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런웨이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6
윤고은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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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보험이 실제로 있다면 사람들은 가입할까? 잘 만하면 페이백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으로 보험금을 꼬박꼬박 내고 유지할 여력이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가입자가 없을 거 같다. 보험 약관에 기재되어 있다고 해서 그것을 증명하기란 무척 어렵기 때문이다. 결혼 준비에 관련된 이야기라면 더더욱 그러지 않을까.


 

윤고은은 결혼 안심 보험이라는 주제로 코로나의 시대를 건너는 이야기를 했다. 결혼이라는 건 지금 이 시대에 꼭 해야만 하는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소설 속 주요인물로는 네 사람이 나오는데, 그들을 이루는 관계가 모두 보험으로 연결되어있어 사랑과 결혼, 보험에 관한 생각을 하게 한다. 더군다나 소설에서 큰 역할을 하는 건 보험 약관집이다. ‘지속 가능한 결혼생활을 위한 지침서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으며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어 사람들이 즐겨 읽는 에세이로 여겨질 법하다.


 


 

 

안나는 도서관 런웨이라는 인스타 계정을 만들어 도서관의 서가를 걷는 사진을 올리는 여행사 직원이었다. 유리는 안나와 대학 때 룸메이트로 지냈던 친구로 코로나의 시대 더 바빠진 보험사 직원이다. AS손해보험사의 언더라이터였던 조는 AI가 위험인물로 분류한 정우를 결혼안심보험에 가입시킨 전력이 있다. 정우는 캐나다의 헬리팩스 도서관에서 안나를 보고 사진을 찍어주며 알게 되어 결혼까지 한 인물이다.

 


AS결혼안심보험 약관에 나타난 K의 가족과 새언니의 이야기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드는데 꽤 특이한 방법으로 설명했다. 일단 결혼안심보험이라는 생소한 보험 제도에 궁금증을 갖게 했고, 실제로 존재하나 싶어 검색도 해보았다. 약관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설명하는데 실제로 보험사에 근무하나 싶을 정도로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보험사의 약관집을 꽤 연구했을 거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다르게 보면 이 작품은 관계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타인이 만나 연인이 되기도 하고 친구가 되기도 한다. 그렇잖으면 가까이 다가가려고 해도 다가가지 못하고 주변에 머무는 관계가 되기도 한다. 때로는 상대방의 감정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게 된다. 그 마음을 한 마디로 꼬집어 말할 수는 없다. 친하다고 여겼으나 사소한 오해 때문에 관계가 나빠지는 것이 아주 많은 것처럼. 나중에서야 오해를 푸는데 그러고 보면 누구와의 관계든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책을 다 읽고 다시 읽어야 할 시점이 되는데, 사건 혹은 인물들의 연결 관계를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기 때문이다. 놓쳤던 에피소드, 이를테면 줌에서 나누었던 안나와 나눈 대화를 오랫동안 복기했던 유리의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스치고 나면 잊어버리는 일들의 복기라고 해야 할까. 추리소설을 자주 읽는 나는 안나의 남편, 즉 정우가 왜 죽었는지 이유가 궁금했다. 하지만 정우의 죽음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왜 결혼안심보험에 가입하려고 했는가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다른 한편으로 슬픔을 극복하며 자신을 추스르는 소설로도 읽혔다. 안나는 애도의 시간이 필요했던 거다. 정우와 함께 들었던 음악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들렸고, 함께했던 모든 시간이 애틋했으며 함께 있는 듯 여겼다. 그 모든 시간과 장소에 정우가 옆에 있는 것처럼 여기는 것 또한 자신을 위로하는 방법인지도 모른다. 다시 도서관 서가 사이를 걷고, 창을 들어오는 햇빛을 정우의 시선처럼 여기고 싶었는지도.


 


 

 

걷는 동안 비스듬히 들어오던 햇빛의 각도, 낮은 소음, 누군가의 시선, 작가들의 데뷔작만 모아놓은 코너, 자신을 향해 셔터를 누르던 남자 ······. 그중 어떤 것이 안나를 사로잡은 것인지는 안나 자신도 알 수 없었다. (10페이지)

 


소설의 첫 부분이 아주 좋았다. 서가가 보이는 도서관의 풍경을 좋아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서가를 걷는 안나의 모습은 묘하게 매력적이다. 따라 하고 싶을 만큼. 도서관 런웨이라는 표현도 좋았다. 안나가 런웨이를 했던 건 책이 좋아서가 아니라 자신을 향해 셔터를 누르던 남자의 시선이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다정하고도 사랑이 넘치는 그 시선을 즐겼던 거 같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아주 가볍게 여겨지다가도 이럴 때는 묵직하다. 잃은 사랑이 아파 애도의 시간을 오래 갖는다. 아마 사랑을 했던 기간보다 애도의 시간이 더 길지도. 그럼에도 우리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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