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위, 세운상가 고층 재개발 부결 

» ‘세운녹지축 사업’이란 공식 이름이 붙은 서울시 쪽의 종묘 앞 세운상가 터 재개발 구상도(아래 사진). 공식 이름과 달리 종묘(위 사진·아래 사진의 점선 부분) 위쪽 종로 맞은편 녹지축의 양쪽에 20~30층 높이의 고층건물 단지를 조성하는 것이 핵심이어서 세계유산 종묘의 경관을 파괴할 것이란 우려가 끊이지 않았다. 

10대10! 아슬아슬했다. 똑같은 찬성, 반대 표. 덕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울 종묘 경관 보존에 파란 불이 켜졌다. 지난 14일 문화재위원회 세계유산·사적 분과 합동 회의는 서울시 산하 에스에이치(SH) 공사의 종묘 앞 대형건물 신축 사업 수정안을 과반 미달로 부결시켰다. 종묘 경관 파괴 논란을 불렀던 20층 이상의 고층 건물 신축 계획은 사실상 백지화쪽으로 굳어졌다.

‘수정안’ 곡절 끝 10:10 부결…건물높이 ‘55m 이하’ 견지
낙관하던 서울시·SH공사 당혹 “다시 대안 마련 추진”

공사쪽 수정안은 종묘 맞은편 세운상가터에 신축할 건물 높이를 종묘에 가장 가까운 종로변은 가장 낮은 13층(55m), 더 뒤로 갈수록 18층(77.9m), 25층(87.4m) 등으로 높여 모두 7동의 주상복합건물 단지를 짓는다는 계획이다. 건물 높이가 이전에 냈던 안의 122m~99m보다 대폭 줄었다. 이 문제를 검토해온 문화재위 합동 소위가 옛 세운 상가 건물 높이인 55m(16층) 이상 짓지말라고 권고한 것을 일부분 수용한 것이다.

애초 시쪽은 소위와 나름대로 조율한 수정안이어서 통과를 낙관했다. 그런데 정작 합동회의장의 분위기는 달랐다. 사적분과 위원 상당수가 문제를 제기했다. 종묘 정전쪽에서 보면 3층 정도 위쪽으로 돌출되는 신축 건물들의 스카이라인이 여전히 경관에 거슬린다는 것이었다. 반면 세계문화유산 분과쪽 위원들은 “근처에 다른 고층 건물들이 이미 정면 조망권에 들어오는 현실에서 형평성을 고려해 통과시키자”고 주장했다. 심각한 입씨름 끝에 보기드문 표결이 진행됐고 가부동수로 부결이 선언됐다. 이인규 위원장은 “논란이 치열했으나, 표결 결과에 숙연해졌다”고 전했다.

곡절 끝에 나온 부결 결정은 서울 도심 4대문안 문화재 경관 보존에 새 이정표를 세운 것으로 평가된다. 논란 속에서도 문화재위가 세계유산 경관 보존에 엄격한 잣대를 관철시킨 셈이다. 2000년대 중반 종묘 맞은편 세운상가 철거가 확정되자 서울시쪽은 종묘쪽 건물 층고를 낮추고 그와 먼 쪽을 높인 얼개의 건물 단지 신축안을 짜서 문화재위와 건물 높이를 계속 절충해왔다. 지난해 시와 공사쪽은 9월 36층, 122m 높이의 초고층 건물 계획안을 처음 내어 문화재위쪽의 보완 요구를 받았고, 그 뒤 높이를 110, 106, 99m로 낮춘 수정안을 연말부터 지난달까지 제출했으나 모두 보류된 바 있다. 높이를 조금씩 낮추고 수평적인 건축 면적은 넓히는 방식으로 계속 조율해왔으나, 이번 부결을 통해 이런 협의 과정 자체의 효용성도 빛이 바래졌다는 평가다.

서울시와 공사쪽은 당혹감 속에서도 “사업 중단은 없다. 다시 대안을 골라 추진할 것”이라는 뜻을 밝히고 있다. 어떤 대안일지는 미지수지만, 높이를 소위 권고안의 55m선 안팎으로 더욱 낮추고 수평 건축 면적은 더욱 확대시킨 변형안을 낼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 시쪽이 더욱 조건을 완화한 수정안을 내놓을 경우 문화재의 심의 방향이 어떤 양상으로 흐를지도 주목된다.

문화재동네 일각에서는 서울시가 산하 공사쪽에 수익자 부담을 들어 개발 비용을 떠넘기면서 고층화 개발을 사실상 부추킨다고 비판해왔다. 이번 부결 사태를 계기로 사대문 역사도시 복원을 추진해온 서울시가 좀더 과감하게 예산을 투입해 종묘 주변 역사 복원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일고있다. 이인규 문화재위원장은 “서울 사대문 안은 건물 신축을 자제하고 옛 유적을 외형상 보존하면서 내부 리노베이션을 하는 유럽식 모델을 썼으면 좋겠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사실 불안해요. 시장 선거가 바로 코 앞이니…정책이 어떻게 바뀔지도 모르고…”

한겨레신문 2010.4.15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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