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2010.5.18 [예종석의 오늘 점심] 설농단, 슐루탕, 설렁탕
우리나라 대중음식의 대표선수라 할 수 있는 설렁탕의 유래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개의 주장이 존재한다.
하나는 선농단(先農壇) 연관설로, 조선시대에는 임금이 매년 음력 2월에 대신들을 이끌고 동대문 밖에 있던 선농단에 나가 제사를 지내고 몸소 밭을 가는 시범을 보이며 농사의 소중함을 만백성에게 알리었다고 한다. 그런 뒤에 제단에 바쳤던 소로 현장에서 국을 끓여 귀천에 관계없이 골고루 나누어 먹었다고 하는데 그것이 선농탕이 되었다가 설렁탕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속설을 <조선요리학>의 저자 홍선표는 좀더 드라마틱하게 “세종대왕이 선농단에서 친경할 때 갑자기 심한 비가 내려서 촌보를 옮기지 못할 형편에다 배고픔에 못 견디어 친경 때 쓰던 농우를 잡아 맹물에 넣어 끓여서 먹으니 이것이 설농탕이 되었다”고 하였다. 다른 견해는 몽골어 영향설이다. 몽골말로 고깃국을 ‘슐루’라 하는데 고려시대에 이것이 전래되어 ‘슐루탕’이 되었다가 설렁탕으로 음운변화 되었을 것이라는 해설이다. 조풍연에 의하면 옛날의 설렁탕집에서는 소 한 마리를 우피와 오물만 제하고 큰 가마솥에 넣어 새벽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끓였다고 한다. 그는 그렇게 끓인 진국은 “오늘날의 뜨물국 같은 설렁탕의 맛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며 “투박스럽고 거칠지만 소라는 짐승의 맛을 이보다 더 한꺼번에 느끼는 방법은 달리 없다”고 극찬한 바 있다.
60년 역사를 자랑하는 을지로4가의 ‘문화옥’은 설렁탕을 옛날 방식에 가깝게 끓여 내는 집이다. 좋은 양지와 사골 등을 반나절 정도 물에 담가 핏물을 제거한 뒤 장시간 푹 고아낸 국물은 잡내가 없으며 진하고 구수하다. 설렁탕에 빼놓을 수 없는 김치도 시원하고 감칠맛 나는 것이 조화롭다.
예종석 한양대 경영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