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구두당
구병모 지음 / 창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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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화를 읽었던 우리는 동화가 어떻게 변주되던 작가들이 변주해놓은 글들을 즐긴다. 오히려 기대하기까지 한다. 하나의 동화와 동화속에서 튀어나온 인물들이 작가의 상상력으로 변주된 글을 읽노라면 작가의 생각 조각들을 엿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동화가 어떻게 변주되던지 우리는 글 속에서 동화를 찾고 동화같은 삶을 꿈꾸기도 한다. 물론 우리의 상상일 뿐이지만. 동화는 우리들의 판타지이므로 우리는 오늘도 동화속 판타지를 찾아 헤매는지도 모른다. 

 

  구병모의 작품을 꽤 읽었다. 작가가 처음 쓴 『위저드 베이커리』에서부터 『그것은 나만이 아니기를』, 『파과』등등 인터넷 서점에서 작가의 책들을 골라보니 한 권 빼놓고는 거의 다 읽은 것 같다. 그만큼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로서 작가의 나쁜 동화 변주곡은 꼭 읽어야 할 소설로 간주 되었다. 더군다나 동화의 변주곡이라잖나. 『파란 아이』에서 잠시 만난 「화갑소녀전」에서 느낄 수 있었듯 「성냥팔이 소녀」를 모티프로 한 소설을 읽으며 이런 식의 소설도 괜찮겠다 싶었었다.  

 

  『빨간구두당』은 그림형제나 안데르센, 유럽이나 러시아 민담 등을 참고로 하여 다채롭게 변주한 새로운 형태의 소설이다. 청소년과 성인이 함께 읽어도 무방한 소설로 고전 동화의 내용과 현 시대와의 상황을 조화롭게 쓴 소설이었다. 작가의 판타지적 글이 뛰어났고 이 책에서는 총 8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표제작인 「빨간구두당」은 제목에서부터 알다시피 안데르센의 『빨간구두』를 새롭게 쓴 글이다. 한 마을에 흰색이나 검은색 혹은 회색 빛깔의 옷만 입고 다니는 곳에 빨간 구두를 신은 처녀가 나타났다. 죽어가는 늙은 신부가 빨강색을 한번 보고자 해 빨간 구두를 신은 처녀를 데려왔다. 빨간 구두를 신은 처녀는 빨간 구두를 신고 계속 춤을 추고 있었다. 팔다리를 움직여 춤을 추는 처녀는 멈출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처녀를 마녀로 몰아 빨간 구두를 신은 발을 잘랐고 빨간 구두를 신은 자른 발은 여전히 춤을 추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춤을 추는 빨간 구두를 따라 다니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그들을 빨간구두당이라고 불렀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잔혹한 동화다. 동화가 원래 잔혹한 내용을 품고 있었고, 어린이들에게 맞게 순화되어 나온 것이라고 알고는 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잔혹했다. 춤을 추는 것을 멈추지 못한다고 마녀로 몰아 처녀의 발을 자르다니. 물론 이 동화를 처음 읽었을때 춤을 추는 것을 멈추고 싶어도 멈추지 못했을때 발을 자를수 밖에 없었겠구나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서 다시 읽는 동화는 참혹하기 그지 없는 잔혹동화였다. 많은 동화들이 그랬다.

 

  동화들이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를 모티프로 한 「화갑소녀전」은 또 얼마나 슬펐던가. 성냥을 팔았던 소녀가 몸을 녹이기 위해 화광 공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거쳐야 했던 경비원과 비서, 공장장이 어린 소녀를 어떻게 했는지 보면 현재를 거울로 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카이사르의 순무」에서는 죽은 괴한을 땅에 묻었다가 거대한 사람모양의 순무를 캐 왕에게 바치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였다. 성경속 구절과 로마신화 속 인물을 예로 들어 현실 세계에서 살아가는 고통스러운 삶을 이야기했다. 진실은 어둠속으로 달아나고 전달자에 의해 임의로 전해지는 이야기의 힘은 어디까지인지를 묻는 작품이었다.

 

  단편 소설들 중에서 스토리텔링이 뛰어난 작품은 「헤르메스의 붕대」라는 소설이었다. 그림 형제의 「유리병 속의 작은 도깨비」의 동화를 모티프로 한 작품으로, 입구가 코르크 마개로 덮인 유리병을 숲속에서 발견하고 병에서 무언가를 꺼내주게 되었다. 그에게서 한 장의 거즈를 받았고, 거즈의 왼쪽 부분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입은 모든 상처를 치료할 수 있었고, 몸을 문지르면 눈에 보이지 않는 고열, 내상, 각종 염증을 몸 밖으로 떠나보낼 수 있었다. 신비한 능력을 가진 그에게 진료소의 의사는 그에게 어떤 의심을 했던가.

 

그녀는 바람이 한숨 쉬는 소리를 들었다. 빗줄기의 속삭임을 들었고, 흩날리는 눈발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한 알의 주근깨만 한 초파리의 날갯짓 소리를 듣고도 그것이 다음 순간 어느 자리에 가 앉을 것이며 따라서 언제 일격필살이 가능할지를 예측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놀라운 재주를 갖고 있다 한들, 그것이 내일 먹을 곡식을 여물게 하는데 도움 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181페이지, 「엘제는 녹아 없어지다」 중에서) 

  다시한번 작가의 이야기의 변주에 놀랐고, 작가의 글에 압도되었다.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 우리가 꿈꾸었던 다른 삶을 간접 경험하는 것이고,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감성들을 글로 만날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는 거. 작가 구병모의 나쁜 동화의 변주곡에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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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5-09-10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