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그린비출판사 블로그에 올라온 글이다. 제목은 '연애의 정석, 죽거나 권태롭거나' 나름 요즘 땡기는 책들이 사랑에 관한 책들이어서 관심이 가는 내용이다. 특히 '간통죄' ... 도무지 '간통죄'라는게 어떻게 성립될 수 있을까?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은 눈에 쌍심지를 키고 처다본다. "그럼 넌 결혼한 후에도 바람을 핀다는 애기야"라며 ... 참 단순한 생각이다.

내가 요즘 읽은, 또는 읽으려하는 책들이다. '열정으로서의 사랑'은 시작은 쉽게 했는데, 아주 어렵게 읽은 책이다. 아주 어렵다. 중간 중간 단편적인 내용들은 이해가 가지만, 그 얼개를 맞추기가 쉽지 않은 책. 두번째 앤서니 기든스의 '현대사회의...'은 읽으려 준비중(?)인 책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아주 예전에 헌책방에서 구입한 초판본...표지가 좀... 썩 맘에 들지 않는다. 난 개인적으로 '열정으로서의 사랑 '류의 표지가 맘에 드는 편. 세번재 '사랑의 단상' 이 책도 꽤 두껍다. 읽으려면 꽤 시간이 걸릴듯... 하지만 올해 안에는 꼭 읽어보려 한다.
다음 글은 블로그 글 전문이다.
ㅡ아내는 간통죄?!
내가 아직 학교를 다닐 무렵, 한번은 철학 선생님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도덕적 논쟁’을 주제로 리포트를 써오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날 밤 나는 리포트로 쓸 만한 사건을 찾기 위해 인터넷 뉴스를 뒤졌고, 옥소리와 박철의 이혼을 보도한 기사를 읽던 와중 난생 처음 보는 단어를 만나게 되었다. ‘간통죄’, 이게 뭐지?
간통죄란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간통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 즉 결혼한 사람이 배우자 이외의 사람과 성관계를 맺으면 처벌을 받는다는 말이다. 맨 처음 간통죄의 정의를 읽었을 때 나는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두 남녀가 함께 살다 보면 바람이 날 수도 있는 거고 사랑이 식어서 다른 이성과 눈이 맞을 수도 있는 거지, 무슨 법원이 그런 사생활까지 간섭을 한단 말인가? 이건 명백한 프라이버시 아닌가? 나는 두 남녀의 감정싸움에 법이 개입을 한다는 사실이 우습게만 느껴졌다. 이런 법을 아직까지 철폐하지 않는 걸 보면, 우리나라는 역시 희한하고 괴상한 나라임이 틀림없었다.

결혼 _ "불멸의 사랑을 향한 맹세? or 서로의 육체에 대한 구속?"
그런데 그보다 더 희한하고 괴상한 것은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친구들은 내 의견에 전혀 동조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당연한 거 아냐?” 라고 대꾸하며 그런 생각을 하는 네가 더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들의 논리란, 만인이 보는 앞에서 신성한 결혼식을 올린 사람이 배우자 외의 사람과 성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누가 봐도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인 행동이고, 따라서 그런 사람은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친구들이 생각하는 ‘결혼’은 법정에서 요구하는 결혼생활의 모범과 일치한다. 결혼! 결혼이란 신성한 것이다. 변하지 않는 불멸의 사랑을 맹세하는 것이 결혼 아니던가. 신부는 눈부시게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신랑은 점잖은 턱시도를 입고, 엄숙한 주례 앞에서 굳은 맹세를 한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평생 이 사람만 사랑하겠습니다.” 그런데 간통, 즉 배우자 외의 사람과 성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평생 이 사람만 사랑하겠다’는 서약을 뻔뻔스럽게 어기는 것이다. 이미 정절을 버리고 육체가 더럽혀졌는데 어떻게 여전히 그 사랑을 고귀하다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 진정한 사랑을 증명하려면 무엇보다도 순결이 필요하다. 너 이외의 사람과는 절대로 몸을 섞지 않겠다는 성스러운 맹세가 필요하다. 이것은 기혼자들뿐만 아니라 아직 결혼하지 않은 연인들도 마찬가지이다. 평생 사랑할 파트너를 만나기 이전에는 최대한 몸을 깨끗이 해야 한다. 결혼 첫날 밤, 신부가 처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는 이혼을 한 커플이 얼마나 많은가. 덕분에 산부인과에는 아직도 처녀막 재생수술을 하러 온 여자들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이런 식의 사고에서 강박증 같은 것을 느낀다. 결혼을 할 파트너를 만나기 전까지는 순결을 지켜야 하고, 섹스란 오직 부부의 침대 위에서만 허용되는 것이며, 가정을 벗어나 다른 사람과 사랑을 나누는 순간 그것이 죄악이 된다면, 결혼이란 ‘불멸의 사랑을 향한 맹세’가 아니라 오히려 ‘육체에 대한 구속’이 아닐까? 지금 사람들의 생각은 요컨대 이런 것이다. “1. 결혼 전에는 건드리지 않는다. 2. 결혼 후에는 아무도 못 건드리게 한다.”(고미숙, 『나비와 전사』, 218쪽) 이것은 육체에 대한 ‘사적 소유’에 가깝다. ‘결혼’이라는 이름 아래에 깔린 이 독점욕과 소유욕, 전혀 신성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나는 이렇게 되묻고 싶은 것이다. ‘순결’과 ‘결혼’이 진정한 사랑을 보증할 수 있다고 누가 말했단 말인가?
『아내가 결혼했다』라는 책이 한 때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이 책에 나오는 아내는 그야말로 ‘Perfect’ - 매력 있는 얼굴에, 밤 기술 좋고, 남편과 취미가 똑같고, 집안일까지 완벽한, 그러나 결정적으로 ‘순결’과는 거리가 있는 여자다. 그녀는 분명히 결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애인들과 잠자리를 같이 하더니 급기야는 새로운 애인과 한 번 더 결혼식을 올리기까지 한다. ‘순결’이나 ‘정조’라곤 손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랑! 그렇다면 이 부부의 사랑은 무의미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다른 남자와 한 번 더 결혼했지만 여전히 아내는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남편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 당돌한 아내는 틈만 나면 남편에게 일부일처제의 부자연스러움에 대해 열심히 설명한다. 실제로 이 혼인제도가 문명권에 정착한 것은 채 200년도 되지 않았다. 근대와 함께 도래한 이 제도는 생물학적으로 볼 때 인간의 본성에 그리 적합한 제도가 아니라고 한다. 이는 이미 많은 학자들에 의해 연구된 바가 있다. 학자들은 “여러 상대를 원하는 성욕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본능”(데이비드 P. 버래쉬 외,『일부일처제의 신화』)이라고, 우리가 지금 고수하고 있는 “일부일처제가 인간의 모든 혼인제도 중 가장 어려운 것”(앞의 책)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지금은 일부다처제나 일처다부제 등 다양한 결혼제도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가장 부자연스럽다는 일부일처제만이, 마치 그것이 ‘정상’인 것처럼 온 천지에 자리 잡고 있다.
일부일처제는 인간에게는 가장 부자연스러운 제도일지 모르지만 국가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도 적합한 혼인제도이다. 나라가 부강해지려면 우수한 인종을 최대한 많이 키워내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결혼이나 가정에 크게 개의치 않고 무분별하게 섹스를 한다면 국가는 애비 없이 태어나는 수많은 사생아들을 통제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인종론적, 인구론적 목적 아래 국가가 성性을 철저히 통제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성性을 국가의 기초단위인 ‘가정’에 흡수하는 것이다. 가정을 사랑과 섹스를 나눌 수 있는 ‘유일무이한 장소’로 만들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사람들의 머릿속에 이런 사고를 주입시킬 수 있을까? 답은 어렵지 않다. ‘결혼’을 신성하고 절대적인 의식으로써 그 위치를 부상시킨 다음, 그 신성한 사랑의 증거로 ‘순결’을 들이밀면 되는 것이다. “여러분! 순결만이 곧 진정한 사랑을 보증합니다. 몸을 깨끗이 하고, 결혼을 한 후에는 부부 사이의 성실한 관계를 유지합시다.” 그러나 결혼은 국가가 컨트롤할 수 있는 기본 단위이며 순결은 “연애의 열정과 성적 욕망을 결혼으로 흡수하기 위한 성정치학의 일환”(『나비와 전사』, 211쪽)일 뿐이다.
세상에는 아직도 일부일처제와 상관없는 결혼제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가령, 티베트에서는 아직도 결혼은 평생 세 번에 걸쳐서 해야 한다고 믿는 소수 민족들이 존재한다. 젊어서는 늙은이와, 중년에는 비슷한 또래와, 그리고 늙어서는 다시 젊은이와 결혼을 하는 것이다. 일부일처제의 척도로 이 소수민족을 바라보면 이 사람들은 전부 일생동안 간통죄를 2번 이상 저지른 사람들이다. 아니면 숱한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며 서방과 마누라를 3번씩이나 갈아치운 성적으로 밝히는 사람들에 불과하다. 이처럼 일부일처제 국가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논리를 내세워 ‘미개하다’느니, ‘여자 혹은 남자의 권리가 침해받는다’느니 말하며 이들을 비난한다. 그러나 육체를 ‘사적 소유’하려는 일부일처제는 미개하지 않은 제도인가? 만약 “결혼이 육체에 대한 사적 소유를 보장해주지 않는다거나 사적 소유란 부도덕한 것이라는 윤리가 작동한다면”(앞의 책, 218쪽) 더 이상 아무도 결혼과 순결에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일부일처제의 안경을 벗고 티베트 사람들을 보라. 이것이야말로 정말 쌈빡한 결혼제도 아닌가!
또 다른 예도 많다. 멀리서 찾을 것 없이, 200년만 거슬러 올라가면 지금과는 완전히 딴판인 조선시대의 혼인풍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흔히들 떠올리는 조선의 성윤리인 수절이나 정절은 양반층에서나 통용되던 윤리일 뿐, 실제로 농촌사회에서는 개가가 아주 자유로웠다고 한다. 마음이 맞고 상황이 맞으면 같이 사는 것이고, 마누라가 죽었거나 밉살스런 장모님이 마음에 안 들 때는 도망가면 그만이고! 조선 후기 서민 가사의 대표작인 「덴동어미 화전가」는 그 생생한 증거가 되어 준다. 덴동어미는 만나는 남편마다 족족 재난을 당하거나 사고를 당해서 저 세상 사람이 되는 바람에 60살까지 4명의 남편을 갈아치우는 상부살이 낀 여자이다. 그런데 주위에서는 덴동어미에게 어떤 비난도 편견도 갖지 않으며 오히려 상부(喪夫)를 할 때마다 이번에는 진짜 팔자 좀 고쳐 보라며 새 남자를 소개시켜 준다. 너무나 쿨한 사람들! 이들을 움직이는 것은 단 한 가지, ‘생계’이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온갖 재난에 맞서 싸우려면 개가를 해서 힘을 합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성스러운 결혼? 순결? 이곳에서는 택도 없다.
물론 이는 전부 다른 시공간의 이야기들이다. 본능에 적합하든 적합하지 않든 현재 우리가 추구하고 유지하는 것은 일부일처제이고, 여전히 성性은 결혼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만 허용된다. 만약 남편이 이 발칙한 아내를 간통죄로 고소한다면 그녀는 어떤 변명의 여지도 없이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아내는 국가가 세워준 결혼의 기본적인 절차를 전부 무시했으며 정절이나 순결을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불멸의 사랑도, 유일한 사랑도 믿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사실 맞는 말이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사랑이 어디 있을까.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나 자신도 끊임없이 변하는데 사랑하는 마음 또한 그에 발맞춰 변하는 것이 오히려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유일한 사랑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는 연애를 해도 상대방에게 자신의 모든 사랑을 쏟지는 않는다. 애인을 사랑하는 와중에도 나는 여전히 가족을 사랑하고, 컴퓨터를 사랑하고, 음악과 쇼핑을 사랑하고, 강아지를 사랑하고, 친구를 사랑한다. 여러 이성에게 동시에 사랑을 느끼고 동시에 교제를 하는 것도 같은 이치가 아닐까.
두 번 결혼한 아내, 티베트 고원에 사는 소수민족들, 조선시대의 덴동어미, 간통죄를 고수하고 있는 사회의 시선으로 본다면 전부 비정상적인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들의 사랑이 가짜인 것은 아니다. 이들이 진심으로 사랑에 임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 결혼이나 순결이 진정한 사랑을 보장한다는 것은 국가의 새빨간 거짓말이다. 불멸의 사랑도, 유일무이한 사랑도 세상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진정한 사랑이냐고 묻는다면 그 대답 역시 결단코 ‘아니다!’ 따라서 결혼제도에 얽매이고 순결에 집착하는 것은 사랑을 지키려는 것이 아니라 소유욕과 독점욕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제도란 결국 인간이 만드는 것이다. 일처일부제가 된다면 일처다부제, 일부다처제, 다처다부제는 안 된다는 법 있나?

뭉크 <질투>
그런데 어째서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걸까? 간통죄를 없애면 바람을 피워도 불법이 아니라는데, 오히려 자신에게 이로울지도 모르는데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번번이 간통죄를 찬성하는 걸까? 어째서 내 친구들은 한 치의 의심 없이 단호하게 간통죄를 없애면 안 된다고 말하는 걸까? 문제는 단순한 법의 존폐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마음 깊숙이 내재되어있는 복잡한 무엇인가가 함께 얽혀 있다. 결국, 일부일처제란 법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욕망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김해완(수유+너머)
ps : 공감가는 내용이다. 나또한 이런류의 불손한 생각을 가진 사람 중의 한명이다. 참고로 위 글에 나오는 '나비와 전사'도 예전에 읽은 책인데, 이 책의 저자인 고미숙씨를 이 책을 통해 팬이 되었다. 어찌나 글을 재미나게 잘 쓰시는지...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도 재미있는 책이다.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들추어 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