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의 역사
최민석 지음 / 민음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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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실 허풍을 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 사실에 입각한 이야기를 하는 건 괜찮은데, 완전히 각색을 하여 말하는 사람들, 그것도 과대하게 포장하여 말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누구한테나 다 마찬가지겠지만, 진실성이 없어서이다. 진실성이 없는 사람은 습관처럼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과대포장하여 이야기하며, 또 이야기 하는 걸 즐기는 사람일테다. 물론 글로 읽는 허풍은 괜찮다. 각색하여 글로 나타낸 것도 괜찮다. 이런 책들을 읽다보면 저절로 미소를 짓고, 그 다음 이야기를 어떻게 허풍을 치나, 궁금하기도 한 까닭이다.

 

『쿨한 여자』의 최민석이 이번엔 『풍의 역사』로 한바탕 허풍을 치는 이야기를 우리들에게 건넨다. 바람 풍에 이풍이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허풍으로 불렸던 이, 이풍의 아들인 이구 또한 이구 라는 이름보다는 허구라는 이름으로, 이풍의 손자 이언은 역시 할아버지의 이름을 따 허언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삼대의 허풍 이야기다. 허풍에서 허구, 허언. 이들 모두가 하는 말들은 한마디로 구라라는 거다. 바람처럼 부풀리고, 입으로 나온 말들은 다 거짓말이라는 것, 글을 쓰는 것 또한 거의 각색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것이다. 일제 강점기부터 근현대사를 망라해 근현대사의 운명속에 휘몰아쳤던 한 사내의 일대기, 즉 손자가 할아버지인 이풍의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건네고 있는것이다. 한 편의 이야기는 세계의 역사를, 한국의 역사를 말하기도 했다.

 

 

바람따라 세상을 떠도는 풍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가 세상에 태어났다. 때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였다. 나이가 얼마 되지 않는데도 키가 장신이었고, 나이를 알 수 없었던 이풍은 미소년을 탐내기로 유명한 서른살의 아줌마로부터 여섯살의 금순이까지 탐낼 정도로 기골이 장대하고 잘생긴 소년이었다. 풍이 한 눈에 반하게 한 소녀가 있었으니 그녀의 이름은 수선이었다. 수선은 풍에게 밤이라 불렸고, 밤이란 이름은 풍의 인생에서 아주 많은 역할게 하게 된다. 밤톨처럼 귀엽고 얼굴이 동그랗다라는 이유로 애칭처럼 밤이라 불렀던 것이, 저 머나먼 오키나와 전투에서는 밤(bomb, 폭격)으로 들렸고, 베트남에서는 밤(bam, 베트남어 썰다)으로 들려 그의 인생이 운명의 바다에 회오리치는 과정을 겪었던 것이다.

 

 

그의 그런 삶에는 일본의 앞잡이로, 베트남의 마약밀수업자로, 혹은 고문관으로 이풍의 인생에 여기저기 기웃거리게 되는 앞잡이가 있었고, 그의 반평생을 함께 하며 이 풍의 삶을 들었다 놨다하는 오중사가 있었다.

 

 

 

삶에는 언제나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는 순간 비로소 진실이 되는 게 있단다. (43페이지)

 

삶은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전혀 생각지 못했던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사람의 주변에 어떤 사람이 있느냐에 따라서 잘 풀리기도 하고 내리막으로 치닫기도 하는것 같다. 그래서 어른들은 친구들을 잘 사귀어야 한다고 했던 것처럼. 풍에게 오중사나 앞잡이가 없었다면 첫사랑 밤과 자신의 고향 중도에서 별일없이 살았을수도 있다. 하지만 오중사나 앞잡이가 있었기 때문에 풍은 일본이 제2차세계대전을 치룰때 일본군으로 참전했고, 나이 마흔이 넘어 베트남전쟁에 참전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를 때 불안하지만, 사실 그때가 가장 인간다운 거란다. (254페이지)

 

 

최민석의『풍의 역사』는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때론 허풍쟁이인 이풍의 이야기에 웃고, 전쟁의 한복판에 있었을 것을 생각하면 한편으로는 안됐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풍의 허풍에 웃을수 밖에 없었다. 이름도 어쩌면 이렇게 재미있게 지었는지, 다시한번 최민석의 위트있는 글에 즐거워했다.

 

 

토요일자 신문의 '책의 향기' 코너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 얼른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역시나 내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 최민석 작가의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인 『능력자』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때론 슬픔속에 침잠하는 글도 자주 읽는 편이지만, 책을 읽으면서 즐거운 기분이 드는 이런 책들이 정말 좋다. 희대의 입담꾼 최민석이 건네는 이야기에 몇 시간 동안 아주 즐거웠다.

 

 

아, 갑자기 이름에 풍 들어간 어떤 아저씨에게 '바람풍 아저씨'라고 부르곤 하는데, 이풍의 허풍 이야기를 들려주면 어떨까, 싶다.

 

P.S. 이 책의 표지는 그냥 보았을때는 은색의 풍風자인데, 책을 기울이거나 사진을 찍으면 이처럼 오묘한 무지개색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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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 김영하의 인사이트 아웃사이트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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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상을 바라볼때 어느 한 곳으로 치우치면 안된다. 아무런 편견없이, 사심없이 바라보아야 한다. 하지만 자기식대로 바라보고, 자기식대로 판단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평범한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볼때 느끼는 것처럼, 소설가나 시인이 바라보는 시선은 다르다. 평범한 우리와는 너무 다른 작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들. 그래서 우리는 작가가 쓴 에세이를 즐겨 읽는지도 모른다. 작가가 쓴 소설과는 또다른 느낌. 개인의 생각이 소설보다, 시보다 더 드러나기에 더 친근함을 느끼는것 같다. 때로 작가가 쓴 에세이를 바라보며 많은 부분을 교감하는 것, 또는 작가가 한층 가깝게 느껴지는 것도 같다.

 

김영하의 소설은 몇 편 읽었지만, 산문은 처음으로 만났다. 어떤 작가의 산문은 소설보다는 훨씬 다정함을 느끼기도 하는데, 김영하의 산문은 소설과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되 감정적으로 드러내는게 아닌 이성적으로 드러낸다는 느낌을 가졌다. 이것 또한 작가의 성향이 아닐까 싶다.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력은 날카롭고 예리하다. 그 예리함과 통찰력에 우리는 그가 바라보는 세상을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손바닥만한 스마트폰이 우리의 세상을 어떻게 바꾸었는가.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때 아르바이트로 영어테이프를 판매하는 일을 하며 느꼈던 일들, 영화 '설국열차' 속의 꼬리칸과 머리칸에 탔던 사람들의 자신의 변명들, 정규직 직원과 비정규직 직원에 대한 생각들. 영화 '신세계'의 주인공 이자성의 부자아빠와 가난한 아빠를 빗대어 말하는 것들에서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낄수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이 조금씩 굳어지기 마련이다. 바라보는 시선이 굳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자꾸 이런 저런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바라보는 시선과 책 속에서 바라보는 시선의 다름을 느끼고, 내 식대로 살면 안되겠구나 이런 생각을 할수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아집만 강해지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지 않은 사람일 경우가 많다. 다른 사람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만 중요시하는 경우일 것이다.

 

김영하 작가도 책에서 언급했지만, 영화 '그래비티'를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었다. 산소와 물이 없는 무중력 상태인 행성과 행성 사이의 우주 공간에서 혼자 살아남는다는 것은 어떨까. 어느 누구와 이야기할 수도 없고 혼자서 어떻게든 살아내야 하는 짧은 시간들. 자신을 위해 먼저 우주 공간속으로 날아간 동료를 위해서라도 살아남아야 하는 스톤 박사(샌드라 블럭)의 분투를 바라보았었다. 지금도 생각나는 장면은 아무도 없는 우주공간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별들의 아름다움, 고요한 시간들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작가는 어린 딸을 사고사로 잃고 우주 공간에 와있는 스톤박스의 우울증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우울증은 사실 죽고싶은 병이라고 할만큼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데,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고 자신이 가야할 지구를 향해 진짜 죽음을 극복하는 이야기를 했다. 이처럼 김영하의 글에서는 삶의 통찰력이 보인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예사롭지 않다. 작가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같은 영화를 봐도 이처럼 통찰력있게 바라보는 것이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담은 '보다' 라는 이 책과 더불어 '읽다'와 '말하다'라는 제목의 산문집을 시리즈로 출간할 예정이라고 한다. 김영하 작가가 읽은 책과 독서에 대한 이야기와 그의 강연 이야기를 담은 책이 몹시도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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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불은 끄지 말 것 - 사랑이거나 사랑이 아니어서 죽도록 쓸쓸한 서른두 편의 이야기
김종관 글.사진 / 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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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오늘 표지를 자세히 쳐다보니 남자와 여자가 서로 볼을 맞대고 있는 사진이구나. 나는 그저 블루빛이라는 거, 몽환적인 표지라고만 생각했다. 출판사 '달'에서 나온 책들은 모두 감성적인 에세이가 많아 이 책 또한 감성적인 에세이이거니 했다. 일단 사진과 글이 함께 실렸다하니, 저자의 이름도 생소하지만, 출판사가 '달'이라는 것, 표지가 이뻤다는 것 때문에 선택한 책이랄까.

 

 

무작정 책을 구입해놓고 기다리고 있는 사이에, 이웃분의 글에서 섹스 칼럼을 묶은 책이라는 글에 '어, 이게 아닌데' 라는 생각을 했었다. 책의 부제를 볼까. '사랑이거나 사랑이 아니어서 죽도록 쓸쓸한 서른두 편의 이야기' 라고 나와있다. 그리고 또 책의 뒷 표지에 보면 진한 다른 색깔로 '사랑은 신체접촉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사랑은 어둠 속에서 시작된다'라고 나와있다. 이웃 분의 말씀처럼 이 책은 섹스 칼럼이다. 어쩌면 아주 짧은 소설로 읽히는 단편소설이라고 해도 어울린다. 그리고 자기 고백이 들어있기도 한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의 마음일 것이다. 서로가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마음과 몸을 다해 사랑하는 것. 마치 자석처럼 서로에게 이끌리듯 끌리는 사랑, 그 사랑 안에 육체가 없다면 그건 너무 밋밋할지도 모른다. 마음보다 먼저 육체에 끌려 사랑하는 사람도 있고, 몸이 먼저 만나 시작했고, 그 사람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데도 몸을 잊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 속의 연인들이 그러하듯, 이 책 속의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도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사진에는 어떤 기분들이 붙어 있다. 사진을 찍던 그곳의 날씨와 그 주변의 사람들. 사진을 찍어준 이와 상황들. 어떤 사진에는 우울함이 감돌고 있다. 기억은 간단한 촉매로 불려 일어난다. 때때로 사진에 남은 흔적 속에 해결되지 않은 감정들이 붙어 있기도 한다. 공감도 계절감도 없는 지나간 증명사진도 기억의 촉매가 된다. (144페이지)

 

사흘동안 집안에 틀어박혀 스무번의 관계를 가진후 핼쓱해진 표정으로 여권 사진을 찍고 유학길에 올랐던 남자. 오래전 찍었던 그 여권 사진을 다시 바라보며 그때의 시간들을 기억해내고 있었던 이야기가 있었다. 사진을 자주 찍는다. 예쁜 풍경을 바라보았을때, 그때의 시간들을 기억하고 싶을때, 기억의 시간들을 멈춘다. 사진속에 담아놓고, 시간이 지난후 들춰보면 그때 함께했던 사람들과의 관계, 추억을 시간들을 갖는 것이다.

 

 

 

동갑인 한 친구와 이야기 한 적이 있는데, 나중에 딸에게 남자친구가 생기면 주려고 모텔에서 콘돔을 하나 챙겨왔다는 내 말에 친구는 놀랬다. 자기는 아직 그런 쪽에 마음을 터놓지 못하겠다고. 용납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우리와 다르기때문에 생각을 달리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나는 친구에게 '마녀사냥'이라는 프로그램을 좀 보라고 했다. 요즘 젊은이들의 성에 대해서 좀 알수 있을거라는 말과 함께. 문득 이 책의 리뷰를 쓰고 있으려니 며칠 전에 나눴던 친구와의 대화가 생각나서 적어보았다.

 

 

내가 자라왔던 것만을 생각하고 있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변화되는 세상에 적응을 해야하고, 굳어져 있던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본다. 그렇지않으면 닫힌 눈으로만 세상을 볼 것이기에. 우리는 열린 눈을 가져야 한다.

 

 

저자 김종관이 보여주는 서른두 편의 글들은 그의 단편 영화를 보는 듯 했다. 남녀 두 사람, 혹은 세 사람의 주인공이 나와 서로 사랑하고 이별하고 함께 잠을 자는 이야기, 그리고 작가의 내레이션이 있는 짧은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 말이다.

 

저자가 찍은 사진에서는 사람의 얼굴이 자세히 나오지 않는다. 멀리서 흐릿하게만 보일 뿐. 사람의 표정이 보이지 않는다. 쓸쓸한 풍경을 찍은 사진들이 많았다. 쓸쓸한 풍경을 찍은 사진들 속에 저자의 감성이 짙게 배어있을 것 같았다. 여행을 떠난 이의 감성, 삶에 대한 통찰력,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쓸쓸한 감정들을 다루었을것 같았다. 하지만 쓸쓸한 사진들과 글이 썩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하지만 마지막 책장을 다 덮고 나니, 이 모든 사랑은 지나간 사랑이었으며, 쓸쓸한 감정만 남아있는 이야기라는 걸. 은밀한 마음들을 쓸쓸한 풍경들 속에 감춰두었다는 걸, 그래서 사진과 글이 썩 어울린다는 걸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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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맨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6
오리하라 이치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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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추리소설을 많이 읽었다고 생각하지만, 역시나 내가 모르는 작가가 많다는 걸 깨닫게 되는 시점이 있다. 이 책 『그랜드맨션』도 그랬다. 처음 책 표지를 만나 괴담에 가까운 이야기일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토록 짜릿하다는 걸 느끼게 해주다니. '이런 식으로 흘러가겠구나' 하고 예상하지만, 그 예상을 역시나 뒤엎고 마는, 뒤통수 한 대를 맞는 듯한 느낌이랄까. 오리하라 이치의 작품을 이제야 만나다니. 꽤 많은 작품을 펴낸것 같은데, 우리나라에서는 몇 권 되지 않은가 보다. 작가소개란에서 보이는 그의 작품들 '도착 시리즈' 나 '~자 시리즈' , '교실 시리즈'라는 작품들이 있는 것 같다. 그리 무겁지 않으면서도 삶의 희노애락을 괴담속에서 느낄수 있는 책이었다.

 

이 책은 총 일곱 편의 단편으로 되어있고, 그랜드 맨션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한데 어우러져있다. 이야기의 화자만 다를 뿐, 등장 인물들은 옆집이거나 윗층집 등 이웃집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형식이었다.

 

그랜드맨션은 지은지 30년이 지난 맨션으로 임대료가 저렴한 곳이라 한번 들어오면 나가지 않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곳은 독거노인, 실직자 등 돈이 없어서 임대료를 내지 못한 사람들도 있고, 직장을 퇴직한 후 연금을 받으면서 여유롭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연금을 받고 있는 노인들은 그 연금마저도 아끼며 저축하는 사람들이 많고, 또한 현금을 은행에 저금하지 않고 장롱속에 넣어두는 노인들도 있다. 이것을 자랑스럽게 말하면 돈이 없는 사람들은 그 돈을 노릴 수 밖에 없는 법. 이웃집에 산다는 이유로 이웃집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그 집안의 동태를 파악하기도 하고, 그 사실들을 주민들에게 알리기도 한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도 전화 사기가 노인들에게 많이 이루어져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는 일본도 역시 마찬가지인지 전화로 가족중에 누군가가 다쳤다며 돈을 갈취하기도 하는 것이다. 팔십이 넘은 노인들에게 이처럼 사기를 치는 사람들 역시 같은 그랜드맨션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다.

 

 

이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으니 사건 사고도 끊이지 않는다. 누군가의 집에서 악취가 나 관리인에게 신고하고 들어가보니 욕조에 아내의 시체를 숨겨놓고 있다거나, 할머니가 죽은지 오래인데도 산 것처럼 꾸며 부정으로 연금을 수급하는 사람들도 생기는 것이다. 또한 오래된 4층짜리 맨션 앞에 10층 건물의 새로운 그랜드맨션 2관이 들어서기도 해, 그랜드맨션 1관에 사는 사람들은 일조권 때문에 시위를 하려고 하지만 그것 또한 쉽지 않은게 사실이다. 분양 맨션이 아닌 임대 주택의 한계인 것이다.

 

 

일곱 편의 연작으로 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무심코 읽었다가는 큰코를 다칠수 있다. 작가의 트릭에 범인을 찾다보면 작가의 화자가 범인인 경우도 있고, 현실의 일이라 생각하고 있던 사이에 그건 과거의 이야기일뿐 시간은 어느 새 삼십 년 후가 훌쩍 지나있는 경우가 많다. 죽지 않았을까 하는 사람은 삼십 년을 즉신성불(살아있는 채 부처가 된다는 말)로 앉아 있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의 허를 찌르는 단편들의 결말 때문에 우리는 마음을 놓을수 없고, 긴장하며 읽어야 한다.

 

마지막 단편 「리셋」편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이네코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부끄러워졌다. 늙는다는 것은 잔혹한 일이다. 그녀는 곧장 집으로 돌아와 잊어버리기 전에 지금 들은 이야기를 메모해 남겨두기로 했다.' (352페이지) 여든이 넘은 할머니가 방화사건을 목격하지만, 치매때문에 아침만 되면 모든 일은 잊는, 즉 기억이 리셋 되어 불안한 마음으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 안타까움을 담았다.

 

 

이처럼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그랜드맨션에도 이웃을 배려하는 사람들,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기담과 괴담 속에서 삶의 희노애락을 느낄수 있었던 것이다. 새로운 그랜드맨션 2관에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살텐데, 이곳에서도 다양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까. 그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이야기를 건네는,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 지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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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난폭
요시다 슈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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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무엇인가. 가장 쉽고도 어려운게 사랑인것도 같다. 사랑할때는 그 모든 것들이 나를 향해 움직이지만, 왜 결혼을 하게 되면 그 열정이 무뎌지는 것인가. 사랑에 무뎌지는 것이 아니라 생활에 저절로 젖는 것인가. 사랑할때는 그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도 얻고 싶은게 사랑이지만, 사랑을 얻고 났을때 공허함마저 느끼는 것일까. 사랑, 참, 어렵다.

 

결혼해서 오랜 시간을 살다보니 그다지 싸우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에 잉꼬부부처럼 살아가는 우리 부부의 모습이다. 거실에 앉아 TV를 볼때도 아직 손을 마주잡고 TV를 보는데, 어깨를 안고 있는 신랑의 모습을 본 조카는 이모부는 이모를 굉장히 보호하고 있다고 말한적이 있었다. 다 큰 우리집 아이들은 그 모습을 봐도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보는데, 조카 아이의 시선에는 특별하게 보였나 보다.

 

 

글쎄, 이랬던 신랑이 바람을 피운다면? 사실, 믿고 싶지 않을 것 같다. 만약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대도 내가 느끼지 않게, 내가 몰랐으면 하는 바램이 더 강하다. 그걸 안 순간 지옥을 오가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기 때문에.

 

최근엔 이런 사람들이 꽤 있다는 걸, 주변에서 만나곤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내가 하지 않으려고 할 뿐이지, 사랑에 대한 감정은 배우자 외에 생길수도 있다고 본다. 실비아 플라스의 자전적 소설에서도 그랬다. 소설속 주인공은 오로지 낯선 남자를 바란다고 했다. 아는 남자 말고 전혀 모르는 낯선 남자에 대한 로망. 그건 현재의 우리도 그러지 않을까 싶은게 사실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들게 한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을 만났다. 제목부터가 사랑이 얼마나 난폭해질수 있는지를 느끼게 한다. 소설은 한 내연녀의 일기, 한 남자의 아내로 있는 아내 모모코의 일기, 작가가 바라보는 모모의 일상을 전해주는 내용으로 전개가 된다. 모모코는 결혼전에는 그다지 맞지 않았지만, 한 집에서 시부모는 안채에, 마모루와 모모코 부부는 별채에서 생활하고 있고, 모모코는 아침마다 시어머니에게 음식물쓰레기를 달라고 하며 같이 버리는 며느리의 역할을 다 하고 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모모코와 살면서 비누 공예를 문화센터에서 일주일에 세 번쯤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런 모모코의 남편 모모루에게 열여섯 살 연하의 내연녀가 생겼다. 더군다나 내연녀 미야케 나오에게 아이가 생겼다며 나오를 만나달라고 한 것이다.

 

 

 

 

남편에게 여자가 생겼지만, 자신은 남편의 아내라는 이유 때문에 그 사랑이 굳건할거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다. 사랑은 난폭할 뿐이다. 모모코에게 마모루의 사랑은 난폭해졌을 뿐 더러 믿을 수 없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토록 믿고 싶었던 마모루의 사랑이 변질 되었다는 것. 이제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토록 모모코를 사랑했던 남편 마모루는 이제 그녀의 새로운 사랑 나오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임신한 나오와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다고 했다.

 

 

사실 내연녀의 일기를 읽고 있노라면, 아내가 있는 남자를 사랑하는 마음, 그의 생활이 궁금해, 그 남자의 집 근처에까지 가고, 아이를 임신했다는 이유로 자신이 남자의 아내를 내쫓고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마음들이 전해진다. 반면, 아내의 일기는 남편을 뺏기고 싶지 않은 마음, 자신에 대한 사랑과 열정도 식었지만, 아내라는 이유로 내연녀를 정리할 것이라 믿고 싶은 안타까움이 일었다.

 

소설이 후반부에 갈수록 작가는 독자를 충격에 빠뜨렸다. 도저히 믿을수 없는, 믿고 싶지 않은 일들을 알려주기 시작한 것이다. 여성의 심리를 이토록 섬세하게 다룬 작가가 남자라는 사실도 믿기 어려웠다. 사랑이란 거, 참 난폭하다. 이토록 난폭할 수가 없다.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이토록 난폭해질 수 있다는 거, 새롭게 다시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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