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日記 - 황정은 에세이 에세이&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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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에는 그 사람의 생각과 고민이 담겨 있다. 혹시라도 누가 내 마음을 들여다볼까 봐 열쇠 달린 일기장을 구매해 쓰기도 했다. 지금은 어떤가.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일기를 쓴다. 물론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사람들보다는 불특정다수가 보는 거겠지만. 그렇게 우리는 누군가의 관심이 필요하게 된 건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시인 혹은 소설가의 에세이를 즐겨 읽는 편이다. 좋아하는 작가의 마음이 드러나는 글을 읽고 있으면 작가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공감의 일환일까. 어쨌든 에세이를 자주 읽게 되는 것 같다. 특히 에세이를 잘 쓰지 않기로 유명한 작가들의 책이 나올 때면 몹시 두근거린다. 이제야 마음을 터놓을 준비를 한 그들의 진솔한 마음들을 느끼고 싶어서다.


 


 

 

황정은의 이번 책도 처음으로 펴낸 에세이라 의미 있다. 많은 사람이 기다렸을 작가의 에세이는 우리의 마음을 두드린다. 기억과 고통의 시간이 혼재하는 글들.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두고 말하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한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절대 말하지 않은 것이 있다. 굳이 말하고 싶지 않은 것. 그냥 묻어버리고 싶은 기억들. 하지만 에세이를 쓰게 되면 말하지 않고서는 글을 쓸 수 없을 거 같다. 비슷한 경험과 기억이 있다면, 그걸 말하지 않고는 글을 쓸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때로 혹은 자주, 글은 치유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드러냄으로써 치유를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황정은의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어떤 이는 황정은의 글을 읽고 출판일을 하게 되었다고도 밝혔다. 다른 사람들이 황정은을 높게 평가하니 읽게 되었다가 반하게 된 케이스다. 작가의 책이 나올 때마다 구매하게 되는 것.


 

시집과 같은 아담한 사이즈의 책에서는 진지함이 가득했다. 부모와 자매들의 애틋함. 고통스러운 기억.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자행되는 것들 때문에 우리는 아프다.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어도 애써 기억을 감춘다.


 


 

 

소설을 쓰는 일은 여우에 홀려 여우굴에 들어가는 일과 얼마간 닮았다. 백지를 바라보다가 한 계절, 두 계절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봄비 내릴 때 책상 앞에 앉았는데 소설 한 편을 마무리하고 나오니 낙엽이 떨어지는 때,라는 패턴으로 시간이 흐르는 일을 직업으로 택해 살다보니 나이를 띄엄띄엄 생각하거나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32페이지)


 

소설을 쓰는 일은 디스크 등 각종 통증을 유발한다. 소설을 쓰기 위해 파주로 이사한 뒤의 일상을 적은 글에서 작가는 자신만의 운동법을 소개한다. 호수공원 쪽으로 산책하는 작가의 일상과 책 이야기를 한다. 민요상 책꽂이는 라디오에서 내용을 들어 얼른 그 부분을 읽고 싶었었다. 네 살의 조카가 세계문학전집의 출판사 이름을 따라 쓴 민요상이라는 글자에서 조카에 대한 애정이 묻어났다. 민요상 책꽂이라 이름 붙이고 조카에게 물려줄 것을 상상하는 그 마음에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목포행에서 작가는 목포 신항에 인양된 세월호를 보고 느낀 점들을 말한다. 고통과 치욕의 사고에서 멀어져 일상을 보내고 있는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는 듯하다. 내 일이 아니라고 그동안 잊고 있었다.


 

빨강머리 앤을 보고 자랐던 우리는 앤에 대한 관심에서 마릴라 아주머니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드라마에서 출발하여 학대당하는 아이에 대하여 말하는데 우리가 사회의 이면을 너무 모른척하지 않았나 반성하게 된다.

 


연재가 이어지는 동안 문장을 계속 쓸 수 있었고 덕분에 소설 한편을 무사히 썼다.

쓰고 싶지 않다거나 쓸 수 있다거나, 아무튼 쓰는 것을 생각하는 일은 쓰지 않는 틈에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도 새삼 알았다. (161페이지)


 

매일 일기를 쓰면서 문장을 쓰는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푼다고 했다. 아무렇게나 쓴 글이 그의 일기다. 소설처럼 완벽한 문장들의 집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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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를 만났습니다 - 하버드 의대 정신의학과 레지던트 성장기
애덤 스턴 지음, 박귀옥 옮김 / 홍익출판미디어그룹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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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아프면 병원에 간다. 마음이 아프면 정신과에 가야 한다. 사람들은 정신과에 가는 걸 두려워한다. 가족 중에 누군가 정신과에 다닌다고 해도 숨기기에 급급하다. 오점이 남는다고 생각한 것일까.

 


정신과 의사의 성장의 기록이다. 스스로 시골뜨기라고 칭하고, 말할 때마다 뉴욕 북부 주에서 왔다고 말한 애덤은 하버드 의대에 정신과 레지던트로 발탁되었다. 레지던트로서 4년 동안의 경험과 성장을 담았다.

 


정신의학과 레지던트인 애덤 스턴은 병원에서 다양한 환자들을 만났다. 섭식장애를 일으키는 거식증 환자, 심한 조증, 편집증 환자 등을 만나고 진단하면서 성장한다. 우울증과 불안증을 달고 사는 환자들은 입원과 퇴원을 반복한다. 그에 못지않게 정신과 의사들도 그들을 보며 힘겨운 싸움을 하게 된다.


 


 

 

환자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의사들은 지켜보는 쪽을 택한다고 한다. 아무래도 직접 관여하기보다는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고, 그에게 필요한 치료법을 말해주는 게 주된 일이다. 타인의 말을 듣고 그 말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힘들어 의사들도 별도의 치료사를 만나 치료를 받는 경우가 많은 거 같다. 애덤 스턴 또한 환자들을 본 후 불면증과 환자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쉬는 날에도 병원을 서성거린 적이 있을 정도였다.

 


송 교수는 그에게 마음속으로 안쪽에서의 삶과 바깥쪽의 삶 사이에 경계선을 만들어 보라고 했다.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라는 조언이었다. 양극성 우울증에 걸린 중년 여성을 진단할 때 어려워하는 그에게 환자의 스트레스 유발 요인과 환자에 대해서 파악하는 게 모든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도 배워갔다.

 


아마 영화의 부정적인 영향이었을까. 전기경련요법 치료의 효과에 대해서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는데 저자가 담당한 환자 중에 ECT 치료를 받겠다고 한 이가 있었다. 치료 효과가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거 같다. 정신질환은 유전되는 게 있는지 심한 조증을 앓았던 환자의 아들이 우울증으로 입원한 경우도 발생했다.

 


정신의학과는 여러 가지 이유로 대부분 환자와의 신체적인 접촉을 제한한다. 환자에게 손을 올리는 것이 상식적인 선에서 공감하는 태도로 해석될 수 있더라도 레지던트들은 그런 행위에 대해 경계하고 신중하도록 훈련받는다. (191페이지)

 


슬퍼하고 흐느끼는 환자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지켜봐야 하는 마음을 담은 부분이다. 환자의 감정에 이입되는 것을 막으려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울러 레지던트들은 환자와 대면할 때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더 높은 권위를 가진 사람에게 확인받는 과정이 필요하다.


 

방해꾼이 되기보다는 환자가 지속적으로 안정을 취하면서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협조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292페이지)

 


환자에게 중요한 존재에 대하여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 질문 방법도 중요하다. 정신병 뒤에 감춰진 수수께끼를 푸는 것보다 환자 내면의 중심에 공감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의학 드라마를 자주 챙겨본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환자들과 그들을 치료하는 의료진들의 노고에 감동한다. 정신의학은 마음의 병을 치료한다. 무조건 약물을 거부하는 것보다 약물로 치료 가능하다는 것을 배웠다. 어떤 사람들한테는 약물이 도움이 되겠지만, 약물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정신과 레지던트의 열정적인 기록. 그 성장의 중심에 사람의 마음을 치료하는 그의 헌신적인 마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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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덤
요 네스뵈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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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대부분 정의가 승리하기를 바란다수많은 범죄사건에서 정의가 승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여긴다정의를 위해 앞장서 싸우는 활동가들우리는 그들을 응원하지 않는가살인사건 소식이 들려올 때도 살인범을 단죄하기를 바란다그러나 인간은 약한 면이 없잖다이 소설의 경우처럼 범죄자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할 때면 범죄자인데도 결코 미워할 수만은 없다.

 

요 네스뵈하면 먼저 떠오르는 게 있다해리 홀레 시리즈다그의 다른 어느 작품도 해리 홀레를 능가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이제 그 생각을 바꾸게 될 것 같다.  킹덤 때문이다놀라웠고감탄했다.  킹덤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그 어떤 이야기와도 비교할 수 없다

 

 

 

형이 들려주는 형제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가족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사랑이 무엇인지그 사랑이 어떤 식으로 변질되는지도저히 악의를 가졌다고 볼 수 없는 한 남자의 진혼곡에 가까운 이야기다어쩌면 카인과 아벨의 다른 버전 같다질투에 눈이 멀어 동생을 살해한 카인은 스스로 동생을 지키는 자라고 했다로위 오프가르는 동생을 지키는 자였다하지만 자주 질투에 눈이 멀었다그가 탐내는 것모두 칼의 것이었다

 

오스의 황무지 농장에 동생 칼이 찾아왔다아내 섀넌과 함께 성공한 자의 모습으로 나타났다스파 산정호텔과 오두막을 건설하겠다는 큰 포부를 가지고서였다작은 마을에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투자하는 마을 사람 모두가 부자가 되는 길이라고 했다조용히 지내던 로위에게 작은 파문이 일었다어머니와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때가 떠오르고동시에 후켄으로 추락하는 꿈을 꾼다.

 

작가들은 서사를 계획하고 독자들에게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자 중요한 사실을 하나씩 나타낸다고 했다요 네스뵈 또한 마찬가지였다독자로 하여금 어떤 사건을 보여주고 그것이 누가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독자들은 작가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가 어느 시점에 진실을 깨닫는다우리가 의심했던 인물이 당사자가 아니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동생을 지키기 위해 저질렀던 살인이었다로위는 왜 그때까지 두고 보았느냐이다진실을 알면서도동생이 고통스러워한다는 걸 알면서도 나서지 못했다그저 울음소리를 들으며 그 또한 울 뿐이었다혹여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 건 아니었을까. 순간 섬찟해진다. 사건을 은폐하고의심스러워하는 경찰을 따돌리는데 경찰은 왜 제대로 보지 못하는지 궁금했다누가 봐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데그 증거를 왜 찾지 못하는가크리포스에서 온 경찰도 마찬가지였다눈앞에 있는 것을 보지 못한다안타깝지만 작가는 살인자인 로위의 감정을 독자에게 강하게 이입한다.

 

수치심을 견디지 못한수치심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고 누군가에게 폭력을 가하거나 그것에 무너진이 세상에 단 둘뿐이라던 형제는 어느 순간에 사이가 벌어진다자기 것이 없어졌다고 느끼는 순간타인의 것을 탐낸다타인의 것을 탐낸 자는 과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게 또한 현실이라는 점이다순식간에 무너지고 말 모래성이다왕국이라 여겼던 곳은 그들만의 왕국에 그친다어떻게 할 수 없다그들은 형제이므로그는 동생을 지키는 자이므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소중한 것은 지키라고 있는데 그는 지키지 못했다그저 후켄에 시체가 쌓일 뿐이다그게 눈이든, 차든, 사람이든의심은 하나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덫에 갇혔다그 왕국에서 영원히 나오지 못할 것이다.



 

 

 

가족이라는 건 얼마나 허울 좋은 이름인가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수많은 일들가족이기에 말할 수 없고가족이기에 함부로 할 수 있다 여기는 것이 문제다아무리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다고 해도 범죄는 범죄다.

 

살인자의 내면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었다더불어 가족과 사랑에 대한 감정이 어디까지인지어떻게 변질되는지그로 인해 상처받은 인간의 내면과 복수를 그렸다사이코패스인데 왜 그를 응원하게 하는지단죄를 받아야 마땅하다 여기면서도 마지막 장에 다다른 순간 숨을 멈출 수밖에 없는지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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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1-10-28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책 두꺼워 보입니다!! 해리 홀레 시리즈를 능가한답시유? 킹덤 찜요!!!

오거서 2021-10-28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같은 책 두 개의 탑… 책탑의 새로운 시도 같아요. ^^
 
도서관 런웨이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6
윤고은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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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보험이 실제로 있다면 사람들은 가입할까? 잘 만하면 페이백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으로 보험금을 꼬박꼬박 내고 유지할 여력이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가입자가 없을 거 같다. 보험 약관에 기재되어 있다고 해서 그것을 증명하기란 무척 어렵기 때문이다. 결혼 준비에 관련된 이야기라면 더더욱 그러지 않을까.


 

윤고은은 결혼 안심 보험이라는 주제로 코로나의 시대를 건너는 이야기를 했다. 결혼이라는 건 지금 이 시대에 꼭 해야만 하는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소설 속 주요인물로는 네 사람이 나오는데, 그들을 이루는 관계가 모두 보험으로 연결되어있어 사랑과 결혼, 보험에 관한 생각을 하게 한다. 더군다나 소설에서 큰 역할을 하는 건 보험 약관집이다. ‘지속 가능한 결혼생활을 위한 지침서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으며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어 사람들이 즐겨 읽는 에세이로 여겨질 법하다.


 


 

 

안나는 도서관 런웨이라는 인스타 계정을 만들어 도서관의 서가를 걷는 사진을 올리는 여행사 직원이었다. 유리는 안나와 대학 때 룸메이트로 지냈던 친구로 코로나의 시대 더 바빠진 보험사 직원이다. AS손해보험사의 언더라이터였던 조는 AI가 위험인물로 분류한 정우를 결혼안심보험에 가입시킨 전력이 있다. 정우는 캐나다의 헬리팩스 도서관에서 안나를 보고 사진을 찍어주며 알게 되어 결혼까지 한 인물이다.

 


AS결혼안심보험 약관에 나타난 K의 가족과 새언니의 이야기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드는데 꽤 특이한 방법으로 설명했다. 일단 결혼안심보험이라는 생소한 보험 제도에 궁금증을 갖게 했고, 실제로 존재하나 싶어 검색도 해보았다. 약관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설명하는데 실제로 보험사에 근무하나 싶을 정도로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보험사의 약관집을 꽤 연구했을 거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다르게 보면 이 작품은 관계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타인이 만나 연인이 되기도 하고 친구가 되기도 한다. 그렇잖으면 가까이 다가가려고 해도 다가가지 못하고 주변에 머무는 관계가 되기도 한다. 때로는 상대방의 감정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게 된다. 그 마음을 한 마디로 꼬집어 말할 수는 없다. 친하다고 여겼으나 사소한 오해 때문에 관계가 나빠지는 것이 아주 많은 것처럼. 나중에서야 오해를 푸는데 그러고 보면 누구와의 관계든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책을 다 읽고 다시 읽어야 할 시점이 되는데, 사건 혹은 인물들의 연결 관계를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기 때문이다. 놓쳤던 에피소드, 이를테면 줌에서 나누었던 안나와 나눈 대화를 오랫동안 복기했던 유리의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스치고 나면 잊어버리는 일들의 복기라고 해야 할까. 추리소설을 자주 읽는 나는 안나의 남편, 즉 정우가 왜 죽었는지 이유가 궁금했다. 하지만 정우의 죽음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왜 결혼안심보험에 가입하려고 했는가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다른 한편으로 슬픔을 극복하며 자신을 추스르는 소설로도 읽혔다. 안나는 애도의 시간이 필요했던 거다. 정우와 함께 들었던 음악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들렸고, 함께했던 모든 시간이 애틋했으며 함께 있는 듯 여겼다. 그 모든 시간과 장소에 정우가 옆에 있는 것처럼 여기는 것 또한 자신을 위로하는 방법인지도 모른다. 다시 도서관 서가 사이를 걷고, 창을 들어오는 햇빛을 정우의 시선처럼 여기고 싶었는지도.


 


 

 

걷는 동안 비스듬히 들어오던 햇빛의 각도, 낮은 소음, 누군가의 시선, 작가들의 데뷔작만 모아놓은 코너, 자신을 향해 셔터를 누르던 남자 ······. 그중 어떤 것이 안나를 사로잡은 것인지는 안나 자신도 알 수 없었다. (10페이지)

 


소설의 첫 부분이 아주 좋았다. 서가가 보이는 도서관의 풍경을 좋아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서가를 걷는 안나의 모습은 묘하게 매력적이다. 따라 하고 싶을 만큼. 도서관 런웨이라는 표현도 좋았다. 안나가 런웨이를 했던 건 책이 좋아서가 아니라 자신을 향해 셔터를 누르던 남자의 시선이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다정하고도 사랑이 넘치는 그 시선을 즐겼던 거 같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아주 가볍게 여겨지다가도 이럴 때는 묵직하다. 잃은 사랑이 아파 애도의 시간을 오래 갖는다. 아마 사랑을 했던 기간보다 애도의 시간이 더 길지도. 그럼에도 우리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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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초 마음 - 야생의 식물에 눈길을 보내는 산책자의 일기
고진하 지음, 고은비 그림 / 디플롯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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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도이촌 생활을 하다 보니 저절로 야생초나 농작물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된다. 텃밭에 농막을 가져다 두고 그 주변을 잔디와 꽃나무, 가림막으로는 편백 등을 심었다. 아침에도 일찍 눈이 떠져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산책길에 나서는데, 보이는 풍경 모두가 관심 대상이다. 이것저것 살펴보고 눈에 들어오는 것들을 담는다.


 

쇠비름이 몸에 좋다고 하여 설탕을 부어 발효시킨 지 몇 년이 지났다. 비릿한 냄새가 싫어 맛을 보지는 않고 어딘가에 저장해 두었다. 야생에서 자라는 풀들을 직접 요리하고 그 효능을 말하며 잡초와 더불어 생활하는 고진하 시인의 이 책을 보는데 첫 번째 야생초가 쇠비름이었다. 저자가 꺾어다 주는 야생초로 그의 아내는 샐러드나 무침, 된장국을 끓여 직접 자연 친화적인 식단을 꾸민다. 쇠비름도 예외는 아니어서 날것으로 뜯어 무침을 하기도 하고, 잎과 줄기를 삶아서 무침을, 쇠비름전이나 쇠비름장아찌까지 다양한 요리를 해 먹는다.


 


 

 

들과 집 뒤란 등 잡초라 여기고 함부로 베어버리지 않는다. 야생초의 쓰임새를 알아보고 다양한 요리법을 개발하여 먹고 마신다. 건강해지는 건 다른 데 있지 않다. 몸에 좋은 것을 먹고 마시면 된다. 굳이 육식을 하지 않아도 자연식으로도 해결될 일이다. 필요한 야생초는 지천에 깔려있다. 귀찮아서 혹은 그 쓰임새를 알지 못하여 사용하지 않을 뿐이다.

 


몸에 좋은 야생초를 다양한 요리 방법으로 응용하여 먹는 건 큰 의미가 있는 건 같다. 필요로 하는 사람들 곁에서 자라는 야생초들의 효능과 그 쓰임새에 대하여 배우게 된 계기가 되었다. 눈앞에 있어도 관심을 두지 않으면 발견하지 못한다.

 



 

 


시인은 야생초를 뜯으러 갈 때 욕심부리지 않는다. 먹을 만큼의 양만 뜯어 먹고 다른 사람과 동물을 위해 남겨둔다. 우리가 먹고 심는 농작물이 모두 토종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다음 해 씨가 생기지 않는 씨앗이라고 한다. 시인의 쓴 글을 읽어보니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단발성 씨앗을 판매하는 이유 또한 그렇다. 시인은 토종 씨앗을 심고 받아 필요한 사람에게 소량을 나눈다. 인위적인 것보다는 우리 토종 씨앗이 우리 몸에 맞고 더 좋다는 건 두말 할 필요도 없다.


 



 

언젠가 아는 언니들과 함께 소풍을 갔다. 다양한 장아찌를 만들어 싸 왔는데 그 중의 하나가 고들빼기 장아찌였다. 시인의 집 뒤란에 있는 왕고들빼기는 뛰어난 약성을 가지고 있다. 편도선염, 자궁염, 인후염, 유선염 등 각종 염증에 효험이 있다. 소화를 도우니 장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권할 만한 약초라고 한다. 사포닌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항암 효과에도 좋다. 시인은 왕고들빼기주스며 겉절이나 전으로도 해먹는다. 이쯤에서 우리는 그의 아내의 요리법이 탐난다. 시도해볼 만하다. 직접 기른 식물로 자연 친화적인 음식을 먹는다는 건 농약과 제초제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니 지구 환경에도 좋을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건강해진다.


 

오늘날 현대인의 미각은 인공 향미료나 조미료에 길들어 있다. 자연의 순수한 맛을 즐길 줄 모른다. 하지만 야생초 요리를 해 먹으며 우리 가족은 이제 자연의 맛을 온전히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자연의 맛과 향은 우리의 뱃속을 편하게 할 뿐 아니라 머리도 맑게 해준다. 야생의 먹거리가 우리 몸속에 들어오면 몸이 가벼워지고 하루하루 사는 게 기쁘다. 그러니까 우리의 몸과 영혼을 살아 있게 하는 진정한 섭생은 건강한 먹거리의 선택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 (142페이지)


 


 

 

환삼덩굴이 있다. 텃밭의 코스모스 군락지가 있는 곳을 타고 넘어와 코스모스를 다 쓰러뜨리는 식물이었다. 뜯으려고 하면 마치 끈끈이 풀처럼 피부에 달라붙었다. 장갑을 끼고 전정가위로 조금씩 잘라내는 미운 식물이었다. 아마 농사를 짓는 분들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환삼덩굴의 잎과 줄기 그리고 뿌리를 약재로 쓸 수 있다. 특히 고혈압에 특효약이라고 하니 기억해둘 만하다. 고혈압이 있는 시인이 환삼덩굴 잎을 뜯어 차로 만들어 마셨더니 혈압이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미운 환삼덩굴을 차로 만들어 마시는 건 어떨까. 잎과 줄기를 채취하여 그늘에서 말려 가루를 내어 마셔도 된다고 하니 시도해 봐야겠다.


 


 

 

유익한 자료가 가득하다. 야생초의 세밀화가 수록되어 책을 읽는 즐거움을 크게 한다. 세밀화를 그린 시인의 딸이자 조각가 고은비는 사진을 보고 그린 게 아니라 직접 장화를 신고 야생초를 찾아다니며 그렸다고 한다. 책에 실린 세밀화가 더욱 마음에 들어온다. 그 마음이 느껴져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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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즈음 2021-10-25 12: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무심코 놓여진듯한 책이 자연과 너무 잘 어울려 보여요.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Breeze 2021-10-26 09:35   좋아요 1 | URL
사무실 앞 화단에 있는 씀바귀 옆에 두고 찍어봤어요.
읽어두면 좋을 책이었습니다. ^^

그레이스 2021-11-05 17: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진도 너무 예뻐요
당선작 축하드려요~

Breeze 2021-11-05 17:10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

서니데이 2021-11-05 18: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새파랑 2021-11-05 18: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진도 책도 너무 멋져요~!! 야생초 마음처럼 축하드립니다 ^^

초딩 2021-11-07 11: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 행복한 날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