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사세요?'라는 답을 하거나, 은행같은 곳에서 자신의 주소를 쓸 때 몇몇 사람들은 묘한 느낌을 들었을 것이다. 나는 참고로 봉천6동(현재는 행운동은로 개명)에 산다. 자신의 주소명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으로 인한 자신감내지 소외감 같은 따위의 사소한 감정 변화 ... 문제는 이게 내 개인의 예민함에 따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라는 사실이다.

경향신문 2010.3.22 [주거의 사회학]어디 사세요?

서울 동대문의 ‘답십리 뉴타운 16구역’. 골목길이 동네 사이를 휘저으며 다세대주택들을 핏줄처럼 잇고 있다. 한때 가족들을 품었던 단독주택들도 올망졸망 들어서 있다. 지금은 유리창과 문짝이 깨지고 뜯겨나간 채 주택도, 골목길도 온기를 잃었다. 벽과 지붕의 뼈대만 남았다. 철거가 시작되자 주민들이 시나브로 떠나 빚어진 살풍경이다.  

 

 "여기 헐리면 유명 건설회사가 고층 아파트를 올린답니다. 브랜드 중에 제일 비싸다는 그 아파트 말입니다. 세입자만도 1000가구가 넘던 동네인데 이제는 마흔 가구만 남았어요. 지난해 10월, 머뭇거리다간 보증금도 못 받을 수 있다는 풍문이 돌자 주민들이 피란 가듯 급하게 짐을 싸서 떠났죠.” 세입자 대표인 이영수씨의 전언이다.

이씨를 따라 유리 파편과 벽돌 부스러기가 밟히고, 담벼락에는 철거 구호가 난무하는 골목 모퉁이를 돌자 확 트인 언덕배기가 나왔다. 맞은 편 배봉산 자락에는 스무 동 남짓한 고층아파트가 병풍처럼 산을 둘러싸고 있다. 산은 제 모습을 잃었고, 아파트 군락은 서서히 죽어가는 이쪽 마을을 굽어보고 있는 듯했다. 3월 현재, 이곳의 철거 작업은 ‘백지동의서로 설립된 조합은 무효’라는 법원 판결에 따라 중단됐다. 헐다만 철거현장이어서인지 더욱 을씨년스럽다.

답십리에서 50년을 살았다는 신모 할아버지(79)처럼 영세 가옥주나 세입자들은 두 배 이상 뛴 주변의 전셋값을 감당하지 못해 규모를 줄이거나 경기 남양주 등지로 옮겨갔다. 신 할아버지는 “딸한테 2000만원을 빌려 남양주 빌라로 이사를 갔다”며 “내 한 몸 누울 수 있는 공간이면 그만인데…”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동네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 한 청년이 끼어들었다.

“집을 가진 조합원들도 딱하긴 마찬가지죠. 분담금이 처음보다 평당 500만원까지 올랐대요. 그 정도 비용을 감당할 사람은 아마 없을 거예요.” 재개발이 끝나면 집값이 뛸 것이라는 주민들의 희망과 기대는 꺼지지 않았지만 청년의 말처럼 가옥주라 하더라도 정착률은 20% 안팎인 게 현실이다.

‘집’은 이제 주거 이상이다.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의 모든 문제를 농축하고 있다. 선거 때마다 당락을 가르는 토건공약, ‘사는 집’이 아닌 ‘파는 집’에 매달려온 건설업체, 여기에 편승해온 우리 안의 욕망이 유착한 결과다. 세입자의 경우 2년마다, 집이 있더라도 5년마다 이사를 가는 ‘신(新) 유목민’ 사회의 주 원인이다. 정치·사회의 지형까지 바꿔놓은 악순환의 3각 고리는 깨지기는커녕 갈수록 공고해지고 있다.

그렇다. 우리는 사는 지역과 집 소유 여부, 주택 형태에 따라 계급과 신분이 정해지고, 삶의 질마저 저당 잡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어디 사세요?”라는 질문은 ‘현대판 호패’인 양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경향신문은 그러나 그 불편한 질문을 정면으로 던지려 한다. 세계 2위의 집값 상승률, 소득대비 세계 최고 수준의 주택 임차료에 허덕이는 우리에게 집은 무엇인가. 그 집을 욕망하고, 그 욕망에 좌절하는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ps : 자신의 삶의 터전에 대한 애착 보다 돈의 가치를 더 중시하는 실태와 관련하여 한겨레신문에 재미있는 기사가 하나 있어 스크랩한다. 독일 예술가가 우리나라의 재개발 열풍을 풍자한 작품인데, 이 작가가 하는 말이 와 닿는다.   

 

한겨레 신문 2010.5.13 청와대 옆에 ‘떴다방’ 떴다?
독일 작가, 한국 재개발 풍자
통의동에 ‘부동산’ 본뜬 작품  

“청와대 옆동네를 재개발한다고? 대통령 결단이여? 평수는 얼만데?”

“아니, 주민도 모르게 재개발을 하나?”

요즘 청와대, 경복궁의 서쪽 맞은편인 서울 통의동 30번지 주택가에서 이런 대화를 두런거리는 행인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지난 7일 이 골목 한귀퉁이에 등장한 컨테이너 부동산 사무소가 이곳 일대를 아파트 단지로 전면 재개발하는 조감도를 내걸면서부터다.

사무소는 ‘로얄 블루 부동산’이란 형광등 간판을 달고 인근 건물 공사장 한쪽에 붙어있다. 특이하게도 정면은 모두 유리창이다. 들여다보면 안벽에 통의동 일대 주택가를 헐고 18층짜리 첨단 아파트 단지 수십여동이 청와대와 마주한 미래 모습을 그린 조감도가 빛난다. 간판 전화번호는 ‘02-77*-8888’. 그러나 걸리지 않는 번호다. 그렇다면 가짜? 그렇다. 이 부동산은 죄다 가짜다. 조감도도 부동산 간판도. 알고보니 속임수를 쓴 예술가의 설치 작품이다. 내부 시설또한 탁자와 의자 2개, 난초 화분과 떨어진 딸기, 꽃이 전부다. 옆 공사장도 전시화랑 건물이라 미묘한 울림을 던진다.

작품을 만든 이는 올리버 그림이란 46살의 독일 영상설치 작가다. 건설 현장의 ‘부동산 사무실’과 비슷한 구조물을 설치해 재개발의 ‘몰상식적인’ 아이러니를 표현하려 했다고 한다. 14년전부터 한국에 와 작업하면서 미대 강사로도 일해왔다는 그는 “청와대 앞 재개발 조감도를 보고 사람들을 놀라게 해서 그들이 재개발의 모순을 새삼 느끼도록 하는 게 목적”이라고 했다. “제가 사는 곳이 용산구 보광동인데, 최근 여기서도 한남 뉴타운 재개발 공사가 서민들 반대에도 막무가내로 벌어지는 걸 보고, 작업을 생각하게 됐어요. 컨테이너를 쓴 것도 재개발 때 버섯 피듯 난립하는 가건물 부동산들에서 영감을 얻었지요.”

작가는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게 툭하면 전통을 외치는 한국인 대부분이 아파트에 사는 걸 좋아하고, 자기 살던 동네를 마구 허물어도 돈만 주면 좋아하는 모습들이었다”면서 “재개발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통의동 예술공간 쿤스트독의 공간 프로젝트인 이 설치 작품은 27일까지 ‘영업’한 뒤 철거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