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 : 필자의 말마따나 이제 수도 이전이 예전 조선시대때의 경우처럼 시대를 바꿀수 있는 요인이 아니다라는 점을 빨리 사람들이 알았으면 한다. 

네덜란드 헌법에 나와 있는 이 나라 수도는 암스테르담이다. 그러나 정부 청사, 의회, 대법원, 왕궁 등은 헤이그에 있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인 19세기 초 잠시 암스테르담에 정부가 소재했으나, 16세기 이후 헤이그에 대부분의 국가기관이 위치했다. 이는 네덜란드 근현대사의 산물이다. 네덜란드의 모태인 홀란드공국의 원래 수도가 헤이그였다가, 주변 지역을 병합해 커지면서 암스테르담이 중심 도시로 바뀌었다. 19세기 초부터 헌법에 암스테르담을 통치자가 취임하는 도시로 언급해 수도의 지위를 부여했으나, 여러 이유로 정부 소재는 바뀌지 않았다. 수도의 실질적인 기능이 헤이그에 있음에도, 암스테르담은 명목상의 수도가 아니라 이 나라의 실질적인 수도로 국내외에 받아들여진다. 1983년 개헌을 하면서 아예 ‘수도 암스테르담’이라고 못박았다.

볼리비아도 수도는 수크레이나, 정부는 라파스에 있다. 정부 소재 도시와 수도가 일치하지 않는 나라는 베냉과 코트디부아르도 있다. 수도 분할이 아니라, 정부 소재 분할도 흔한 일이다. 세종시 문제로 수도 분할 역기능의 대표적 사례로 거론되는 독일이 이제 이 문제로 논란을 벌인다는 증거는 없다.

1990년 독일 통일 때 새로운 수도로 베를린을 정하는 문제에 대해 일부에서는 베를린이 독일제국, 특히 나치 독일과 연관된다며 반대의 목소리가 컸다. 평화적 통일을 한 독일이 과거 전쟁의 잔상을 짊어져서는 안 된다는 논리였다. 결국 베를린을 통일 공화국의 수도로 하고, 의회와 행정부를 옮긴다고 합의했으나, 행정부의 이전은 상징적 수준에서 그치기로 했다. 베를린으로 옮겨간 부처도 최고위 관리들은 본에 여전히 있기로 했다.

본은 지금도 6개 연방정부 부처와 약 20개 연방기관의 소재지이다. 또 총리와 대통령, 상원의 제2 공식 소재지이다. 이들 부처가 베를린으로 옮겨갈 계획은 이제 없다. 독일은 분단 시절 본에 정부 청사가 위치할 때부터 사법부는 카를스루에 등 세 도시에 분산되어 있었다.

스위스도 수도는 연방도시 지위를 갖는 베른이나, 사법부는 로잔에 있다. 체코 역시 헌법상 수도는 프라하이나, 사법수도는 브르노이다. 남아공은 아예 행정수도가 프리토리아, 입법수도가 케이프타운, 사법수도가 블룸폰테인이다.

수도는 한 국가의 모든 공식적 기능이 모여 있어야 한다는 고정불변의 개념이 아니다. 수도의 가치에 유독 집착하는 것은 중국식의 중앙집권적 왕조 역사에서 나온 가치관이다. 이 때문에 천도라는 개념이 나오고, 천도라는 것은 왕조의 교체나 혁명의 산물로 받아들인다. 우리 헌법에서 수도가 서울이라고 못박지 않았는데도, 헌법재판소에서는 경국대전까지 들먹이며 행정수도 건설을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세종시 당론을 정하기 위한 한나라당 의총에서 일부 의원들이 아예 개헌과 국민투표를 해서 수도를 옮기자는 제안을 했다. 국가 균형발전과 행정효율이라는 두 가지 가치를 모두 잡자는 취지다. 논리적으로 맞는 접근이다. 수도 옮긴다고 세상이 바뀌는 시대도 아니다.
1987년 당시 실각 위기에 처했던 여권은 6·29선언이라는 선제적 민주화 조처를 통해 정면돌파하고, 다시 집권했다. 청와대는 교육과학복합도시라는 어정쩡한 세종시 수정안을 가지고 국민투표를 하겠다며 장난칠 때가 아니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이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결코 밑지지 않는 장사가 될 것이다. 


한겨레신문 2010.3.3 

정의길 오피니언 온·오프 통합추진팀장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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