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농장서 프랑스 식탁까지, 총성 없는 전쟁 

르몽드디플 [18호] 2010년 03월 05일. 

사소한 소비 습관이 때론 일파만파의 결과로 이어진다. 겨울철 토마토 1kg의 이면에도 우리의 소비 습관이 불러온 무시무시한 현실이 감춰져 있다. 밍밍한 맛의 토마토를 감내해야 하는 소비자, 스페인 농장에서 혹사당하는 외국인 노동자, 과로에 시달리는 동유럽 출신의 화물기사, 운송트럭이 내뿜는 매연, 폭리를 취하는 대형 유통업체들까지…. 이렇듯 토마토 하나에 무역 세계화의 현주소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서유럽에서는 매년 대동소이한 일이 벌어진다. 10월이면 자국 땅에서 재배한 신토불이 토마토가 서서히 종적을 감추고, 스페인산(1)이 홀연히 나타나 재래시장이나 슈퍼마켓 진열대를 독식한다. 스페인에서 수입한 이 토마토는 단단하고 아삭거리는 식감에 텁텁하고 밍밍한 맛이 난다. 집에 돌아와 과일 바구니에 담아두면 여느 과일처럼 맛있게 무르익는 게 아니라 시들시들 윤기를 잃고 금세 곯아버리기 일쑤다. 카르푸 남프랑스 매장에서 청과물 담당자로 일하는 로베르는 “프랑스 소비자는 사시사철 토마토를 원한다. 한겨울이고 뭐고 없다. 그러니 우리로서는 토마토를 공급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사시사철, 그러나 값싸게    
문제는 독일이나 영국, 네덜란드, 폴란드 국민과 마찬가지로, 프랑스 소비자도 kg당 2유로 이상 나가는 토마토는 구매하려 들지 않는 데 있다. 제철이 아닌 계절에도 2유로 이하가 아니면 거들떠보지 않는다. 이 때문에 업계는 겨울철에 토마토를 경작해야 하는 기술적 문제 말고도 다소 모순된 경제적 난제로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토마토의 소비자가를 2유로 이하로 낮추려면 생산 단가를 kg당 50상팀(약 0.5유로) 이하로 조정해야 수지가 맞았다.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자구책으로 떠오른 곳이 안달루시아의 소도시 알메리아다. 지중해와 웅장한 가도르산맥을 끼고 있는 이 지역은 유럽에서 일조량이 가장 많고, 인건비는 가장 낮기로 유명한 곳이다. 

예전에 이곳은 황야지대였다.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스파게티 웨스턴 영화’(1960~70년대 이탈리아에서 제작한 미국 서부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역자)(2) 여러 편이 이곳을 배경으로 촬영됐다. 하지만 요즘 이곳을 찾는 여행객은 수천 개 비닐하우스 행렬이 연출하는 예기치 않은 진풍경에 그만 넋을 잃고 만다. 어떤 것은 요새처럼 튼튼하고, 어떤 것은 바람이 할퀸 듯 너덜너덜하다. 전부 얼마나 될까? 어림잡아도 3만 개의 비닐하우스가 3천~4천ha에 걸쳐 빼곡히 들어서 있다. 그리고 여기에 수만 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일한다. 유럽 소비자에게 사시사철 채소(3)를 제공하기 위해 고용된 이들 중엔 불법 체류자도 부지기수다. 

알메리아대학 부속 사회인류학연구소에서 근무하는 후안 카를로스 체카의 분석에 따르면, 알메리아 비닐하우스에서 일하는 노동자 수는 11만 명으로 추산되고, 8만~9만 명은 외국인이며, 이 가운데 2만~4만 명 정도가 불법 체류자다. 불법 체류자 가운데 50%는 모로코인, 나머지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나 라틴아메리카, 루마니아 출신의 노동자다. 

프랑스에서 농업노동자는 하루 8시간을 일하고 일당으로 55.40유로(세후)를 받는다. 고용주가 내는 사회부담금은 월 104유로다. 반면 알메리아의 일용직 노동자 일당은 32~37유로밖에 되지 않는다. 법정 최저임금이 44.40유로(세후)(4)이지만 실제 임금은 그처럼 형편없다. 게다가 사실 소득신고도 하지 않기에 고용주는 사회부담금을 낼 필요도 없다.

 수만 명의 타자, 이주노동자
외국인 노동자의 기숙사 사정은 어떨까. 비좁은 임대주택에 15명이 함께 기거하는 경우는 그나마 호사에 가깝다. 운이 나쁜 노동자는 급수나 전기 공급도 되지 않는 시멘트 건물에서 생활해야 한다. 본래 농가 주인이 화학비료를 쌓아두는 곳이다. 최악은 널빤지나 비닐을 덧대어 만든 빈민굴에서 간신히 숙식만 해결하는 경우다.이런 빈민굴은 눈에 띄지 않고 인적이 드문 비닐하우스 한복판에 설치된다.       

모로코 테투안 출신의 23살 노동자 엘 메흐디는 “나는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다. 불법 체류를 문제 삼지 않는 맘 좋은 사장님을 만났다”며 서투른 스페인어으로 답한다. 창문 하나 없는 기숙사는 음침하기 그지없다. 급수나 전기는 물론 난방시설도 기대하기 힘들다. 옆방에는 황산염 비료통이 방 안 가득 쌓여 있다. 엘 메흐디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저 비료를 뿌리는 게 내 일”이라고 설명한다. 서로 인접한 비닐하우스 두 동은 소유주가 같다. 그에게 고용된 외국인 노동자 엘 메흐디는 하루 8~10시간을 일하고 일당으로 33유로를 받는다. “그나마 일이 있는 날의 얘기”라고 그가 덧붙인다. 그래도 그는 만족한다. “여름 두 달, 일이 없는 동안에도 사장님의 배려로 계속 기숙사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법 체류자를 의미하는 스페인어 ‘신 파펠레스’(sin papeles)는 유럽인이 귀가 닳도록 들어온 단어다. 2000년 2월 초순, 한 젊은 스페인 여성이 정신장애를 가진 모로코 불법 체류자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거센 인종주의 폭풍이 사흘 밤낮 동안 엘에지도 일대를 휩쓸었다. 스페인 시민 수천 명이 쇠몽둥이를 들고 거리로 뛰쳐나와 술집과 상점 등을 뒤지며 모로코인 색출에 나섰다. 이 폭동으로 54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는데, 그중 경찰과 이민자가 각각 20여 명이었다.  

이후 상황은 어떻게 되었을까?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악화됐다”는 게 알메리아 농업노동자조합 대표 스피투 멘디의 판단이다. 해마다 비닐하우스 일대 길가에는 버려진 외국인 주검이 발견된다. 하지만 경찰 수사도 형식적인 선에 그치고, 살인범이 잡히는 일도 거의 없다.

 토마토를 위한 인간 이하의 삶 

이지도르 마르티네즈는 알메리아 제일의 농업협동조합 카수르에서 일한다. 기술엔지니어인 그가 자긍심 넘치는 태도로 취재진의 공장 견학을 도왔다. 카수르의 주 고객은 프랑스의 카르푸, 독일의 에드카와 리들, 영국의 아스다, 네덜란드의 매그니푸르츠라고 설명한다. 공정 과정을 들어봤다. 일단 토마토가 반입되면 가장 먼저 자동세척실로 향한다. 여기서 물 분사, 세제 투입, 회전 브러싱, 고온 건조 순으로 세척 작업이 진행된다. 마르티네즈는 “토마토 표면에 남아 있는 구리·황 잔여물을 말끔히 제거해야만 소비자에게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금세 미소를 지으며 “사실 가장 유해한 물질은 과육에 잔류해 있어서 육안으로는 식별이 힘들다”고 덧붙인다. 

일단 품질·크기별로 정리된 토마토는 팔레트에 담긴다. 그 다음, 이 팔레트는 토마토 온도가 10도로 내려갈 때까지 1~2일간 냉장실에 보관된다. 마지막으로, 언제든 유럽 전역으로 달려나갈 준비를 마친 냉장트럭에 적재된다. 12월에서 이듬해 2월에 이르는 성수기가 되면, 출하 상품을 싣고 알메리아를 빠져나가는 화물트럭 수가 하루 500대에 육박한다. 알메리아에서 파리까지의 거리는 1900km(법정 휴식 시간을 고려했을 때 이틀 반나절), 런던까지는 2300km(사흘 반나절), 베를린까지는 2700km(나흘 반나절), 바르샤바까지는 3300km(닷새)에 이른다. 마르트네즈는 “수확에서 마트 입고까지 5~8일이 소요된다”며 “초록색 토마토를 출하하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가 내민 색상기준표에는 초록색에서 붉은색 순으로 1~10까지 순번이 매겨져 있다. 그는 “런던 고객이 8에 해당하는 토마토를 주문하면, 4에 해당하는 토마토를 출하한다”고 설명한다. 살짝 색만 바꾸는 것이다. 이렇게 색을 바꿔치기하는 이유는 바나나·아보카도·키위와 달리 토마토는 일단 수확하고 나면 후숙 과정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튿날 저녁, 화물트럭이 출발한다. 총 22개 팔레트, 적재 중량은 15t이다. 행선지는 카르푸 베지에 물류센터다. 베지에 물류센터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카르푸 물류센터는 크기가 어마어마하고,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위치한다. 이곳에 하역된 제품은 몇 시간 만에 다시 트럭에 실려 해당 지역의 카르푸 슈퍼나 대형마트 매장으로 입고된다. 이번에 카르푸 화물을 맡은 47살의 안토니오 파셰코 산체스는 34년간 도로에서 잔뼈가 굵은 화물기사다. 그는 “13살에 일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조수석에 앉아 아버지 일을 도왔다. 지도를 보고 길을 알려드리는 일을 했다. 16살에 아버지와 교대해 야간 운전을 시작했다. 아버지가 노안 때문에 밤 운전이 힘들어졌기 때문이다”라며 간단한 이력을 소개했다. 그가 운전할 트럭은 볼보인데, 방금 출하한 신차처럼 아주 말끔하다. 그는 “이런 차는 못해도 15만 유로는 줘야 한다”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보기 좋으면 몸에도 좋은가 

출발을 앞두고 상관 안드레스 발베르데가 좀더 자세히 설명을 해준다. 그는 화물차 400대를 보유한 알메리아 제일의 운수회사 카리온의 영업부장이다. 그에 따르면 1회 운송에 드는 경유는 km당 45ℓ에 육박한다. 차량은 물론이고 냉장설비를 가동하는 데도 연료가 들기 때문이다. 이는 ‘총운송비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실례로, 파리까지 운행하는 데 드는 운송비가 토마토 1km당 총 15상팀(약 0.15 유로)이라면 그중 5상팀이 연료비인 셈이다. 그는 “상황이 그런데도 대형 유통업체의 압박은 끈질기기만 하다. 계속해서 더 낮은 가격을 요구한다. 이미 문을 닫은 운송회사도 부지기수다. 현재로서는 앞으로의 향방을 전혀 알 길이 없다”고 토로했다. 

이대로라면 육로운송이 항만운송에 잠식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모로코 탕제항 개항으로 이런 가능성은 더욱 농후해졌다. 그럴 경우 안달루시아 농업에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이런 위기의식의 발로로 현재 스페인에서는 알메리아와 프랑스 됭케르크를 잇는 항만노선 개설을 논의 중이다. 몽펠리에 국립 농학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했던 장클로드 몽티고는 “항만운송 전환의 붐이 일고 있다”고 진단한다. 청과물 운송물류 전문가인 그는 “향후 지중해 지역의 물류 판도가 완전히 뒤바뀔 것”이라며 “현재 물류 요충지로 대접받는 지역도 미래에는 요충지에서 배제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고속도로를 누비는 화물트럭이 대세다. 고객의 가격 압박에 맞서 묘안을 찾아낸 운송회사도 있다. 이들은 육로운송과 관련해 유럽 내 통일된 법제가 마련돼 있지 않다는 허점을 이용해 동유럽의 값싼 운송기사를 고용하는 꼼수를 부렸다. 이들 역외 노동자는 역내 노동자와 비교해 임금이 2분의 1~3분의 1가량 낮다. 스페인 출신의 운송기사 월급이 2500~3천 유로라면 우크라이나인 기사의 임금은 최하 1200유로까지도 곤두박질친다. 

이런 실태를 여실히 보여준 예가 2002년 룩셈부르크-오스트리아 합작회사 크랄로베츠 금브흐사(5)의 도산 사건이다. 당시 이 회사는 소피아나 키예프에 화물기사 고용사무소를 개설하는 수법을 썼다. 현지 사무소를 통하면 ‘현지법’에 근거한 근로계약을 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들 노동자의 주된 일터는 서유럽의 고속도로였지만 버젓이 편법이 자행됐다. 오스트리아 운송노조 대변인 프란츠 피쉴은 “오스트리아 운송회사에 고용된 화물기사 중 80%가 외국인 불법 체류자”(6)라고 털어놓았다.

 트럭은 질주한다, 살기 위해서  

요즘 상황은 어떨까? 새벽 3시경 발렌시아에서 카스텔로로 향하는 길에 위치한 한 식당을 찾은 화물기사 산체스의 의견을 들어봤다. 그는 “예전보다 도로에 불가리아나 우크라이나 출신의 화물기사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고 전한다. 취재진과 같은 테이블에 합석한 이들 중엔 산체스의 절친한 동료 프란시스코 파코도 끼어 있다. 그 역시 화물기사로, 그의 입을 통해 좀더 생생한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요즘 운송업계에서는 기존 기사들을 해고하고 대신 우크라이나 기사를 고용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실제 동료로부터 들은 실화다. 해고된 이들은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밀매까지 감행한다. 새 타이어를 내다 팔고, 대신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헌 타이어를 사용한다. 심한 이들은 다른 화물기사들이 대형 주차장에 들러 잠시 새우잠을 청하는 사이, 몰래 접근해 연료를 빼내거나 타이어를 훔쳐간다”는 게 그의 전언이다. 주행 거리에 따라 임금을 책정받는 기사들은 법정 휴식 시간까지 위반해가며 무리해서 운행 거리를 채운다. 심하게 낡은 타이어, 과로하는 운전사…. 그만큼 교통사고의 위험도 크다. 

취재진은 프랑스 국경에 조금 못 미친 부근에서 운전기사 산체스와 헤어지기로 했다. 베지에까지 동행해 하역 작업까지 마저 취재할 수는 없을까? 사전 취재 요청을 했지만, 카르푸 물류센터 담당자 티에리 갈쟁은 “절대 불가”라고 못박았다. 이어 “취재에 응하지 말라는 상부 지시가 있었다. 워낙 지침이 강경하다. 양해해주기 바란다. 직원이니 지시를 준수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카르푸 프랑스의 홍보실에도 연락했지만 “죄송하지만 취재를 허가할 수 없다”는 같은 답변만 돌아왔다. 프랑스 내 물류센터 수나 위치만이라도 알려줄 수 없느냐는 질문에도 홍보실 직원은 “기밀 사항이라 답변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운송 시간이 길어질수록 접촉으로 인한 상품 훼손의 가능성도 늘어난다. 그래서 스페인산 토마토의 성패는 제품의 단단함에 달려 있다. 카르푸 물류센터에서 신선식품 담당자로 일했던 티에리 B는 “팔레트에 조금이라도 무른 토마토가 보이면 그 자리에서 바로 반입이 금지된다”고 설명한다. 이 회사에서 청과물 담당자로 일하는 로베르 C도 익명 보장을 요구하며 입을 열었다. 그는 “입고되는 토마토는 경도가 높아야 한다. 수차례 고객 손을 거칠뿐더러, 진열 기간도 2~3일이나 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1989년 이스라엘 연구가들은 충격에 쉽게 손상되지 않고 장기 보관이 가능한 새로운 ‘장수’(long-life) 토마토 품종(다니엘라 토마토) 개량에 최초로 성공했다. 이후 이 신종 토마토의 색, 향취, 식감, 수분 함량, 연한 질감 등을 향상시키기 위한 연구가 잇따랐다. 프랑스에서는 국립 농학연구소를 필두로 유수 연구소들이 토마토 품종 개량과 청과물 물류 운송 최적화를 위한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7) 국가가 출연한 기금으로 진행되는 이 연구의 최대 수혜자는 주로 대형 유통업체다. 

프랑스의 경우, 대형 유통업체가 전체 식품 판매 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은 67%다.(8) 상대적으로 근린 상권이 적은 독일이나 영국보다 낮은 점유율이다. 이 시장을 사이좋게 나눠먹고 있는 업체는 카르푸(시장점유율 23.9%), 르클레르(16.9%), 앵테르마르셰(13.5%), 오샹(11.1%), 카지노-모노프리(10.3%), 시스템 위(9%) 등 모두 6곳이다. 2009년 이 기업들이 올린 총매출액은 2450억 유로였고, 이 중 960억 유로를 카르푸가 단독으로 달성했다.(9) 

그렇다면 알메리안산을 피할 방법은 전혀 없는 것일까? 동네 과일가게를 이용하면 알메리아산 토마토를 살 염려가 없다고 생각하는 건 오산이다. 할인점에서 kg당 1.9유로에 판매되는 토마토가 동네 가게에서는 3~4유로에 공급되지만, 둘 다 동일한 생산지에서 동일한 처리를 거쳐 동일한 트럭으로 운송된 동일한 제품이다. 최악의 상황도 있다. 몽펠리에 대형 도매업체 로베르 오르탈에서 간부사원으로 재직하는 조엘은 “종종 대형마트에서 퇴짜 맞은 제품에 대해 구매 의향을 묻는 연락이 온다”고 증언한다. 그는 “그런 경우 제품을 구매한다. 고객에게 저렴한 가격 혜택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털어놓는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고객층은 누구인가? 로베르 오르탈은 영세상점에서 대규모 상점에 이르기까지 몽펠리에 내 거의 모든 소매상점을 상대한다. 

대형 유통업체가 출하 상품의 반입을 거부하는 이유는 각양각색이다. 과일의 경도나 크기, 색상 등이 부적합하거나, 하역시 제품 온도가 너무 높아도 불합격 처리된다. 이 때문에 할인점 납품용 토마토 중 상당 부분이 재래시장이나 동네, 시내에 위치한 영세 청과물 가게로 흘러 들어간다. 이들은 대형 유통업체의 위협적인 성장에 맞서 살아남은 공영도매시장(MIN) 최후의 생존자다. 프랑스에는 이런 도매상점이 18곳에 이른다. 그중 하나가 룅지스다. 연구원 몽티고는 “룅지스마저 완전히 환골탈태했다”며 “요즘은 룅지스에도 모든 게 완비돼 있다. 대형 유통업체에나 있던 물류센터는 물론, 전문적인 상품 수입 담당자, 도매 담당자까지 없는 게 없다”고 덧붙였다. 

소비자에게 다른 선택은 없는 것일까? 모로코산 토마토는 어떨까? 모로코산(10)이나 스페인산이나 오십보백보다. 산업화된 경작 방식으로 인해 토질이 악화된 흙을 자양분으로 비닐하우스에서 재배되기는 매한가지다. 그렇다면 자국산 토마토를 애용해보는 건 어떨까? 일견 옳은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요즘 노지 재배 토마토가 어디 있단 말인가? 흙에 뿌리를 내리고 태양을 쬐며 자라나는 토마토가 희귀하다는 사실을 알고나 하는 말일까? 프랑스의 연간 토마토 생산량은 60만t이다. 하지만 그중 95%가 비닐하우스에서 재배되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영국에서는 하우스 시설 3분의 1에 최첨단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사계절 내내 가스 난방이 풀가동되는 따뜻한 유리 온실이 마련돼 있다. 지상 50cm 높이에 고정대가 설치되고, 컴퓨터에 연결된 점적 관수 시설이 토마토 뿌리가 잠긴 큰 홈통으로 물과 비료를 공급한다.

 제철 과일이 맛도 좋고 착하다 

네덜란드나 벨기에는 아예 온실 ‘수경재배’에만 의존하는 형편이다. 이제 최후의 방법은 프랑스 최고의 요리사 자크 푸르셀의 조언을 따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몽펠리에에서 ‘자르댕 데 상스’ 레스토랑(세계적 권위의 레스토랑 평가지 <미슐랭 가이드>로부터 별 2개 등급을 받은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이 요리사는 “나는 여름에만 토마토 요리를 한다”고 얘기한다. “여름이면 밭에 햇살 가득 흙을 품고 토마토가 자라난다. 관개수도 적당히 사용되고, 화학비료도 최소한만 살포된다. 이렇게 재배된 토마토는 맛이 끝내준다. 너무 질퍽하지도 않고 살짝 신맛이 가미된 게 향미가 뛰어나다”고 그는 전한다.  

 

글•피에르 돔 Pierre Daum
대학에서 문학 전공 교수를 지낸 뒤, 1999년부터 오스트리아 주재 <르몽드> 특파원으로 활동했으며 현재 <리베라시옹>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등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각주>
(1) 때로는 기타 국가의 토마토가 스페인산을 대신한다. 진열대를 점령하는 토마토를 수입국별로 살펴보면, 프랑스에서는 모로코산이, 독일이나 영국에서는 네덜란드산이 주류를 이룬다.
(2)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황야의 무법자>(1964), <석양의 건맨>(1965), <석양의 무법자>(1966) 등이 있다.
(3) 알메리아의 비닐하우스 4만ha 중 9천ha에서 토마토가 생산된다. 조금 북쪽에 위치한 뮈르시에도 추가로 3천ha의 토마토 경작지가 있다. ‘스페인산 어디까지 뻗어 있나?’, <Végétable>, n°262, Morière-les-Avignons, 2009년 12월호. 알메리아에서 생산되는 주요 채소와 과일로는 오이, 고추, 수박 등이 있다.
(4) ‘Convenio colectivo de manipulado y envasado de frutas, hortalizas y flores de Almeria’, <Boletin Oficial de Almeria>, n°233, 2008년 12월 3일.
(5) 창립자 카를 크랄로베츠(Karl Kralowetz)는 룩셈부르크 법원으로부터 불법 체류자 고용 혐의로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가 고용한 불법 노동자의 월간 주행 거리는 3만km에 달했다.
(6) ‘동유럽에서 서유럽을 누비는 화물기사들’, <리베라시옹>, 파리, 2002년 1월 29일.
(7) Claire Doré, Fabrice Varoquaux, ‘50여 종 재배식물의 역사 및 품종개량’ INRA, 파리, 2006, p.695 이하 참조.
(8) 프랑스 통계청(Insee), ‘2008년 상업보고서’,
www.insee.fr.
(9) <Distribook 2020-Linéaires>, Cesson-Sévigné, 2010년 2월호.
(10) 모로코산 토마토는 이전에 아가디르 근교 수스에서만 생산되다가 요즘은 서사하라의 작은 해안도시 다클라를 중심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다클라, 모로코산의 탄생’, <Végétable>, n°262. 

 

[박스기사] 18세기의 '데자뷔' 

 스페인 안달루시아는 막대한 양의 토마토 수출을 자랑한다. 스페인은 1995년 이후 연간 90만t의 햇토마토를 수출하며, 역내 최대 수출국(전세계적으로는 멕시코와 시리아에 이어 3위)으로 자리매김했다. 그 뒤를 네덜란드(2007년 수출량 83만4천t), 터키(37만2천t), 모로코(29만7천t), 벨기에(20만3천t), 프랑스(16만7천t), 이탈리아(11만t)가 뒤좇고 있다.(1) 네덜란드의 경우, 온실 수경재배에만 의존하는데도 토마토 생산량이 막대하다. 그 근간에는 우수한 기술력, 자국 해양에서 추출한 천연가스를 이용한 저렴한 난방, 값싼 노동력 등 세 요소가 원동력으로 자리하고 있다. 

2008년 스페인 토마토의 독일 수출량은 20만1천t, 영국은 17만4천t, 네덜란드는 14만5천t, 폴란드는 5만7천t, 이탈리아는 3만3천t, 체코공화국은 2만8천t에 달했다.(2) 유럽에서 토마토는 감자 다음으로 많이 소비되는 채소다. 2007년 그리스의 1인당 토마토 소비량은 61kg, 덴마크는 32kg, 이탈리아는 31kg, 스페인은 17kg, 프랑스는 14kg, 영국은 8.1kg, 벨기에와 독일은 각각 8kg에 이르렀다.(3) 영농 조합원 스피투 멘디는 “이처럼 우리는 막대한 양의 토마토를 즐기고 있지만, 이게 모두 알메리아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 덕분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과연 몇 명이나 될까?”라고 반문한다. 그는 “18세기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을 보면 프랑스령 서인도 제도의 사탕수수 농장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고 말한다. “이 저서에서 몽테스키외는 ‘설탕의 원료인 사탕수수 재배를 노예의 노동력에만 의존하다 보면 미래에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 예견했는데, 오늘날 알메리아산 토마토의 실정과 딱 맞아떨어지는 얘기가 아니냐”며 경탄했다.

<각주>
(1)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chiffres 2007, http;//faostat.fao.org.
(2) Eurostat(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산하), ‘스페인산 토마토 역내 수출추이 통계표(2004~2008년)’, http;//epp.eurostat.ec.europa.eu.
(3) Eurostat, ‘역내 청과물 소비추이 통계표(일인당 kg 단위로 표시)(2000~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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