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010.2.12  

공정무역… 농장 노동자를 착취하는 그 이름 "누구를 위한 공정무역인가? 그것은 다국적기업이 독점한 커피 시장에서 그 이익을 덜 남기는 것으로 틈새시장을 만들겠다는 또 다른 커피 상인들의 하나의 상술이지 결코 공정무역이라 할 수 없다. 공정무역의 직접 수혜자는 농장주와 그 조합이지 농장노동자는 아니다."(40~41쪽) '농부 철학자' 천규석(72ㆍ사진)씨가 2006년 이후 잡지 '녹색평론' 등에 기고했거나 강연장에서 발표한 원고 10편을 모은 책이다.   
  

 

 

  

 

 

 천씨는 1965년 대구로 귀농해 농약과 화학비료의 사용을 억제하는 전통 유기농법 보급, 농산물의 도농 직거래를 통한 자급형 도농 공동체 건립 운동을 펼쳐온 농민운동가다. 한때 한국 지식인 사회에 유행했던 유목주의 담론을 정면 반박한 저서 <유목주의는 침략주의다>(2006)를 통해 한바탕 논쟁을 일으켰던 천씨는, 이번 책에서는 근래 시장에서 '제3세계 생산자에게 더 많은 이윤을 돌려주자'는 취지로 유행하고 있는 이른바 '공정무역' '착한(윤리적) 소비' 운동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이는 다국적기업이 장악한 세계시장 체제를 더욱 강화할 뿐이며, 그 소비 대상이 커피나 초콜릿 등 농산물에 집중된 탓에 제3세계 국가에 대규모 농장만 확장시켜 환경 파괴를 촉진할 뿐이라고 일갈한다. "진정으로 착한 일은 오히려 초콜릿 불매운동과 함께 식량부족국들의 식량자급도를 높여줄 새로운 방략을 찾아주는 것이 아닐까?"  

백낙청, 박원순씨 등 진보적 인사들을 비판하는 글도 있다. 예컨데 박씨의 시민운동에 대해서는 "정부 돈과 기업 후원으로 체제 안에서 정부의 파트너 사업하는 것도 시민사회운동인가"라며 날선 비판을 던진다. 때로 급진적, 근본주의적이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철저하게 '체제와 비타협'하는 천씨의 면모를 볼 수 있는 책이다.  

 

한겨레신문 2010.2.13  

‘공정무역’ 불공정한 속내를 꼬집다 “착취구조 숨기고 연장하는 신식민주의적 발상 소농공동체 자급자치보다 윤리적인 소비는 없다” 공정무역은 정말 공정한가? 그리고 윤리적인가?  

 

 

 

 

 

 

4년 전 “질 들뢰즈나 펠릭스 가타리류의 유목주의(노마디즘)를 국가로부터의 해방철학이라도 되는 양 떠받들면서 그것이 신자유주의의 탈을 쓴 세계시장제국주의와 신침략주의를 합리화하는 변설임을 애써 외면”하는 사람들을 겨냥한 <유목주의는 침략주의다>로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농사꾼 철학자 천규석(72). 실명비판을 마다않는 특유의 직설화법으로 생태적 자급자치 소농(두레)공동체 복원이라는 자신의 오랜 작업을 가로막는 ‘적’들이라면 그 누구와의 논쟁도 피하지 않았던 그가 이번엔 민중무역·윤리적 소비·착한 초콜릿·착한 여행 등으로도 변주되는 공정무역을 정면으로 문제삼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공정무역 이념은 옛 식민지 착취구조를 현재와 미래까지도 계속 연장 확대하려는 제국주의 국제분업체제의 신식민지주의 논리일 뿐이며, 약자에 대한 강자의 지배의존관계를 은폐시켜 그 영속에 일조하는 반민중주의라는 게 천규석의 생각이다.  

직거래 형식을 통해 유통 모순을 어느 정도 해소함으로써 제3세계 가난한 생산자들에게 20~30%의 이익이 더 돌아갈 수 있게 해주고, 잘사는 먼 나라 소비자들에겐 안전식품에 대한 욕구와 심리적 부채감을 해결해주며, 생태환경 보존과 세상의 수평적 연대에도 기여한다는 공정무역. 지은이에 따르면 다분히 일본 그린코프 등의 생협활동에서 자극받은 이 땅의 공정무역 운동은 마스코바도 설탕과 올리브유 등의 수입품을 취급하는 두레생협연합, 여성민우회생협, 동티모르 교육사업 지원 명목으로 동티모르 커피를 평화커피라는 브랜드로 판매하는 와이엠시에이(YMCA), 생산자에게 두 배의 가격을 주고 네팔산 커피를 수입하는 아름다운가게, 밸런타인데이에 맞춰 ‘착한 초콜릿’을 홍보하고 공정무역여행을 기획한 한국공정무역연합 등 날로 세를 얻고 있다. 이에 대해 천규석은 야멸칠 정도로 냉소적이다. “히말라야 오지의 산악국가에까지 자급 대신 세계시장에 예속시키는 데 일조하는 장삿속을 인도적 지원으로 위장하는 양두구육은 노골적으로 돈벌이에 나선 세계무역보다 오히려 더 역겹다.” 그가 지적하듯이 공정무역의 대상은 커피, 차, 카카오, 바나나, 설탕 등 주로 기호식품이다. 이들 기호식품은 상품화 역사 자체가 서구 제국주의 식민지수탈과 밀접하게 얽혀 있다. 전세계 기호식품 주요 생산지들에는 서구 열강들이 무자비한 수탈을 위해 생필품 중심의 자급적 전통농업을 철저히 파괴한 뒤 건설한 기호식품 단작 플랜테이션(모노컬처), 도태당한 현지 노동력을 대체한 추악한 아프리카 노예무역 등 원주민 절멸의 역사가 새겨져 있다. 천규석도 공정무역이 상대적으로 공정하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것은 단일품목 경작 때문에 외부 의존형으로 바뀐 원주민들의 삶을 온전하게 복원시켜주기보다는 오히려 그 왜곡을 더욱 심화시킨다. 그 결과 이득을 얻는 쪽은 지금의 뒤틀린 국제분업체제를 지배하고 있는 거대기업 등 자본, 그들과 결탁한 지배그룹이 사실상 사유하는 국가다. 게다가 원거리 공정무역은 운반과 이동 등에 엄청난 에너지와 자원을 낭비함으로써 지구 생태계 파괴를 가속시키고, 자원 거래를 장악하고 있는 강자들의 이익을 더욱 배가시킨다. 이런 불평등·생태파괴 구조를 온존시킨 채 “사실은 자신들의 기호적 필요와 이익사업을 위해 (공정무역을) 하면서도 마치 시혜를 베풀듯”하는 공정무역의 위선을 천규석은 질타한다. 결과적으로 “공정무역은 전혀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의 세계시장체제에 예속된 농업의 국제분업을 기정사실화하고 거기로부터 차선이라도 구하는 현실주의자들의 자기위안 행위일 뿐이다.”  

대안은 그가 지난 수십년간 계속 주장해온 지역적 자급자치 소농공동체의 복원이다. 소비도 “자급자치적 소비보다 더 높은 윤리적 소비는 없고”, 또 없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급이다. 제국주의 ‘외세’의 식민지·신식민지 수탈 출발점은 바로 이 자급체제를 강제로 무너뜨려 외부의존체제로 만드는 것이다. 자급이 무너지면 자치도 무너진다.  

자급자치 소농공동체를 무너뜨린 이 외세의 대변자, 착취의 실행주체는 자본가와 관료 등 지배세력이 사실상 사유화한 국가다. 제국주의 일본도 외세였지만, 국내적으로는 중앙집권적인 국가도 자급적 소농공동체에겐 외세였다. <윤리적 소비>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국가지배로부터의 탈피, 국가에 대한 저항, 나아가 국가 해체 없이는 인간의 진정한 해방도 임계점을 넘어버린 지구생태계 파괴 저지도 불가능하다고 거듭 외친다. <유목주의는 침략주의다>에서도 그랬지만, ‘국가 타도’를 역설하는 지은이의 목청은 이번 책에서 더욱 단호하고 집요하다. 공정무역이 나쁜 것도 결국은 그것이 강자들의 수탈기구인 국가를 온존시키거나 더 강화시킨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가 노동조합 또는 노동운동의 대안 가능성에 회의적인 이유도 자급이 불가능하고, 따라서 국가에 저항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자급이 안 되면 외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자급적 소농공동체와의 연대 없는 노동운동은 자본과 국가에 예속되거나 그들과 한통속이 돼 치명적인 살인무기 생산이나 생태파괴에도 앞장설 수 있다. 설사 노동계급이 예컨대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해 국가를 장악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마르크스가 예언했듯이 국가 소멸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강화하는 쪽으로 가게 된다는 건 실패로 끝난 현실사회주의 실험을 통해서도 확인됐다. 유럽형 사민주의나 복지국가자본주의에 대한 그의 거부감도 거기서 비롯된다.  

소농두레공동체 복원은 그가 보기에 국가에 대한 가장 완강한 저항이며, 가장 강력하고도 유일한 국가해체 작업이다. 그것은 혁명적이지만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같은 권력 탈취를 통해 단기간에 달성될 순 없다. 소농공동체 복원과 국가 소멸은 오히려 권력을 버리는 기권, 인간과 자연에 대한 무자비한 수탈을 거부하는 절약과 가난을 선택하는 결단을 통해 주체와 객체가 함께 바뀌어가는 점진적 과정을 통해 달성될 수 있다. 그것만이 위기에 처한 세상을 구하는 길이라고 천규석은 생각한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먹거리 연대로 시장 예속 벗어나야”  

한살림운동 펴는 천규석씨  

친환경 유기농과 도농 직거래 유통을 추구해온 소농두레공동체 한살림의 대구공동체 대표이사를 1990년 설립 당시부터 맡아오고 있는 천규석은 자신을 “조직 내의 야당”이라고 했다.  

2006년 한살림 제4차 정기이사회 때 공정무역 도입 검토안이 제기됐을 때 그는 단호하게 거기에 반대했고 결국 “그쪽으로 다 기운 것을 되돌려놓았다”고 했다. 상업적 수익 극대화에 매진해온 다른 유사조직들이 10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거둔 물량주의 성과들에 비하면 20년이 넘은 역사의 한살림 외형은 초라해 보일지도 모른다. 임원이나 활동가들이 그 때문에 불평도 하고, 빈약한 대우 때문에 사람 붙들어두기도 쉽지 않지만 그는 “한살림도 그렇게 한다면 다를 게 없다”며 “절대 안 된다”고 말했다. 천규석은 한살림운동이란 “결국 가난하게, 하지만 재미나게 살자는 것”이라며 “가난하지 않으면 이웃이 안 보인다, 가난해야 비로소 주변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고 했다. “가난한 삶이야말로 인간답게 사는 것”이라고도 했다.  

시인 김지하보다 1년 늦게 들어간 서울대 미학과를 그보다 2년 먼저 졸업한 그는 학창시절에 이미 자급적 소농공동체 건설을 꿈꾸었다. 고향인 경남 창녕으로 내려간 게 1965년. 이후 반세기 가까이 “소농두레공동체 혁명”에 매진해오면서 지금과 같은 생활이 “재미나고 좋다는 것을 체험을 통해 느꼈다”며 “나보다 못사는 친구들이 없지만, 남부러울 게 없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했다. 국가를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은 지난 정권교체 뒤 한층 더 확고해졌다.  

“70 평생 (국가의 언설에) 다 속고 살아왔는데, 이젠 결론을 내려야 할 때”라고 했다. 국가지상주의 시대에 일방적으로 국가를 해체한다면 외부세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겠느냐는 우려에 대해 그는 “다들 그런 고민들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시도를 하지 않으면 국가 극복은 영원히 불가능하다”고 했다. 세계연방정부가 대안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그쪽이 더 어렵다”며 국가가 존속하더라도 그냥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가면 된다고 했다.  

국민국가 거부로 인한 혼란과 무질서를 어찌할 거냐고 지레 겁먹는 것은 기우라면서, 국민국가를 대체하거나 극복할, 어떤 의미에서는 국민국가보다 훨씬 강력한 공동체의 출현이 없이 절대로 국민국가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말하자면 소농두레공동체만이 국가를 대체할 수 있으며, 소농두레공동체가 그만큼 강력해지지 않는 한 국가는 계속 존속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로 들렸다. 그는 당장 모두가 소농공동체에 동참하기 위해 귀농할 순 없는 일이라며, 비록 도시에서 살더라도 그런 정신으로 연대하면서 먹을거리 하나만이라도 우선 시장과 자본의 예속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한살림에 호의적인 사람들조차 대다수는 건강식품을 먹고 싶다는 소박한 생각을 갖고 있을 뿐이지만 그런 식의 참여도 꾸준히 오래 하다 보면 생각이 바뀔 것이라고 했다. 1980년 무렵부터 논의되기 시작한 한살림운동은 1985년 원주에서 첫출발을 했고 1986년 천규석이 두번째로 마산에서 시작했으며, 서울에 가게를 연 것은 1987년이었다. 지금은 전국 회원이 18만에 이른다. 고령이 된 그는 겨울엔 주로 대구 쪽에서 생활한다. 창녕엔 농업전문대를 나와 함께 농사짓는 아들 식구들이 살고 있다. 한승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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