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생활 소녀와 생활밀착형 스파이의 은밀한 업무일지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8
도쿠나가 케이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나의 이십대중반은 어땠을까, 문득 생각해본다. 주말이면 친구들과 여행다니거나, 카페에 죽치고 앉아있거나, 영화보거나 했던 때다.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들은 많았지만, 게으름으로 하지 못하고 있었던 때이기도 한것 같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누군가와 사귀다가 채여 며칠을 앓았던 때이기도 한것 같다. 그 시절엔 그 시간들이 너무 힘들었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래도 그때가 좋았던 것 같다. 누군가를 죽도록 사랑하고, 그 사랑을 잃어 아파했던 때가 좋았던 것 같다고 훗날 생각할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지금의 이십대에게 그 시간을 즐기라고 말하고 싶다. 그 말을 듣는 이십대 들은 편한 소리 한다고 뭐라하겠지만 말이다.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에 열정을 다하고 사랑하는 일에도 열정을 다하는 그때가 얼마나 좋은지, 그네들은 나이가 더 든 후에나 깨닫게 되겠지.

 

 

『이중생활 소녀와 생활밀착형 스파이의 은밀한 업무일지』라는 제목도 그렇고, 표지도 만화스러운 책을 만났다. 물론 내용도 약간 만화스럽다. 짧고, 통통 튀는 내용이다. 또한 주인공도 퇴근후 한밤에 만화를 그리는 여자 주인공이다. 정시에 퇴근한다는 이유로 콜센터에서 계약직 상담원으로 일하고, 밤에는 만화를 그리며 작가로 데뷔할 날을 기다리고 있는 스물다섯 살의 여자 구에다 야카가 있다.

 

 

어느 날 자전거로 근하다가 편의점앞에서 어떤 남자와 쾅 부딪혔다. 봉투에 들어었던 만화 투고 원고가 날아갔고 그 남자가 주워주었다. 회사에도, 다른 누구에게도 만화를 그린다는 것을 비밀로 하고 있는 아야카는 그 남자에게 들킨 것 같아 부끄럽다. 사무실에 출근했고, 이어 아픈 센터장을 대신해 온 사람이 아침에 자전거와 함께 부딪힌 그 회색빛 옷을 입은 신사다. 자신을 스파이라고 했던 센터장 대리 기무라 이치로와 야기를 하며 자신의 꿈을 위해 마음을 다잡았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일부러 계약직 일을 하며 자신의 꿈을 키워 나간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다. 스물다섯 살의 아야카는 오늘의 청춘들을 대변하기도 한다. 스파이라고 했던 기무라 이치로 센터장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만화의 새로운 스토리를 구상하기도 한다.

 

책 속의 주인공이 만화를 그려서일까. 오래전에 순정만화에 심취했었던 때가 떠올랐다. 아마도 중학교 시절이 아니었을까. 만화 캔디캔디를 보고, 베르사이유 장미 등을 보았던 때. 아마 순정만화는 고등학교까지 보았던듯 하다. 지금도 나는 명랑 만화보다는 순정만화가 좋은데, 책 속의 주인공은 이처럼 순정만화를 그린다. 커다란 눈, 반짝이는 눈동자, 손가락의 섬세함, 소년과 키스하는 소녀를 그리는 순정만화. 거의 중,고등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만화 잡지라 자신의 나이가 너무 들었지 않았나 하는 고민을 하는 아야카의 마음이 참 싱그러웠다.

 

내 철학에 따르면 말이야, 인생이 즐겁거나 즐겁지 않거나가 아니야. 즐거워하느냐 아니냐의 문제지. 딱 한 번뿐이니까,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니까.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아깝잖아? 무대 위의 연기자처럼 진검승부를 내야 하는 거지. 게다가 전력을 다하는 데 있어서는 본인이 즐거워야 하고, 그게 제일 중요해. (101페이지)

 

 

뒷편에 책 속의 주인공 아야카가 쓴 「내가 사랑한 스파이」라는 글이 보너스로 들어있다. 만화의 내용이기에 짧은 글이지만, 한 권의 만화로 나올수 있는 스토리다. 만화가를 꿈꾸었던 작가 답게 만화적인 스토리였고, 택배회사 콜센터에서 일한 경험이 그대로 녹아있어 아야카의 직업을 제대로 표현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만화가를 꿈꾸었던 작가의 그림 몇 컷이 소설 속에 삽입되었으면 더 즐겁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 앞쪽에 한국 독자들에게 하는 인사말에 있던 그림처럼 말이다.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하는 주인공을 보며 나의 이십대 시절을 생각나게 한 작품이었다. 순정 만화에 빠져있었던 때도 떠올라, 다시금 그 시절에 보았던 만화들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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