에게 월 120만원을 지급하는 데 무리가 없는 수준이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월 150만원에서 200만원을 꼬박꼬박 통장에 붓는 재미도 쏠쏠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보니 살림이 만만찮음을 체감했다. 유치원비가 워낙 비싸 한달에 100만원이 넘게 들었다. 초등학교 들어가면서부터는 사교육비 규모가 확 불어났다. 아버지 병원비를 형제들끼리 월 80만원씩 분담한다. 가족의 식비 50만원, 각종 공과금 30만원, 통신비 20만원, 관리비 30만원, 이씨부부의 교통비와 점심값 등 용돈이 100만원이 든다. 한달이면 통장에 남는 돈은 약 40만원. 만약 집이 없었다면 어떠했을까. 치솟는 전세보증금을 마련하기 위해, 또는 주택구입 대출금 상환을 위해 허리띠를 조르는 상황이었다면 어땠을까. 이씨는 황급하게 올라탄 차가 ‘막차’였음을 확인할 때의 아찔한 안도감을 느낀다.

이씨는 아버지가 사준 아파트에서 오래도록 살고 싶지만, 아이가 “나도 큰 방을 갖고 싶다”고 조르기 시작해 고민에 빠져있다. 아내 장씨도 큰 집으로 이사가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번쩍이는 유리로 몸체를 두른 초고층 아파트들이 주변에 하나 둘씩 생겨나면서 지금의 콘크리트 아파트는 왠지 작고 초라하게 느껴진다. 학부모 모임을 나가면 더 넓은 평수에 사는 부모들 얘기도 자꾸 듣게 된다. 자신을 부러워하는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 앞에서 장씨는 차마 자신이 동네에서 주눅이 들 때가 있다고, 속내를 털어놓지는 못한다. 집값이 뛰어 어쩌다보니 6억원 가까운 불로소득을 거뒀지만, 그의 이웃들은 더 비싼 주택을 몇 채씩 갖고 외제 승용차를 굴리면서 살아간다.

장씨는 남편을 설득해보곤 한다. “우리도 지금까지 모은 돈에 은행대출을 받으면 근처 30평대 아파트 살 수 있을 거예요. 집값 좀 떨어졌을 때 생각해 보자고요. 아이가 크면 책장과 책상만으로도 비좁은 지금 방에서 어떻게 지내겠어요. 아이가 자라면서 친구들과 자신을 비교하기 시작하는 게 보이는데, 얘가 기죽는 건 당신도 싫잖아요.”

하지만 이씨는 시큰둥하다. 친형이 강남에서 평수를 늘려 이사할 때 대출받은 돈을 몇년째 힘겹게 갚아나가는 것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집에 대한 욕망이 어쩌면 결코 충족될 수 없는 그 무엇임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 훗날, 아이가 커서 장가갈 때 나도 집 한칸을 마련해서 보내야 할텐데, 이렇게 집값이 오르면 우리 부부의 저축만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집 문제는 왠지 누가 이기는지 알 수 없는 게임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 40대 전세 거주자
- 외환위기때 내집 기회 놓쳐 평생 셋방살이 할줄이야… -
 

1994년 봄에 결혼한 중소기업 직원 이모씨(43)는 서울 은평구의 2600만원짜리 전셋집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큰돈이 들어가는 일을 겪은 것도 아니고, 지난 17년 동안 성실하게 살아왔지만 셋방살이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내집 마련의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한푼 두푼 모은 돈으로 97년 4월 대형 건설사가 경기 구리시에 짓던 조합아파트에 분양신청과 함께 계약금 500만원, 중도금 3000만원을 냈다. 그런데 그해 12월 외환위기로 건설회사가 부도가 났고 아파트 완공은 기약할 수 없는 일이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씨가 다니던 회사의 연봉도 크게 삭감되자, 이씨는 결국 처음이자 마지막이던 내집 마련 기회를 포기했다. 계약금 500만원도 위약금 명목으로 떼였다. 부동산 가격 폭락이라는 뉴스가 연일 나왔지만 삭감된 월급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그는 아내에게 “서울에서 집을 사는 건 우리에게 불가능한 일”이라고 선언했다. 마음이 아팠다.

그나마 전셋집에서 별탈없이 8년간 살아온 이씨 가족의 생활이 쪼들리기 시작한 것은 2005년. 집주인의 사업이 망하면서부터다. 살던 집이 경매로 넘어갔고, 새 집주인은 다른 집들보다 싼 편이던 보증금 5000만원을 9000만원으로 올려달라고 했다. 목돈이 없던 이씨는 보증금 5000만원을 올리지 않되, 월세 40만원씩을 더내게 됐다.

2008년 집주인은 급기야 재건축을 하겠다며 이씨에게 나가줄 것을 요구했다. 보증금 5000만원만으로는 네 식구가 살 만한 집을 찾지 못하다 보니 빚에 의존하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었고, 상해보험과 아이들 앞으로 들었던 보험도 대부분 해약했다. 모자란 돈은 모친의 도움을 받아 응암동 단독주택 1층에 1억2000만원짜리 전셋방을 얻을 수 있었다.

여기서도 1년을 채우지 못했다. 집주인이 좀 더 넓은 1층과 자신들이 살던 2층을 바꾸자고 요구한 것. 사실상 집세를 올리겠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고등학생과 중학생 두 아이들과 지내기에는 턱없이 좁았다. 이씨 가족은 다시 이삿짐을 꾸렸다.

천행인가. 비록 서울보다 경기 쪽에 가깝기는 했으나 지금 살고 있는 다가구주택 5층의 24평짜리 전셋방을 같은 가격에 얻었다. 그간 전세 시세가 3000만원 이상 오른 것을 감안하면 운이 좋았다 싶었다. 이사를 하고 나서야 그 비밀이 풀렸다. 차 한잔 하자는 아내의 초대를 거절하던 이웃은 망설이던 끝에 말했다. “그 집이요, 사실 불나서 사람 죽은 집이에요.”

대출금과 아이들 학원비 부담이 커지면서 부인 김씨는 지난해부터 대형 마트에 나가서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씨 가족의 형편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없다. 두 사람의 수입은 350만원. 이 중 매달 통신비, 가스비 등 생활비가 40만원, 대출금 상환액 40만원, 보험료 12만원, 모친의 빚 탕감 겸 용돈 20만원 등이 고정적으로 지출된다. 여기에 두 아이의 학원비를 포함한 사교육비가 월 105만원이 들어가고, 이씨의 교통비와 점심값 50만원을 제외하면 식비만으로도 빠듯한 상황이다. 노후대책은 생각도 못한다. 그저 지금보다 나빠지지 않기를 희망할 뿐이다.

“나는 2년에 한번씩 경기도 쪽으로 2㎞씩 가까워지고 있다.” 이씨가 지인들에게 우스갯소리처럼 하는 말이다. 어떻게든 이 도시에서 살아나가지 못하겠느냐고 스스로를 다잡는다. 하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면 머리가 먹먹해진다. 이 가난이 대물림되는 건 아닐까. 아이들 장가는 보낼 수 있을까. 아이들도 이씨처럼 세입자로 이리저리 떠돌게 되지는 않을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이씨는 담배 한 대를 빼내 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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