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日記 - 황정은 에세이 에세이&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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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에는 그 사람의 생각과 고민이 담겨 있다. 혹시라도 누가 내 마음을 들여다볼까 봐 열쇠 달린 일기장을 구매해 쓰기도 했다. 지금은 어떤가.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일기를 쓴다. 물론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사람들보다는 불특정다수가 보는 거겠지만. 그렇게 우리는 누군가의 관심이 필요하게 된 건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시인 혹은 소설가의 에세이를 즐겨 읽는 편이다. 좋아하는 작가의 마음이 드러나는 글을 읽고 있으면 작가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공감의 일환일까. 어쨌든 에세이를 자주 읽게 되는 것 같다. 특히 에세이를 잘 쓰지 않기로 유명한 작가들의 책이 나올 때면 몹시 두근거린다. 이제야 마음을 터놓을 준비를 한 그들의 진솔한 마음들을 느끼고 싶어서다.


 


 

 

황정은의 이번 책도 처음으로 펴낸 에세이라 의미 있다. 많은 사람이 기다렸을 작가의 에세이는 우리의 마음을 두드린다. 기억과 고통의 시간이 혼재하는 글들.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두고 말하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한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절대 말하지 않은 것이 있다. 굳이 말하고 싶지 않은 것. 그냥 묻어버리고 싶은 기억들. 하지만 에세이를 쓰게 되면 말하지 않고서는 글을 쓸 수 없을 거 같다. 비슷한 경험과 기억이 있다면, 그걸 말하지 않고는 글을 쓸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때로 혹은 자주, 글은 치유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드러냄으로써 치유를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황정은의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어떤 이는 황정은의 글을 읽고 출판일을 하게 되었다고도 밝혔다. 다른 사람들이 황정은을 높게 평가하니 읽게 되었다가 반하게 된 케이스다. 작가의 책이 나올 때마다 구매하게 되는 것.


 

시집과 같은 아담한 사이즈의 책에서는 진지함이 가득했다. 부모와 자매들의 애틋함. 고통스러운 기억.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자행되는 것들 때문에 우리는 아프다.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어도 애써 기억을 감춘다.


 


 

 

소설을 쓰는 일은 여우에 홀려 여우굴에 들어가는 일과 얼마간 닮았다. 백지를 바라보다가 한 계절, 두 계절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봄비 내릴 때 책상 앞에 앉았는데 소설 한 편을 마무리하고 나오니 낙엽이 떨어지는 때,라는 패턴으로 시간이 흐르는 일을 직업으로 택해 살다보니 나이를 띄엄띄엄 생각하거나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32페이지)


 

소설을 쓰는 일은 디스크 등 각종 통증을 유발한다. 소설을 쓰기 위해 파주로 이사한 뒤의 일상을 적은 글에서 작가는 자신만의 운동법을 소개한다. 호수공원 쪽으로 산책하는 작가의 일상과 책 이야기를 한다. 민요상 책꽂이는 라디오에서 내용을 들어 얼른 그 부분을 읽고 싶었었다. 네 살의 조카가 세계문학전집의 출판사 이름을 따라 쓴 민요상이라는 글자에서 조카에 대한 애정이 묻어났다. 민요상 책꽂이라 이름 붙이고 조카에게 물려줄 것을 상상하는 그 마음에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목포행에서 작가는 목포 신항에 인양된 세월호를 보고 느낀 점들을 말한다. 고통과 치욕의 사고에서 멀어져 일상을 보내고 있는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는 듯하다. 내 일이 아니라고 그동안 잊고 있었다.


 

빨강머리 앤을 보고 자랐던 우리는 앤에 대한 관심에서 마릴라 아주머니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드라마에서 출발하여 학대당하는 아이에 대하여 말하는데 우리가 사회의 이면을 너무 모른척하지 않았나 반성하게 된다.

 


연재가 이어지는 동안 문장을 계속 쓸 수 있었고 덕분에 소설 한편을 무사히 썼다.

쓰고 싶지 않다거나 쓸 수 있다거나, 아무튼 쓰는 것을 생각하는 일은 쓰지 않는 틈에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도 새삼 알았다. (161페이지)


 

매일 일기를 쓰면서 문장을 쓰는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푼다고 했다. 아무렇게나 쓴 글이 그의 일기다. 소설처럼 완벽한 문장들의 집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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