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테라, 팥빵, 상어, 숭어의 공통점은? 모두 한반도 어디에선가 이번 설 차례상에 올려질 음식이란 것. 카스테라와 팥빵은 제주도 차례상에 등장한다. 제주는 논농사가 힘든 섬. 그래서 차례상에 쌀로 만든 음식을 올리기 어려웠다. 제주 사람들은 대신 ‘상외떡’을 올렸다. 상외떡은 밀가루를 발효시켜 팥소를 넣고 둥글게 빚는 찐빵의 일종. 고려시대 중국 원(元)나라에서 전해진 ‘상외떡’에서 유래됐다고 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물론 요즘 제주에서는 쌀이 비싸지도, 구하기 어렵지도 않다. 하지만 빵을 올리는 전통은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다. 카스테라·팥빵·롤빵 등이 차례상과 제사상에 오른다.

상어, 더 정확히 ‘돔배상어’는 안동 등 경북지역 차례상에 빠지지 않아왔다. 돔배상어란 상어를 말린 것. ‘돔배고기’라고도 불린다. 이 지역에서 왜 상어고기를 썼는지 정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에서 답을 유추해볼 수는 있다.
일본에서 상어는 경북과 비슷한 지리 조건의 산골마을에서 주로 먹던 생선.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옛날에는 이런 지역에서 생선을 먹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상어는 다른 생선과 달리 배뇨기관이 발달하지 않아 몸에 암모니아 성분이 많다. 그래서 쉽게 상하지 않아 보름 정도는 신선도가 유지된다고 한다. 소금이 잔뜩 들어가는 간고등어 만드는 기술이 바닷가에 있는 도시나 마을이 아닌 내륙 깊숙이 틀어박힌 안동에서 발달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경북에서는 말린 오징어가 차례상에 오르기도 한다.
전남 목포 근방에서는 숭어를 차례상에 올리기도 한다. 추운 겨울에도 이 근처 바다에서 숭어가 잡히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은 전통을 주어진 조건이나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용해온 모양이다. 한국민속연구소 주강현 소장은 “전통의 기본은 지키되 시대에 맞게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긴, 전통 음식은 아니지만 생전 부모님, 조부모님이 즐겨 드시던 음식을 제사상, 차례상에 올리는 경우도 늘고 있고 미국 재미동포 차례상에는 피자와 와인이 오르기도 하지 않는가.
(김성윤기자) 조선일보 2006.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