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트 오브 더 유니언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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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의 표지를 보라. 의미심장하다. 한 여자가 충격에 빠진듯한 표정을 짓고 의자에 앉아 있고, 그 옆자의 등뒤에서 고개를 숙인 한 남자가 있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과 마주보는 사람들은 무언가를 함께 하는 모습이지만 서로가 다른 방향을 보고 있거나 등을 돌리고 있을때 우리는 갈등을 느끼는 것을 알수 있다. 표지에서도 마찬가지다. 심한 갈등을 느끼는 소설이라 미루어짐작할 수 있다.

 

처음 더글라스 케네디의 『빅 픽처』를 읽고 그의 소설에 반하고 그의 신작이 나올때 무척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렸던듯 하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책만 해도 꽤 되고, 나도 그중의 몇권은 읽었다. 치밀한 구성으로 그의 소설은 늘 긴장감을 유지했고, 소설 읽는 재미를 주었다. 이번 작품은 히피 문화와 베트남반전운동이 활발했던 1966년에서 1970년의 이야기에서부터 부모 때문에 힘들어하는 한 젊은 여자와 30년의 세월이 흘러 이제는 자식 걱정을 해야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가 오롯이 담겨있다.

 

대학생인 한나. 아버지는 대학교 교수로 베트남 반전시위를 해 유명한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자유로운 예술가였다. 유명한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힘겨워하고 있을때 댄을 만나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게 되었고 아이 엄마가 되었다. 자기중심적인 엄마에게서 탈출하고싶은 생각이 강했었고, 고지식한 면이 있지만 댄이 좋았다. 의사이지만 여러 경험을 해야하는 댄과 함께 시골로 향했고, 그곳에서 한나는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많은 사람이 살지 않은 시골 사람들은 배타적이었고, 모든 사람들이 서로 다 알고 지내고 서로의 속사정을 속속들이 알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30년이 흘렀다. 한나는 이제 고등학교 교사가 되었고, 남편은 정형외과의로 유명한 의사가 되었다. 아들은 변호사이며 딸은 펀드매니저로 모두가 성공한 것 같다. 화목하고 안정적인 중산층 가족으로 비춰지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아들은 종교에 빠져 배타적이고, 딸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헤어진뒤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러는 와중에 딸 리지는 유부남과의 실연에 실종이 되고, 한나는 오래전 30년전에 있었던 단 한 번의 외도가 그 남자 저슨의 회고록에 쓰여져 책으로 출판되어 가정이 와해될 위기에 처해졌다.

 

 

 

우리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이 그저 지나가는 과정일 뿐이라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한다. 우리가 걸어온 발자취와 애써 이루어놓은 성취들이 죽음과 함께 모두 사라진다는 걸 깨닫는 순간마다 우리는 몸서리치며 자기 자신과 타인에게 상처를 주게 되는 건 아닐까? (263페이지)

 

 

저슨의 회고록은 사실이 아닌 허구를 담고 있었다. 딸은 실종되어 생사를 알수 없는 마당에 자신의 사건까지 터져 한나는 자신의 집을 들어가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웃들의 차가운 냉대와 매스컴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남편 댄 또한 떠나버렸다. 사방에 벽이 생겨버린 한나는 친구 마지의 도움으로 이 상황을 헤쳐나가야 했다. 진실 공방과 가족 또한 자신의 곁을 떠나버린 한나의 마음이 무척 안타까웠다. 한나의 일들이 우리의 일들처럼 느껴졌던 까닭이다.

 

자식을 위해 온 마음을 다해 키워왔지만, 모두들 자신의 삶을 살기에 바쁘다. 내 자식들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나 또한 그렇게 살고 있다. 그래서 더 안타까웠다. 자식들을 위해, 가족을 위해 자신이 진정 하고 싶었던 것을 포기하고 최선의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마치 모래성처럼 무너질 위기에 처해있으니 더욱 안타까웠다. 

  

등장인물의 심리를 어느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드러낸 더글라스 케네디의 능력에 감탄했다. 남자 작가임에도 여성의 심리나 상황을 아주 잘 그려냈던 것이다. 책을 읽고나서 내가 살아온 삶을 생각해 보았다. 나는 잘 살고 있는가. 현재의 나는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이런 일에 나에게 닥쳤을때 내 주변의 사람들은 나에게 어떻게 대할까,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도 저 너머에 또 다른 삶이 있지는 않은지 무수히 넘겨다본 건 사실이야. 그럴때마다 나는 오랜 결혼생활을 한 부부의 장점들을 생각하며 내 선택이 그리 잘못된 건 아니라고 자부했어. 우리의 결혼생활에 뜨거운 열정이나 황홀한 만족은 없었을지 몰라도 안정적이고 일관성이 있었잖어. 우리가 함께한 역사는 결코 가볍지 않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어. (459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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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입은 남자
이상훈 지음 / 박하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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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실하면 조선시대 최고의 과학자, 측우기와 자격루등을 만든 사람, 세종이 특히 아꼈던 사람이라고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원나라 귀화인이었으며 어머니가 관노 신분이어서 노비 출신이었으나 재주가 남달라 세종 대에 정3품 벼슬인 대호군이라는 관직까지 내려주었다. 이렇게만 알고 있던 장영실에 대해 이번 소설을 읽으며 새롭게 알게 되었다. 역사로 기록된 것은 축소되어 기술된 것도 많기 때문에 후세대가 자세히 알수는 없다. 이러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으로 자료 조사를 하고 새롭게 조명된 인물도 많은 것처럼, 장영실에 대한 것도 새롭게 조명되지 않을까 싶다. 장영실의 생몰년도는 그가 노비 출신이기에 정확하지 않다. 그가 사라진 정황이 정확하지 않았고, 세종 대에 승승장구하던 장영실이 역사의 무대에서 갑자기 사라진 것에 대해 의문을 품고 이 소설은 시작되었다. 십 년간의 자료 조사와 충분한 고증으로 이 소설이 탄생했다.

 

 

처음 이 소설의 가제본을 출력하였더니 굉장히 두꺼워서 책도 아니고 가제본인 출력본을 제대로 읽을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소설을 읽어갈수록 내용이 흥미로워 금방 읽게 되었다. 과연 믿을 수 있는 일일까 싶다. 조선시대의 과학자 장영실이 세계적인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만났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비행기 설계도와 장영실이 만든 비차가 닮았다 라는 것도 믿을 수 있을까? 소설 속의 작가의 상상력이 아닐까? 그럼 역사는 어떻게 되는가. 이런 의문을 가득 안고 소설을 읽었다.

 

공중파 방송국의 피디인 주인공 진석은 루벤스의「한복 입은 남자」의 그림 속 모델이 한복을 입은 것을 착안해 다큐먼터리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었다. 한복을 입은 모델이 일본의 노예시장을 거쳐 로마로 건너 간 안토니오 꼬레아일 가능성이 제기 되었지만, 루벤스의 그림에 있는 한복은 남자 어른이 입은 철릭이라는 것으로 조선시대 초기 복식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안토니오 꼬레아가 로마로 건너간 것은 소년이었음을 감안해 그는 이 그림속 모델이 누구인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던중 '조선의 복식'이라는 전시관에 와서 장영실이 설계한 비차도를 바라보며 의문을 갖는다.

 

 

 

비차를 바라보고 있을 때, 체격은 동양인처럼 작으나 외국인으로 보이는 여자가 말을 건넨다. 다빈치의 비행설계도와 비차가 똑같다는 이야기였다. 진석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다른 말을 듣고 싶지만, 더이상의 말을 건네진 않았다. 나중에야 그 여자는 자신의 이름이 엘레나 꼬레아라는 이름이고, 자신의 집안에서 오래전부터 보관해오던 누렇게 바랜 비망록을 보여주며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고, 그 비망록을 방송국 피디인 진석이 보관해주었으면 했고, 알파벳과 한자, 그리고 훈민정음의 고대어가 있는 비망록의 내용을 풀어주었으면 했다.

 

 

추리소설의 형식을 지녔다. 진석은 비망록을 풀기 위해 강배를 찾는다. 강배는 국어학 박사 학위까지 받았지만, 헌책방을 운영하는 친구였다. 강배는 비망록을 보며 진석에게 조금씩 풀이해 준다. 강배가 풀어준 비망록의 내용을 따라 조선시대 태종 대의 관노로 있던 장영실에게로 내용이 향한다. 관가에서 허드렛 일을 하면서 가뭄에 시달리는 농민들을 위해 무자위를 만들던 시절로 말이다. 무자위로 저수지의 물을 품어 농사를 지을 수 있었던 그의 능력을 높이 산 신임 사또로 인해 장영실은 임금이 사는 곳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고, 곧 세종의 눈에 띄었다.

 

 

 

작가는 소설속 주인공 진석을 내세워, 엘레나의 비망록의 주인공이 장영실이고, 장영실이 다빈치를 만났을 연대등을 비교해 보고, 사상 초유의 해외대원정을 했던 중국 명나라의 정화와 동시대의 사람이었음을 추측해 보았다. 장영실이 명나라로 기술을 배우러 몇번을 다녀온 적이 있었고, 정화에게는 조선 출신의 환관이 있었기에 정화와 장영실이 서로 알고 지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렇게 추측했더니 장영실이 정화와 함께 배를 타고 로마에까지 이르렀을 가능성, 로마에서 어린 다빈치를 만나 과학자로의 재능을 물려주지 않았을까, 다빈치의 스승이었을 가능성을 말했다.

 

 

역사적에 나타난 것과 작가의 충분한 역사적 고증과 자료조사로 픽션 소설이 탄생되었다. 하지만 책을 읽는 우리는 소설 속 내용이 사실임을 믿고 싶다. 소설 속 내용이 사실이라면 세계는 역사를 새로써야 한다는 것 때문에 이 사실을 믿으려하지 않을 것이지만, 그래도 사실이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2년전에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보며, 역사속에서 인조반정으로 페위되었던 광해에 대해 새로운 조명을 했듯, 소설 『한복 입은 남자』로 인해 위대한 천재 과학자 장영실이 새롭게 조명되리라 생각된다. 위대한 천재 과학자였으며, 우리 과학의 우수성이 세계로 뻗어 나갔음을. 역사 속 인물을 새롭게 알게 되었고, 작가의 고증과 풍부한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매우 재미있는 소설이었으며 가슴이 두근거리는 소설이었다. 영화로도 제작된다는데, 무척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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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일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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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는다. 소설을 읽는 일에 특별한 방법이 필요한 건 아니다. 그저 새로운 소설이나, 오랜시간동안 베스트셀러로 이어져온 고전이 된 소설을 읽는다. 고전문학은 고전문학대로, 현대문학은 현대문학대로 늘 즐거움을 주는게 소설이다. 여러 종류의 책을 읽으려고 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건 소설이다. 이렇게 살아라, 이렇게 살면 좋다는 식의 자기계발서보다는 다는 한순간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는 소설이 좋다. 소설속에서 새로운 인생을 경험하고, 소설속에서 새로운 만남을 가지기도 한다. 내가 꿈꾸었던, 때로는 꿈꾸지 못했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게 소설이다. 그래서 난 소설을 읽는다. 소설을 읽기에 소설가들이 좋다. 소설가들이 좋으면, 그가 쓴 소설들을 살펴보고 소설을 찾아 읽고 소설가가 쓴 산문집 등을 찾아 읽는다.

 

 

소설가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도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의 새로운 산문집이기에 읽게 되었다. 김연수의 산문집을 읽게 되면서 내가 느낀 것은 그는 늘 문장에 신경 쓴다는 점이다. 그래서일까. 처음 그의 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읽는데 어찌나 어렵던지, 김연수 작가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는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었다. 남들이 쓰지 않은 문장을 쓰기 때문에 보통의 책을 읽는 독자들은 그의 문장이 어렵다고 느꼈을 수도 있다. 처음 김연수 작가의 책을 읽을 때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읽던 것이 점차 그의 책을 읽어가면서 그가 스토리 보다는 문장을 말하는 사람이었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나는 소설은 스토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동안 많은 작가들의 소설을 읽으며, 소설은 스토리를 가진 문장이라는 걸, 소설은 곧 문장이라는 걸 조금씩 터득하게 되었다. 그래서 많은 독자들이 김연수 작가의 소설이 어렵다고 느꼈었고, 그의 소설보다는 산문집이 더 재미있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가장 최근에 그의 산문집 『지지않는다는 말』을 읽고 이번 산문집 『소설가의 일』을 읽는데, 그의 글에서는 소설가 20년의 연륜이 묻어나와서 일까, 글에서 소설가의 여유가 느껴졌다. 이것은 나만의 느낌일 수도 있다. 내가 느끼는 소설가의 여유가 그의 문장에 적응되었음을, 그의 문장이 편해졌음을 느꼈을수도 있으니까.

 

 

내가 생각한 젊은 소설가는 사랑에 빠진 사람이다. 그는 스물네 시간 백치에 가까울 정도로 한 가지 생각만 할 것이다. 문장들, 더 많은 문장들을. (30페이지) 소설가는 매일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했다. 소설가는 누구보다도 본인 소설을 많이 읽는 사람이라고도 했다. 작가들이 소설을 고칠 때 스토리를 고치는 게 아니라 문장을 고치는 것이고, 어려 번 고칠수록 문장이 좋아진다고도 했다. 짧은 리뷰를 써도 여러 번 고치게 되면 문장이 이상해져버리던데, 리뷰어와 소설가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도 같다.

 

자주 하는 말이 작가들은 본질적으로 일반인들과 다른 시선을 가진 사람이라고들 표현한다. 김연수 작가도 산문에서 이런 말을 했다. '소설가는 세상만사를 비틀고 뒤집어서 보는 사람이니까.' 라고. 그냥 스쳐가는 사물 하나에도 소설가는 다른 마음으로 보듯, 소설가는 아주 작은 것 하나에도 궁금증을 가진 사람이다. 나 같은 일반인은 그저 그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데 말이다. 다른 시선을 가진 소설가들이 바라보는 세상. 그래서 우리는 소설을 읽는다.

 

 

마찬가지로 소설가는 문장만을 쓴다. 글을 쓰기 위해 앉을 때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게 좋다. 거기에 내가 쓸 내용 같은 건 없다고. 오직 문장뿐이라고. 그것도 한 번에 하나의 문장뿐이라고. 내용이야 어떻든 쾌감을 주는 새로운 문장을 쓸 수 있을 뿐이라고. 끝내기 전에 다시 한번 더. 소설가는 내용을 고치는 사람이 아니다. 문장을 고치는 사람이다. 잘 고치는 사람. 그러니까 본인이 만족할 정도로 충분하게 많이 ......, 남들보다 더 많이 고치는 사람. (193페이지)

 

 

매일 글을 쓰는 사람과 매일 책을 읽는 사람과의 차이. 한 사람은 작가이고, 한 사람은 독자이다. 매일 책을 읽는 사람은 매일 문장을 고치는 사람의 책들을 간절히 기다린다. 나 같은 경우 소설이 훨씬 좋지만, 소설 외에 이처럼 산문도 좋다는 걸 느끼는 시간들이 참 좋다. 좋은 책은 좋은 문장을 가진다는 것, 스토리는 독자로 하여금 공감을 이끌게 하는 것. 소설가들은 좋은 문장을 고치고 우리 독자들은 그가 써낸 좋은 글을 만날 수 있다. 소설가의 글을 쓴다는 것, 더 좋은 문장을 위해 오늘도 책상에 앉아 있을 소설가의 일에 대한 생각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나도 매일 글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게 소설이 아닌 독서감상문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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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생활 소녀와 생활밀착형 스파이의 은밀한 업무일지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8
도쿠나가 케이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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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십대중반은 어땠을까, 문득 생각해본다. 주말이면 친구들과 여행다니거나, 카페에 죽치고 앉아있거나, 영화보거나 했던 때다.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들은 많았지만, 게으름으로 하지 못하고 있었던 때이기도 한것 같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누군가와 사귀다가 채여 며칠을 앓았던 때이기도 한것 같다. 그 시절엔 그 시간들이 너무 힘들었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래도 그때가 좋았던 것 같다. 누군가를 죽도록 사랑하고, 그 사랑을 잃어 아파했던 때가 좋았던 것 같다고 훗날 생각할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지금의 이십대에게 그 시간을 즐기라고 말하고 싶다. 그 말을 듣는 이십대 들은 편한 소리 한다고 뭐라하겠지만 말이다.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에 열정을 다하고 사랑하는 일에도 열정을 다하는 그때가 얼마나 좋은지, 그네들은 나이가 더 든 후에나 깨닫게 되겠지.

 

 

『이중생활 소녀와 생활밀착형 스파이의 은밀한 업무일지』라는 제목도 그렇고, 표지도 만화스러운 책을 만났다. 물론 내용도 약간 만화스럽다. 짧고, 통통 튀는 내용이다. 또한 주인공도 퇴근후 한밤에 만화를 그리는 여자 주인공이다. 정시에 퇴근한다는 이유로 콜센터에서 계약직 상담원으로 일하고, 밤에는 만화를 그리며 작가로 데뷔할 날을 기다리고 있는 스물다섯 살의 여자 구에다 야카가 있다.

 

 

어느 날 자전거로 근하다가 편의점앞에서 어떤 남자와 쾅 부딪혔다. 봉투에 들어었던 만화 투고 원고가 날아갔고 그 남자가 주워주었다. 회사에도, 다른 누구에게도 만화를 그린다는 것을 비밀로 하고 있는 아야카는 그 남자에게 들킨 것 같아 부끄럽다. 사무실에 출근했고, 이어 아픈 센터장을 대신해 온 사람이 아침에 자전거와 함께 부딪힌 그 회색빛 옷을 입은 신사다. 자신을 스파이라고 했던 센터장 대리 기무라 이치로와 야기를 하며 자신의 꿈을 위해 마음을 다잡았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일부러 계약직 일을 하며 자신의 꿈을 키워 나간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다. 스물다섯 살의 아야카는 오늘의 청춘들을 대변하기도 한다. 스파이라고 했던 기무라 이치로 센터장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만화의 새로운 스토리를 구상하기도 한다.

 

책 속의 주인공이 만화를 그려서일까. 오래전에 순정만화에 심취했었던 때가 떠올랐다. 아마도 중학교 시절이 아니었을까. 만화 캔디캔디를 보고, 베르사이유 장미 등을 보았던 때. 아마 순정만화는 고등학교까지 보았던듯 하다. 지금도 나는 명랑 만화보다는 순정만화가 좋은데, 책 속의 주인공은 이처럼 순정만화를 그린다. 커다란 눈, 반짝이는 눈동자, 손가락의 섬세함, 소년과 키스하는 소녀를 그리는 순정만화. 거의 중,고등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만화 잡지라 자신의 나이가 너무 들었지 않았나 하는 고민을 하는 아야카의 마음이 참 싱그러웠다.

 

내 철학에 따르면 말이야, 인생이 즐겁거나 즐겁지 않거나가 아니야. 즐거워하느냐 아니냐의 문제지. 딱 한 번뿐이니까,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니까.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아깝잖아? 무대 위의 연기자처럼 진검승부를 내야 하는 거지. 게다가 전력을 다하는 데 있어서는 본인이 즐거워야 하고, 그게 제일 중요해. (101페이지)

 

 

뒷편에 책 속의 주인공 아야카가 쓴 「내가 사랑한 스파이」라는 글이 보너스로 들어있다. 만화의 내용이기에 짧은 글이지만, 한 권의 만화로 나올수 있는 스토리다. 만화가를 꿈꾸었던 작가 답게 만화적인 스토리였고, 택배회사 콜센터에서 일한 경험이 그대로 녹아있어 아야카의 직업을 제대로 표현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만화가를 꿈꾸었던 작가의 그림 몇 컷이 소설 속에 삽입되었으면 더 즐겁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 앞쪽에 한국 독자들에게 하는 인사말에 있던 그림처럼 말이다.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하는 주인공을 보며 나의 이십대 시절을 생각나게 한 작품이었다. 순정 만화에 빠져있었던 때도 떠올라, 다시금 그 시절에 보았던 만화들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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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로열 - 제149회 나오키상 수상작
사쿠라기 시노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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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키상 수상작이라는 말에 이 책을 구입하고 읽게 되었는데, 작년에 읽었던 박향 작가의 『에메랄드궁』이라는 소설이 떠올랐다. 모텔이나 호텔이나 격만 조금 다를 뿐, 사람 사는 이야기는 다 비슷비슷하구나, 하고 느꼈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연들을 가진 사람들이 스쳐가는 곳. 각자 나름의 사연들을 가지고 있고 방문하지만, 그걸 좋지 않게 바라보는 사람들 또한 있다는 것.

 

이곳에도 사람사는 곳이니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 많은 없는 곳이 호텔이란 곳이다. 호텔 로열의 사장이 되면 호텔 로열의 안주인이 되면, 행복하게 해주는 거라고 혹은 행복해 질거라고 생각하지만, 삶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수많은 러브 호텔이 생기고, 화려한 외양을 자랑하던 호텔들은 조금씩 사양길에 접어드는 것이다. 이곳 호텔 로열에도 『에메랄드궁』에서처럼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방문한다. 호텔 로열을 스쳐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연작소설로 쓴게 『호텔 로열』이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직접 호텔 로열을 경영해 십대때부터 호텔을 청소하는등 호텔 일을 도왔던 작가 사쿠라기 시노의 경험이 묻어나왔다. 작가는 말한다. 서서히 성에 대해서 알아야 할 시기에 결과부터 알게 되었다는 말을. 그래서인지 작가는 성에 대해 거침없이 묘사하는 소설을 썼다고도 했다.

 

자, 일곱편의 연작 소설들의 내용들을 볼까. 「셔터 찬스」사진 잡지에 투고할 누드 사진의 모델이 되어 달라는 남자친구의 부탁을 거절 못하는 여자의 이야기이다. 간호조무사로 일하다가 스무살 차이나는 주지 스님의 아내가 되어 절을 이끌어나간 이야기인 「금일개업」, 아버지의 호텔 접수처에서 청춘을 보낸 여자와 의부증에 걸린 아내를 둔 사람의 이야기 「쎅군」, 「거품 목욕」에서는 좁은 임대아파트에서 시아버지와 함께 사는 통에 남편과 성관계를 하지 못하는 여자의 이야기가 있다. 「쌤」에서는 부모가 가출해버려 있을데가 없는 여고생과 아내의 불륜때문에 힘들어하는 교사의 이야기가, 「별을 보고 있었어」는 열살 연하의 남편과 살아가며 호텔 로열에서 청소하는 여자의 이야기이고, 「선물」에서는 호텔 로열을 짓게 된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일곱 편의 작품들은 각자의 작품으로 읽혀지고, 또한 같이 읽혀지기도 한다. 각각의 연작 단편 속의 사람들은 호텔 로열과 어떻게든 연관이 되어 있었다. 책 속에서 주인공들은 애인과 남편과 혹은 절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관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장면들에서 우리는 눈살을 찌푸리기 보다는 그들의 행동에 순응하게 된다. 남편과 관계를 가질 수 없어 호텔 로열에서 거품 목욕을 하며 한 번의 정사를 나누는 부부나, 호텔 청소를 마치고 늦은 퇴근을 한 뒤에서도 열 살 아래의 남편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그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그들의 행동을 가만히 들여다보듯 읽었다. 호텔 로열을 거쳐갔던 사람들은 몰락한 호텔 로열의 모습과도 닮았다. 세상과 마지막 조우를 하듯 호텔 로열을 찾았다. 그들의 모습은 공허해 보였고 어딘지 모를 우울함을 담고 있었다.

 

어딜 가나 우리들의 사는 모습은 비슷한 것 같다. 아무리 행복해보이는 가정도 집안을 들여다보면 행복과 불행을 동시에 안고 살아가는 경우가 있다. 행복과 불행의 차이가 어느 것이 위에 있느냐에 따라 다르기도 할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바에 따라 행복할 수도 있고, 불행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작품이었다.

 

사쿠라기 시노의 작품, 꽤 괜찮다. 이름을 기억해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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