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법으로 유명한 조벽교수의 강의법이 나온다. 중간에 교사의 '복장'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난 동의하기 어렵다. 조벽교수는 매 첫강의때는 정장을 입는단다. 정장과 같은 교사의 '복장'에서 교사의 권위를 세워 준단다. 물론 그럴수도...하지만 권위를 찾아주는 복장에 검정색 '정장'에 국한시키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한겨레신문 2010.5.24 ‘3A 시대’에 맞는 눈으로 보라 

높다랗게 지은 백화점, 엘리베이터는 늘 고객들의 불만을 샀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줄은 늘 길기만 했다. 당황한 백화점 사장은 기술자들을 급히 불러 모았다. 하지만 전문가들도 별 뾰족한 수는 없었다. 이미 지어진 건물, 엘리베이터를 많이 늘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속도를 높이는 데도 한계가 있다. 너무 빠르면 사람들이 멀미를 하기 때문이다. 기술자들은 온갖 첨단 기술을 끌어들였지만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청소부였다. 그는 엘리베이터 문과 네 벽면에 거울을 달았다. 사람들은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바라보느라 지루함을 잊었다. 엘리베이터가 느리다는 불평도 훨씬 줄어들었다.

기술자들은 이토록 간단한 해법을 왜 떠올리지 못했을까? 기술자들은 모든 문제를 기술적인 측면에서만 바라보기 쉽다. 이런 사람들끼리 모여 회의를 하면 해결 방향도 외곬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이를 공학자이자 강의기법 전문가인 조벽 교수는 ‘문화적 장애’라고 부른다.

문화적 장애는 교육에서 특히 심하다. 우리 교육은 ‘학력신장’과 ‘학업부담 경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느라 갈팡질팡이다. 과연 공부를 덜하면서도 성적은 잘 나오는 방법이 있을까? 우리 국민 대부분은 십수년 넘게 학교를 다니며 입시에도 길들여진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문화적 장애’는 당연해 보인다. 모두가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다면 화끈한 해결책이 쉽게 나올 리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조벽 교수는 학교에서 모범생을 가리는 잣대부터 과감하게 던져 버린다. 요새 학생들은 더럽고(dirty) 힘들며(difficult) 위험한(dangerous) 일, 이른바 3D 업종을 싫어한다. 인내와 끈기를 갖추어야 한다고 배웠던 어른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나 앞으로의 세상을 헤쳐가려면 학생들은 이런 일을 싫어해야 옳다. 그래야 깨끗하고 쾌적하며 안전한 일을 늘리는 쪽으로 사회 분위기가 흘러가지 않겠는가.
또한, 요새 젊은이들은 흥미 있는 것 외에는 좀처럼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이 또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정보가 쏟아져 나오는 세상, 좋아하는 일에만 관심을 보이는 모습은 정보의 바다에서 살아남는 나름의 방법이라 해도 좋겠다. 지금 젊은이들은 자기가 관심 있는 일만큼은 밤낮 안 가리고 매달리지 않던가. 앞으로의 세상은 이런 열정을 갖춘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그렇다면 새 시대에 맞는 교육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강제보다는 학생들 스스로 재미를 느껴서 배움에 빠져들게 되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교육에 강제가 없을 수는 없다. 윽박지름 없이 스스로 알아서 깨우침을 얻도록 하는 방법은 없을까? 루소의 교육소설 <에밀>은 이 물음에 답을 준다.

루소는 절대 학생들을 야단치지도, 매를 들지도 말라고 말한다. 그냥 자기가 한 짓의 결과만 깨닫게 해도 학생은 변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아이가 장난치다가 유리창을 깼다고 해보자. 이때도 교사는 다그쳐서는 안 된다. 깨뜨린 창문을 고치지 말고 그대로 내버려 두어 보라. 찬바람이 들이치면 아이는 자신의 행동이 어떤 피해를 낳았는지를 저절로 깨닫게 될 것이다.

인간의 본래 마음은 누구나 착하고 성실하다. 상황이 되면 억지로 끌어내지 않아도 선한 심성은 저절로 튀어나온다. 학생들이 교사를 존경하지 않아서 고민인가? 학생들을 야단쳐 봤자 교실 분위기만 싸늘해질 뿐이다. 먼저 자연스럽게 교사의 권위를 세울 방법부터 고민해 보자.

조벽 교수는 학기 초에는 늘 정장을 입는다고 한다. 복장은 교사의 권위를 지키는 효과적인 ‘소품’이다. 아무리 교사와 친하다 해도, 학생들은 정장에서 ‘선생님’의 권위를 느끼기 때문이다.

또한, 학생들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선생님을 존경하고 따르곤 한다. 그러나 한 명 한 명 성의 있게 대하기에는 학생 수가 너무 많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조벽 교수는 ‘매스-커스터미제이션'(mass-customization)이라는 방법을 일러준다. 한 시간에 5~6명씩 이름을 부르고 관심을 보여 주자. 교사의 관심을 제대로 느낄 만큼 한 명 한 명의 눈을 충실하게 바라봐 준다. 한 학기가 지나면 교실의 학생들 대부분은 교사의 오롯한 관심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큰소리로 강제하지 않아도 학생들을 배움으로 이끄는 좋은 방법들이라 하겠다.

예전 시대에는 지시를 잘 따르고 규칙을 잘 지키는 인재가 필요했다. 공장을 돌리려면 정해진 규율에 따라 시간에 맞추어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창의성과 아이디어가 중요한 시대다. 우리 사회는 3D의 시대를 지나, ‘언제나’(Anytime), ‘어디서나’(Anywhere), ‘누구라도’(Anyone) 자기가 원하는 일에 빠져드는 ‘3A의 시대’를 향해 가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의 학교 모습은 여전히 공장과 비슷하다. 학교는 꽉 짜인 일과에 따라 학습 ‘할당량’을 반복해서 던져준다. 이런 가운데서 창의력 있는 인재가 나올 수 있을까? 문제를 푼다며 내놓는 방법들도 여전히 ‘공장 시스템’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교과목을 줄이고 주요 과목 위주의 학업 성취 수준을 높이는 데 매달리면서도, 동시에 다양한 체험과 경험을 쌓으라고 재촉한다. ‘효율성’에 매달리는 생산라인과 ‘상품성’을 강조하는 마케팅 부서가 다투는 모습과 비슷하다.

“내 배움이 멈추었던 유일한 시기는 내가 학생일 때였을 뿐이다.” 소설가 버나드 쇼의 말이다. 지금 학생들도 비슷한 하소연을 하지 않을까? 교문만 벗어나면 세상은 온통 ‘맞춤형’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학교는 여전히 ‘대량생산 체제’다. 그러나 불평을 늘어놓기만 해서는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시대 흐름에 발맞추면서도 학생 한 명 한 명을 배려하는 좋은 교육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다.

중동고 철학교사, 철학박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