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의 글쓰기

덴마크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1813~1855)는 자신이 글 쓰는 사람이 되는 데 두 가지 조건이 기여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하나는 정신적 조건이고 다른 하나는 물질적 조건이다. 극심한 우울증을 앓지 않았다면, 그는 글 쓰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물려받은 재산이 허락한 여유가 없었다면, 그는 글만 쓰면서 살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이 점을 솔직히 인정한다. 이 점에서 현실적 궁핍을 견디며 진정한 정신생활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사람들과 비교해 보면 나는 극히 보잘것없는 사람이다.” 키르케고르의 이 겸사는 문인 혹은 작가의 삶이 돈이라는 조건을 떠나 지속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역으로 드러내 보여준다. 올해 초 정부가 지원금 3400만원을 미끼로 삼아 한국작가회의에 ‘불법 시위 불참 확인서’를 제출하라고 했을 때, 키르케고르의 이 고백이 떠올랐다. 돈의 지배에 맞서 싸우는 것이 작가의 소명이겠지만, 돈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이 작가의 삶의 조건이기도 하다. 이 삶의 원초적 조건을 흔들어 정신을 순치시키려 든다면, 그것은 문학을 모독하는 짓이다. 이 모독적 처사에 맞서 작가들이 ‘저항의 글쓰기 실천위원회’를 만든 것은 당연한 일이다.

키르케고르가 앓았던 우울증이란 말하자면 삶을 짓누르는 온갖 정신적 고통의 통칭일 것이다. 그 고통이 없다면 문학적 창조도 없다. 키르케고르는 창조를 낳는 그 고통을 ‘시칠리아의 암소’의 고통에 비유하기도 했다. 시칠리아의 암소는 기원전 6세기 시칠리아의 참주 팔라리스가 만든 암소 모양의 청동 고문도구를 말한다. 그 암소 안에 사람을 가둬 불을 지피면 폭군의 귀에는 희생자의 울부짖음이 아름다운 소리로 들렸다고 한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첫머리에서 키르케고르는 “시인이란 어떤 존재인가?” 하고 물은 뒤 시칠리아 암소의 고문에 빗대 이렇게 말한다. “격렬한 고통을 가슴속에 품고 있지만 탄식과 비명이 입술을 빠져나올 때는 아름다운 음악으로 들리는 불행한 사람이 시인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시도 본질은 고통이다. 시인의 고통은 다른 말로 하면, 세계의 고통이다. 이 세계가 아프지 않다면, 시인의 아픔은 아무런 공감도 얻지 못할 것이다. 얼마 전 작가들이 ‘저항의 글쓰기 실천’의 하나로 ‘4대강 살리기’라는 이름의 ‘생태 고문’ 현장을 찾아가 그 고통의 소리를 청취했다. 포클레인과 불도저로 된 그 시칠리아 암소 앞에서 시인들의 통증 어린 말들이 퍼졌다. “강이 아픕니다. 우리도 함께 아프겠습니다.”

독일 문예비평가 발터 베냐민(1892~1940)은 우울의 깊이로 치면 키르케고르에게 뒤지지 않았다. 파시즘을 맹렬히 비판했던 그는 나치를 피해 피레네 산맥을 넘던 중 삶을 마쳤다. 친구 브레히트가 쓴 시구를 빌리면, “추적에 지쳐 육신을 눕히고는 다시는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그 마지막 해에 삶을 정리하듯 쓴 최후의 글이 ‘역사철학 테제’다. 그는 거기서 <새로운 천사>라는 파울 클레의 그림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림 속에서는 난폭한 바람이 미친 듯이 불어댄다. 그 바람을 맞으며 천사가 서 있다. 작은 날개를 편 채 미친 바람 앞에서 버티는 천사. 천사는 뒤로 떠밀리면서도 끝까지 저항한다. 광풍을 이길 자신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저항하지 않을 도리가 없어서 저항하는 것이다. 진군하는 이 시대 불도저 앞에서 작가들의 글쓰기는 천사의 날갯짓처럼 허약해 보인다. 그러나 천사가 꼭 패배하란 법은 없다. 같은 글에서 베냐민은 메시아는 온다고, “적그리스도를 이겨내며” 온다고 속삭인다.


한겨레신문 2010.4.15 고명섭 책·지성팀장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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