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옷을 입으렴
이도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초판본을 읽은게 삼 년 전이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때문에 오랫동안 차기작을 기다려왔었고, 반가움에 들떠 읽었던 책이었다. 그 책이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고 삼 년 만에 다시 나왔다. 예쁜 소녀스러운 표지와 뒷면에는 초판본에는 없었던 작가의 말까지 실려있었다. 같은 소설임에도 전혀 다른 소설처럼 느껴졌다. 마치 처음 읽은 것처럼 새롭고 또 생소했다.

 

  우리의 기억은 어디까지일까. 우리가 행복했다고 생각했던 기억들보다 때로는 아팠던 기억들이 더 선명한 것처럼, 아픈 기억은 우리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자리잡는 것 같다. 잊었다고 생각하지만 잠재의식 속에서는 늘 살아있는 것도 같고. 무심코 기억 속의 장소에 갔을 때 심장을 베인듯 기억속의 아픔이 고통이 되어 다시 떠오르듯.

 

  다시 읽는 『잠옷을 입으렴』은 오래전 먼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책이 귀했던 때 읽었던 동화책의 기억. 시골길의 추억. 함께 어울렸던 친구들. 책속의 이야기는 오래전 우리들이 소녀였던 때로 옮겨가 그 시간속을 걷게 한다. 이 책도 그랬다. 외로운 소녀지만 외사촌 수안이 있어 외할머니집에서 마음을 붙일수 있었던 둘녕의 소녀시절과 함께 했다.   

 

  둘녕과 수안은 둘도 없는 친구였다. 열한 살에서 열여덟 살의 시간을 함께 견뎠다. 함께 책을 읽고 책 속의 이야기를 하고 놀이도 했다. 서른여덟 살의 둘녕이 기억하는 수안과의 시간은 아픔, 그리움, 쓸쓸함, 고통이 함께 했다. 아직도 그 고통을 잊지 못했는지 한밤중이면 잠옷을 입고 맨발에 돌아다니곤 하는 몽유병에 걸렸다. 어릴적 엄마인 소녀 향이와 할머니가 나타나 꿈 속을 지배했다. 둘녕은 무엇을 찾아 밤새 돌아다녔을까. 스러진 수안을 찾아? 과거속 함께 했던 수안과 둘녕의 추억을 찾아?

 

 

   그시절 함께 했던 수안과의 기억들을 소녀적 향이와 함께 찾아다녔던 둘녕의 독백이었다. 꿈속에서도 슬퍼 울었던 둘녕의 나직나직한 고백. 시간은 현재의 시간을 견디는 둘녕과 과거 수안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자주 교차되었다. 과거속 둘녕의 아픔과 현재의 둘녕의 견딤이 동시에 느껴졌다. 아련한 시간속 수안과의 시간을 추억할때 둘녕은 그시절이 그리웠을 것이다. 누군가와 함께 했던 시간들은 늘 그리운 거니까. 과거의 시간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둘녕은 아파 보였다. 오히려 과거속 시간을 상기하고 있을때가 더 둘녕다웠다고 할까. '실과 바늘'이라는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둘녕은 늘 혼자였으므로 무엇보다 외로워보였다.

 

그 순간, 내가 언젠가 이날을 그리워할 때가 있으리란 걸 깨달았다. 고요한 밤의 폐가에서 그와 함께 보냈던 짧은 나날들을. (262페이지)

 

  둘녕이 뜨고 있었던 잠옷. 그리고 오래전 은이 이모가 사주었던 잠옷을 보니 문득 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떠올랐다. 일찍 스러진 자식들을 위해 새 내복을 사서 무덤가에서 태워주던 한 할머니의 모습이. 그 영화를 보던 순간 얼마나 울었던가. 그 생각이 나서 또 눈물이 났다. 자신이 뜬 잠옷을 수안이 입어주기를 바랐던 둘녕의 마음이 느껴져서였다. 돌탑가에서 태워졌을 잠옷. 이제는 둘녕이 과거 속의 장소를 가도 아픔이 덜하지 않을까.

 

누군가 힘들 때 그걸 고쳐주는 일은 쉽다. 하지만 곁에서 지켜보며 기다려주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는 걸.  (298페이지)

 

  우리의 유년 시절과 함께 했기 때문일까. 둘녕과 수안이 함께 했던 그 시절을 추억하며 우리의 추억이 떠오르는 시간들이었다. 모암마을 버스정류장에서 만났던 남자애. 둘녕이 너무 늦지 않았기를 바라며, 그럼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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